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65)
괴담 호텔 탈출기 765화(764/794)
765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35)
– 차진철
— 나오너라!
붉은 말의 기수가 나타났다.
관리국에게 얻은 정보에 따르면, 저놈이 바로 전쟁의 기수겠지.
즉각 가인이 쪽으로 달려갔다.
가까이 가기가 무섭게 가인이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뭔가 얻은 정보 없어요?”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오네.
일대의 모든 사람은 물론, 마귀들조차 가인이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생각하지.
진실을 아는 내 눈에도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야.
그런가인이 역시 마음속으로는 긴장한 상태였다.
그에게도 여전히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뜻이리라.
자세한 설명을 할 시간이 없으니, 본론만 말했다.
“저놈을 최대한 멀리서 쓰러트려야 한다.”
“멀리서? 아, 가까이 오면 관리국 직원들이 폭주하니까?”
“그게 전쟁의 기수 대응법의 핵심이었다.”
— 두우우우…!
더 설명할 틈도 없이 울려 퍼지는 뿔피리 소리.
밤하늘 저편에서 붉은 말의 형상이 다가오기 시작하니, 더 시간 끌 겨를이 없었다.
“크으으…! 끄윽!”
어느새 사방에서 들려오는 신음.
분명 고도로 훈련받은 관리국 직원들이건만, 이미 눈동자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진즉 서로를 해치기 시작했겠지.
고민에 휩싸인 가인이의 표정.
순간, 나는 가인이가 무슨 생각 중인지 이해했다.
시나리오 이해에 따르면, 인류의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
탈출을 위해선 관리국을 통해 뭔가를 해야 하는 모양이니, 써먹기 위해서라도 본부를 지킬 필요가 있겠지.
그런데, 전쟁의 기수에 의해 직원들의 정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가인이 주변의 직원들은 비교적 멀쩡했는데, 신성한 태양이 발하는 초자연적인 카리스마가 상대의 권능을 방어 중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가인이가 전쟁의 기수를 막으려고 이 자리를 뜨면 본부가 무너지는 상황.
결론은 하나뿐이다.
다른 사람이 저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
“너는 여기 있어라. 내가 뭔가 해볼 테니!”
이를 꽉 깨물며 붉은 말의 기수에게 달려가려는 시점.
가인이가 의외라는 시선을 내게 보냈다.
“제법 멀쩡하시네요.”
“뭐?”
“눈동자는 조금 붉어진 것 같고, 상대와 싸우고 싶다는 투쟁심도 생긴 것 같고… 하지만, 이성은 멀쩡해 보이는군요.”
동료들이 그러하듯, 내 정신 역시 점차 마의 침범을 견뎌내기 시작한 걸까?
이는 내게 약간의 기쁨과 상당한 자신감을 이끌어 주었다.
— 나오너라!
*
붉은 말의 기수에게 다가갈수록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광인처럼 고함지르며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고 싶은 충동이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말까지 포함하면 최소 6m 이상의 높이.
덩치만 보면, 코끼리보다도 대여섯 배는 커 보인다.
양손에 들린 창은 창이라기보다는 어지간한 건물의 기둥보다도 거대해 보였다.
상대는 지옥 불에서 이제 막 뛰쳐나온 것처럼 전신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용기의 축복을 받아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을 얻은 나.
그러나극강한 혼돈체들 중에선 나보다 빠르고 강한 자가 얼마든지 있었다.
전쟁의 기수 역시 여기에 해당했는데,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내구성은 물론이고 속도조차도 나보다 유의미하게 빨랐다.
저런 괴물의 공격을 방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무조건 피해야 하는데, 회피 역시 창의 움직임을 보고 대응하면 늦는다.
창이 움직이기 전에 회피 동작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하앗!”
「찰나가 발동됩니다.」
스쳐 가는 알림창과 함께 느려지는 세상.
물리법칙을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닌 이상, 강력한 공격을 위해선 준비 동작이 필요하다.
