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34)
괴담 호텔 탈출기 734화(733/794)
734화 – 최초의 소원, 김상현 (1)
– 한가인
상현 형을 관측하던 중, 요원 아스테어로부터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다.
‘여명의 아들을 경배하라. 그는 천상에서 떨어진 자이니, 누군가는 그를 해탈을 막는 자의 일원이라 여겼다.’
해탈을 막는 자의 일원.
분명 여명의 아들에 대한 기존의 정보는 기독교적인 메타포로 가득했는데, 해탈을 막는 자의 일원이라는 표현은 대단히 불교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단어 자체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그러니까…
기억났다.
— 펄럭!
‘타자의 것이 네 것일 수 있다면, 너 또한 타자일 수 있지 않겠는가.’
화신의 서, 두 번째 문장의 힘이 발하며 빛나는 형상을 닮은 분신이 나타난다.
곧, 하나의 뿌리에서 태어난 또 다른 내가 테이블 위에서 꾸벅꾸벅 졸던 아리에게 다가갔다.
“아리야.”
“으음… 벌써 교대 – 꺄악!”
“…”
“놀랐네! 분신으로 나타나기 전에 말하라고!”
“… 해탈을 막는 자의 일원. 이 표현 익숙하지?”
아리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후, 화이트보드에 글자를 끄적였다.
* 3층의 숨겨진 NPC
1. 不令解脫
“이거? 불령해탈. 호텔의 숨겨진 요소 중 하나야.”
“…”
“갑자기 왜? 지금은 저주의 방 진행 중인 것 아니야?”
저주의 방 진행 중인데 갑자기 숨겨진 요소에 대해 왜 묻는지 의아해하는 아리.
왜냐하면, 그동안은 저주의 방 내부의 서사와 ‘호텔’은 독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은 현실을 초월한 영역이며,저주의 방에서 벌어지는 일은 호텔 그 자체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데,여명의 아들은 불령해탈의 일원이고 불령해탈은 호텔의 숨겨진 요소다.
여기까지 이해하니, 아스테어가 죄수에 대해 말했던 내용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여명의 아들은 인류를 위해 천상에서 내려왔다.’
3층에 도착하자 저주의 방이 호텔 그 자체와 얽히기 시작한 것.
“그 천상이 이 천상이었구나.”
“뭐라는 거야?”
301호의 죄수는 승천 현상을 모방해 천상에 난입했다.
302호의 죄수는 본디 호텔의 영역,천상에 속해 있던 존재다!
“관측에 집중할게.”
“뭐? 가인아, 설명은?”
분신을 거두었다.
“아니, 야! 야! 의미심장한 말만 던지고 혼자 망원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
– 김상현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행성에 착륙했다.
— 휘이잉…!
해치를 열자마자 처음 느낀 것은 어마어마한 눈보라.
관리국의 기술력이 들어간 특제 우주복을 입고 있는데도 전신이 갈대처럼 흔들린다.
당연히 이런 환경에서 육성으로 대화할 수는 없겠지만, 우주복의 PLSS(Primary Life Support System)에 포함된 통신 장비를 통한 대화는 가능했다.
— 지직!
“아스테어! 사방에 눈보라가 가득합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 지직!
답변이 없다.
“아스테어?”
그새 통신 장비에 이상이 생긴 줄 알고 살짝 당황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 모르겠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 답하지 않은 것.
“지도 같은 건 없습니까? 좌표는 -”
말하다가 내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무슨 지구의 오지가 아니라 정체불명의 외행성이 아닌가?
지도 따위가 있을 리 없지.
— 지직!
데이빗의 통신.
“자, 자! 일단 해치 밖으로 나가서 걸어보자고. 걷다 보면 뭔가 나올 거야.”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렸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걷자니요?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여명의 아들께서 우릴 인도하시겠지.”
이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었다.
새삼스럽지만, 난 정말 이런 오컬트와 맞지 않았다.
A라는 행동을 할 때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B라는 현상이 벌어질 때는 원인이 무엇인지 고찰해야 한다.
평생 논리와 과학의 영역에서 살아왔는데 ‘일단 움직이자. 신께서 인도하실 거야.’ 같은 소리라니…!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별수가 없었다.
“… 그러면 갑시다.”
“앗! 잠깐, 티모시! 내 바이저좀 고정해 줘.”
“제임스, 또 실수했군요.”
“하핫, 고마워.”
