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61)
괴담 호텔 탈출기 761화(760/794)
761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31)
– 김상현
머나먼 과거, 관리국이 내게 멋진 신세계를 보여준 장소.
현재는 여명의 아들을 반대하는 순수파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장소.
TT 빌딩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영화관의 붕괴로 인한 후폭풍이 덮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50층이 넘는 빌딩에 층마다 괴물이 나타나는 판이었는데, 지금 우리가 있는 11층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사람을 해치는 괴물이 점거 중이었기 때문이다.
김묵성 : 하필 엘리베이터가 11층에서 멈춰가지고…!
이은솔 : 확실한 빛이 있는 장소로 가야 할 것 같은데
김상현 : 나란히 벽에 붙어서 이동합시다.
“끄아악! 사, 살려 -”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회색 손에 의해 꼬챙이처럼 꿰뚫리는 사람들.
10초가 멀다 하고 사방에 시체가 늘어나고 있었는데, 대응이 어려웠다.
조명이 망가지며 일대가 어두워졌고, 덕분에 괴물에게 지극히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은 평범한 회사가 아니라 관리국 순수파의 본거지.
직원들 역시 일반인이 아니다.
“섬광탄 준비! 던져!”
찰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일대를 메운다.
그림자를 통해 숨어다니던 괴물 역시, 어둠이 사라지자 별수 없이 형체를 드러내야 했다.
이렇듯, 모두가 최선을 다해 항전 중인 시점.
김묵성 : 저기, 계단으로 가자!
우리는 주변 상황을 무시하고 위층으로 이동 중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세상이 망했기에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층마다 괴물이 들끓으니, 아무도 우릴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괴물들조차도.
이은솔 : 착각인지 모르겠는데, 은근히 괴물들이 우릴 피하지 않아요?
김묵성 : 사자도 사냥할 때 약한 개체부터 노리는데, 혼돈체라고 다르겠냐?
이럴 때면 우리가 여러모로 과거와 달라졌음을 체감한다.
*
24층에 도착할 무렵, 처음으로 ‘안내방송’을 들었다.
— 지직! 현재 본사에 도착한 손님 여러분께 알립니다.
김묵성 : 설마 우리 말하는 거냐?
— 엘리베이터가 파괴된 상황이니, 23층과 24층 사이의 비상계단으로 이동해 아래위로 세 번 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은솔 : 뭔 소리죠? 아래위로 세 번 왕복?
김상현 : 시키는 대로 해 봅시다.
김묵성 : 저게 뭔 소리인 줄 알고 시키는 대로 한다는 거야?
김상현 : 아는 목소리입니다. 우리랑 만나려는 겁니다.
정신없이 비상계단으로 이동.
“아래로!”
— 다다닥!
“이번엔 위로!”
“이, 이러면 뭔가 마법이라도 벌어져요?”
“씨발, 이게 뭔 개짓인지!”
“다시 아래로!”
23층에서 24층 사이의 비상계단을 세 번 왕복했다.
아래, 위, 아래, 위, 아래, 위.
다시 24층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 와아. 없던 문이 생겼네요.”
“하하 참! 들어가자.”
— 철컥!
문을 열자마자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니, 오랜만이군.”
“데이빗.”
백발과 흑발이 섞인 기묘한 그라데이션.
이목구비는 제법 잘생긴 20대 후반 정도.
허나, 그 내면은 아주 늙고 지친 남자.
그는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방에 홀로 앉아있었다.
“혼자인가?”
“지금은 그렇지. 주변 의자를 보면 알겠지만, 평소엔 직원이 많아.”
“…”
“안내방송이 좀 늦었지? 미안. 방문객이 온 줄은 진작 알았는데, 카메라가 죄다 망가졌거든. 방문객이 자네라는 사실은 조금 전에야 알았어.”
동료들은 나와 데이빗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지, 숨죽인 채 뒤로 물러난 상황.
이 행동이 ‘싸울 생각 없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는지, 데이빗은 딱히 긴장한 태도가 아니었다.
혹은, 이미 세상이 망했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자포자기의 심리일지도 모르지.
“데이빗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여명의 아들이 봉인된 별이었나?”
최초의 소원을 자각하며 떠올린 기억에 따르면 그렇다.
“그래.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세릴다가 자네를 묶고 나는 자네를 제단에 패대기쳤지.”
“…”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데이빗에게도 마찬가지였는지, 그가 쓰게 웃었다.
“그때 일은 미안해.”
“…”
“흐으… 종말 이후에야 이루어지는 사과라니, 세상에 이렇게 늦은 사과는 없겠는데?”
데이빗이 순수파의 본거지에 마치 리더처럼 앉아있다는 사실.
여명의 아들 강림을 막으려 했던 날 초대하고, 과거의 일에 사과하는 행동.
이쯤 되자 회의 때 가인 군이 제시한 가설이 진실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
‘아까 형이 의문을 품었죠? 데이빗은 어디 갔냐고 말이죠. 진짜 어디로 간 걸까요?’
