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35)
괴담 호텔 탈출기 735화(734/794)
735화 – 최초의 소원, 김상현 (2)
– 김상현
미덕의 족쇄를 벗자, 영육이 모두 날것처럼 느껴졌다.
견딜 수 없는 공포와 고통을 느끼며 온몸을 웅크리니, 누군가가 푹신한 털옷을 주었다.
충만한 은총이 결여의 공포와 고통을 걷어낸다.
이 순간, 나는 넋 나간 듯 고개를 들어 질문했다.
“이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답변은 하늘이 아니라 옆에서 들려왔다.
마치, 이제부터는 머나먼 성천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겠다는 것처럼.
“기뻐하라. 이제 곧 모든 이가 받아들일 축복을 네게 가장 먼저 하사했도다.”
섬뜩할 정도로 새하얀 형상이 내 옆에서 미소 지었다.
문득, 나는 여명의 아들이 품은 순백의 창백함이 아스테어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스테어는 여명의 아들을 섬기는 과정에서 그 힘의 일부를 나누어 받았을지도 모르지.
“나는…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창백한 천사가 미소 지었다.
위대한 자가 보기에 인간은 더없이 어리석었지만, 또한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보아라.”
“무엇을 보란 말입니까?”
“미덕이 곧 환상임을 알라. 미덕이 곧 족쇄임을 알라. 미덕이 곧 결여임을 알라.”
창백한 천사가 말하길, 사람이 세운 미덕이란 환상이자 족쇄이며, 결여이다.
그렇기에 천사는 인간으로부터 미덕을 걷어내고자 한다.
곧, 거대한 환영의 물결이 일대를 뒤덮었다.
*
.
..
…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푸른 초원.
흉터 가득한 사냥꾼이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길을 나선다.
설치해 둔 덫 근처로 움직이니, 고대하던 소리가 들렸다.
— 그르륵! 꾸에엑!
덫에 걸린 멧돼지의 거친 울음소리.
사냥꾼은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예리한 창을 꺼내 들었다.
“이얍!”
벼락같이 뻗은 창이 단박에 멧돼지의 숨통을 끊으니, 사냥꾼과 그 가족이 일주일은 배불리 먹을 고기였다.
현장에서 사냥감을 해체한 후, 수레에 담은 채 마을로 돌아왔다.
곧, 사방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사냥꾼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본인이 얼마나 기가 막힌 위치에 덫을 설치했는지, 창술은 또 얼마나 대단했는지 떠든다.
그러던 중, 지혜로운 사냥꾼의 본능이 경고한다.
이대로면 너는 죽는다고.
“…”
찰나의 침묵 속에서 사냥꾼은 주변을 살핀다.
분노, 질투, 탐욕.
누군가는 사냥꾼의 태도를 오만하다고 여겼다.
누군가는 사냥꾼의 특출난 실력을 질투했다.
누군가는 사냥꾼의 고기에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사냥꾼은 강하다.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서넛이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열 명을 감당하긴 어려웠고, 집에는 어린 아내와 갓난아이가 있었다.
다행히도, 현명한 사냥꾼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곧, 사냥꾼의 입에서 전과는 다른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멧돼지를 얻은 것은 하늘신께서 가호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솜씨는 거들었을 뿐이지요.
혹시 덫 위치가 궁금하십니까?서쪽 언덕 너머에 개암나무가 가득한 숲이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는 언제나 짐승들이 가득하니, 짐승이 걷는 길에 구덩이를 파면 빠지기 마련이지요.
아하, 이런 기쁜 날에 고기를 어찌 나 혼자 먹을 수 있겠습니까!
한 덩이씩 나눠줄 테니, 모두 주머니를 가져오시지요.
겸손함을 보였다.
친절함을 드러냈다.
자선을 베풀었다.
곧, 무당은 소리높여 사냥꾼을 칭찬한다.
질투심 가득한 군웅은 사냥꾼의 친절함에 감동했다.
굶주린 예비 약탈자들은 고기 한 덩이를 얻자, 사냥꾼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므로 겸손과 친절, 자선은 숭고한 미덕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
세월이 흐름에는 자비가 없기에 유능한 사냥꾼도 점차 몸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그에게 큰 걱정이 생겼는데, 아내에 대한 의심이었다.
사냥꾼은 과거와 달리 늙고 약해졌다.
허나, 결혼할 때부터 나이 차이가 있던 아내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
어느 날, 사슴 가죽을 마을에 팔다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활 솜씨가 매서운 젊은 사냥꾼, 내심 젊은 시절의 본인보다도 낫다고 생각하던 청년.
그가 아내에게 눈독 들이고 있다는 소문.
믿지 않으려 했지만, 의심의 씨앗이 생겨나니 모든 행동이 의심스러웠다.
젊은 사냥꾼이 집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눈빛이 매서워지고, 아내가 외출한다는 말만 들어도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의심은 확신이 된다.
확신은 분노가 된다.
분노는 복수가 되었다.
야수처럼 고함치며 창칼을 들고 젊은 사냥꾼의 집을 급습하니,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사정없이 오가는 원색적인 욕설.
새파랗게 빛나는 창의 예리함과 화살의 섬뜩함.
어느 순간, 늙은 사냥꾼은 깨닫는다.
쇠약해진 내가 저 젊은이를 이길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분노를 억누르니, 이를 인내라 한다.
…
분노를 인내하던 중, 늙은 사냥꾼은 문득 깨달았다.
