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50)
괴담 호텔 탈출기 750화(749/794)
750화 – 첫 번째 탈출, 회의 (2)
– 김아리
저주의 방을 진행하다 보면, 정보의 파편화 현상을 겪는다.
열 명에 달하는 파티원이 각자의 영역에서 진행하다 보니, A는 아는 사실을 B는 모를 수 있는 법이다.
관측소, 종말 이후 세계 등의 시스템이 있는 3층은 위와 같은 문제가 더 심해졌다.
그래서 회의가 필요해.
상상도 못 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나만 아는 정보, 승엽이만 아는 정보, 상현이만 아는 정보를 합쳐서 큰 그림을 만들기 위함이지.
정보를 합치다 보면, 혼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의문이 살짝 풀리기도 해.
상현이의 의문이 대표적이다.
상현이는 관리국의 추격에 쫓기던 시점,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한 가지를 이해했습니다. 관리국이 날 다시 끌어들이려 하는구나. 왜? 아하! 여명의 아들을 강림하는 데 내 역할이 필요한 것 같다.”
마도 의식이 시작하지 못했다면 모를까, 시작한 다음에 상현이 어깃장을 놓아 무너트린 상태.
관리국으로서도 강림 의식 구성원을 바꿀 수 없었다.
이러니, 다음 루프에서 상현이를 응징하긴커녕 어떻게든 다시 끌어들이려 했지.
“당시엔 이해 못 한 것도 있습니다. 내가 아는 관리국이라면 어, 조금 폭력적인 수단을 썼을 것 같은데…”
묵성이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물과 세뇌, 마법을 써서 널 강제로 끌어들였겠지.”
“… 그렇게 하는 대신, 내가 자발적으로 관리국에 충성하게끔 유도하더군요.”
김상현 혼자서는 답을 알 수 없었던 문제.
모두의 정보를 모으니 답이 나왔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여명의 아들의 성향 때문이었습니다.”
네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
여명의 아들을 상징하는 경구이며, 그가 이상으로 삼는 이치다.
여명의 아들은 필멸자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가인의 견해에 따르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쉬이 꺾지 않을 신념이라고 한다.
위대한 자의 신념이라…
솔직히, 꽤 감명 깊은 요소였다.
가인이도 이 부분만큼은 일종의 경외심을 느끼는 듯했다.
여하튼, 302호 시작 시점에서 죄수는 ‘반쯤’ 깨어난 상태.
온전한 강림이 아니기에 천지창조는 시작하지 못했지만, 전 세계에 본인의 영향력을 퍼트리고 있다.
이러니까 관리국 역시 여명의 아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
상현의 정신을 힘으로 무너트리는 대신, 스스로 관리국에 돌아오게끔 유도한 것.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추가해 볼까?
“내 생각에, 의식이 정상적으로 완성되면 상현이 너도 여섯 날개의 천사가 되었을지도 몰라.”
“으음… 일리 있군요.”
“그렇게 되면, 관리국의 세뇌 따위는 단박에 풀리겠지. 그때 네가 복수할까봐 강압적인 수단을 자제했을지도.”
“아리 양이 말한 부분을 두 번째 이유로 칩시다.”
요약하면, 302호에서 관리국은 생각보다 상현이에게 강하게 나가지 못한다는 것.
상현이를 죽일 수도 없고, 마법이나 약물로 강압할 가능성도 낮다.
다음 시도에선 이 점을 이용해야겠지.
테이블 한 편에서 이 정도 이야기가 나올 무렵, 다른 한 편에선 승엽이가 본인의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반복되는 세상에서 너랑 소연이만 깨어났다?”
“그렇죠. 하하! 그다음이 웃긴데요, 소연이는 일반인들에게 강한 정신적 충격을 주면 깨어난다는 사실까진 알아냈어요.”
“흐음… 그래서?”
“폭력적인 수단을 몇 번 썼다고 해요.”
반복되는 세상에서 홀로 정신 차린 소녀, 유소연.
일반인에게 강한 정신적 충격을 줘서 깨우려고 했단다.
그래서 일반인을 폭행하거나, 심지어 불까지 질러본 것 같다는 이야기.
결과는 좋지 않았다.
302호 초반 시점에서의 유소연은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여중생이 난동을 부려봐야 경찰에 의해 감옥에 갇히는 결말이지.
소연은 여기서 막혀있었다.
“제가, 하하! 단박에 답을 알아냈죠! 으하하!”
