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57)
괴담 호텔 탈출기 757화(756/794)
757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27)
– 미로
— 철컥!
늦은 밤.
슬슬 졸음이 쏟아진다 싶은 시간에 가인이를 소환했다.
가인이의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지만, 한 가지 중대한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302호에서의 내 역할은 뭘까?
가인이의 분석에 따르면, 해피 엔딩을 위해선 최종적으로 멋진 신세계도 사라져야 한다.
문제는 멋진 신세계 내부에 갇힌 사람들은 자력으로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
따라서 누군가 바깥에서 관리국 직원들을 처리해야 하고, 이게 내 역할이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겠는데, 언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멋진 신세계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에서 알 길이 없으니, 적절한 타이밍도 알 수 없었다.
가인이라면 그 답을 알까?
질문을 들은 가인이는 잠시 침묵했다.
처음엔 내 질문의 답을 고민하는 줄 알았지만, 곧 시선이 허공에 고정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가인아, 상태창에 뭔가 나타난 거야?
“뭔가 나왔어?”
“…”
대답 대신 황급히 펜을 꺼내서 상태창에 무언가 끄적이는 태도.
관측소의 자신이 보길 기대하는 것 같은데, 정작 바로 앞에 있는 나는 모르겠어.
“야, 야! 나한테도 말해줘. 뭔데? 또 시나리오 이해야? 그, 뭐랬더라? 진정한 사랑 어쩌고 하는 이야기?”
“… 다음 내용이 나왔어.”
“뭔데?
다음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지혜로운 이는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판을 짠다.”
“오! 그거 예전에 올빼미가 네게 말한 -”
“어리석은 자는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패배하는 판을 짠다.”
“…”
찰나의 침묵.
“조, 좋은 말이 아닌 것 같아.”
그 순간, 가인이가 표정을 굳힌 채 중얼거렸다.
“아직 하루도 안 지났어. 미국과의 시차를 고려하면, 상현 형 쪽은 끽해야 오전 11시 정도인가?”
“응.”
“형 쪽은 뭔가 제대로 시작했을 시간이 아니야. 기껏해야 차 타고 이동 중이겠지. 상현 형 쪽은 아무 일도 없는데, 시나리오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이쯤에서 나도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의사 쌤 쪽은 이제 막 시작한 수준인데, 시나리오 이해가 연거푸 갱신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뭔가 급전개가 일어나고 있다.
30분이 멀다 하고 시나리오를 연거푸 갱신해야 할 만큼의 일이!
“미로, 아까 네가 했던 질문의 답을 알았어.”
“…”
내가 가인이에게 던진 질문.
때가 되면 학교로 가서 멋진 신세계를 관리하는 직원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언제 해야 하냐는 것.
답변은 지극히 심플했다.
“지금 바로 학교로 출발해. 지체할 시간이 없어.”
시간 절약을 위해 가인이를 역소환하기 직전, 그는 마지막까지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진정한 사랑. 모두가 패배하는 판. 대체 무슨 뜻이지?”
*
– 박승엽
흐릿하게 깨어나는 의식.
처음으로 든 생각은 ‘어떻게?’ 였다.
제1원칙, 태초의 인간이 종료하지 않았는데 내가 깨어남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텔에서 쌓아온 경험이 의문의 답을 말해주었다.
축복과 유산에 존재하는 모든 규칙에는 사실 예외가 있다.
혹은, 모든 원칙에 우선하는 제0원칙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제0원칙, 모든 것은 호텔 마음이다.
호텔은 내 의식을 어렴풋이 깨워 무언가를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약간의 성취감을 느꼈다.
이전보다 더 많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태초의 인간이 진행한 내용이 ‘예전에 내가 실제로 겪은 일’에 보다 가까워졌다는 뜻 아닐까?
…
아주 오래된 기억.
환상처럼 흐려진 슬픈 꿈.
*
– 박승엽, 과거.
“에잇! 너한테 기대한 내가 바보네. 겁쟁이 같은 넌 여기 있어.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소연이는 이 말을 끝으로 혼자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약 15분 후, 순식간에 학교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소연이의 계획보다 훨씬 큰 화재였다.
이렇게까지 학교를 깡그리 불태울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불이야! 불이야!”
“119, 119 불러!”
사방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분개한 목소리.
다행히 학교 내에 있던 선생님 한 분은 금방 밖으로 나온 것 같았지만, 학교는 실시간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이런 쌍노무 자식들이!”
“개새끼들! 누구냐? 누구냐고!”
극도로 흥분한 표정.
거친 욕설과 살기 어린 태도.
소연이의 의도가 어른들을 극도로 분노하게 하는 거였다면, 성공한 것 같아.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드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날 의심하는 어른들은 없었다.
애초에 난 운동장에 있었을 뿐, 방화에 참여하지 않은 게 맞기도 하고.
“씨발! 안에 사람은 없지?”
“불 지른 놈은 있겠지.”
“그놈은 타죽어도 그만이고!”
“너, 어째 말이 짧다?”
“뭐 이 새끼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성을 잃어가는 어른들.
본인들끼리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인데, 곧 서로 칼부림이라도 할 기세다.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무도 학교에 갇힌 소연이를 구하러 가지 않겠구나.
“…”
다음 순간, 나는 내 인생을 통틀어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정신 나간 결정을 내렸다.
“어, 어! 야! 꼬마 저거 어디가?”
“야 인마! 학교 불타는 거 안보이냐! 어딜 가는 거야 대체!”
실시간으로 타오르는 화재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이후의 일은 내가 생각해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천장에서 달아오른 판넬이 떨어지는데, 아슬아슬하게 내 뒤로 떨어졌다.
넘실거리는 불꽃이 훅! 솟아오르는데, 신기하게 내 옆을 스쳐 갔다.
