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64)
괴담 호텔 탈출기 764화(763/794)
764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34)
– 관리국 한국지부, 차민석 지부장
잘생긴 인간 청년의 모습으로 내려온 천사는 이 자리의 모두가 간절히 바랐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명의 아드님께서 내게 명하셨나니, 이 땅에 구원이 있으라.”
구원이 있으라.
그 순간,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 얼마나 헛되고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말았다.
뭐? 구원을 믿지 않아?
기적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지금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곧 증거였으니…!
하늘은 어두웠다.
아직 밤이니, 파멸이 도래하지 않았더라도 어두웠으리라.
전후좌우 어느 곳을 보아도 악몽 속에서 튀어나온 혼돈체로 가득한 지옥도.
빛을 뿜어내는 자가 지옥의 중심에 섰다.
“물러서라.”
천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위엄은 혼돈의 권속들조차 떨게 할 정도였다.
“막아서는 자, 살아남지 못하리라.”
이윽고 그의 전신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너무 밝아서 맨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살아있는 별에 가까운 존재였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 밤하늘을 빛내는 별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곧, 살아있는 태양과 같은 자가 암흑의 파도를 향해 걸어 나갔다.
암흑의 파도와도 같은 혼돈의 마귀들은 호랑이를 만난 늑대처럼 물러서느라 바빴다.
자연스럽게 허공에 나타난 한 권의 책과 이어지는 목소리.
“멈추어라.”
단 한마디.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다고 생각했다.
폭풍 같은 악의 혹은 광기로 무장한 악몽의 존재들이 돌처럼 굳었기 때문이다.
천사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손을 뻗었다.
인간의 눈으로도 능히 따라잡을 수 있는 느린 움직임이지만, 돌처럼 굳은 괴물들은 피할 수 없는 움직임.
천사의 손이 세 개의 머리를 자랑하던, 뱀과 사람의 뒤틀린 교잡종 같은 생물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머리가 참으로 많구나. 하나 정도 없어도 큰 문제는 없겠다.”
— 쩌어억!
머리 하나가 떨어진다.
괴물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 같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도 두 개나 남았으니, 하나 더 떼어내도 되겠다.”
— 콰직!
또 하나가 떨어진다.
이쯤에서 괴물이 전신을 파들거리며 떨기 시작했다.
“두 개를 떼고 나니, 궁금증이 드는구나. 지성체인 이상 몸보다는 머리가 본체에 가까울 텐데, 머리 셋을 전부 분리하면 어느 쪽이 진짜일까? 한번 확인해보거라.”
— 찌이익!
세 개의 머리를 전부 떨어트린 후, 살아있는 별과 같은 이의 시선이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 어떤 마귀도 감히 천사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으니, 이 자리에 천사를 막아설 자가 없었다.
최소한 지금은 말이다.
*
혼돈의 군세를 잠시 물러서게 한 후, 천사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내게 다가왔다.
단출한 질문.
“너에 대해 말하라.”
내 이성은 진즉 거의 마비된 상태였지만, 한국지부장으로서 견뎌낸 인고의 시간이 내 입을 억지로 움직였다.
“저, 저는 인류 보호 의회, 관리국 한국지부 소속 차민석이라고 합니다. 지부의 위기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어, 어디서 오셨습니까?”
말하면서도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왔냐니?
당연히 여명의 아들께서 내려보냈겠지!
아무렴 천사가 어디 제주도 호텔에서 왔을까.
과연, 천사는 빙그레 웃으며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네 질문에 충분한 답이 되었기를.”
“무, 물론입니다.”
“이제부터 나는 하늘에서 한국지부 일대를 보호하고자 한다.”
“감사 -”
“곧, 내 권속들이 이곳에 도착할 터. 적극 협조하라.”
그 말을 끝으로 천사는 하늘로 날아갔다.
천사의 권속이 누구인지는 곧 알게 되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다운 금발 여인과 사람인지 혼돈체인지 헷갈릴 정도의 거한, 그리고 초현실적인 외모의 백발 소녀가 나타난 것이다.
*
– 차진철
처음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내심 걱정했었지.
여명의 아들이 내려보낸 천사로 위장하겠다고?
아무리 신성한 태양이 있다고 해도 쉽지 않아 보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허점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째, 가인이에겐 날개가 없다.
이 점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인데, 여명의 아들의 ‘진짜 천사’인 아스테어 등은 힘을 쓸 때 날개가 솟아났기 때문이다.
