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66)
괴담 호텔 탈출기 766화(765/794)
766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36)
– 김주호
— 둥!
북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으읏…!”
아침부터 머리가 아팠다.
오늘만 아픈 건 아니고, 최근에는 항상 깨어날 때마다 아팠던 것 같다.
… 간밤에 꽤 긴 꿈을 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영화관에 앉아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상한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슬슬 출근할 시간이다.
나는 김주호, 인류의 수호자이자 기관의 요원이다.
*
“김주호 요원.”
“…”
“저기요?”
“아, 죄송합니다.”
앞에 앉아있던 직원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임무를 브리핑 중인데, 내가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내게도 이유는 있었다.
“…”
“요원님, 무슨 생각 중이신가요?”
“… 지금 이 회의가 처음이 아닌 것 같아서요.”
“풋! 꿈이라도 꾸신 모양이죠?”
“…”
“집중하세요.”
“알겠습니다.”
테이블 위의 서류에는 끔찍한 괴물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개체명 : 기만의 천사
능력 : 초고속 이동, 괴력, 열선 발사, 카리스마, 육체 강탈, 빙의 – …」
“능력의 수가 참 많군요.”
“숫자는 많지만, 능력의 근원은 딱 두 개의 보물입니다.”
주의 사항 항목도 제법 길었다.
강력한 수하가 있다거나, 선호하는 전투 방식이 어떤 식이라든가 하는 내용들.
이런 항목 정리가 으레 그렇듯, 가장 중요한 건 1번이었다.
주의 사항
1번 : 개체명답게 기만에 능한 자이니, 대화를 받아주지 말라.
“출발하겠습니다.”
출발 직전, 가면을 쓴 직원이 경고하듯 말했다.
“상대와 대화하지 마세요. 절대로.”
“알겠습니다.”
문득, 이 경고를 꽤 여러 번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언제나처럼 맑고 푸른 하늘.
아무 일 없다는 듯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그들 사이를 걸어 현장에 도착하니, 심각한 충돌의 정황이 눈에 띄었다.
직원들이 일대 교통을 통제하고 있긴 했지만, 이미 제법 많은 희생자가 나온 듯했다.
적은 HA 빌딩 일대를 점거 중인 상황.
기만의 천사는 진짜 천사라도 되는 것처럼 전신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일대의 직원들은 제법 공포에 질린 듯했지만, 나는 요원이다.
괴물을 두려워해 물러선다면 요원의 자격이 없는 법.
“이얍!”
칠흑 같은 빛을 뿜어내는 대낫을 뽑아 든 채 달려들었다.
직후에 이어진 다섯 번의 공방.
대기를 불태우는 열선을 우측으로 움직여 피했고, 지반을 뒤흔드는 충격파는 타이밍에 맞춰 위로 점프하여 피해냈다.
두 번을 연이어 받아내니 내게 돌아온 공격 기회.
내 가장 큰 권능, 절명의 시선을 발현해 상대를 주시한다.
이상하게도 절명의 시선이 통하지 않았다.
필멸자라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권능인데 말이다.
“크윽!”
허무한 죽음에 비탄하며 눈을 감는 순간.
이 순간을 이미 여러 번 겪었음을 깨달았다.
또한, 다시 깨어날 때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
— 둥!
북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
“주의 사항 32번을 참고하세요. 상대에겐 절명의 시선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위대한 자도 아니고?”
“상대는 무수히 많은 영혼을 중첩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절명의 시선을 다른 영혼을 희생시켜 막아내는 겁니다.”
“그렇게 사악한 존재가 있다니!”
*
— 둥!
북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
“주의 사항 42번을 참고하세요. 상대는 제법 강한 권속이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괴력의 소유자인데, 힘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절명의 시선으로 대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권속은 절명의 시선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
“상대에겐 육체 강탈 능력이 있습니다.”
“상대에겐 빙의 능력이 있습니다.”
“상대에겐 일대의 영혼을 집어삼키는 권능이 있습니다.”
“상대에겐…”
상대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기관의 정보력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다.
기관은 상대가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는 물론이고, 어떤 전투 방식을 선호하는지까지 꿰뚫고 있었다.
*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충돌.
사전에 철저히 숙지한 주의 사항에 맞춰서 행동했다.
싸움이 시작되면 열선부터 발사한다고 하니, 수평 이동을 통해 열선을 피해냈다.
다음 수는 정체불명의 인력을 발현해 균형을 무너트린다고 한다.
타이밍 맞춰서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인력의 궤도를 벗어났다.
두 번의 공세를 받아내면 내 쪽에 기회가 온다고 한다.
즉각 대낫을 휘둘러 상대의 몸통을 베어내니, 일격을 허용한 천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 내 행동을 다 읽는군.”
대화는 받지 않았다.
기관이 말하길, 상대의 가장 큰 무기는 새하얀 불꽃도 칠흑 같은 책도 아니라고 한다.
세 치 혀가 가장 위험한 자이니, 단 한마디도 나누지 말라고 하였다.
“너는 대체 뭐지?”
그래서, 이 말도 무시했다.
“네 운명이 보인다. 새끼줄처럼 꼬이고 꼬여서 풀어낼 수 없는 실타래가 보인다.”
