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67)
괴담 호텔 탈출기 767화(766/794)
767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37)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4일 차
현재 위치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가인 씨?”
“힘으로는 꺾을 수 없단 말이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레나.
안타깝지만, 하나하나 설명해 줄 여유는 없었다.
길어야 1분 내로 상대가 도착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머나먼 하늘 너머에서 나타난 상대, 죽음의 기수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를 인지한 순간부터, 통찰은 내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환영을 동시에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치, 내겐 단 한 번의 순간이 상대에겐 무수히 여러 번 반복되는 듯한 감각.
죽음의 기수는 대체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 걸까?
“짧은 구간을 수없이 회귀하는 건가?”
“네?”
짧은 구간을 무수히 회귀하는 의문스러운 능력.
이렇게 생각하면 통찰이 보여주는 혼란스러운 환영들은 사라진 시간선이겠지만…
조금 다른 능력 같았다.
언뜻 보기엔 회귀와 굉장히 유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힘.
비유하자면, 예지와 통찰의 관계와 유사하다.
…
여기까지가 나와 통찰의 한계였다.
상대의 힘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여기서 적을 막고 있을 테니, 본부로 가세요.”
“제가 도울 필요 없어요?”
상대를 죽여선 안 된다.
회귀인지, 유사한 다른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이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엘레나가 전투에 참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자의로 중단할 수 없는 정의는 물론이고, 위력을 통제할 수 없는 불길한 상상 역시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에 적합한 힘이 아니었다.
“미로를 데려오세요. 근처에 오면 은솔 누나 소환하라고 하고. 당장 출발!”
통찰이 보여준 무수한 환영 속에 숨겨진 중대한 정보.
적의 인지능력은 완전히 뒤틀려 있다.
— 나오너라!
*
— 스아아아…!
상대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나타났다.
그는 푸르스름한 기운을 소용돌이처럼 두른 존재였는데, 말이라기보다는 구름에 가까운 무언가를 탑승한 상태였다.
“…”
날 바라보며 미묘하게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는 상대.
통찰이 보여준 환영에 따르면, 상대는 ‘엘레나’부터 각개격파 하기 위해 이곳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황도 찰나.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죽음의 기수는 섬뜩할 정도로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하앗!”
새하얗게 타오르는 열선이 대기를 불사른다.
분명, 죽음의 기수의 이동 속도로는 쉬이 회피할 수 없는 공격.
— 파지직!
상대는 내가 열선을 발사하기도 전에 이미 궤적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마치, 내가 어떤 식으로 공격할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모습.
이후의 충돌 역시 다르지 않았다.
대지를 뒤흔드는 진동을 만들어 냈을 때도, 균형을 무너트리는 인력을 발생시켰을 때도, 기습적으로 화신의 서를 사용해 육체 강탈을 시도했을 때도.
상대는 매번 ‘적절한 사전 대응’을 통해 내 공세를 받아내거나, 큰 기술을 쓸 틈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전투 중 딱 한 번만 쓸 수 있는 순간이동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번쩍! 하며 상대의 후방을 점했을 때, 섬뜩하게 빛나는 칠흑의 대낫이 내 목을 노려왔기 때문이다.
“…!”
여기까지 경험해 봤다고?
— 서걱!
밤하늘의 어둠을 담아낸 듯한 대낫이 내 상반신을 훑고 지나갔을 때, 화끈한 통증을 느끼며 생각했다.
상대가 아직 알지 못하는 수가 뭐가 있을까?
순간이동을 이용한 공격까지 파악당한 이상, 내가 즐겨 사용하는 수법은 전부 파악당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아직 간파당하지 않았을 기술.
평소에 전투 중에는 내가 잘 쓰지 않는 마법.
화신의 서, 두 번째 문장.
“
… 타자의 것이 네 것일 수 있다면, 너 또한 타자일 수 있지 않겠는가
.
”
유일성의 초월이 이루어지자 상대가 처음으로 ‘움찔!’했다.
다행히도 두 번째 문장에 대한 정보는 없었던 것이다.
죽음의 기수는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며 내 쪽을 주시했지만…
— 화르르…!
유일성의 초월이란 곧, 또 다른 나의 현현.
