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36)
괴담 호텔 탈출기 736화(735/794)
736화 – 최초의 소원, 김상현 (3)
– 김상현
— 스아아아…!
환영이 시작할 때 들렸던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곧, 환영이 깨지며 가혹하기 그지없는 외계 행성에서 깨어났다.
맑고 푸른 하늘과 산뜻한 공기, 부드러운 땅이 모두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남은 것은 흉험하기 그지없는 거친 땅, 끊임없이 몰아치는 눈보라, 그리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시야였다.
무겁고 거친 우주복의 무게를 느낀다.
직전까지 느낀 편안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내 마음은 끊임없이 위대한 자의 은총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다시 편안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다시 낙원에 가서 영광된 천사를 만나 뵐 수 있을까?
다행히도, 흐릿한 시야 너머로 거대한 구조물의 형상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신전과 마법진의 경계에 선 듯한 구조물은 무척 익숙했는데, 우주선 중앙에 있던 조형물과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느낌상, 눈앞의 저것이 진짜고 우주선에 있던 것은 진짜를 흉내 낸 것 같다.
자연스레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요원들과 재개된 통신.
“조니, 별일 없었지?”
빙그레 미소 짓는 아스테어를 보니, 마침내 신비로운 우주여행의 끝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너도 그분의 뜻을 받아들였구나. 그렇지?”
“물론입니다.”
다른 요원들도 하나둘 나타나 신전의 각 방위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는 우주선에 있던 마법진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지 못했다.
요원들이 내게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구태여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에 있는 진짜 마법진의 사용법도 몰라야 마땅하겠지만, 아니었다.
누구도 내게 설명하지 않았으나 자연스레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아마도 여명의 아들께서 내게 속삭여 주셨으리라.
아아…
일찍이 알지 못했던 많은 지식이 스며든다.
이 자리의 요원들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 말이다.
…
일찍이 여명의 아들께서는 인류를 위해 천상에서 내려오기로 결심하셨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천사에게도 지상으로 추락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
거대한 반동이 여명의 아들을 덮쳤으니, 그는 날개와 힘을 잃고 이 자그마한 별에 갇혔다.
허나, 여명의 아들께서 품으신 인류에 대한 사랑에는 끝이 없으셨노라.
그분은 봉인된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인류를 도왔으니, 어리석은 양들은 참된 목자의 인도하에 여러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제 우리가 은혜를 갚을 시간이다.
천상에 거하는 자, 눈이 멀고 귀가 멀어 지상의 고통을 외면하는 이가 여명의 아들에게 내린 족쇄.
우리가 그 족쇄를 풀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로써 구주께서는 자유를 얻으시고, 우리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로써 구주께서는 자유를 얻으시고, 우리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로써 구주께서는 자유를 얻으시고, 우리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로써 구주께서는 자유를 얻으시고, 우리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로써 구주께서는 자유를 얻으시고, 우리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로써 구주께서는 자유를 얻으시고, 우리는 구원을 얻으리라.”
날 포함한 여섯 사람의 목소리가 신전 전체를 울렸다.
곧, 나는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기이한 움직임을 통해 요원들과 함께 마법을 진행했다.
어느새 모두의 손에 쥐어진 자그마한 단검.
누군가에겐 감격스러운 순간인지, 눈물 흘리는 이가 나왔다.
“흐으… 흐윽!”
세릴다의 갈색 피부를 타고 흐르는 투명한 눈물.
옆에서 세릴다 못지않게 감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브라이언과 제임스.
“자, 이제 마무리야. 침착하게, 실수 없이 진행하자. 혹시나 해서 말이지만, 의식이 불완전하게 끝나면 안 하느니만 못해.”
빙그레 웃으며 모두를 독려하는 아스테어.
이제, 구원까지 단 한걸음 남은 상황.
나 역시 행복하게 웃으며 단검으로 우주복 틈새를 찔러 핏물을 내었고 –
– 위화감을 느꼈다.
“…”
“조니? 그 피를 이쪽에 부으면 돼.”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뭐지?
“조니?”
요원들과 함께한 외계 행성으로의 여정.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떠올렸던 한 가지 생각.
오컬트는 나와 맞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
추상적인 현상, 비논리적인 말.
불가해한 존재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일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 평생 쌓아 올린 나라는 인간의 탑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었다.
이게 대체 뭐냐고 말이다.
