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68)
괴담 호텔 탈출기 768화(767/794)
768화 – 두 번째 탈출, 회의 (1)
– 김아리
302호의 두 번째 시도가 끝났다.
이번에도 해결이 아닌 탈출에 불과했지만, 동료들의 분위기는 제법 밝아진 상황.
더 많은 정보를 모은 덕에 해결을 향한 길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물론,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분위기야말로 가장 위험하긴 했어.
— 타악!
은솔이가 화이트보드를 가볍게 치며 시선을 모았다.
“두 번째 시도에서 벌어진 일을 간단히 정리해 볼게. 우선 상현 씨 쪽 진행부터. 다들 이상한 내용 있으면 지적하세요.”
“알겠습니다.”
“상현 씨는 시작 지점에서 벗어나자마자 종말 알림이 떴다고 해. 승엽이 쪽 진행에 파열이 생겼기 때문이지. 다행히도, 상현 씨는 데이빗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어.”
데이빗은 여명의 아들을 불러오는 데 일조한 최초의 여섯 멤버 중 하나다.
지금은 여명의 아들을 배신한 요원이기도 하다.
정황상, 여명의 아들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순수파’의 리더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다음 설명은 상현이가 이어받았다.
“데이빗의 위치를 알아내고, 접촉에 성공한 것까진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다지 많은 정보를 얻어내진 못했습니다. 종말 직전이었던지라.”
상현이와 함께했던 묵성이가 거들었다.
“상현이가 질문 하나만 간신히 했다. 왜 여명의 아들을 배신했냐는 거였지?”
데이빗이 여명의 아들을 배신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여명의 아들이 보여준 비전 자체를 거부하진 않았습니다.”
데이빗은 죄수가 창조할 낙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다.
그랬다면, 애초부터 여명의 아들을 섬기지 않았겠지.
“딱히 인류의 자립 가능성을 믿었던 것도 아닙니다.”
상현이처럼 인간이 스스로 일어서길 바란 것도 아니다.
“… 그는, 태초의 문명이 몰락한 원인을 알아냈다면서 희한한 노트를 꺼내더군요.”
노트?
“제목이 없는 낡은 노트였는데, 전체적으로 검었습니다. 크기는 대충 이 정도?”
외형 묘사를 듣고 있으니,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한 번쯤 본 적 있는 노트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였지?
“다음은요?”
“엘레나 양, 아쉽지만 이게 끝입니다.”
“예?”
역시 상현이와 함께 진행한 은솔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엘레나에게 답했다.
“뜬금없이 황당한 괴물이 튀어나왔거든. 순식간에 우리 세 사람 다 죽었어.”
“터무니없이 강한 괴물이었습니다. 그냥 ‘번쩍’하니까 셋 다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았지요.”
“덕분이라고 하긴 뭐한데, 아플 틈도 없었어. 어? 하니까 이미 시체였지.”
“으… 언니, 고생하셨네요.”
“그러고 보니 상현 씨, 괴물이 이상한 소리 하지 않았어요?”
“노트를 가리키며 누군가의 일기 같은 것이라고 했지요. 엿보지 말라던가? 아, 우리는 굳이 내용을 볼 필요 없다고도 했습니다.”
“무슨 소리일까요?”
“글쎄, 은솔 양. 괴물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 있나 싶군요.”
“하긴, 그건 그렇네요.”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노트에 관한 이야기.
우리끼리 더 말해봐야 의미 없으니, 다음 회차에서 알아내든 말든 할 생각인 것 같다.
다만, 나는 어렴풋한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았다.
“이쯤 하고 승엽이 이야기로 넘어가자. 우리 쪽은 이게 다야.”
“어, 저는 요번엔 태초의 인간을 써서 최대한 예전처럼 행동했어요. 그리고, 송이 누나랑 아리 누나가 열심히 괴롭혔죠.”
“…”
“괴, 괴롭혔다니! 말이 심하네.”
“진짜, 송이 누나 학창 생활이 어땠는지 궁금할 정도.”
“대의를 위해서였어. 그치 아리야?”
“…”
“아리야?”
아, 노트에 대해 생각하느라 반응이 늦었네.
“음, 맞아. 저주의 방 진행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승엽이가 피식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랬더니 전개가 좀 바뀌었어요. 소연이가 절 믿지 않게 되면서 본인이 준비한 탈출 계획을 시도했거든요.”
은솔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첫 시도 때는 승엽이 네 계획대로 했었지? 그게 문제였나 보네.”
“그렇죠.”
“소연이 계획은 뭐였는데?”
“학교를 불태우는 거였어요.”
“… 새삼스럽지만, 그 애도 보통 여자애는 아니네.”
“어쨌든, 학교를 불태우면서 예전 기억을 거의 떠올리긴 했는데…”
“했는데?”
