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38)
괴담 호텔 탈출기 738화(737/794)
738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12)
– 김상현
최초의 소원을 자각하며 정보의 소용돌이가 정신없이 머리를 혼란케 하는 상황.
가능하다면, 어디 조용한 방에서 정보를 정리하고 싶다.
안타깝게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조니? 무슨 일이야?”
“… 갑자기 머리가 좀 아프군요.”
대충 얼버무리며 생각을 이어간다.
한 가지 확실한 점.
여명의 아들을 깨우기 위한 여정은 놀랍게도 11년 전의 일이 아니며, ‘전생’에 있었던 일이다!
전생을 논할 수 있음은 지금의 내가 회귀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니지, 기억이 불확실하니 회귀자가 아니라 불완전한 회귀자인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들.
‘모르겠어? 이번 여정이 끝나면 조니도 ‘우리’의 일원이 될 거야.’
‘나도 아스테어의 말이 옳다고 본다.’
여정의 중간중간, 아스테어는 내가 추후 요원이 될 것이라 했다.
위대한 자와 대면할 정도로 순도 높은 혼돈에 접촉하는 일.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여정에 함께하는 일.
이는 영혼의 격을 단기간에 크게 상승시킬 수 있다.
승엽 군이 좋아하는 게임처럼 표현하면, 레벨이 폭증하는 이벤트라고 볼 수 있겠지.
이러니까 요원들은 여정의 끝에 나 역시 최소한 불완전한 회귀자는 될 것이라 예측한 것.
여기까지는 이해했는데…
“…”
그러면, 지금 상황은 대체 뭐지?
무엇보다 내가 기억을 떠올리는 트리거가 된 이 사진들은?
훈련 과정, 우주여행 과정에서 사진 정도야 여러 번 찍었을 테니, 사진의 존재가 이상한 게 아니다.
사진이 지금 내 손에 있는 게 이상하다.
루프 전 세계에서 찍은 사진이 내게 어떻게 – 답은 하나구나!
고민할 것도 없다.
이전 세계의 물건을 이후 세계로 가져올 수 있는 조직? 이런 건 세상에 관리국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
쓰레기봉투 뒤에 숨겨진 쪽지를 발견하고, 쪽지의 지시에 따라 카메라와 사진을 찾은 일.
전부 관리국의 의도다.
여기까지 깨달았을 때, 아스테어의 기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아…. 조니, 또 불필요한 기억을 떠올렸구나.”
불필요한 기억?
마치, 나의 현 상태가 아스테어가 바라던 바가 아닌 것 같았다.
창백한 여인의 안타깝고 서글픈 시선.
나는 저 표정을 과거의 기억 속에서 여러 번 봤다.
상대는 내게 인간적인 호감이 있는 듯했지만, 감정은 감정의 문제일 뿐.
선각자를 앞둔 베테랑 요원은 개인감정을 공적인 일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 쿠궁!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방 전체가 요란히 떨렸다.
뻔히 관측소에서 일으킨 폴터가이스트 현상이지만, 아스테어에겐 전혀 예상 못 한 일이겠지.
당장이라도 손을 쓸 것 같던 아스테어가 당황한 표정으로 휘청이는 찰나의 순간!
내가 먼저 행동을 취할 기회가 왔다.
— 드르륵!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것이 일종의 신호였다.
아스테어의 양 옆에서 푸른 불꽃처럼 타오르는 손이 발현되었다.
두 개의 손이 순식간에 내 주변을 감싸니 피할 곳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지.
나는 생사가 명멸하는 이 순간을즐길 수 있어야 한다!
[‘즐기는 자’가 발동합니다.]축복의 힘이 깨어나며 불가해한 힘이 깨어난다.
기나긴 세월 속에서 터득한 여러 기술이 축복의 힘을 빌려 극한에 도달한다!
직후, 나는 몸을 가볍게 비틀며 불꽃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앗!”
내가 갑자기 불꽃으로 뛰어드니, 아스테어조차 당황했다.
그러나 그다음이 진짜였다.
상대가 불러낸 푸른 불꽃이 내 손짓에 따라 이끌리며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
— 쾅!
크게 당황한 목소리를 뒤로하며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왔다.