냉병기는 결코 팔의 힘만 가지고 휘두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발끝에서 시작된 힘이 종아리, 허벅지,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것.
전신의 힘이 창끝에 실려야 제대로 된 일격이 나온다.
찰나가 발동한 직후, 상대의 허벅지가 꿈틀거림을 느꼈다.
바로 지금!
즉각 몸을 뒤틀며 오른쪽으로 벗어났다.
두 걸음 정도 움직였을 때 상대의 창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네 걸음 정도 떼었을 때 창이 내가 있던 위치를 휩쓸었다.
— 우르릉!
창이 허공을 격한 후에야 천둥 같은 소리가 뒤를 따랐다.
언뜻 봐도 건물 기둥만 한 창을 음속 이상의 속도로 휘두르는 물리력.
한 번의 공방을 겪으며 깨달았다.
상대의 물리력은 실로 초월적이지만, 여섯 날개의 천사 수준은 아니다.
전쟁의 기수가 진심을 담아 내지른 일격이 소닉 붐을 일으킬 때, 여섯 날개의 천사는 손가락만 튕겨도 그 위력이 나왔으니 말이다.
물론, 반대로 여섯 날개의 천사들에겐 존재만으로 광범위한 영역에 광기를 퍼트리는 마력은 없었지.
…
호텔에 오기 전, 도장에서 종합격투기를 훈련하던 시절의 기억.
격투에서 선공권은 체격이 큰 사람이 가질 때가 많다.
체격이 크면 팔도 더 길기 마련이니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래서 체격은 아주 중요한 재능에 속한다.
물론, 먼저 공격했다고 무조건 이기는 게 아니다.
상대가 내 공격을 막아내거나 회피하면, 공격자의 자세는 잠깐이나마 무너지기 마련.
자연스럽게 다음 공격권은 상대에게 넘어간다.
슬프지만, 내가 여러 번 패배하며 겪었던 일이다.
위와 같은 결투의 이치는 창 한번 휘둘러 건물을 꿰뚫는 혼돈체조차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즉, 내게 공격권이 돌아왔다는 것!
— 스아아…!
물질 우주의 견고함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드는 별 조각의 마력이 일대를 점한다.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전쟁의 기수가 탑승한 말이었다.
말의 안면이 뒤틀리며 무슨 종유석 같은 것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격렬한 통증을 느끼며 전신을 떠는 말.
전쟁의 기수는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에서 뛰어내려 나와 살짝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벌린다?
설마 겨우 이 정도로 후퇴?
당연히 아니었다.
찰나의 공방, 내가 전쟁의 기수를 파악했듯, 상대도 날 파악한 것.
상대는 두 가지 사실을 이해했다.
첫째, 별 조각의 마력은 방어할 수 없다.
둘째, 별 조각을 소환한 인간(=나)의 신체 능력은 그가 보기엔 그리 대단치 않다.
적을 이해했다면, 다음은 전략의 수정.
상대는 나와 굳이 붙어서 싸워줄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다.
시간으로 치면 1초 미만, 창이 열 번 이상 허공을 격하며 충격파를 만들어 낸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직격은 피했지만, 순식간에 입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한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일대가 초토화된 상황.
— 쿠궁!
멸망해 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싸움을 벌였으니, 자동차들이 무슨 공깃돌처럼 튕겨 나가 주변 건물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흐으…!”
어떻게든 적에게 접근해 별 조각의 범위에 넣으려 하는데, 쉽지 않았다.
전쟁의 기수가 대놓고 거리를 벌리며 충격파로만 날 제압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혼자서 저 괴물을 이기는 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누군가 저 괴물을 잠깐이라도 멈춰주지 않는다면, 애초에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라앉아라…!가라앉아라! 모든 것은 지하로 떨어지리라!”
청아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저주가 울려 퍼지니, 단박에 일대의 지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뒤늦게 합류한 엘레나가 불길한 상상을 거침없이 사용한 것.
— 우르릉!