마치 온 세상이 날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행운의 끝판왕은 바로 길 찾기.
소연이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뛰고 했을 뿐인데, 정신 차려보니 5층 과학실 근처였다.
그곳에 소녀가 있었다.
달아오른 열기 속에서 지친 표정으로 주저앉은 소연이 말이다.
“… 우와. 왔네? 고생했어.”
소연이는 탈출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어딘가 멍한 표정.
불이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는데~ 하는 눈.
“왜 왔어? 잔소리라도 하려고?”
“…”
“아~ 불이 이렇게 심하게 번질지 몰랐어.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화재는 변수가 많네.”
“… 불도 처음 지른 게 아니구나.”
“그럼. 난 뭐든지 처음이 아니야.”
이상하게도, 소연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두려움이나 절망이 아니야.
그보다는 지치고 피로한 마음에 가까워 보였다.
끝없이 반복되는 세상.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새장.
“왜 그렇게 지친 표정이야? 어른들이 격렬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다며? 성공한 거 아니야?”
“아니야.”
“왜?”
“… 내가 곧 죽을 테니까.”
“뭐?”
“한 번의 성공 사례 -”
“나 말하는 거지?”
“- 를 겪고 알았는데, 극도의 감정을 유발한 후 내가 일요일까지 살아야 하는 것 같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
“…”
“이번에도 실패인가 봐.”
곧, 소연이는 피곤한 표정으로 의자를 집어 들고 창문 쪽으로 향했다.
“자, 자살하려고?”
“불타 죽으면 엄청 아파. 추락사가 덜아파. 너도 그냥 뛰어내리는게 나을걸.”
실패에 익숙한 모습.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
답답했다.
이 여자애가 연거푸 실패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 소연이가 뛰어내리기 직전, 뒤에서 붙들었다.
“뭐해? 네가 먼저 뛰려고?”
“… 이러니까 네가 계속 실패하는 거야.”
“뭐?”
“백도어라는 전략이 있어.”
“…”
“4명의 팀이 적팀 다섯을 막는 사이에 내가 적팀 건물을 다 밀면 이겨.”
“그게 지금과 무슨 상관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전략이야. 건물을 미는 내 판단에 한 판의 모든 게 달려 있거든.”
셀 수 없이 백도어하며 얻은 깨달음이 있다.
장수가 칼을 뽑았다면, 뒤를 봐선 안 된다.
팀이 밀릴까 봐 후퇴하는 건 패배의 지름길일 뿐이다.
귀환이란 없다.
귀환 키는 아예 뽑아버린다.
무조건 끝까지 간다.
성공하면 영웅이요, 실패하면 계정 정지일 뿐!
“귀환할 생각 하지 마.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왜 자살로 도망가려고 해? 끝까지 해볼 생각은 없어?”
“…”
“여기까지 왔으면 적 본진 밀고 이기든가 지든가 둘 중 하나인데, 넌 무슨 귀환 생각부터 해?”
이러니까 네가 계속 진 거야.
승부가 결정 나는 타이밍에 매번 귀환 키를 누르니까 진 거라고.
그냥, 팀원이 엄마 욕을 하든 말든 개무시하고 ‘좆까라’ 할 수 있어야 이기는 건데!
다음 순간, 소연이가 갑자기 코웃음 치며 날 보았다.
“나, 지금 네가 왜 이리 자신감 넘치는지 알았어.”
“뭐?”
“화재 현장을 뚫고 오면서 네가 무슨 히어로라도 된 줄 알았어? 운이 막 되게 좋았지? 불꽃이 널 피해 가고, 돌은 네 옆을 스쳐 갔을 거야. 그치?”
기이하게도 내게 벌어진 일을 다 아는 듯한 느낌.
다음 말은 충격적이었다.
“바보. 네가 뭐 대단해서 그렇게 된 줄 알아? 그냥,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야.”
“… 뭐?”
“멍청아! 지금 같은 경우가 처음이겠냐고! 너는 내게 훈계하겠답시고 학교에 들어온 100명의 승엽이 중 하나일 뿐이야. 앞의 99명은 불에 타죽었는데, 너는 그냥 운이 좋아서 여기 온 거라고!”
“…”
소연이가 겪은 셀 수 없이 많은 루프.
매번 학교 방화는 아니었겠지만, 큰 틀에선 유사한 사건들.
99명의 승엽이가 타죽는 사이, 소연이 앞에 나타나는 데 성공한 100번째 승엽이.
그게 바로 지금의 나다.
“진짜 웃겨. 네가 무슨 대단한 줄 아나 봐?”
여전히 아까의 짜증이 풀리지 않은 듯한 말투.
이 순간,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양감에 휩싸여 있었다.
“… 지금이구나.”
“그냥 운이 좋아서 여기 왔으면서, 뭐라도 된 것처럼 – 뭐라고?”
“지금이었어.”
“뭐?”
99번의 죽음.
1번의 성공.
이 순간, 나는 행운의 여신이 내 편에 섰음을 알았다.
“내가 최고의 승엽이야.”
“아니 -”
“역사상 최고의 승엽이가 지금의 나라고! 지금이다아아아! 나가자! 지금이라면 네 모든 실패를 엎을 수 있으니까!”
두말없이 소연이의 팔을 잡고 돌아서는 순간, 소연이가 식겁하며 외쳤다.
“무슨 미친 소리! 지금까지 운이 좋았으니, 앞으로도 운이 좋다는 게 말이 되냐고! 너, 독립시행이라는 단어는 알 -”
단호하게 답했다.
“내가 그런 어려운 단어 알 것 같냐?”
불꽃의 파도 속으로 뛰어든다.
단지 내 운명을 믿고, 단지 내 행운을 믿었다.
나는 역사상 가장 운 좋은 승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