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63)
괴담 호텔 탈출기 763화(762/794)
763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33)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4일 차
현재 위치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 풀썩!
여명의 아들이 떠나간 후, 승엽이의 몸은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제 더 이상 저 몸이 움직일 일은 없다.
애초에, 내가 302호에 진입하기 전에 승엽이는 이미 죽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병이란 본디 일관성이 없으니, 같은 병에 걸려도 증세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
역병 기사의 권능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럭저럭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엘레나는 의식을 유지하기도 힘들어했고, 승엽이는 노출되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죽은 것.
어쨌든, 지금은 몸이 가벼웠다.
여명의 아들이 역병의 권세를 방어해 주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 가호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으읏…!”
상세가 나아지자 금방 정신을 차리는 엘레나.
“가인 씨, 아까보다 몸 상태가 훨씬 나은 – 으앗!”
밝은 표정을 짓던 엘레나는 곧, 바닥에 널브러진 승엽이의 시신을 보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승엽아? 이게 무슨 일이죠?”
“원래대로 돌아간 겁니다.”
“예?”
“승엽이는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 그러면 조금 전에 살아 움직이던 모습은…”
“여명의 아들이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지금의 상황을 끝내고 싶어 하니, 우리에게 약간의 도움을 준 셈이죠.”
“…”
잠시의 침묵.
곧, 엘레나는 상황을 이해한 듯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나리오 이해에는 뭔가 나왔나요?”
북소리와 함께 역병의 기수가 등장한 후, 시나리오 이해가 갱신되었다.
“혼돈의 권세를 억누르고, 죽음의 기수를 저지하라고 하네요.”
“어… 그걸 어떻게 하죠?”
“… 인류의 남아있는 힘을 하나로 모을 시간이라고 합니다.”
조언이 그러하듯, 시나리오 이해 역시 직관적인 이해가 어려운 추상적인 내용이 많은 편이다.
애초에 둘 다 올빼미의 권능이니 비슷한 건 당연하겠지.
그렇지만, 지금 나온 내용은 꽤 직관적이었다.
“관리국과 손잡으라는 뜻 같죠?”
“아마도.”
“하, 하지만, 관리국이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멈출 수 있어요?”
“완전한 해결은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애초에 탈출이 그 정도를 요구하진 않으니까요.”
정확히 어디까지 요구할지는 호텔 마음이니, 참가자로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접촉하죠? 나가서 찾아봐야 하나?”
관리국 한국 지부를 찾아내는 법.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무척 쉽다.
“간단합니다. 요란하게 싸우고 있으면 거기가 관리국 세력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아, 그렇네요.”
일반인은 역병의 기수에 의해 저항도 못 하고 쓰러져서 죽음만 기다리는 처지일 터.
역병의 권세에 저항하며 싸움 비슷한 걸 성립시킬 수 있는 집단은 관리국뿐이다.
“이미 진철 형이 찾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쯤 찾았을지도.”
“… 아까 가인 씨가 내린 지시가 관리국을 찾으라는 거였군요.”
“우리는 잠깐 쉬면서 컨디션이나 회복합시다.”
약 30분 후, 진철 형이 미로, 그로테스크와 함께 돌아왔다.
“찾았다!”
“어디입니까?”
“여기서 북쪽으로 10분 정도 움직이니까 멀리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라. 아마 관악 쪽인 것 같은데 -”
“출발합시다.”
“어? 너 이제 괜찮냐? 엘레나 양도 – 으앗, 승엽아!”
“꺄아악!”
승엽이의 죽음과 여명의 아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재차 설명해야 했다.
긴 설명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미로의 태도가 제법 흥미로웠다.
평소엔 승엽이랑 티격태격했던 것 같은데, 막상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에게 죽음은 이별이 아니다.
*
진철 형이 10분이라고 말한 거리는 실제로는 조금 더 멀었고, 중간쯤엔 신성한 태양을 사용하며 이동해야 했다.
“저기다! 저거, 다들 보이지?”
“…”
진철 형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잠시 말문을 잃은 동료들.
국회의사당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
꺾이지 않는 인류의 의지를 외치는 듯한 빛을 보고 있으니, 순간적으로 관리국에 대해 품었던 여러 부정적인 생각이 흐릿해졌다.
관리국의 의지는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을 밝히는 마지막 촛불과도 같았다.
반면, 한국지부 일대를 둘러싼 혼돈체들은 살찐 황소의 죽음을 기다리는 굶주린 늑대처럼 느껴졌다.
“… 치열하네요.”
“잘 싸우나 봐.”
감탄의 시간이 끝난 후 이어지는 짤막한 토론.
“어떻게 합류하죠? 무작정 합류하면 우리도 음, 적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요원이라고 우기면 되는 것 아냐?”
“미로야, 내가 요원 해봐서 아는데, 관리국이 그렇게 모자란 놈들은 아니다. 이 조그마한 대한민국에 요원이 몇이나 되겠냐? 얼굴 다 알아.”
“그, 그러면 어쩌라고!”
“가인 씨 생각은 어때요?”
“…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내게 모여드는 세 사람의 시선.
솔직한 생각인데, 이 세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런가 보다’ 하고 따를 것 같다.
그 믿음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하네.
“저쪽 관리국 주류 세력은 구원파입니다. 즉, 여명의 아들을 섬기죠.”
