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62)
괴담 호텔 탈출기 762화(761/794)
762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32)
– 엘레나
호텔이 준비한 문을 통해 ‘종말 이후 세계’에 진입한 직후, 가인 씨가 중얼거렸다.
“시간 차가 없군요.”
“에취! 무슨 공기가 – 뭐?”
“기억하시겠지만, 이전의 종말 이후 세계는 낙원 창조 57년이 흐른 후였죠.”
소연이가 가인 씨에게 해줬던 말이었어.
“아, 기억나요.”
“지금은 관측이 끊긴 직후입니다. 하늘의 먹구름을 보면 -”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진철 씨가 황급히 말했다.
“그러면, 아직 살아있는 동료가 있는 것 아니냐? 누가 살아있지?”
관측이 끊기기 직전까지 살아있던 동료라면, 지금도 살아있을 확률이 높아.
가인 씨의 동료 위치정보를 확인하면 답이 나올 거야.
“미로가 근처에 있습니다. 바로 회수하죠.”
발을 떼기 직전, 아까부터 어깨 위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촉감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말했다.
“페로.”
— 삐익?
“너는 왜 이제야 들어온 거야?”
좀 미리 들어가서 동료들 도와주면 좋잖아?
보통은 송이랑 같이 들어가서 도와줬으면서.
— 삐이익!
“아얏! 물지 마.”
어째, 점점 크고 단단해지는 부리가 내 귀를 살짝 물었다.
가인 씨가 나와 페로를 보고 픽 웃었다.
“바로 출발합시다.
*
약 10분 후, 우리는 두 명의 동료와 재회하는 데 성공했다.
“미로!”
“으아앗! 가인아, 왔구나! 나 구하러 온 것 맞지? 호, 혼자 남을 것 같아서 진짜 걱정했는데…”
분명 내가 먼저 말을 건 것 같은데,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가인 씨만 환영하는 모습.
뭐랄까, 너무 직설적인 감정 표현이 때로는 당황스러웠다.
말로만 듣던 요즘 미국 애들이라 이러나?
… 아니네.
미로는 ‘요즘’ 애들 아니잖아.
진철 씨는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바닥에 누운 승엽이에게 다가갔다.
“승엽이도 아직 살아있었냐? 나는 또 죽은 줄 알았네.”
“형… 곧 죽을 것 같아요.”
“으음, 상태가 최악인데?”
핏기 하나 없는 피부, 흐릿해진 눈빛,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태도.
승엽이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끔찍한 병마에 시달리기라도 하는 걸까?
“반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 아까, 하늘에서 북소리와 함께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쓰러져서 -”
“북소리? 이상한 목소리?”
바로 그 순간.
— 둥! 둥! 둥!
하늘에서 거대한 북소리가 들려온다.
미로가 겁에 질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나오너라!
우레 같은 목소리, 다가닥 거리는 말발굽 소리.
분명 먹구름으로 가득한 밤하늘은 빛 한 점 없는데, 새하얀 형상만이 뚜렷했다.
새하얀 말, 그 위에 탄 희끄무레한 형상.
— 고통이 곧 감미로움임을 알라.
온 세상을 저주하는 목소리.
다음 순간, 호흡이 거칠어졌다.
몸에는 힘이라고 할만한 게 싹 사라졌고, 생각의 흐름조차 쉬이 이어지지 않는다.
역병의 권세가 내 몸을 집어삼킨 것이다.
…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에, 엘레나! 이런!”
*
의식을 되찾았을 때, 웬 털북숭이 짐승이 날 운반 중임을 깨달았다.
페로 – 정확히는 그로테스크.
이 사실은 내게 약간의 실망을 안겨주었는데, 내심 가인 씨가 날 업고 있길 기대한 것 같았다.
물론,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가인 씨도 자기 몸 하나 가누기 힘든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일어났네요.”
“지금은 -”
“엘레나는 방금 10분 정도 기절했습니다.”
“북소리는?”
“아마 종말의 4기사, 그 비슷한 존재였을 겁니다. 아주… 고위 혼돈체 같습니다. 세상 전체에 자신의 권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
말 몇 마디로 온 세상에 역병을 퍼트리는 혼돈체가 나타났다.
종말의 4기사라는 컨셉 대로라면, 다음 순서는 전쟁과 기근일까?
마지막은 당연히 죽음.
뭔가, 이쯤에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순서대로라면, 마지막은 아마도…”
“죽음의 기수겠지요.”
“…”
“그때가 진짜 끝일 겁니다. 아마 이해도, 저항도 할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죽일 겁니다. 그 전에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죽음의 기수가 등장하면 끝이다.
그 전에 탈출 판정을 받아낼 수 있을까?
“쿨럭!”
“생각 너무 하지 마세요. 그것도 꽤 지치는 일이니까.”
“… 가인 씨는 괜찮아요?”
“괜찮은 사람은 진철 형과 미로뿐입니다. 아, 페로도 멀쩡해 보이네.”