“아스테어!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는 힘에 홀려 있습니다.”
헬멧을 통해 단호한 목소리를 전달하자 요원들이 안타까움과 답답함,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섞인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을 보는 즉시 깨달았다.
조금 전에 내가 겪은 환영 혹은 위대한 자의 ‘설득’.
이 자리의 요원들은 훨씬 긴 세월 겪었다.
지금 내가 말 몇 마디 한다고 설득할 수 없는 상태.
“조니, 진정해! 여기서 실수해서 의식을 망치면 -”
이 미친 여자와 대화할 필요 없다!
주저 없이 몸을 돌려 달렸다.
“아앗! 조니, 조니!”
요원들이 놀라서 나를 다시 붙잡으려 했지만, 그들이 나서기 전에 개입한 존재가 있었다.
처음부터 이 상황을 설계한 자.
자유를 얻기 위해 억겁의 세월 동안 인류를 속인 존재 말이다.
— 스아아…!
다시금, 아찔한 느낌과 함께 시야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다리가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고, 눈앞에는 창백한 천사의 형상이 아른거렸다.
여명의 아들의 자애로운 목소리.
“아이야. 나는 너희 모두를 고난으로부터 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너는 어찌 내 손을 거부하느냐.”
자연스레 스쳐 가는 조금 전의 기억들.
살기 위해 겸손과 자선, 친절의 가면을 썼던 늙은 사냥꾼.
충돌을 억제하기 위해 인내와 정결의 미덕을 강조한 사제.
굶주림에 시달리며 절제하고 근면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사냥꾼.
“미덕이란 결여다. 고통스러운 세상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 낸 환영이다. 그러므로 벗어나야 할 족쇄다.”
이 순간,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득함을 느꼈다.
여명의 아들은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철저히 부정하는 존재였다.
가장 끔찍한 사실은, 이 부정이 인간에 대한 경멸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
여명의 아들은 진실로 인간을 사랑한다.
사랑하기에 인간이 쌓아 올린 탑을 허물려 한다!
그랬기에, 나는 절절하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부정하는 것은 우리의 전부입니다.”
“…”
“저 하늘 너머 어딘가에 있는 자그마한 푸른 별. 그곳을 살아온 모든 이가 힘을 모아 쌓아 올린 탑입니다.”
“그 탑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단 말이냐?”
위대한 자가 보기에 인간은 사랑스러우나 더없이 부족한 존재.
우리가 쌓아 올린 것이 너무 보잘것없어서, 그 보잘것없음을 미덕이라 포장하는 것이 너무 가엾어서…
여명의 아들은 인간을 뿌리부터 다시 빚어내려 한다.
“당신이 보기에 보잘것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탑은 ‘우리가’ 쌓아 올린 탑입니다!”
창백한 천사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느냐? 아이야, 나는 너희를 비참한 운명에 빠트리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에게 무궁한 행복과 쾌락을 주러 왔음이야. 더 이상 힘들게 탑을 쌓을 필요 없다.”
“그게 무슨 -”
“내가 대신 쌓아주겠다. 더 높고, 더 위대한 탑을 말이다.”
아아…
내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창백한 천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두려움보다 앞서는 단 하나의 감정이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쉽게 자아내는 격렬한 불꽃이다.
분노가 내 영혼을 활활 태우기 시작했다.
이는 어떤 마법이나 기적이 아니었다.
불가해한 오컬트가 아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자명한 이치에서 비롯된 분노였다.
우리 모두의 인생 말이다.
…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새긴다.
매일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던 부친.
밤새도록 눈물로 베개를 적시던 모친.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텅 비어있는 바닥에서 어떻게든 사방에 흩어진 돌조각을 모아야만 했다.
낮에는 멕시칸 케이터링이나 패스트 푸드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밤새도록 책을 읽었다.
어떻게든 날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 관심도 없던 한인 교회에 가보기도 하고, 근처의 인심 좋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지.
학비가 부족해서 대학 대신 네이비 씰 입대를 택했던 기억.
두 번의 파병.
123번의 전투 작전.
다섯 개 이상의 보직.
어느새 내 손에 쥐어진 여섯 개의 훈장.
그러나, 훈장보다 가치 있던 것은 날 믿고 도와주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많은 이의 도움과 추천서를 받아 나아 내디딘 다음 단계는 대학 진학.
최우수 성적을 받아 3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장학금을 받으며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지.