“하앗!”
“… 너는 감옥에 갇혀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나?”
헛소리 따위에 반응할 힘이 아깝구나!
총 여섯 번의 공방이 이어졌을 때, 주의 사항 42번에 따라 즉각 뒤편을 바라보았다.
과연, 기관의 예측대로 사람인지 고릴라인지 의심스러운 거한이 내 뒤를 점한 상태.
몰랐다면 크게 당했겠지만, 알면서 당할 이유는 없지.
필멸의 의지를 담아낸 절명의 시선이 상대를 향한다.
거한은 곧, 눈을 부릅뜬 채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겐 이 상황이 처음이 아니구나.”
무슨 말이지?
그 순간.
— 콰직!
천사의 손이 내 심장을 꿰뚫었다.
분명 직전까지 나와 10m 이상 거리가 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내 뒤에 나타난 것이다.
내 패배, 천사의 승리가 확정된 상황.
기이하게도 천사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 저항 없이 당하는 걸 보니, 날개 문신은 이번에 처음 쓴 모양이네.”
*
— 둥!
…
“주의 사항 58번을 참고하세요. 상대는 순간이동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 번 쓸 수 있는 능력은 아닌 것 같고, 한 번 정도 당신의 뒤에 갑자기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덩치 큰 권속이 쓰러진 직후를 주의하세요.”
*
뒤에서 기습하던 거한을 절명시킨 직후, 주의 사항 58번에 따라 즉각 뒤로 돌아섰다.
과연, 기관의 예측대로 상대는 전조 없이 내 뒤에 나타난 상태!
“하!”
주저 없이 대낫을 휘둘러 상대의 몸통을 베어내니, 다시금 천사의 피가 대지를 적셨다.
여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상대.
적이 자세를 바로잡기 전에 대낫으로 목을 베어내려는 순간!
— 투쾅!
어디선가 날아온 황금의 저울이 날 허공에 날려버렸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의 공격이었다.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금빛 성광을 두른 절세미인을 보았다.
*
— 둥!
…
“주의 사항 83번을 참고하세요. 상대에겐 거한 말고도 또 한 명의 동료가 있습니다. 황금색 저울을 소환해 터무니없는 물리력을 행사하는 괴물인데, 힘을 쓰기 시작하면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상대합니까?”
“간단합니다. 외견상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이라 눈에 띄고, 저울을 소환하기 전엔 절명의 시선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위치를 알려드릴 테니, 천사와 충돌하기 전에 이 사람부터 처치하세요.”
*
기관이 말한 위치로 가서 여인부터 처치하려는 때, 일이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았다.
“…”
브리핑대로라면, 천사는 건물 내에 있어야 하고, 금발 여인은 바깥에 나와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각개격파가 가능하다는 게 기관의 예측이었지.
기관의 예측이 틀렸다.
천사가 미리 건물 밖으로 나와 금발 여인의 옆에 있었다.
마치, 상대 역시 기관처럼 운명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았다.
…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천사가 내 목을 틀어쥔 채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네 인지는 비참할 정도로 뒤틀려 있다.”
“…”
“기관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맑고 푸른 하늘 같은 건 진작에 사라졌고, 평화를 누리는 시민 따위는 흔적도 없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상대의 사이엔 ‘이해 불능’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해자가 있는 것 같았다.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너는몸도 영혼도 악의로 가득한 존재에게 붙들려 있어. 너처럼 비참한 운명에 떨어진 참가자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
— 둥!
북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으읏…!”
아침부터 머리가 아팠다.
오늘만 아픈 건 아니고, 최근에는 항상 깨어날 때마다 아팠던 것 같다.
… 문득, 간밤에 꽤 긴 꿈을 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영화관에 앉아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상한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슬슬 출근할 시간이다.
나는 김주호, 인류의 수호자이자 기관의 요원 –
지지직!
…
나는 축복〿〿의 참가자.
아주 오래전의 기억.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도약과 추락의 경계에서 도약이 아닌, 추락을 택하고 말았다.
— 지지직!
슬슬 출근할 시간이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4일 차
현재 위치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어라? 가인 씨?”
“…”
“본부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아, 절 데리고 날아가시려고 -”
“엘레나, 내 뒤에 있으세요.”
“예?”
“곧 엘레나부터 죽이려고 적이 올 겁니다.”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눈이 동그랗게 커진 엘레나.
이 모습은 제법 그림 같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은 듯하다.
“…”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 같다.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쉽지 않은 영겁의 수레바퀴.
통찰 덕에 대충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듯 말 듯 했지만…
안다고 해서 대응법이 바로 나오는 건 아니었다.
어렴풋한 직감 혹은 통찰.
세상에는 상성이라는 게 있지.
조언에 따르면, 상대에겐 엘레나와 진철 형을 0.1초 만에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 힘은 신성한 태양으로 손쉽게 방어할 수 있다고 하니,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전투에 있어서는 내가 상성 상 상대에게 크게 유리하다.
상대의 가장 강력한 권능을 손쉽게 무력화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교착상태를 끝내기 위해선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가인 씨?”
“힘으로는 꺾을 수 없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