새하얗게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은 존재가 기수의 등 뒤에 나타난다.
상대가 이를 깨달았을 때, 이미 승부는 끝나 있었다.
— 서걱!
“크으윽!”
단박에 떨어지는 오른팔과 그 손에 잡혀있던 칠흑의 낫.
숨 한번 쉬기도 전에 외팔이가 된 죽음의 기수가 분통한 표정을 지었다.
곧,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눈을 감는 상대.
… 그러나 죽음은 상대의 바람일 뿐이다.
격렬한 충돌 속에서 명확히 깨달은 사실.
싸움이 반복될수록, 상대는 내가 쓰는 모든 수를 읽게 된다.
반면, 나는 그렇게까지 상대의 수를 훤히 들여다볼 수 없었다.
통찰이 제공하는 정보는 어렴풋한 직감이지, 상대가 정확히 어떤 공격을 어느 시점에 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끝내야 한다.
“이번에는 죽음으로 도망갈 수 없다.”
그래서, 적을 죽이는 대신 결박했다.
“… 무슨 짓이지?”
전투 개시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여는 상대.
그는 이미 외팔이에, 입가에는 피가 가득하고, 무기조차 잃은 상태였지만,눈빛에는 여전히 흉측한 마력이 가득했다.
섬뜩한 마력이 내 쪽을 향하는 순간, 주저 없이 신성한 태양을 내세워 가로막았다.
— 화르르!
직후, 촛불처럼 사그라드는 영혼 하나.
“어허! 가만히 있으라고. 죽음을 부르는 눈빛인가? 그 힘, 내게 통하지 않 -”
“이런 사악한 놈! 대체 얼마나 많은 가련한 영혼을 모은 것이냐!”
한번 입이 열리니, 상대는 생각보다 감정적이었다.
“… 기다려라. 지금의 너와 대화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뒤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엘레나가 미로를 데려온 것이다.
—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인기척.
미로가 은솔 누나를 소환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신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손짓했다.
죽음의 기수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즉사의 마력.
나는 신성한 태양에 담긴 영혼을 통해 방어할 수 있지만, 동료들은 속수무책일 테니 말이다.
“대체 무슨 짓을!”
“가만히 있으라고!”
— 라아아…!
청아한 피리 소리가 일대를 채우자 상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허나,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은 곧 경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불가해한 힘에 의해 끔찍하게 뒤틀린 인지능력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
“…”
3분 정도 흘렀을 때, 상대에게는 더 이상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불필요한 자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조심히 말해보자.
“정신 차리셨습니까?”
“…”
“이름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김주호.”
순순히 돌아오는 답변.
이름을 듣고 말고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상대에게 더 이상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당신은 조금 전까지 사악한 힘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세상을 정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죠. 지금 하늘의 색이 보이십니까? 밤하늘은 -”
“검고 탁하구나. 이미 모든 게 무너진 세상인가…”
정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관리국에 당신에 대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호텔 프로스페리티의 참가자라고 하더군요.”
“프로스페리티? 아하, 첫 번째를 말하는군.”
“첫 번째?”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내용.
호텔 프로스페리티가 첫 번째라면, 두 번째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설마, 죽음과 부활을 겪으신 겁니까?”
남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운 좋게도, 내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
“…”
“처음 한 번은 실패했다. 별수 없이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지. 모든 게 끝인 줄 알았는데, 다음 기회가 있었어.”
“…”
“지옥에 떨어진 시점에서 운이 없다고 봐야겠지만, 운이 없는 놈 중에선 운이 좋았던 모양이야.”
호텔 프로스페리티에서 겪은 한 번의 실패.
참가자 대부분은 거기서 끝이었겠지만, 김주호에겐 다음 기회가 주어졌다.
“흐으… 그래봐야 두 번째에서 또 실패해서 이 꼴이 되고 말았지.”
“실패하면 다 당신처럼 되는 겁니까?”
“… 나는 소원을 포기했다. 그 결과물이 이 꼴이다.”
소원의 포기.
듣고 있던 엘레나가 반응했다.
“무슨 말인가요?”
김주호는 엘레나의 질문에도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정황상, 그는 우리가 참가자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다.
