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42)
괴담 호텔 탈출기 742화(741/794)
742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16)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0일 차
현재 위치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동료들과 천사들 간의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된 후, 나는 가면을 벗어던졌다.
이미 ‘우리’가 낙원에 나타났음을 들킨 이상, 숨는 게 무의미하니 말이지.
또, 에덴동산 여기저기에 흩어져 홀로 싸우고 있는 동료들을 회수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 허무하게 전원이 당하고 나면, 나 혼자 탈출을 꾀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 이 자식!”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내게 다가오는 남성형 천사.
체격은 소년이 된 나보다 3배는 크고, 주먹으로 아름드리나무도 으깰 수 있을 듯하다.
그는 그 힘으로 본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끄으윽!”
“제기랄! 이, 이 자식이 – 끄악!”
한 놈은 화신의 힘으로 죽이고, 또 한 놈은 신성한 태양의 힘으로 머리를 녹이고, 또 다른 놈은 그냥 날개를 태워 바닥에 떨어트렸다.
내가 지금 천사 몇 놈을 죽인 거지?
농담이 아니라, 진짜 몇 명을 죽였는지 모르겠다.
죄다 비행 능력이 있다보니 끊임없이 어디선가 나타나는데,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천사 하나하나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는 지금의 우리를 반신이라 부른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말이다.
“끄악!”
또 한 천사의 날개를 태웠다.
몇 번 싸우다가 느낀 건데, 죽이는 것보다 날개를 태워서 추락시키는 쪽이 훨씬 쉽네.
“죽어라!”
옆에서 동료 여럿이 당하는 걸 보면서도 거침없이 달려드는 또 하나의 천사.
이쯤 되니 나도 천사들의 까다로운 점을 몇 가지 깨달았다.
첫째, 숫자가 많다.
종말 전 세상의 전 인류가 천사가 되었다고 하니, 최소 10억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호수에 피가 흐를 정도로 죽여도 전체 천사의 한 줌에 불과하리라.
둘째, 두려움이라는 게 없다.
어지간해선 바로 옆 동료가 죽으면 본인도 두려움을 느껴야 정상인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심지어 몇몇 천사는, 무슨 재미난 스포츠라도 즐기는 것처럼 낄낄대며 내게 달려들었다.
불멸자이기 때문이다.
죽음 후에 부활이 기다림을 알기 때문이다.
호텔 파티가 저주의 방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천사들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 화르르!
일시에 넷을 불살라 추락시키며 생겨난 잠깐의 여유.
즉각 하늘을 날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득, 내게도 날개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이동하는 일에 신성한 태양의 힘을 쓸 일 없었을 텐데!
*
동료 위치 정보를 따라 동북 방향으로 12.4km 이동.
처음으로 찾아낸 동료는 엘레나였다.
— 라아아…!
소리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
엘레나의 축복, ‘정의’는 사악한 인간을 대상으로만 쓸 수 있다.
즉, 정의의 천칭이 발현되었다는 말은 엘레나가 천사를 사악한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뜻.
하긴, 내가 봐도 천사들은 인간의 변형 정도지, 인간이 아니라고 보긴 애매했다.
사악함 역시, 천사들이 먼저 엘레나를 죽이려 했을 테니 문제 없다.
정당방위 때문에라도 인정되었겠지.
— 우르릉!
황금빛으로 빛나는 천칭이 거대한 파도처럼 용솟음치더니, 마치 그물처럼 변해 일대를 감싼다.
곧, 물경 수십에 헤아리는 날개 달린 자들이 단박에 좁은 구역에 갇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물이 오그라들며 내부의 천사들을 마치 물고기처럼 옥죄었다.
— 찌익!
곧이어 이어진 장면은 살점과 피의 소용돌이.
호텔에서 온갖 일을 겪으며 제법 비위가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전엔 살짝 구역질이 나올 뻔했네.
“…”
엘레나 본인은 잔인함이나 폭력성과는 거리가 매우 먼 사람이다.
외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발랄하고 경쾌한 성격이지.
성장 과정에서 겪은 피난 경험 때문에 어두운 면도 물론 있지만, 타고난 성격은 밝은 쪽에 가까웠다.
또, 동화적이면서도 소녀틱한 꿈을 마음속에 항상 품고 있어.
독재자를 피해 도망 다니면서 언젠가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개인적 성향과 달리, 엘레나의 능력은 극도로 인간성이 결여되어있다.
정의의 축복만 해도 그렇다.
인간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닌 지고한 법도에 따라 심판하는 힘.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성이 없는 힘이다.