거침없이 무너지는 지반.
덕분에 서울 지하에 지하철 때문에 비어있는 공간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 크르륵!
전쟁의 기수 역시 대응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떨어졌는데, 아무래도 말없이는 하늘을 날 수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여기까지 예상한 건 아니지만, 별 조각 때문에 말의 안면이 뒤틀린 건 상대에게 꽤 치명타였네.
지금이라면…!
“이얍!”
거침없이 지하로 뛰어든다.
“뭐해! 이 멍청아 – !”
엘레나는 내가 뛰어들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멍청이 소리가 바로 나오는 걸 보니, 불길한 상상을 제법 강하게 쓴 것 같았다.
하지만, 내 판단에는 지금이 기회야.
균형을 잃고 추락한 전쟁의 기수가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지금이 말이지!
상대의 터무니없는 괴력을 고려할 때, 그는 건물 아래에 깔려도 3초면 탈출할 수 있다.
3초 정도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 파앗!
콘크리트 더미를 뚫고 붉은 기수의 거대한 머리가 튀어나오는 순간 – 나는주저 없이 기수의 아가리에 별 조각을 우겨넣었다.
“뒤져라!”
오래전부터 무수히 확인한 사실.
위대한 자를 제외하면, 우주에 별 조각의 힘을 맨몸으로 견뎌낼 수 있는 존재는 지극히 드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 파지직!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4일 차
현재 위치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처, 천사님! 괜찮겠습니까?”
“걱정하지 말라.”
“무, 묵시록의 네 기사들은 사람이 상대하기 어, 어려운 -”
“지금, 전쟁의 기수가 사라졌다.”
“예?”
자신을 한국지부장이라고 밝혔던 중년 남성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신이 내려보낸 천사인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내 권속들이 전쟁의 기수를 처단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 대단하군요.”
“설마 의심했는가?”
“그, 그럴리 있겠습니까!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습니다.”
의심한 적 없는 것 맞아?
아까 진철 형이 갈 때 엄청나게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던데.
그럴 수 있지.
사실 나도 못 믿었어.
이야…!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진짜 다들 강해진 것 같다.
— 펄럭!
진철 형과 엘레나가 전쟁의 기수를 막는 사이, 나는 본부에서 두 사람이 얻은 종이 뭉치와 파일을 보고 있었다.
“죽음의 기수라…”
죽음의 기수.
호텔 프로스페리티의 참가자로 추정.
참가자의 가장 비참한 말로 중 하나.
하나의 세상에서 누군가는 천상도를, 누군가는 지옥도를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어떤 이에겐 지옥의 구현일 수 있다.
“…”
호텔 프로스페리티의 참가자.
비참한 말로, 지옥의 구현.
섬뜩한 키워드를 보고 있으니 심히 불안해졌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바로 그 순간.
— 살려줘…
누군가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다.
— 제발, 제발…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살면서 이보다 더 간곡한 목소리를 들은 적 있나 싶을 정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니, 푸르스름한 말을 탄 기수가 있었다.
— 우르릉!
직후, 이변을 느낀 엘레나가 불러낸 벼락이 창백한 기수를 향해 내리쳤다.
엘레나의 불길한 상상은 주변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작금의 세상은 누가 봐도 지옥도다.
덕분에 불길한 상상의 위력은 평소보다 훨씬 막강한 상태.
“…”
이상하게도 상대는 벼락을 피했다.
아니다.
번개의 속력이 광속의 30%임을 고려하면, 피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애초에 맞지 않는 위치에 있었다.
“처, 천사님! 저 괴물은 -”
“너희가 쓸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준비해라. 여기서 옥쇄할 각오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직감.
이 싸움, 우리에게는 첫 번째지만…
상대에게는 영겁 무한의 순간이다.
그는 시작과 끝이 닫혀 있는 자였다.
궁극을 추구하다가 실패한 자였으며, 그 누구도 구해줄 수 없는 영역에 떨어진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