“그렇겠네요.”
“쉽게 말해 신앙인들입니다. 지금 무슨 생각 중이겠습니까?”
“어… 왜 신께서 우릴 돕지 않으시는지 절망 중이다?”
“그들이 바라는 모습을 보여줍시다. 신분 증명은 사람에게나 필요한 겁니다.”
***
– 관리국 한국지부장, 차민석
— 7번 구역, 아랍호틀 침입! 지원 요청!
— 13번 구역 붕괴. 나는 여기서 죽으나, 관리국은 영원하리라.
— 3번 구역, 역병 감염 차단 실패. 당장 정화제 보급이 필요!
“…”
사방의 스피커에서 정신없이 지원 요청이 들어온다.
평소라면 대기 중인 타격대와 요원들을 투입해 상황을 정리했겠지만…
지금은 답이 없다.
파멸이 시작된 지 하루가 지나기 전에 반 이상의 타격대와 연락이 끊어졌으며, 잔존 병력은 이미 실시간으로 녹아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한국지부 총책임자인 나부터가 위험에 노출된 판이다.
“지, 지부장님! 1층 4번 입구에 언약의 맹수가 날뛰는 -”
“13번 계단 폐쇄해!”
어느 시점부턴 내심 받아들였다.
아아… 희망이 없는 싸움이구나.
온 세상이 마귀로 가득하니, 한 손으로 열 손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그저,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관리국에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생각했다.
이런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상, 침대에서 죽는 건 사치라고 말이다.
… 단지, 내 죽음이 세상의 마지막 단말마일까 두려웠을 따름이다.
“흐억! 아아… 제발, 제발…”
꽤 많은 직원은 내면의 나약함을 감추지 못했다.
“구원을 주소서…”
“박 팀장! 개소리 말고 3번 구역에 정화제나 보내! 여기 세 통 남았잖아?”
“여명의 아들이시여, 부디 우리를 버리지 마시고 -”
“이 쓸모없는 새끼!”
이번 일을 수습할 수 있다면, 저 모지리는 반드시 쫓아내리라 맹세했다.
물론,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의미 없는 맹세지만 말이다.
“김 사원, 11번 구역에서 조금 전에 요청이 -”
“하늘에 계신 분께 기도합니다. 부디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내리시고 -”
“아, 병신 새끼야! 기도는 씨발 평소에나 하란 말이다!”
이 다급한 순간에 하늘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혼돈체에게 기도나 하고 있다니!
“흐으…”
그래, 사실은 알고 있다.
지금의 관리국에서 비정상은 저들이 아니라 나다.
이미 ‘여명의 아들’이라는 위대한 자를 섬기는 신앙이 관리국에 뿌리박힌 지 오래.
종말이 다가오는 현재, 신을 섬기는 자들이 할 게 기도 말고 더 있겠는가?
나는…
구원을 믿지 않는다.
기적도 믿지 않는다.
그저 대세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고, 내 직책에 애착이 있었기에 구원파에 남아있을 따름이다.
여명의 아들은 실존한다.
하지만, 위대한 자가 실존한다는 사실이 그를 섬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
관리국에 입사한 후, 세상의 어둠에 대해 알았다.
일반인들은 의심하지 않는 문명의 견고함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세워졌는지 알았다.
인류가 쌓아 올린 탑은 위대한 자가 숨 한번 크게 쉬면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았다.
그랬기에 언젠가 파멸이 다가올 수 있음은 알았지만…
파멸의 순간이 이토록 추레하리라곤 상상치 못했다.
적어도, 죽는 순간까지 악마들에게 맞서 총을 드는 인류의 수호자들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토록 비참하다.
1/3에 달하는 관리국 직원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기도나 하고 있지 않은가!
위대한 자에 대한 믿음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다.
“정신들 차려라! 여명의 아들? 그분은 저 하늘 꼭대기에 계시니, 아마 너희가 보이지도 않으실 거다!”
“지, 지부장님 -”
“총을 들고 수류탄을 들어라! 하다못해 제어 시스템에 앉아서 무인 병기라도 조작하란 말이다! 이럴 거면 교회에 가지, 관리국에는 왜 와서 -”
“지부장님!”
그때, 그나마 정신 줄 잡고 있다고 생각했던 직원 하나가 정신없이 내 팔을 잡고 흔들었다.
“뭐야?”
“저기, 저쪽을 보십시오!”
그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한국지부 천장이 아닌, 훨씬 더 높은 곳을 향해 있었다.
“…”
그곳에는 희망이 있었다.
절망에 굴복해 무릎 꿇고 기도하던 이들이 그토록 기대했던 것.
모두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바라왔던 것.
기적이 있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이다.
천사는 신성한 불꽃과 후광을 두른 잘생긴 청년의 모습으로 하강했다.
모두의 시선이 하늘을 향한다.
공포에 떨던 인간들은 물론이고, 거침없는 악의를 드러내던 마귀들마저 하늘을 보았다.
천사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웃음 지으며 말했다.
“여명의 아들께서 내게 명하셨나니, 이 땅에 구원이 있으라.”
오늘에야 알았다.
내가 틀렸구나.
신은 있고, 천사는 실존하며, 구원은 실체였다.
부족한 건 내 믿음뿐이었다.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해짐을 느끼며 무릎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