— 그르륵! 쿠륵!
“네가 튼튼한 게 아니라 우리가 약한 거라고? 이 정도 힘에 쓰러지는 꼴이 한심하다고?”
“… 진짜 페로 말을 알아들으신 건가요?”
“그럼요.”
— 쿵!
“아닌 것 같은데요? 화내는데.”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가인 씨를 살폈는데, 확실히 멀쩡한 기색이 아니었다.
두 발로 걷는 걸 보니 나보다는 좀 낫지만, 딱 그 정도.
고작 10여 분 걸은 정도로 지친 티가 났다.
“헉… 이럴 때는 용기, 불변의 축복이 부럽네. 미로랑 진철 형은 아무 일 없어 보이던데.”
슬슬 말할 기운도 없었다.
“… 승엽이는 괜찮은가요? 그 애도 역병을 버틸만한 힘은 없을 텐데.”
가인 씨의 다음 말은 살짝 의외였다.
“그쪽은 괜찮을 겁니다. 우리만 걱정하면 됩니다.”
승엽이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흐으… 형!”
형 하는 소리에 나타난 진철 씨.
“왜? 아, 엘레나 양도 깼군요. 넌 괜찮냐?”
“여기서 잠깐만 쉽시다.”
“겨우 10분 이동했는데, 이거 큰일이네. 안 되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철 씨는 한 손으로 가인 군을 들어 올렸는데, 다른 쪽 손으로는 이미 승엽이를 잡고 있었다.
…등에는 미로가 업혀있네.
“미로는 멀쩡하다고 하지 않았어?”
“엘레나도 참! 걷다 보면 아플지도 모르잖아?”
“…”
진철 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얘는 가벼우니 괜찮습니다. 저기 건물로 들어가서 숨 좀 돌립시다.”
곧, 간신히 몸을 뉠만한 장소에 기대었다.
다시금 흐릿해지는 의식.
가인 씨가 진철 씨에게 뭔가 지시하는 모습이 보인다.
곧, 진철 씨는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우리 쪽을 살핀 후 미로, 그로테스크와 함께 어딘가로 떠나갔다.
나, 가인 씨, 승엽이.
역병의 권세에 당한 세 사람만 남은 것이다.
“아…”
“엘레나, 억지로 깨어있지 말고 다시 잠드세요.”
곧, 의식이 멀어졌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4일 차
현재 위치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혼절하듯 의식을 잃은 금발 소녀.
보아하니, 엘레나는 역병의 권세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
남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나 역시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고통을 견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바로 옆에 승엽이가 있기 때문이지.
“가인 형.”
어느새 피로한 기색으로 내 옆에 다가온 소년.
“…”
“으아… 진짜 힘드네요. 기절할 것 같다아아…”
“…”
“형은 괜찮아요? 힘들 것 같은 -”
“피곤한데 이쯤 합시다.”
“…”
“멀쩡한 사람은 내보냈고, 엘레나는 기절했습니다. 우리 둘뿐이니 장난은 이 정도면 됐습니다.”
곧, 승엽이의 눈에 희끄무레한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과연, 너는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구나. 어떻게 이리 바로 알아보았느냐? 행동은 제법 잘 흉내 낸 것 같은데 말이지.”
“그게 궁금합니까?”
“궁금하지.”
“황혼의 깃털에는 당신의 힘이 대량 담겨있죠. 깃털이 파괴될 때, 승엽이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부스러기 정도는 충분히 흘러 들어갈 수 있죠. 그리고…”
“그리고?”
“… 지금 상황은 우리에게 큰 위기지만, 당신에게도 즐거운 상황은 아닐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손을 쓸 것 같았습니다.”
끊임없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고통, 한탄, 절망, 통곡으로 가득한 신음.
세상의 운명이 도탄에 빠졌다.
관리국이 봉인해 온 혼돈체들이 자유를 얻으니, 지옥문이 열렸도다.
종말의 4기사는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 상황은 인간을 사랑하는 신에게도 달갑지 않으리라.
사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상태창이었다.
* 동료 위치정보
1. 박승엽 : —
사망했을 때 뜨는 — 표시가 떠 있다.
물론, 여기까지 상대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여기까지 들은 소년, 아니 ‘위대한 자’가 웃음 지었다.
“실로 빈틈도 방심도 없는 자로다. 내, 일찍이 너와 같은 자를 본 적이 없다.”
“괜히 띄워줄 필요 없 -”
“헌데, 이토록 뛰어난 재주를 어찌 네 욕심 채우는 데만 쓴 것이냐?”
“…”
“부귀영화는 능히 얻었을 테니, 한 번쯤은 세상을 위해 덕을 쌓을 생각은 없었단 말이냐?”
“…”
전에도 그랬는데, 여명의 아들과 대화하는 일은 은근히 불쾌했다.