“잡아!”
“잡아라!”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들려오는 정신없는 목소리들.
흥분한 표정의 거한이 진압봉을 들고 달려온다.
보아하니 나름대로 훈련받은 군인 같았지만, 움직임이 너무 크고 둔했다.
평소에도 체술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즐기는 자가 발동된 상황.
이 상태의 나는 205호에서 확인했듯, 극단적인 초인들조차 능히 상대할 수 있다.
하물며 평범한 군인 따위야!
“끄억!”
가볍게 목을 내리쳐 한 명.
겸사겸사 허리춤의 권총을 빼앗는다.
몇 걸음 떼기가 무섭게 나타나는 세 명의 군인.
생각하기도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 탕탕!
자연스러운 더블 탭.
연속된 두 발의 사격이 정확히 같은 부위를 꿰뚫었는데, 이러면 설령 방탄복을 입고 있어도 타격이 크다.
하물며 군인들에겐 방탄복이 없었다.
보아하니, 내가 난동을 부리더라도 아스테어가 쉽게 제압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딱히 잘못된 판단은 아니야.
저들이 보기에 저번 주까지의 나는 평범한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주부터는 베테랑 호텔 참가자다.
— 탕탕! 탕탕!
노화로 인해 둔하다고 여겼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권총은 아예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는데, 성실의 축복과 ‘즐기는 자’의 권능이 사격술에도 통하는 모양이다.
하긴, 의술이나 체술에도 통하는데 사격술만 예외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 퉁!
약해졌다고 여겼던 몸이 가볍게 날아오르며 길가의 자동차 위를 달렸다.
“우, 움직임이 왜 저래?”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군인들.
허공에서 사격해 연거푸 몇몇을 저격했지만, 수가 너무 많다.
덕분에 몇 놈을 쓰러트린 후 총을 빼앗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
즐기는 자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선, 생사가 명멸하는 이 상황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능력을 처음 얻었을 땐 까다로운 조건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쉬웠다.
“타앗!”
발을 가볍게 구르니 몸이 내 생각대로 가볍게 움직였다.
나는 마치 파쿠르 선수처럼 사방의 지형지물을 활용해 움직이고 있었다.
“저, 저게 인간인가?”
— 탕!
방아쇠를 당기니, 권총탄이 잘 보이지도 않는 위치에 있는 군인의 머리를 정확히 맞춘다.
서커스에 가까운 몸놀림, 액션영화에서나 봤던 트릭샷을 연상케 하는 사격술!
덕분에 억지로 마음먹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즐거워졌다.
…
가슴은 지금이 제법 즐겁다 말하지만, 차갑게 식은 머리는 쉼 없이 경고하고 있다.
지금은 굉장한 위기이며, 나는 오늘을 넘기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이토록 요란한 도주극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스테어가 보이지 않는다.
필시 군인들로 시간을 끌며 진짜 전력을 데려오고 있겠지.
곧, 기나긴 삶 속에서 수많은 혼돈체를 처치해 온 요원들이 나타나리라.
…
이대로 죽어도 나쁘지 않아.
첫 번째 시도에서 나와 승엽 군의 역할은 방의 해결이 아니라 최초의 소원을 자각하는 것.
자각에 성공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남은 것은 동료들을 믿으면 될 일이다.
아직 내게 남은 의무가 있다면…
“날 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알아낸 사실을 전하겠습니다.”
*
– 김아리
302호에서 결정적인 이벤트가 벌어지는 상황.
가인이 말로는, 머지않아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될 것 같아!
덕분에 관측소 분위기 역시 저주의 방 못지않게 긴박해졌다.
침실에서 쉬던 동료들도 죄다 튀어나왔고, 테이블에서 꾸벅꾸벅 졸던 동료들은 다 연신 찬물을 들이키며 정신을 차리고 있다.
최대한 빠르게 상현의 설명 – 정확히는, 상현의 말을 들은 가인이의 설명 -을 전달했다.
“대충 알고 있겠지만, 간단히 설명할게. 302호는 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명의 아들이라는 죄수를 끌어들였어. 여명의 아들은 ‘천상에서 떨어졌다’라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반동으로 봉인당한 상태야.”
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대한 자를 끌어들인 관리국.