승엽이는 본인이 답을 알아냈다는 게 무척 자랑스러운가 봐.
애초에, 다음 회차에선 소연이를 돕는 게 아니라 방해해야 하지 않아?
“결국, 손 안 대고 사람들을 화나게 하면 되는 문제잖아요? 하하! 진짜 쉬운데 그걸 못해?”
“…”
“어떻게 했냐면요, 제가 롤에서 -”
“거기까지.”
이쯤에서 가인이가 승엽이 어깨를 툭 쳤다.
“어? 가인 형? 다음 내용이 하이라이트인데 -”
“아니, 아니. 승엽 형님. 말 안 해도 됩니다. 다들 짐작하고 있거든요. 게임에서 채팅으로 사람들을 자극한 거죠?”
“그, 그렇죠. 정확히는 -”
송이가 피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승엽아… 가인 오빠가 그만하라잖아. 자세히 말 안 해도 돼. 너와 한남동지죤제드 사이의 복잡 미묘한 갈등을 굳이 설명해 줄 필요 없어.”
글쎄, 이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은 좀 다르네.
난 들어보고 싶은데?
대체 어느 수준의 채팅을 쳤길래 상대방이 칼 들고 학교에 찾아오는 거야?
이후에도 승엽이는 멋진 신세계에 관한 몇 가지 특이 사항을 전달했다.
예컨대, 소연이가 자신에게 키스할 것처럼 행동하니 ‘세상이 느려졌다’라는 기이한 이야기.
“신기하지 않아요? 주기적으로 초기화되는 세상,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이요. 또, 키스하려고 하니까 갑자기 세상이 느려진다니!”
승엽이 본인은 이해할 수 없었던 이상한 현상들.
내가 종말 이후 세계에서 알아낸 정보를 합치면, 쉽게 풀린다.
“간단해. 승엽이 네가 있던 곳은 영화 속 세상이기 때문이야.”
“영화 속 세상?”
세상의 초기화가 아니다.
영화가 끝났으니 다시 처음부터 재생하는 일의 반복이었을 뿐.
똑같은 행동의 반복? 같은 영화인데 내용이 바뀌면 그게 더 문제야.
행동이 바뀐 소연이와 승엽이가 특수한 경우고, 일반인들은 바뀌지 않는 게 정상.
키스하려니까 세상이 느려지는 일? 전형적인 슬로우모션이다.
원래 영화 하이라이트 장면은 관객들보고 집중해서 보라고 느려지곤 하니까.
특이 사항이 있다면 ‘장르’ 정도.
종말 이후 세계, 멋진 신세계에 잠입했던 난 공포영화의 배우가 된 것 같다.
덕분에서 엄청나게 무서운 일을 겪었어.
호텔이 해당 기억 상당 부분을 편집해 줬을 정도로 말이지.
반면, 승엽이는 밝고 경쾌한 장르야. 학원물이 아니었을까?
재밌다는 표정을 짓는 송이.
“키스신 슬로우모션이 있으면, 음, 승엽이는 로맨스 영화 주인공이었던 거야?”
“그, 그럴 리가!”
로맨스 영화라…
키스신 슬로우 모션이 있었으니 일리 있는 가설이네.
합치면 학원 로맨스물?
이후로도 멋진 신세계에 대해 내가 알아낸 정보와 승엽이가 겪은 일에 관한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졌다.
…
30분 정도 흘렀을까?
한참 동안 멋진 신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경청한 가인이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승엽아, 아니, 승엽 형 -”
“형! 진짜 장난 그만 해요.”
가인이가 피식 웃으며 말투를 바로잡았다.
“알겠어. 근데, 하나만 물어볼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히 답해봐.”
“무, 무슨 말씀하시려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답하라고?
가인이의 다음 말이 모두를 조용히 만들었다.
“소연이 다시 한번 꼬실 수 있겠냐?”
“…”
“…”
“…”
모두가 말문을 잃은 적막.
승엽이는 얼굴만 새빨갛게 붉힌 채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걔, 걔가 저한테 어, 반한, 어, 그러니까 -”
‘소연이가 나에게 반했다’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승엽이.
새삼, 쟤가 대체 어떻게 누굴 꼬셨는지 모르겠어.
말이 되는 거야?
이게 진짜 가능한 이야기냐고.
“- 처, 천운 때문이었거든요. 천운은 하, 한동안 쓰기 힘드니까 어, 어렵지 않을까요?”