지금처럼, 일말의 주저함 없이 수십의 천사를 물고기처럼 쥐어짜서 죽일 수 있다.
오히려 엘레나가 직접 통제하는 힘이었다면, 저렇게 잘 싸우진 못했을 것 같네.
극단의 폭력이 횡행하는 지옥도.
일대의 천사가 전부 죽고 나니, 정의의 천칭이 비로소 침묵을 되찾았다.
내심, 정의의 축복이 꺼지자마자 엘레나가 매우 괴로워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주변 상황이 잔혹한 유혈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가인 씨, 오셨군요.”
끊임없이 흐르는 식은땀.
일부러 눈을 반쯤 감은 채 주변을 보지 않는 모습.
이런 태도들이 지금 엘레나가 느끼는 내적 고통을 보여주고 있지만, 딱 그 정도.
주저앉아서 토하거나 하진 않는다.
엘레나 역시 호텔에서 나름대로 성장했다는 의미겠지.
물론, 그 성장이 꼭 좋은 의미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괜찮습니까?”
“…네.”
“정의의 힘을 어렵지 않게 발현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상대가 천사니까 힘을 쓰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그냥, 변형된 인간이니까요. 절 죽이려 하기도 했고. 그리고…”
“그리고?”
입을 반쯤 벌린 엘레나가 곧 고개를 저었다.
“… 사람이 이렇게 추락했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역하네요.”
천사들의 끔찍한 면을 많이 본 모양이다.
이는 분명 불쾌한 경험이었겠지만, 엘레나가 힘을 사용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출발합시다. 다음은 진철 형 쪽입니다.”
*
형이 깨어난 장소에 도착할 때쯤, 엘레나가 놀라서 말했다.
“어? 지, 지금 하늘에서 싸우는 것 아니에요?”
“그렇군요.”
“어떻게? 아, 혹시 진철 씨는 날개가 있 -”
“형도 우리처럼 날개 없는 천사라는 설정입니다.”
“으엣? 지금 분명 싸우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리는데!”
하늘의 싸움을 정확히 관측하지 못하는 엘레나와 달리, 내게는 보였다.
신성한 태양이 활성화되어 있어 오감이 극도로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야…!”
“가인 씨?”
“되게 잘 싸우고 있네요.”
새삼스럽지만, 차진철이라는 동료는 싸움 하나는 정말 잘하는 것 같다.
‘찰나’ 때문에 몸놀림 하나하나가 무슨 묘기나 다름없이 보였다.
“어떻게 하늘에 있는 거죠?”
“천사들을 밟으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예?”
“그니까, 이쪽 천사를 밟고 머리를 터트린 후, 휙 뛰어서 다른 쪽 천사의 등에 올라타는 식으로 -”
“그게 말이 되나요?”
보고 있으니 나도 신기했다.
신성한 태양을 사용하면 나도 형처럼 움직일 수 있을까?
일시적으로 더 강한 무력을 발휘할 수는 있겠지만, 저렇게 묘기 같은 움직임을 보이긴 어려울 것 같다.
“별 조각이 천사들에게 굉장히 잘 통하는구나.”
“그, 그래요?”
형이 손을 휙 들 때마다 천사들 여럿이 추락하는 게 보인다.
차라리 지상에서 싸웠다면, 신체 일부가 뒤틀리는 정도로 단박에 무력해지진 않았겠지.
장소가 하늘이라 되려 별 조각이 더 위력적이었다.
날개에 약간의 손상만 가해져도 추락하면서 더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천사들은 하늘에서 싸우죠?”
“그나마 그래야 승산이 있을 것 같으니까?”
이렇게 나와 엘레나가 품평을 늘어놓을 무렵, 하늘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하냐! 와서 좀 도와달라고!”
엘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앗! 가인 씨! 바로 가서 -”
나는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있읍시다.”
“네?”
“알아서 끝낼 것 같으니까. 그리고…”
“가인 씨?”
“… 이제부터는 둘 다 슬슬 힘을 아낍시다.”
냉정하게 판세를 보자.
진철 형의 축복, 용기는 유지력이 뛰어난 축복에 속한다.
유산은 어떻지? 별 조각은 아예 지속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
물론 별 조각을 사용하는 진철 형에겐 사용 시간의 한계가 생기지만, 그나마도 재생력으로 복구할 수 있다.
요컨대, 날개 네 장 미만의 천사들처럼 약한 다수를 상대로 형은 거의 손해 없이 장기간 싸울 수 있다.