‘여명의 아들 강림에 공을 세운 요원들은 죄다 여섯 날개의 천사가 되었습니다. 데이빗만 제외하고 말입니다. 어째서죠?’
‘처음엔 종말 전에 죽은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건 이유가 못 됩니다. 낙원에선 죽은 자도 부활하니까요.’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데이빗이 여명의 아들을 배신한 게 아닐까요? 형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의식에 참여했는데도 여섯 날개의 수호자가 되지 못한 이유도 설명할 수 있죠. 배신자니까.’
*
“정말이었군.”
“음?”
“자네는 순수파로 옮긴 상태야. 그렇지?”
“오래된 기억을 최근에야 회복한 모양이지? 내가 노선을 바꾼 건 아주 오래전이거든. 500년이 넘었어.”
다음 질문을 떠올리려는 시점, 데이빗이 절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아… 무슨 용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일찍 오지 그랬나?”
“무슨 -”
“종말을 막고 싶은 모양인데, 늦었어. 하하! 늦었다고.”
“자네…”
“지금 인간을 해치는 녀석들은 잡졸에 불과하다. 진짜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봉인 시설을 하나하나 무너트리고 있지. 곧, 영겁 속에서 관리국이 가두었던 모든 마귀가 풀려난다…”
종말은 돌이킬 수 없다.
멋진 신세계에서 풀려난 마귀들이 세계 각지의 혼돈체 봉인 시설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긴 세월에 걸쳐 관리국이 봉인한 모든 혼돈체가 풀려나리라.
이는 데이빗에겐 절망적인 사실이었지만, 내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의 나열에 불과했다.
호텔이 진즉 알림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때, 뒤에서 묵성 요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짬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뭘 그리 죽상이냐?”
“뭐?”
“야, 일반인은 몰라도 우리는 괜찮잖아? 막말로 세상이 한두 번 망했냐? 난 지구가 물리적으로 터지는 것도 봤는데!”
일반인과 달리 회귀자인 우리는 아무래도 좋다는 위로.
어처구니없지만, 솔직히 틀린 말은 또 아니다.
참 요원다운 위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나저나 지구가 물리적으로 터져?그런 것도 봤어?
설마 ‘묵성 요원의 방’에서 지구가 터지는 건 아니겠지?
“하! 이봐, 넌 최근에 회귀자가 된 모양이지?”
데이빗에게 묵성 요원은 회귀자 같긴 한데, 처음 보는 사람이니 하는 말이다.
재밌게도 데이빗의 말 역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리 양이 가끔 묵성 요원을 후배 취급하는 걸 보면, 묵성 요원은 ‘회귀자 치고는’ 경력이 짧은 편인 것 같았다.
아니면, 아리 양의 경력이 터무니없이 길거나.
“종말이란 얇은 철판을 접는 것과 같아. 접히면 멸망이고, 펼치면 리셋이지. 철판은 다시 펴질 거야. 하지만, 가운데에 흔적이 남는다. 설마 이것조차 모르면서 -”
묵성 요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펴지긴 하잖아?”
“…”
“한탄은 이쯤 하자. 피차 ‘다음’이 있는 사람들이니,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도 생각해야지.”
엄밀히 말해 다음이 있는 건 우리뿐이다.
이곳은 저주의 방이니, 다음 회차에선 데이빗도 기억을 잃을 테니까.
물론, 상대는 이곳이 302호임을 모른다.
“… 조니, 왜 날 찾아왔지? 사과를 받으려고 온 건 아닐 -”
— 쿠궁!
갑자기 건물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
데이빗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빨리 말해! 5분 내로 다 터질 것 같으니까!”
김묵성 : 안 되겠다. 복잡한 질문은 다음 회차에 던지든지 하자. 어차피 이 새끼 여기 있는 거 알았으니까!
이은솔 : 쉽고 간단한 질문으로!
“왜 갈아탔습니까! 본래 당신도 여명의 아들을 섬겼을 텐데!”
기묘하게도, 데이빗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처럼 말이다.
“여명의 아들이 보여준 인류의 미래가 불만스러웠습니까?”
“… 그랬다면 처음부터 섬기지 않았겠지.”
맞는 말이다.
여명의 아들이 빚어낼 낙원이 싫었다면, 처음부터 섬기지 않았으리라.
“혹은, 인류가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먹어서?”
“아아… 그게 자네 생각이었지? 존중하네. 다만, 나는 솔직히 인류를 그렇게까지 믿진 않아서 -”
“YOU SON OF BITCH, MOTHERFUCKER! 시간 없다면서 무슨 말을 이렇게 돌리냐!”
순간 벙찐 데이빗.
“어… 이렇게 욕 잘하는 사람인 줄 몰랐 -”
“빨리 대답이나 하라고!”
“… 관리국에 신화처럼 내려오는 소문이 있어.”
“뭐?”
“두 번의 몰락.”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시작과 끝을 무수히 거슬러 올라가면, 진실로 위대한 문명이 있었다. 우리의 선조는 지금의 우리를 원숭이로 여길 정도로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다.”