“흐음… 승엽아. 내 말 잘 들어봐.”
“예?”
“우리는 종종 축복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곤 해. 나도 그랬고, 지금 너도 그렇지.”
“과, 과대평가라니요?”
“나를 예로 들면, 과거엔 올빼미의 모호한 이야기를 정말 전지한 신의 신탁처럼 여겼어. 시간이 지나고, 통찰을 얻으며 깨달았지. 모호함의 상당수는 ‘올빼미 본인도 몰라서’가 아니었을까?”
모호하기 그지없는 올빼미의 조언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
시간이 지나며 가인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많은 경우, 올빼미도 정확히 몰랐던 것.
딱 하나의 가능성으로 단정해서 말해줄 수 없으니, 이런저런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를 해줬다.
물론, 이것 역시 올빼미에 대한 ‘한가인의 해석’이다.
실제 어떤지는 후원자 본인만 알겠지.
“후원자도 몰랐다…”
“올빼미도 몰랐던 거야. 그래서 애매하게 답했고, 나는 추후 일이 끝난 후에 사후 해석을 덧붙이곤 했어.”
“이해했어요.”
“너도 비슷한 상황일지도 몰라.”
“…”
“1에서 8까지는 이미 갖춰진 상태인데, 9와 10. 즉 마무리만 천운이 해준 거야. 완성된 10을 보고 전부 천운이 해줬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8까지는 이미 있었어.”
멍하니 가인의 말을 듣는 승엽이.
뭔가, 가인이의 그럴듯한 소리에 홀려가는 모양새라 조금 웃기긴 했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야, 그냥 쉽게 말해.”
“음?”
“승엽이 눈 봐. 네 말을 잘 이해 못하잖아. 쉽게 말하면, 소연이라는 애는 원래 승엽이를 좋아했다. 혹은 좋아할 확률이 높았다. 이런 말 맞지?”
“그래. 천운과 별개로 구도를 봐. 거짓된 세상에서 깨어난 진실한 두 명이잖아? 딱 영화 같네.”
요컨대, 소연이는 본래도 승엽이를 좋아할 만한 상황이었다는 게 가인이의 생각.
따라서 천운이 없어도 충분히 꼬실 수 있다고 보는 것.
여기까진 그럴듯해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꼬신다’라고 표현하니 좀 웃기게 들릴 뿐 실제로 중요한 일이기도 해.
죄수의 사도, 여덟 날개의 수호자를 사전에 포섭하는 일이니까.
…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잘 들어봐. 내 생각엔, 처음엔 진심 어린 대화로 다가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여자애는 분명 굉장히 외로운 상태일 거야.”
“외로운 상태요?”
“장님들 사이에서 혼자 눈 뜬 사람이니까. 그 외로움을 네가 공략해서 -”
가인이가 승엽이에게 연애 관련 진지한 조언을 하려는 상황.
순간, 이게 뭔가 싶었다.
지금 설마 가인이가 승엽이에게 연애 조언 중인거임?
나와 같은 생각을 떠올린 사람들이 있었다.
송이가 눈을 크게 뜨며 일어선 것이다.
“아니… 설마 오빠가 승엽이에게 여자애 꼬시는 법 가르치려고요?”
“어? 그냥 내 생각을 -”
“아 진짜! 누가 누구에게 훈수를 두는 거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빠가?”
이쯤에서 미로도 끼어들었다.
“… 나 가인이가 전에 했던 이야기 생각나서 소름 돋았어. 뭐라고 했었지? 누구 사진을 가져다가 -”
“으악!”
가인이는 놀라서 미로 입을 막았는데, 사실 가인이가 아니라면 내가 막을뻔 했어.
제발, 그냥 없던 일로 하자 좀!
“읍! 읍! 다들 들어봐! 가인이가 실은 -“
미로는 이 기회에 모두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것 같았는데, 나까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아 진짜, 가인이 쟤는 대체 뭐냐고!
그 시각, 송이는 말없이 화이트보드에 무언가 끄적이기 시작했다.
‘xx오톡’
‘만우절’
“으, 으악! 네가 이걸 어떻게!”
“다 아는 방법이 있어!”
아는 사람들만 아는 고통스러운 기억들.
모르는 사람들은 다들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였다.
어쨌든, 혼란 속에서 한 가지 결론은 정해졌다.
“오빠, 이제 아시겠죠.”
“…”
“조용히 있으세요. 대체 누가 누구에게 무슨 훈수를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