이게 302호의 기본 배경이다.
“관리국은 이전 루프에서 여명의 아들의 봉인을 해제하려고 했어. 그렇게 하면, 달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은 거야. 헌데, 상현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엔 의식이 이상하게 꼬였어. 상현이가 마지막에 저항했거든.”
“히야~ 의사 선생님 예전부터 대단했네!”
관리국은 이전 루프에서 봉인 해제를 시도했지만, 완벽히 성공하지 못했다.
외계행성에서 정신을 차린 김상현이 저항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음 루프. 여명의 아들은 반쯤 깨어났지만, 아직도 완전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아. 달의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전 인류를 분노조절 장애로 만들기는 했지만…”
여명의 아들은 반쯤 풀려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온전한 상태는 아닌 모양이다.
“302호 상태가 아직은 사람 사는 세상에 가깝거든.”
302호의 상태를 보면, 전 인류가 분노조절 장애에 걸려 미친 짓을 벌이긴 하나 여전히 사람 사는 세상이다.
여명의 아들이 온전히 깨어나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세계’가 도래하지 않을까?
그때, 내 설명과 별개로 정신없이 가인이의 메모를 보던 은솔이 질문했다.
“사진! 사진 뭐야? 상현 씨는 사진이 어떻게 본인에게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했는데.”
김상현이 알아낸 사실.
상현의 기억을 회복시킨 세 장의 사진은 ‘이전 루프’의 사진이다.
당연히 상현이 챙기진 않았으니, 관리국이 챙겨서 상현이 찾을 수 있는 위치에 두었으리라.
“요컨대, 지금까지 상현이의 상태 자체가 관리국의 의도인 거지.”
“으엣? 기억을 주기적으로 잃었다가 되찾았다가 하는 게 관리국의 의도라고? 왜?”
관리국은 대체 왜 상현이를 이런 식으로 관리할까?
302호를 진행 중인 김상현 본인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통찰 내지는 조언의 힘을 빌렸을 것 같지만 말이다.
“가인이의 해석을 말해줄게.”
“오!”
“관리국의 관점에서 상황을 보자. 상현이는 불완전한 회귀자고, 전생의 일을 명료하게 기억하지 못해.”
호텔에 오기 전, 김상현은 전생의 일을 흐릿한 꿈이나 망상처럼 느꼈을 확률이 높다.
관리국은 그런 상현의 상황을 인지한 후, 계속해서 기억 회복과 기억 소거를 반복했다. 10년 넘게 말이다.
“일부러 상현이 주변에 기억 회복을 위한 트리거를 배치한 거야. 문제는, 사진을 보고 정확히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가는 운에 가까워.”
상현이 사진을 보고 정확히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가?
여기까진 관리국도 통제할 수 없는 운의 영역이었다.
“여명의 아들의 어둠을 깨닫고 요원들과 충돌하던 기억. 이런 걸 떠올릴 때도 많았을 거야. 그때는 -”
“기억을 지운다?”
“그래.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 요원들과 함께 여행하던 기억만 떠올릴 때까지?”
“그렇지.”
텍사스에서 요원들과 훈련하던 기억.
우주선에서 요원들과 여정을 함께하던 기억.
위 기억을 떠올릴 당시, 상현은 관리국과 요원들이 아군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했다.
이게 관리국의 의도다.
“기억 일부만 떠올리면, 김상현은 아, 내가 과거에 요원들과 친했구나? 나는 관리국의 일원이었나? 이렇게 착각하기 쉬워. 이걸 노린 거야.”
실제로 첫 번째 사진과 두 번째 사진의 기억을 떠올릴 당시, 상현은 자신이 관리국의 일원이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아스테어를 비롯한 302호의 요원들에겐 일종의 동료애까지 느꼈던 것 같다.
“그럴 거면, 세 번째 사진은 없는 게 낫지 않아? 그게 있어서 상현 씨가 관리국이 바라지 않는 기억까지 회복했으니까.”
“그 사진도 꼭 필요했겠지.”
“왜?”
“… 여명의 아들과 조우한 기억까지는 있어야 하는 거야.”
관리국이 ‘이런 식으로’ 상현을 관리한 이유.
상현을 다시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