티모시?
유진 아니었나?
*
.
..
…
외계 행성에 착륙한 지 정확히 2시간 47분 22초가 흐른 시점.
— 지직!
“아무도 없습니까?”
— 지직!
“내 말 안 들립니까?”
모두가 사라졌다.
분명 서로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움직였고, 주기적으로 통신까지 했는데도!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힘겹게 걸어가는 나 하나만 남았다.
귀신에 홀린 것 같다.
아니지, 이곳은 신적인 존재의 영역이니 신에게 홀렸다고 해야 하나?
“…”
처음부터 희생은 각오하고 왔지.
관리국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고 솔직히 알렸고, 나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다.
막상 혼자 남으니,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 휘이잉!
또 20분이 흘렀다.
언젠가부터 앞이 흐릿하고 잘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몰아치는 눈보라로 인해 헬멧 편광 필터에 이상이 생긴 모양인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까부터 귓가에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네가 …’
끔찍한 외계 행성에 홀로 떨어진 낙오자가 된 두려움을 느끼며 말했다.
“허억…! 허억! 정말 아무도 없습니까?”
— 지직!
“조니, 아직 버틸 만하지?”
그 순간, 그토록 고대하던 동료의 답변이 돌아왔다.
“유진!”
반가움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헬멧은 물론이고우주복조차 벗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태연히 걷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혹시 지구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우주복을 버, 벗었습니까?”
“미안 미안. 아무래도 난 너무 거추장스럽더라고.”
센서에 따르면 주변 온도는 영하 242도이며, 인간이 호흡할 수 없는 미상의 대기로 가득하다.
게다가, 우주복을 벗었으면서 통신 장비를 통한 소통은 어떻게 하는 걸까?
“…”
하나하나 따지지 말자.
상대는 요원이며, 요원은 반쯤 사람을 벗어난 괴물이니까.
이 사람은 요원 중에서도 특히 인간을 많이 벗어난 모양이다.
그때, 유진이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조니, 지금은 다른 동료가 없잖아? 이럴 때 네게 묻고 싶은 게 있어.”
“… 지금 말입니까?”
지금 내게 뭘 묻겠다고?
정체불명의 신이 거하는 외계 행성에서?
“그래.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이 순간만큼은 여명의 아들도 방해할 수 없으니까.”
흑발을 휘날리는 청년의 태도는 짐짓 쾌활했지만,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문득, 유진의 나이가 엄청나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선각자 크롬웰보다도 말이다.
“여명의 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 아시다시피, 프로젝트에 합류하기 전의 저는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여명의 아들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다만, 여러분이 그를 신처럼 여기는 건 압니다.”
“신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
“아스테어는 여명의 아들이 인류를 여러 번 구했다고 하더군요.”
“맞아. 그는 내가 인지한 것만 세도 10회 이상 인류를 구했어. 천사를 내려 파멸을 막기도 했고, 간접적으로 인과를 뒤틀어 도움을 주기도 했지.”
“그렇습니까?”
“네가 보기엔 관리국이 정체 모를 외계신을 섬기는 것 같아서 꺼림칙하겠지만, 관리국에게도 나름의 근거는 있다는 소리야.”
유진도 여명의 아들을 숭배하는 걸까?
아니었다.
“관점을 바꿔보자. 지금껏 말한 과정은, 외계신이 인류를 자기 뜻대로 휘두르기 위한 빌드업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
“제가 이해한 대로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인류를 도운 것 같습니다만…”
“어마어마한 시간? 아, 열 번 이상의 역사니까?”
열 번 이상의 역사.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사람에게는 상상도 못 할 긴 시간이긴 해. 관리국조차 여명의 아들을 믿는 쪽이 대세가 될 정도의 시간이지. 그런데, 마라파순천이라는 단어 들어봤어?”
마라파순천.
“처음 듣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의 영역이야. 쉽게 말해 신들의 영역. 마라파순천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373억 7,600만 년이라고 하지.”
“…”
“내가 하려는 말 이해했어?”
“열 번 이상의 역사에 걸쳐 인류를 도운 일. 우리에겐 터무니없이 긴 시간이지만, 여명의 아들에겐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군요.”
유진이 빙그레 웃었다.
마치, 어린애가 간단한 문제를 맞히니 칭찬하는 어른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여명의 아들을 부정합니까?”