둘째, 여명의 아들은 이미 훗날 낙원의 수호자로 각성할 천사들을 지정한 상태다.
한국지부장쯤 되면 아스테어, 브라이언, 제임스, 세릴다의 외모는 대충 알지 않을까?
가인이는 명백히 동양인인데, 진짜 수호자 중 최소한 동양인은 없다.
셋째, 신성한 태양은 여명의 아들의 권능과 다르다.
직접 여섯 날개의 천사와 싸워봤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천사들의 힘과 신성한 태양은 확실히 결이 다르다.
정확히 무엇이 다르냐? 라고 물으면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힘의 주파수가 다르다 정도로 정리하자.
…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강력한 진통제가 통각 신경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이성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문득, 나는 상현 형님이 왜 위대한 자를 부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왜 인간이 스스로 일어서야 함을 역설했는지, 왜 위대한 자 숭배가 인간을 퇴보하게 만든다고 여겼는지 이해했다.
또한, 우리의 리더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영역에 닿아있는지도 실감했다.
“천사님께 마, 말씀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권속이십니까?”
잡생각은 이쯤 하자.
“맞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지부장, 우리는 당신에게 몇 가지 정보를 얻고 싶은데.”
“말씀하시지요.”
이번에는 옆에 있던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첫째, 당장 가장 큰 위협은 묵시록의 네 기사입니다. 그들에 대해 수집한 정보가 있다면, 전부 주시길.”
지금 세상을 혼란케 하는 괴물들은 모두 관리국이 격리했던 존재임을 잊어선 안 된다.
즉, 관리국에는 개별 괴물들에 대한 대략적인 데이터, 처리 수단, 봉인 방법 등의 정보가 있다.
물론, 관리국은 수천 년에 걸쳐 산발적으로 나타난 괴물들을 처리했을 테니, 지금처럼 모조리 다 튀어나온 상황은 감당할 수 없겠지.
“둘째, 멋진 신세계와 관련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그쪽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며 세상이 무너지고 있으니까요.”
그 순간, 한국지부장의 표정이 살짝 흔들림을 감지했다.
예전이라면 이런 표정을 읽지도 못했겠지만, 현실에서 요원 짬밥을 먹은 덕에 깨달았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비밀스러운 정보를 공유한다?
관리국 한국지부장쯤 되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낄 행위다.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이성을 마비시킬 마취제가 말이다.
재빨리 양손 모아 합장하며 말했다.
“여명의 가호가 있기를. 황혼이 다가오는 날, 모두에게 구원이 있기를.”
과연, 엘레나는 늦지 않게 내 행동을 따라 했다.
“여명의 가호가 있기를. 황혼이 다가오는 날, 모두에게 구원이 있기를.”
딱히 나처럼 한국지부장의 표정에서 뭘 읽은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반사적으로 내 연기에 협조한 느낌.
반면, 미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입을 열진 않았다.
아까 가인이가 미로에게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
“미로, 이제부터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으엣? 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필요한 말은 형이랑 엘레나가 전부 할 거야. 너는 그냥 분위기만 잡고 있어.”
“분위기는 어떻게 잡아?”
“… 주기적으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면 돼.”
*
어쨌든, 이런 행동들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한국지부장의 눈이 풀리며 우리에게 순순히 협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에게 구원이 있기를! 알겠습니다. 즉각 준비할 테니, 잠깐만 기다리시길.”
잠시 후, 한국지부장은 얄팍한 종이 석 장과 두꺼운 파일 하나를 챙겨왔다.
두꺼운 쪽이 멋진 신세계 관련 정보였고 석 장의 종이는 묵시록의 네 기사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엘레나는 파일을 받아서 읽기 시작했고, 나는 석 장의 종이를 확인했다.
“…”
과연, 관리국에는 묵시록의 네 기사에 관한 정보가 제법 많았다.
그들이 등장할 때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봉인 및 토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다.
역병의 기수.
등장 시 광대한 영역의 사람들에게 5종 이상의 극심한 역병이 발병한다.
증상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극도로 쇠약해지며 경우에 따라 즉사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정보가 적혀있었지만, 위 내용이 핵심이다.
“3급 이상의 정화제로 상당수 역병을 억제할 수 있다?”
이래서 역병의 기수가 나타났는데도 관리국 직원들이 버티고 있었구나.
“그렇습니다. 다만, 그 수준의 정화제는 매우 희소해서 여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전쟁의 기수, 기근의 기수 역시 역병의 기수와 유사했다.
