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45)
괴담 호텔 탈출기 745화(744/794)
745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19)
– 김아리
— 휘이잉!
사방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거세다.
태풍의 전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센 바람의 근원은 하늘이었다.
시선을 위로 올리니, 하늘 전체를 메운 천사들이 보인다.
모두가 위대한 자의 명을 받들어 전선으로 날아가고 있어.
문자 그대로 공기 반 천사 반이네.
내가 어부라면, 그물을 하늘에 던져보고 싶을 것 같아.
다행히 그 누구도 내 쪽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새삼스럽지만, ‘존재감 없는 소녀’의 힘이 오랜만에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지.
천사의 수가 토할 정도로 많아.
엘레나, 차진철 그리고 가인이가 저 많은 수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나하나는 지금의 우리에겐 별것 아니었지만, 별것 아닌 상대도 숫자가 저렇게 많으면 또 다른 문제니까.
생각이 여기쯤 닿을 무렵.
— 사아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아득한 존재감이 저 멀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처음에는 무슨 여명의 아들이 직접 손을 뻗은 줄 착각했다.
필멸자가 저런 힘을 쓸 수 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곧, 힘의 규모는 차원이 다를지언정 종류는 어딘가 익숙한 힘임을 깨달았다.
여명의 아들이 아니다.
가인의 권세가 한계를 넘어 궁극에 가까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이때, 나는 모두의 리더라 할만한 그가 진실로 드높은 영역에 도달했음을 깨달았다.
이미 사람이 아니다.
사람 거죽만 둘렀을 뿐, 본질은 지상보다 천상에 가까운 존재였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이 정도로 선을 넘으면, 어떤 형태로든 이후에도 영향이 남을 것 같았으니까.
“…”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내겐 별도의 일이 주어졌으니, 그 일에 집중하는 게 맞아.
*
나는 ‘멋진 신세계’를 찾고 있으며, 구체적인 목적지는 승엽이가 다녔던 학교다.
정황상, 그 학교 내에 멋진 신세계의 입구가 있을 것 같았다.
탐색 과정에서 깨달은 꺼림칙한 사실.
여명의 아들이 재창조한 세상 그 어디에도 종말 전 문명의 흔적이 없다.
아파트, 지하철, 도로, 공장, 철도 – 인류가 쌓아 올린 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세상이 망하고 수십 년이 흘렀으니 자연스러운 일 아니냐고?
전혀!
콘크리트 건물의 수명은 상상 이상으로 길다.
10년이 멀다 하고 재건축하는 이유?
부동산 시세 관리 혹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지, 건물 자체가 20년이면 허물어져서가 아니야.
마천루의 흔적은 최소 1,000년은 남는다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아.
지금처럼 문명의 증거가 모조리 사라진 건 자연적인 일이 아니야.
여명의 아들이 낙원 창조 과정에서 문명의 흔적을 전부 지워버렸다.
꺼림칙하다 못해 불쾌했다.
내가 딱히 인류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처럼 문명의 증거를 의도적으로 지운 모습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지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드높은 자가 보기에, 사람이 쌓은 탑이 너무나 빈곤하고 무가치해 보였기 때문이리라.
…
추운 겨울, 자비로운 사람이 골든 리트리버가 낑낑대며 토굴을 파는 광경을 보았다.
그는 골든 리트리버를 가련히 여겼지만, 토굴에는 딱히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토굴을 부숴버린 후, 그럴듯한 개집을 대신 지어준 것.
그 결과, 골든 리트리버가 해왔던 노력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다.
…
여명의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죽음조차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병원이 무슨 필요 있겠느냐?
식량은 무제한으로 줄 테니, 논이나 마트 따위를 만들지 말거라.
아파트?
이토록 좁고 답답한 장소에 닭처럼 모여 사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는구나!
각자 태어나는 순간 넓고 쾌적한 집 하나씩 주마.
자동차?
이런 장난감에 갇혀서 시간을 허비하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오호라! 움직임이 느리고 둔하기 때문이구나.
날개를 줄 테니, 이런 장난감은 다시는 만들지 말거라.
…
어라? 은근히 괜찮은데?