“부정하냐고? 글쎄, 부정이나 긍정보다는 객관적으로 보고 싶은데.”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
“나는 관리국이 모르는 사실을 조금 더 알거든.”
이 말은 제법 기이하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을 관리국과 구분된 별개의 존재라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명의 아들은 분명 사악한 존재는 아니야. 선악으로 구분하면 선에 가깝겠지. 인류에게 호의를 가진 것도 사실이야.”
“… 당신의 말대로 그가 정말 우리에게 우호적인 존재라면, 관리국의 판단이 옳은 것 아닙니까?”
청년이 살짝 입꼬리를 비틀었다.
“한 가지를 놓치고 있구나.”
“…”
“조니, 혹시 개를 길러본 적 있어?”
“있습니다. 15년쯤 전에 저먼 셰퍼드를 길렀지요.”
“저먼 셰퍼드. 지능이 높고, 신체 능력이 뛰어나. 무엇보다 사람에게 헌신적이지. 훌륭한 품종이야.”
갑자기 개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개는 본래 늑대였어. 문명이 일어서기 전, 선사시대. 지금처럼 눈보라가 몰아치는 빙하기에 몇몇 늑대가 인류 정착지 주변을 어슬렁거렸지. 사람은 당시에도 불을 피울 수 있고, 먹을 것도 많았으니까.”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말하시는군요.”
“우리는 늑대를 거두었어. 개중 말 잘 듣는 착한 늑대는 모닥불 곁에 앉아있게 허락했고, 고기를 나눠주었지. 말 안 듣고 포악한 늑대? 당연히 전부 죽였어.”
“…”
“그렇게 수만 년이 흐르니, 정신병에 걸린 늑대 무리가 나타났어. 이들은 뇌에 이상이 생겼는지, 사람을 만나면 옥시토신이 57% 상승해. 말하자면 인간을 사랑하는 병에 걸린 거지.”
“…”
“우리는 이 정신병 걸린 늑대 무리를 개라고 부르고, 개는 인간의 친구라고 말하지.”
“… 무슨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대등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사랑과 위에서 베푸는 사랑은 결이 다르다. 여명의 아들은 분명 인류를 사랑하고 아낀다. 이는 내가 보증하마. 하지만, 그 사랑이 대체 어떤 사랑일까?”
그때, 나는 유진의 몸이 서서히 흐릿해지고 있음을 알았다.
“유진? 유진? 갑자기 어디로 가는 -”
“백문이 불여일견. 이제부터 직접 경험해보거라. 위대한 자가 베푸는 사랑이 무엇인지 말이다.”
.
..
…
다시금,황량한 세계에 홀로 남고 말았다.
섬뜩한 경고 덕에 아까보다 더한 두려움을 느낄 무렵.
— 스아아…!
눈보라가 멎었다.
하늘에서 따스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고, 우주복 센서는 주변 환경이 인간에게 적합한 환경이라고 알리기 시작했다.
더없이 자비로운 목소리를 들었다.
‘… 너를 위한 온기를 준비했노라. 가엾은 자여, 무겁고 거친 옷을 벗으라 …’
흐릿한 환영이 시야를 잠식해 간다.
푸르른 초원, 낙원과 같은 땅.
중앙에 선 새하얀 거인이 나를 내려다본다.
무릎은 구름보다 높고, 발은 호수보다 거대하다.
목소리에 실린 위엄은 천사의 그것과 다름없으니, 진실로 위대한 자였다.
넋 나간 듯 우주복을 벗은 채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자애로운 거인이 아직 부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 고작해야 몸을 덮은 거죽 한 겹을 벗었구나…’
우주복을 벗는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을 구하니, 곧 답이 돌아왔다.
‘… 기뻐하라. 내가 너의 두려움을 재웠으며, 악덕을 삼켰노라. 네게 더 이상 그 어떤 족쇄도 없음을 알라…’
아찔함을 느끼며 고개를 들자, 하늘에서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마치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던 모세처럼, 내게 지고한 계명이 내려옴을 느낀다.
단 하나의 계명.
‘… 네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
겸손의 족쇄를 벗었다.
자애의 족쇄를 벗었다.
친절의 족쇄를 벗었다.
인내의 족쇄를 벗었다.
정결의 족쇄를 벗었다.
절제의 족쇄를 벗었다.
성실의 족쇄를 벗었다.
어리석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일곱 미덕의 족쇄를 벗어던지니, 비로소 그 아래에 숨겨진 진실한 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