내 손이 떨리는 만큼 젊은이의 손도 떨리고 있다.
내 눈에 담긴 두려움이 젊은이의 눈에도 있었다.
그렇다.
늙은 사냥꾼이 젊은 자와 싸우기를 주저하듯, 젊은 자도 늙은 사냥꾼과 생사결을 벌이는 걸 주저했다.
두렵다.
무섭다.
죽고 싶지 않다.
그때, 사제가 나타난다.
문명의 태동기, 사제는 법관이자 지식인이며 역사가였기 때문이다.
하늘신의 사제는 생각한다.
늙은 사냥꾼의 솜씨는 여전히 뛰어나며 후배 사냥꾼들에게 가르칠 것이 많다.
젊은 사냥꾼은 장차 마을에 수많은 멧돼지와 사슴을 가져다주리라.
둘 다 잃을 수 없다.
희생 없이 충돌을 멈춰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제가 생각건대, 문제의 시작은 어린 아내와 젊은 사냥꾼의 만남에 있었다.
그래서 사제는 모두의 앞에서 선언했다.
하늘신께서 말하시길, 순결이 미덕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젊은 여인은 집 밖을 나서지 말고 외간 남자를 멀리하라.
정결하지 못한 자, 하늘신의 분노를 사리라.
배우자에 대한 의심에서 정결의 미덕이 태어났다.
…
세월이 흘러 늙은 사냥꾼은 죽고 젊은 사냥꾼은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 길어지며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 으아앙!
사냥꾼의 어린아이들은 끊임없이 눈물 흘리며 먹을 것을 달라고 졸랐다.
저 찬장 위에 곡식이 있지 않냐며, 그 곡식을 끓여 죽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사냥꾼은 크게 소리쳐 아이들을 혼냈다.
찬장에 손대면 종아리가 부러질 줄 알라고 경고했다.
사냥꾼이 잔인하고 가학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찬장 위의 곡식은 내년을 위한 종자였기 때문이다.
하루를 꼬박 굶으니, 사냥꾼도 배가 고팠다.
당장이라도 찬장 위의 종자를 죽 끓여 먹고 싶었다.
하지만, 종자까지 털어먹으면 내년 봄에 텃밭에 뿌릴 씨앗이 없다.
먹을 것이 부족하다.
사냥꾼이 살아온 세상에선 언제나 그러했다.
그러니 그는 아이들을 매질하며 절제하라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절제의 미덕은 빈곤에서 태어났다.
…
굶주림을 참는 데에도 한계는 있다.
서늘한 겨울밤, 사냥꾼은 결국 마지막까지 아꼈던 종자로 죽을 끓였다.
아내와 아이에겐 단 한 숟갈도 주지 않았다.
전부 사냥꾼 본인의 입에 털어 넣었다.
왜냐하면, 죽을 나누면 한 사람의 배도 제대로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냥꾼이 혼자 전부 먹어야 했다.
그는 이제부터 겨울 산을 오를 참이기 때문이다.
눈보라가 거세다.
손가락 끝은 점차 굳어가며, 눈썹에 살얼음이 맺힌다.
발에서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냥꾼은 설령 사냥이 성공적으로 끝나더라도 손 발가락 몇 개는 잘라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냥꾼은 묵묵히 겨울 산을 올랐다.
아내를 생각한다.
12년 전, 늙은 사냥꾼에게 덫을 놓는 위치를 듣다가 처음 만났던 순간의 감동을 떠올린다.
세월의 흐름은 그녀에게도 자비가 없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을 생각한다.
둘은 늙은 사냥꾼의 아이고, 다른 둘은 내 아이다.
아니다.
네 아이에겐 구분이 없으며, 모두 내 아이다.
사냥꾼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다.
그러므로 사냥꾼은 겨울 산을 올라야 한다.
손가락이 떨어지고 피부가 얼어붙어도, 그는 오늘 멧돼지를 잡아야 했다.
고통을 견디며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선 성실해야 했다.
— 파아앗!
*
환영이 끝났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자아 정체성이 흔들릴 것만 같았다.
내가 늙은 사냥꾼인지, 젊은 사냥꾼인지, 그 둘의 꿈을 꾼 김상현인지 알 수 없었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였다.
곧, 창백하게 빛나는 천사가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알겠느냐?”
“…”
“미덕이란 환영이다. 족쇄이며 결여다. 숭고한 가치가 아니다. 세상이 괴롭기에, 그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너희가 만든 환상에 불과하니라.”
그때, 나는 천사의 눈에서 옥구슬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진심으로 인간을 사랑한다.
그랬기에, 인간이 비루한 삶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 낸 미덕의 굴레를 슬피 여겼다.
“동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면, 겸손과 자선, 친절도 필요치 않다. 경쟁자와 싸워 죽을 일이 없다면, 인내와 정결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언제나 식량이 충분하고 생계의 걱정이 없다면, 절제와 근면에는 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혼란스럽다.
사람의 도덕이 위대한 자에게 이렇게 보일 수 있음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구하고자 한다. 두려움으로부터 해방해 주마. 그러니 겸손과 자선, 친절의 가면은 불요하다. 죽음은 인간의 사전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리하면, 자연스러운 감정을 속일 필요도 없다. 굶주림을 다시는 겪을 일 없으리라. 그러니 마음껏 먹고, 마음껏 놀아라.”
이 순간, 나는 관리국과 요원들을 진심으로 이해했다.
여명의 아들은 신이었다.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천상에서 내려온 구세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