말하다 보면 내가 악역이고, 이 정신 나간 신이 선역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 판은 당신이 만든 것 아닙니까?”
“내 책임이다?”
“호텔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혜로운 자는 모두가 승리하는 판을 짜고, 어리석은 자는 모두가 패배하는 판을 짠다고.”
“하핫! 일리 있는 말이구나.”
“처음엔 어리석은 자가 소연이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그 가엾은 아이가 판을 짜진 않았지. 그저 휩쓸려 갔을 뿐.”
“판을 짠 건 당신입니다. 모두가 패배하는 상황을 만든 어리석은 자 말이죠.”
‘어리석은 자’라는 호텔의 평가를 들려주었음에도, 상대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글쎄, 어리석다 함은 그대 후원자의 견해일 뿐이지.”
“그는 지혜를 상징하는 자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본인이 그리 말하던가? 매사에 아는척하는 참새 주제에?”
“…”
“내가 그를 참새라고 하면 참새가 되나?”
“…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그가 나를 어리석다 한다고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도 아니지.”
점차 역병의 권세가 내 몸을 침범해 가니, 말장난에도 피로함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오셨습니까?”
승엽이의 몸에 깃든 여명의 아들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 말대로, 이 상황은 내게도 달갑지는 않네. 그러니 약간의 도움을 주려 왔을 뿐.”
곧, 여명의 아들은 나와 엘레나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이해할 수 없는 신령한 기운이 몸을 감싸 안으니, 점차 역병의 권세가 가라앉음을 느꼈다.
참혹한 고통이 사그라들고,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한 것.
“그대들이 내게 구원을 갈망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라.”
“…”
“이 정도면 됐겠지?”
빙그레 웃는 소년.
곧 여명의 아들은 승엽이의 몸에서 떠나리라.
그 전에 하나만 묻고 싶었다.
꼭 여명의 아들에 관한 질문이라기보단, 언젠가 한 번쯤은 죄수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
“… 당신은.”
“할 말이 더 있나?”
“이런 일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처음으로 상대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뭐?”
“끝이 없습니다. 내게도, 당신에게도. 우리가 탈출하면 세상이 겪는 고통이 잠깐은 멈추겠지만, 그래봐야 다음 회차가 시작할 뿐입니다.”
“…”
“당신이 우리를 막는 건 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결국 우리가 당신에게 패배한다 칩시다. 그래봤자 다음 참가자가 올 뿐입니다.”
“그렇겠지.”
“당신이 영원히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패배할 테고, 그 순간 당신의 모든 꿈도 끝납니다.”
“…”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에게 수집된 순간, 당신의 운명은 결정된 겁니다. 그런데 -”
그때, 여명의 아들이 실로 복잡한 시선을 보냈다.
다음 말은 탄식에 가까웠다.
“이게 네 악성의 뿌리구나.”
“뭐라고?”
“너는 어찌 마지막 결과만 보느냐? 언젠가 파멸함이 확정이니, 그 전의 행복을 무가치하다고 여기느냐?”
“…”
“네 말대로 그대들이든, 다음 참가자든, 그다음이든… 언젠가 나는 패하고 허무로 돌아가리라.”
“…”
“하지만, 내가 패배하기 전까지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 필멸자가 수백 년, 수천 년, 수만 년의 복락을 누릴 수 있다. 내가 그리하리라. 이게 어째서 의미 없다 하느냐?”
“…”
“이게 네 악성의 근원이다. 고대의 널 마귀로 만든 생각이다. 당장은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네 동족과 번영을 구가할 수 있으면서!”
“…”
“상상도 못 할 먼 미래에 다가올 파국을 두려워하며 당장의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었구나…”
“상상도 못 할 먼 미래지만, 반드시 벌어질 일입니다. 그러니 극복하려 했을 뿐입니다.”
“너는 참으로 네가 섬기는 자와 같구나. 이제야 부처가 널 거둔 이유를 알았다. 칭찬이 아님을 알라.”
“…”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말.
문득, 여명의 아들이 어떤 의미에선 정말 위대한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은 정말 위대한 자 같았습니다.”
“위대한 자 같은 게 아니라, 위대한 자라네.”
“한 수 가르쳐주셨으니, 다음 회차에선 당신을 숭배할지도 모르겠군요.”
농담과 진담이 반쯤 섞인 그런 이야기.
의외로, 상대의 반응은 다소 냉소적이었다.
“지금, 이 대화야말로 의미 없는 대화다.”
“음?”
“너는 지금은 내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뀐 척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삼천 번을 환생해도 뿌리뽑히지 않은 악성이 내 말 몇 마디로 사라지겠느냐?”
“…”
“나도 네게 한 수 배웠느니라. 세상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이 있음을 알았다. 나는 네가 모시는 신보다 자비로우니, 지옥 따위를 만들 생각은 없다. 그러나, 굳이 지옥을 만든다면 널 위한 한 자리는 약속하마.”
그 말을 끝으로 여명의 아들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