“… 이 방을 이겨내기 위해선 인간을 믿어야 해.”
“예?”
“인간을, 인간의 가능성을 믿어야 해. 사람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해.”
“…”
“그래야 여명의 아들을 당해낼 수 있어.”
몇 가지 사실을 이해했다.
김주호는 우리 이전에 302호에 도전한 참가자인 것 같다.
그 역시 지금의 우리처럼 여명의 아들을 상대했지만, 패배한 것.
여명의 아들을 이겨내려면 인간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이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정확히 무슨 말인지 -”
“미안. 이건 말해줄 수 없는 것 같네. 이해하지? 호텔이잖아.”
“그렇군요.”
“…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겠지. 상대를 절대 쉽게 생각하지 마. 너희가 알고 있는 사실, 의심하지 않는 정보 – 그중 몇 가지는 속임수다.”
“참고하겠습니다.”
그때쯤, 상대의 몸이 마치 모래처럼 서서히 흐르기 시작했다.
“아아… 축하한다. 너희는 곧 이 방을 나가게 될 거다.”
탈출이 다가오고 있다.
물론, ‘우리의 탈출’일 뿐, 김주호의 탈출은 아니리라.
“당신은…”
“질문이 더 있어?”
“소원을 포기했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하하! 간단해. 인간의 가능성을 믿어야 하는데, 믿지 못했어. 사람이 쌓아 올린 탑을, 우리가 세운 미덕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졌네.”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
“왜 믿지 못했습니까?”
그때, 남자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주… 깊은 감정을 느꼈다.
수백 년, 수천 년이 흘러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듯한 격렬한 원한 말이다.
“첫 번째 실패.”
“네?”
“나는, 첫 번째 실패를 겪으며 더 이상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예?”
“사악한 동료. 천사 같은 미모 속에 악마보다 더한 악독함을 품은 마녀! 그녀가 모두의 패망을 이끌었다. 그래서 -”
… 이, 이거 살짝 익숙한 스토리 아니야?
불길한 직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앞의 이야기 중, 더없이 의미심장한 내용 일부가 연이어 떠오른 것.
김주호는 최초의 소원과 관련한 방에서 여명의 아들과 맞섰고, 실패했다.
최초의 소원이 여명의 아들과 얽혀있다는 말은, 그가 김상현과 같은 세상을 살았다는 뜻.
… 어쩌면, 김상현과 ‘함께’ 302호를 진행할 운명이었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이 자가 말하는 사악한 동료란 –
“가인아! 이제 다 끝났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들려오는 경쾌한 목소리.
그 순간, 김주호가 섬뜩할 정도로 눈을 부릅떴다!
“너!”
모래처럼 흩어지는 몸, 그 와중에도 끔찍할 정도의 살의를 드러내는 상대!
김주호가 극도의 분노를 드러내며 외쳤다.
“마녀의 동료! 나를 속였구나!”
“속인 적 없습니다!”
아니, 진짜 속인 거 아니라고!
너랑 미로의 관계는 나도 지금 막 알았는데 속이긴 뭘 속여?
모두가 당황하는 혼란의 순간.
김주호는 울분을 토하며 미로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려 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안식의 피리에 의해 악몽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호텔은 이미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던 것이다.
— 스르르!
가루처럼 흘러내리는 몸.
원독어린 눈으로 미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남자.
그리고…
“뭐, 뭐야? 얘 왜이래?”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당황하는 소녀.
소멸 직전, 김주호가 저주 섞인 원념을 토해냈다.
“… 다시 만나게 될 거다. 3층 어딘가에 네 방이 있을 테니!”
— 쿠궁!
「당신은 탈출했습니다!」
이것이, 302호 두 번째 시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새하얀 빛으로 가득한 복도.
깨어났을 때, 내 앞에는 마침 아리가 있었다.
“이야~! 어떻게 잘 나온 모양이네. 다들 수고 -”
“아리야.”
“음? 할 말 있 -”
“심해 호텔, 진짜 이름은 따로 있었지?”
‘심해’라는 단어는 위치일 뿐, 호텔 이름이 심해 호텔일 리가 없지.
“뭐였어?”
아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호텔 프로스페리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