등장 시 광대한 영역의 사람들에게 전쟁, 기근과 관련한 치명적인 초자연 현상을 유발한다는 것.
역병, 전쟁, 기근, 죽음 – 해당 개념과 연결된 초자연 현상을 어떻게 억제하는가가 대응법의 핵심.
그래서였을까?
묵시록의 네 기사 중 이미 토벌당한 개체가 딱 하나 있었다.
“기근의 기수는 이젠 없는 건가?”
“예. 1924년, 인도에서 나타나 3,327만 명의 희생자를 만든 끝에 소멸했습니다.”
“…”
유일하게 기근의 기수만 토벌에 성공한 이유는 명쾌했다.
역병, 전쟁, 기근, 죽음 – 이들 중 인류 문명이 가장 수월히 대처할 수 있는 개념이 기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적에 대한 정보를 차근차근 모아가던 시점.
“어?”
‘죽음의 기수’에 대한 충격적인 기록을 발견했다.
당황하는 나를 본 한국지부장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 문장이 이상하지요? 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 문장은 선각자만 이해할 수 있는 암호일 겁니다.”
“…”
“암호의 뜻은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이 부분은 도와드릴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 아니오.”
암호라고?
내가 볼 땐 암호 같은 게 전혀 아니다.
사실 그대로 적혀있는데, 한국지부장이 이해하지 못할 뿐.
현실의 한국지부장과 달리, 302호의 한국지부장은 보안등급이 조금 더 낮은 것 같았다.
“엘레나.”
“잠깐만요. 전 아직 유의미한 정보를 찾지 못 -”
“이 부분 읽어보시지요.”
“… 어머나.”
「죽음의 기수
호텔 프로스페리티의 참가자로 추정.
참가자의 가장 비참한 말로 중 하나.
하나의 세상에서 누군가는 천상도를, 누군가는 지옥도를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어떤 이에겐 지옥의 구현일 수 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4일 차
현재 위치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 나오너라!
북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들려오는 포악한 목소리.
이윽고 밤하늘 저편에서 붉은 말을 탄 기수가 나타났다.
그는 세상에서 평화를 없애고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죽이게 하는 권한을 받은 자였다.
전쟁의 기수.
곧, 한국지부에 모여있는 직원과 군인들의 눈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공포요, 둘은 극악한 분노라.
오랜 관리국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직원과 군인들은 어떻게든 자제하려 하는 것 같았지만…
이대로라면 곧 자기들끼리 유혈극을 벌일 기세였다.
주저 없이 신성한 태양을 소환한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신성한 태양이 발하는 카리스마가 전쟁의 기수의 권능보다 강할까?
솔직히 그건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전쟁의 기수보다는 저들과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허억! 여명의 아들이시여…”
헐떡이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스쳐 가는 생각.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신이 내려보낸 권속은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
영혼 결집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론적인 고민을 하는 게 아니야.
그런 건 105호나 설원에서 혼자 수련할 때나 하는 생각이지.
공포에 떠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생각건대, 세상에 나만큼 이 분야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드물다.
교주계의 최고 전문가, 업계 최고의 일타 강사가 바로 나다.
최근, 내가 주목하는 개념은 완전무결이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틀릴 수 있고, 패배할 수 있다.
신 혹은 천사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실수도, 오류도, 패배도 허용되지 않는다.
완전해야 한다.
최소한 필멸자들은 신이나 천사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
하지만, 완전하기란 어렵다.
정말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안타깝게도 호텔의 옥좌에 앉아계신 부처님조차도 전지전능한 분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위대한 분들은 여러 가지 기술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기술은 두루뭉술 화법.
전쟁을 앞둔 왕에게 ‘네가 이길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랬다가 인간 왕이 지면?
신의 위엄이 훼손되는 것 아닌가!
‘너는 네 굳건한 의지를 보일 것이다.’ 정도가 적절하다.
왕이 이기면 승전했으니 의지를 보인 것이고, 패전한다 해도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해석하게 하면 된다.
어차피 왕 본인이 그렇게 주장하며 패전 책임을 벗어나려 하겠지.
위대한 자가 허구한 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문장을 남발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 해도 예외가 있는 법.
때로는 확고한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해석의 여지 따위는 집어치우고, 어린애가 들어도 명쾌한 말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바로 지금이다.
“… 언젠가 공든 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인류의 보루는 무너지고, 만악의 권세가 창궐할지도 모른다.”
수백 수천 쌍의 떨리는 시선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마지막 문장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기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