반면, 나와 엘레나는 전혀 다르다.
“도, 돕지 말고요?”
“형에겐 미안하지만, 우리 힘이 훨씬 더 소모성이에요.”
엘레나부터 볼까?
정의는 이미 소진되었으니, 다시 쓰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
불길한 상상은 장기간 쓰면 아예 돌아버리는 힘이지.
나도 마찬가지다.
마도서의 힘은 그나마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지만…
신성한 태양은 철저히 소모성이다.
현실에서 신성한 태양을 충전한 후, 꽤 오랜 기간 힘을 소모하기만 했지.
이제, 20%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야! 한가인! 밑에서 뭐 하냐고!”
구경만 했다.
“으아악! 야, 야! 도와달라고!”
조금 미안해서 박수도 쳤다.
“아니, 날개가 넷인 놈은 엄청나게 강하잖아!”
당장이라도 싸움에 끼어들 것처럼 시늉만 했다.
그 정도만으로도 네 장의 화려한 날개를 자랑하는 천사가 내 쪽을 의식하며 균형을 잃었으니, 도움은 되었으리라.
힘을 아껴야 한다.
신성한 태양은 이제부터 철저히 보존한다.
마도서의 힘은 그보단 낫지만, 역시 아껴야 한다.
판세를 고려할 때, 지금은 이 선택이 맞다.
“으악! 이 자식, 손에서 무슨 번개를 뿜어내는 -”
“한 대 맞고 가까이 붙으세요!”
“개새끼! 니가 맞든가!”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는 목소리.
듣고만 있으니까 가슴은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소모성 힘은 아낀다.
유지력이 뛰어난 힘 위주로만 버틴다.
지금은 차진철이 후자 역할이다.
…
천사들과의 혈투가 끝난 후, 진철 형이 입을 반쯤 벌린 채 내게 다가왔다.
무척 화가 났지만, 동시에 내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한 느낌.
하긴, 형도 싸우면서 ‘한가인 저 병신새끼 왜 안 도와줌?’ 같은 생각을 하다가 떠올렸겠지.
“… 가인아.”
“고생 많으셨습니다.”
“… 신성한 태양 슬슬 오링났냐?”
“한번 크게 싸우면 끝일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씨부럴, 됐다.”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상황 보이시나요?”
“…”
“셀 수 없이 많은 천사가 우리 쪽으로 부나방처럼 달려들고 있죠. 오전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천사가 죽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직도 진짜 전력인 고위 천사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고위 천사라면, 여섯 장 날개를 가졌다는 놈들?”
“그들은 천사들에게도 귀한 자원인 겁니다. 어쩌면 부활하기까지 훨씬 오래 걸릴 수도 있죠. 그러니까 아끼고, 넘쳐나는 하급 자원을 쏟아붓는 거죠.”
자연스레 깨달은 냉혹한 진실.
천사들은 죽어도 죽어도 부활하는 불멸자다.
게다가, 전 세계의 인간이 천사가 되었다고 하니 숫자가 상상을 초월하게 많다.
요컨대, 상대에게 있어서 2장, 4장 천사는 그냥 소모품이다.
우리에게 상처 하나 내는 대가로 100개체가 죽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자원이다.
귀한 존재는 하늘 아래 딱 네 개체만 있다는 6장 천사뿐.
그들이 나타나는 순간이 승부를 볼 타이밍이리라.
“갑시다. 아리를 찾아야죠.”
움직이기 직전, 진철 형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네?”
“대체,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탈출이지?”
“…”
“끝도 없이 많은 천사를 죽이기만 한다고 탈출이 나오나?”
일리 있는 의문.
나 역시 이 부분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다.
“탈출을 위한 두 가지 방법론이 있습니다.”
“오! 역시 너구나! 하하! 땅에서 구경만 하길래 한대 패주고 싶었는데, 역시 너야.”
“… 어흠. 하나는 도망이죠. 아시다시피, 탈출은 위기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인정되니까 -”
“뭐? 야! 모든 천사가 우리 존재를 알고 쫓아다니는데, 대체 어디로 튄다는 거야?”
“나름대로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두 번째?”
인류의 미래를 무너트리면서까지 궁극을 추구했던 자, 알레프가 남긴 흔적.
하나의 문장.
“… 하늘 아래 너뿐임을 알라.”
“뭐라고?”
“갑시다. 아리까지 찾아야죠.”
화신의 서, 그 세 번째 문장이 힘을 발할 때가 되었다.
나는 인간이 천사로 변하며 망각한 사실을 알려주리라.
죽음의 공포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