부활도 가능하고, 음식도 맛있고, 부동산 걱정도 없고, 날개도 생겼고 심지어 다들 미남미녀가 됐잖아?
진짜 살짝 천국 같지 않아?
위대한 자의 골든 리트리버로 살아가기.
이거 은근히 나쁘지 않은 방향성일지도 –
김아리, 너 지금 뭐 해?
이상한 생각 멈출 때까지 숨 참기 시작!
“흡!”
.
..
…
“후우…”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고 일에 집중하자.
사람이 남긴 문명의 흔적은 싹 사라졌지만, 관악산이나 우면산처럼 자연적인 지형지물은 그대로였다.
여기에 숙련된 요원으로서의 경험이 더해지니, 종말 전 학교의 위치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기쯤인가?”
주변에 천사 거주 구역이 없는 데다가, 문명의 흔적 역시 사라진 상태.
일대는 울창한 초원에 가깝게 변해있었다.
환경보호론자가 작금의 세상을 본다면, 눈물을 흘리며 여명의 아들을 찬양할지도 모르지.
어쨌든, 주변 지형을 고려할 때 요 근처 어딘가가 종말 전 승엽이가 다니던 학교의 위치다.
“으음…”
이쯤에서 멋진 신세계에 대한 정보를 다시 떠올려 보자.
위치는 방배중학교, 302호 내에서 승엽이가 있던 장소.
외부에선 정상적으로 관측할 수 없으며, 그냥 어두운 장소로 보인다.
상현의 오래된 기억에 따르면, 제법 흉측한 장소다.
‘과학도 마법도 아니다.’
‘둘 모두이자 끔찍한 혼종이다.’
‘과학과 마법이 음울한 외양간에서 교접한 끝에 태어난 참혹한 사생아.’
시간대여기 가인이 남긴 기록도 있었지.
여명의 아들이 말하는 구원에 회의적인 자들이 만든 시설.
순수한 인간을 보존하기 위한 장소.
외부에서 무너트릴 수 없다.
발견했을 때는 내부에서 붕괴한 상태였다.
“으음…”
파편화된 정보는 제법 얻은 것 같은데, 파편을 이을 연결고리를 못 찾겠어.
멋진 신세계가 정확히 어떤 개념이라는 거야?
현실이 아닌 건 확실해.
여분 차원 같은 개념인가?
또 다른 소통의 주인, 라이언 레이놀드가 가족들을 숨겼던 장소처럼 말이야.
이렇듯, 여러 가지 가설을 떠올리며 탐색을 이어가던 시점.
— 화아앗!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일대의 풍경이 확 뒤집혔다!
“헛!”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운동장 한복판에 있음을 깨달았다.
“중학교 운동장?”
앞에는 당연하다는 듯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 있었다.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세상 한구석에 ‘중학교’가 남아있었던 것!
어쩌면 세상에 남은 마지막 문명의 흔적일지도 모르는 건물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외부에서 무너트릴 수 없다’라는 말은 진짜였고, 생각보다 넓은 개념이었다.
여명의 아들조차 멋진 신세계라는 혼돈 현상과 동화한 저 학교를 없애지 않았다.
그저, 환영을 통해 숨겼을 뿐.
위대한 자라 해도 절대 파괴할 수 없는 거야?
아니면, 파괴하면 끔찍한 반동이 생긴다?
모르겠어.
우선은 조심스럽게 접근하자.
천천히 심호흡하며 학교를 향해 몇 걸음 걸어갈 무렵.
— 툭!
누군가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앗!”
심장이 떨어질 만큼 놀랐다.
손이 올라오기 직전까지 인기척 비슷한 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즉각 몸을 움직여 상대와 거리를 벌렸고 – 벌렸고?
어딨지?
분명 방금 내 뒤에 있었 –
“얘, 혼자 뭐해?”
“…”
지금도 내 뒤에 있다.
천천히 심호흡하며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서서히 몸을 돌려 뒤를 확인하니, 갈색 머리칼의 소녀가 보였다.
문득, 이 소녀를 어딘가에서 한 번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어린 천사가 오면 안 되는 장소란다.”