“…”
“두 번의 몰락이 있었다. 첫 번째 몰락이 100을 10으로 만들었고, 두 번째 몰락이 10을 1로 만들었다.”
“…”
“두 번째 몰락을 일으킨 자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천재요, 광인이었다. 그가 바로 달의 창조자이니, 이후 사람의 역사가 영원한 진창 속에 떨어졌다.”
나는 물론이고 묵성 요원과 은솔 양도 입을 다물었다.
데이빗보다 우리가 더 잘 아는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몰락에 대한 정보는 훨씬 부족하다. 더 오래전 일이니, 당연한 일이다. 알려진 유일한 정보에 따르면, 해탈을 막는 자들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해탈을 막는 자,불령해탈.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지. 요원은 물론, 선각자들조차 거의 구전설화처럼 기억하는 수준의 이야기다.”
이은솔 : 할아버지 쪽 관리국도 이런 옛 소문 있었어요?
김묵성 : 전혀. 302호에서 처음 듣는다.
김상현 : 302호 관리국이 더 오래된 세력이니, 태고의 이야기가 소문처럼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신기한 이야기긴 한데, 지금 이 말이 왜 나오는 거지?
“이 이야기가 지금 왜 나오지? 나는 자네가 노선을 갈아탄 이유를 물었는데.”
그 순간, 데이빗이 품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한 권의 노트였다.
제목이 없는 낡은 노트.
“나는우연히 첫 번째 몰락에 대한 진상을 알아냈네. 태고의 기록에 따르면 -”
바로 그 순간.
— 탁!
갑자기 사라진 조명.
— 콰직!
어둠 속에서 뻗은 손이 단박에 데이빗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데이빗은 찍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즉사했다.
무슨, 저항이고 말고를 시도할 겨를도 없었다.
“엇!”
“으읏!”
반사적으로 나타난 안식의 피리와 최후의 섬광, 그리고 원 모어 찬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하하! 여러분도 참, 너무하십니다. 사생활이라는 개념도 없나요?”
“뭐라고?”
“이 노트는 누군가의 일기 같은 거랍니다. 함부로 엿보시면 곤란하지요.”
“무슨 -”
“게다가, 여러분은 노트 내용을 굳이 볼 필요도 없어요.”
상대의 입이 옆으로 쭈욱 벌어졌다.
… 입이 얼굴보다 컸다.
아무래도이게 내 마지막인 것 같았다.
*
– 관측소, 한가인
— 파지직!
약간의 통증과 함께 관측이 강제로 종료되었다.
더 이상 302호 내부에 관측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금 전에 상현 형이 죽었고, 승엽이도 마찬가지.
다만, 이 말이 모든 동료의 사망을 뜻하는 건 아니다.
“… 이제 우리 차례 같습니다. 준비합시다.”
“으읏! 이제 시작이구나.”
심호흡하는 진철 형과 엘레나.
그 사이, 나는 상현 형이 죽기 전에 벌어진 일을 생각했다.
노트에 대해서 말이다.
모르는 노트가 아니다.
너무 잘 아는 노트였다.
괴인의 말처럼, 굳이 내용을 확인할 필요 없는 노트이기도 했다.
… 과거의 내가 최초로 발견했고, 많은 내용을 추가한 노트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기억들.
과거, 인류에 대한 충심으로 가득했던 한 선임연구원이 있었다.
그는 신비로운 과정을 거쳐 태고의 지식을 얻었으니…
이는, 나약한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영광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절망적인 섭리이기도 했다.
이 두려움이 모든 일의 시작이 되었다.
“…”
“가인 씨? 무슨 생각 -”
“그냥 둡시다. 항상 생각이 많은 친구니까.
게임이론처럼 생각해 보자.
A라는 지식을 모두가 알게 되면, A1이라는 대응을 해야만 한다.
모두가 A1 전략을 취할 경우 전원이 패배하게 된다면,가장 적절한 대응은 무엇인가?
A라는 지식 자체를 다 함께 잊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어떤 지식은 모르는 게 약인 법.
“어엇! 저기 문이 생겼어요.”
“요번엔 예전과 다르네. 들어가자!”
두 번의 몰락이라…
두 번째 몰락은 솔직히 알레프 책임이 맞는 것 같네.
아, 내 책임은 아니고. 알레프 책임이라고.
첫 번째 몰락은 불령해탈이라는 정체불명의 존재들 때문이라고 하긴 애매하다.
그들은 그저 선조들에게 우주의 가장 큰 비밀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 비밀이라는 건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이미 공개된 정보만 조합해도 나오는 결론.
태고까지 갈 것 없이, 동료들도 본인들이 아는 정보들을 잘 조합하면 당연히 나오는 정보.
세상이 반복하는 이상,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현상.
“… 엘레나.”
“네?”
“엘레나의 세포 하나하나가 사람이 되면 어떨까요?”
“예?”
“아닙니다.”
“또 이상한 말버릇을.”
일단은 302호에 집중하자.
“들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