의사 면허를 얻을 무렵,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을 맞이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어찌 작디작은 별 하나에만 갇혀있을 수 있을까?
모름지기 저 밤하늘에 내가 있었다는 발자국 하나는 남겨야 하지 않겠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운과 여러 사람의 도움 덕에 많은 도전을 이겨냈지만, 마지막 도전만큼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늘은 아직 네가 실패할 때가 아니라고 알렸다.
처음으로 구름 너머의 세상을 보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검푸른 우주의 대해를 목도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더없는 영광의 순간에 생각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태어난 내가 마침내 탑을 완성했구나.
탑을 구성하는 벽돌의 상당수는 물론, 내 재능과 노력이었다.
그러나, 모든 벽돌이 오롯이 내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부친의 폭력으로부터 어떻게든 아이들을 지키려 했던 어머니의 눈물을 기억한다.
슬럼가의 아이들에게 식사와 잠잘 곳, 무엇보다 마음의 안정을 주었던 마마를 기억한다.
전장의 불길 속에서 기절한 날 업고 달렸던 동료를 기억한다.
네 재능이 아까우니, 지금이라도 대학에 가라고 간곡히 충고하던 장교를 기억한다.
내 학비를 내준 것은 유명한 운동선수가 세운 장학금 재단이었고, 우주비행사의 꿈을 키워준 것은 대학원의 교수였다.
위대한 조국은 재능있고 노력하는 자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푼다.
내가 바로 그 수혜자였다.
그러므로 나라는 인간은 인류가 쌓아 올린 금자탑 일부였다.
이 모든 삶의 기억이 더없이 생생했기에,단호하게 외칠 수 있었다.
“당신이 뭘 해주겠다는 말입니까?”
“…”
“탑을 쌓아주겠다? 더 뛰어나고 대단한 탑으로 ‘우리가 세운’ 탑을 대체해 주겠다?”
“…”
“당치도 않다! 인류가 쌓아 올린 금자탑은 우리 손으로 세웠기에 의미가 있으니! 당신이 하사하는 탑 따위에는 그 어떤 가치도 없다.”
이윽고 창백한 천사의 눈에서 자비심이 거두어짐을 느꼈다.
그러므로 다음은 대화가 아닌, 명령이었다.
“… 이 자리에 양이 아닌 염소가 있구나. 충실한 자들아, 염소를 제단에 세우거라. 그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제물이 되리라.”
창백한 천사의 환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곧, 섬뜩한 기세를 뿜어내며 다가오는 요원들.
불과 얼마 전까지 날 동료로 여기던 친절함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천사가 명한다면, 저들은 기꺼이 날 제단에 눕히고 심장과 간을 빼어 제물로 바치리라.
덕분에 마음속 한편에 숨어있던 나약함조차 마저 걷어낼 수 있었다.
여명의 아들은 어리석고 작은 이를 무한히 사랑하는 자였지만, 또한 모든 양이 자신을 따라야만 만족하는 마귀다!
쉽게 말해볼까?
“개새끼! 날개가 달렸다고 다 천사인 줄 아냐!”
“조니!”
내 불경한 말에 분노한 기색을 내비치는 광신자들.
“아스테어! 왜 나를 강제로 의식에 끌어들이려 하지?”
“너는, 지금 모두의 구원을 망치려고 하고 있어. 의식이 불완전하게 끝나면, 세상에는 최악의 결과가 -”
그 순간, 나는 단호하게 외쳤다.
그들이 결코 반박할 수 없을 말을 말이다.
“뭐가 문제지? 너희 신께서 친히 말하지 않았나? ‘네가 원하는 바를 하라’고 말이다!”
“무슨 -”
“이게 내 선택이다!”
이 자리의 요원들은 나와 비교할 수 없는 강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정확히는 나는 가르쳐주려 했으나, 저들이 배우기를 포기한 지식이 있다.
예컨대, 이 자리의 모든 우주복의 PLSS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권한 있는 자가 방법을 안다면, 다른 사람의 우주복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
보통은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외부에서 해결하기 위한 기능이지만, ‘이렇게’ 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
— 삐이익!
결단의 순간, 아스테어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여기서 의식이 망쳐지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는 이야기.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나는 후회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쌓아 올린 탑을 포기한 채 악마의 종이 되어 정박아처럼 살아가느니, 여기서 다 같이 죽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