“…”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역시 아무 의미가 없어.
분명 움직이고 있는데 거리가 벌어지지 않아.
상대가 내게 다가온다?
아니, 이런 개념을 넘어선 것 같아.
애초에 운동장 내의 내 위치부터가 계속 그대로야.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도 말이지.
“너는… 이곳을 지키는 수호자인 모양이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갈색 머리칼의 소녀가 내 바로 앞에 나타났다.
도무지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어.
발을 움직인 것도 아닌데, 움직임 자체가 없었는데 그냥 내 옆에 나타나잖아?
이런 식으로 움직이니까 최초의 접근을 무방비하게 허용할 수밖에 없던 거야.
갈색 머리칼의 소녀가 손을 뻗어 내 뺨을 툭 건드렸다.
“하긴, 넌 괜찮을 것 같네.”
“…”
“천사도 아니고, 어리지도 않으니까.”
보자마자 내가 일반적인 천사와 다름을 알아채는 모습.
이쯤 되니 한 가지 차가운 진실을 받아들였다.
상대는 나보다 강한 것 같다.
그것도, 그냥 강한 게 아니라 비교도 안 되게 강하다.
마음먹었으면 이미 날 열 번은 죽였다.
말로만 들은 여섯 날개의 천사가 이런 느낌일까?
그때, 상대가 피식 웃었다.
“왜 이렇게 표정이 딱딱해? 무슨 전쟁 하러 왔어?”
“…”
왜 날 공격하지 않지?
가인이의 말에 따르면, 여명의 아들은 에덴동산 전체에 뱀(=참가자)을 찾아내기 위한 덫을 설치했다.
당연히 뱀을 찾아내는 대로 죽이라는 명령 또한 내렸겠지.
그런데, 눈앞의 천사는 내가 뱀임을 알면서도 죽이지 않고 있다.
“계속 대답 안 할 거야?”
“… 너는, 저쪽 전쟁터에 합류하지 않는 모양이지?”
“저쪽 전쟁터? 아, 무서운 오빠가 있는 장소?”
무서운 오빠란 가인이를 말하는 것 같다.
“에이… 거긴 싫어. 잘생긴 오빠는 좋은데, 그 오빠는 너무 무섭잖아. 좀 별로야.”
“…”
“어차피 무서운 오빠도 죽을 거야.”
이 말은 제법 섬뜩했다.
하지만, 어쩌면 가인이도 그렇게 생각 중일지도 모르지.
가인이가 요란히 싸우며 적의 시선을 끄는 사이, 내가 멋진 신세계에 잠입해서 탈출하는 게 계획의 골자니까.
그때,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알고 있니?”
“뭘 말이야?”
“모든 천사는 종말 전에 사람이었어.”
“알고 있어.”
여기까진 뻔한 이야기.
“그러니까… 나는 생각했어. 설령 헤어진 인연이라 해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언젠가 천사로 다시 태어날 테니까. 아버님도 그리 말하셨어. 그래서 기다렸는데…”
이거 설마 –
“50년이나 지났는데도 태어나지 않아. 어떻게 된 걸까? 설마, 아버님이 내게 거짓말을 하셨을까?”
“…”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 어쩌면, 내가 기다리는 영혼은 저 학교에 갇혀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게 아닐까.”
“…”
“저곳은 내가 나온 장소야. 하지만, 나는 다시 들어갈 수 없어. 너는 가능하니?”
이제야 이 여자애의 정체를 알았다.
또한, 302호를 시작하기 전 승엽이와 나누었던 대화가 뇌리를 스쳤다.
‘제, 제가 호텔에 오기 전에 여자친구가 있던 것 같아요!’
‘미안한데, 그건 착각 같아.’
‘아니! 분명히 제 말 믿으시겠다고 -’
‘신의 아들이라고 하면 믿었어.’
‘지, 진짜 어떤 여자애랑 같이 다니던 기억이 -’
‘속은 거야. 대적자일 확률이 높으니 설명해 봐.’
승엽아, 누나가 미안해. 진짜였구나.
박승엽, 천사를 홀리는 마성의 소년.
… 이게 어떻게 현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