“마지막 구간이 이상했죠. 학교 밖으로 나가기 직전, 갑자기 창문이 스크린으로 바뀌었거든요.”
이쯤에서 가인이가 끼어들었다.
“아마, 그 구간부터 여명의 아들이 개입했을 거야.”
“역시 그렇겠죠?”
“소연이, 그 여자애는 황혼의 깃털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깃털을 도구 삼아 영향을 끼쳤겠지.”
황혼의 깃털을 통한 죄수의 강제 개입.
이로 인해 승엽이 쪽에서 판이 터져버렸다.
영화관이 파괴되며 그곳에 갇혀있던 혼돈의 악마들이 세상에 풀려났기 때문이다.
가인이가 테이블을 툭툭 치며 말했다.
“어떻게 진행했는지는 다들 이해했을 테니, 어떻게 바로잡을지 생각해 봅시다.”
은솔이가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승엽이 쪽에서 사고가 났는데, 사고가 난 이유가 죄수의 강제 개입이네. 이걸 어떻게 막지?”
“죄수가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이 있을 겁니다.
“조건이라면, 황혼의 깃털 아니야? 깃털은 시작 시점에서 이미 소연이에게 있잖아.”
“깃털의 존재가 1번 조건이고, 2번 조건도 필요하겠죠. 생각해 보세요. 깃털의 존재만으로 여명의 아들이 개입할 수 있다면, 그는 진즉 멋진 신세계를 무너트렸을 겁니다.”
죄수가 강제 개입하기 위한 조건.
1번은 당연히 깃털인데,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게 가인이의 생각이다.
깃털만으로 충분했다면, 여명의 아들은 진작 멋진 신세계를 무너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또, 가인이가 떠올린 2번 조건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아.
“2번 조건은 아마 학교의 물리적인 파괴일 겁니다.”
“아?”
“돌이켜보면, 첫 번째 시도에서 아리는 현실의 중학교를 파괴해서 멋진 신세계에 침입했죠. 나도 마찬가지고.”
“오, 무슨 말인지 알겠어. 현실에서 학교를 파괴하면 멋진 신세계에 접촉할 수 있듯이, 멋진 신세계 내에서 학교를 파괴하면 현실과 연결된다?”
“그렇죠. 일단 연결이 되면, 여명의 아들은 그때부터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여기까지 요약하면, 죄수의 강제 개입을 방지하는 방법도 윤곽이 잡힌다.
“다음 회차에선 학교의 섣부른 파괴는 자제해야겠네. 승엽아, 이해했지?”
“어… 소연이가 학교를 불태우려 하면 어떡하죠?”
“다른 방향으로 유도해.”
“본래는 소연이가 학교를 태웠을 것 같은데 -”
“이제 그 구간의 기억은 회복했다며? 다시 반복할 필요 없을 것 같네.”
“그, 그런가?”
승엽이가 호텔에 오기 전, 실제 역사에선 소연이가 학교를 태웠다고 한다.
요번에는 해당 구간은 굳이 재현할 필요 없다는 게 가인이의 생각.
이미 해당 구간의 기억을 회복했으니, 굳이 죄수가 개입할 여지를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
“제 소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승엽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은 채 중얼거렸다.
“가인 형의 설명에 따르면 -”
“내가 설명했다고?”
“아, 미로가 소환한 가인 형의 설명이요.”
“이해했어.”
“소연이에게 큰 비밀이 있다네요. 그걸 알아내지 못해서 계속 마지막 단계에서 막히고 있다고…”
이쯤에서 미로가 자랑하듯 끼어들었다.
“비밀도 많네! 어쨌든, 내가 뭔가 알아내긴 했어.”
“야, 같이 알아냈잖아.”
“니가 뭘 했는데?”
이 와중에 미로와 승엽이가 티격태격하는 꼴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둘 다 조용히 해. 뭘 알아냈는데?”
“승엽이 학교 선생님을 만났는데, 소연이에 대해선 전혀 몰랐어.”
미로와 승엽이가 알아낸 사실.
승엽이를 가르친 체육 교사의 말에 따르면, 유소연이라는 학생은 듣도보도 못했다는 이야기.
“흐음… 일반적인 학생들과 근원 자체가 다른 건가?”
“아마도요.”
“그 부분을 다음 회차에서 알아내야겠네. 깃털과의 관계도 알아내야 해. 참, 미로 말마따나 그 여자애는 비밀도 많아.”
이런 느낌으로 회의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
1시간 정도 흘렀을 때, 은솔이가 화이트보드를 ‘탁’ 치며 적었다.
—302호 해결 3대 조건
1. 여명의 아들 강림 저지
2. 여명의 아들이 퍼트리는 뒤틀림 제거
3. 멋진 신세계 파괴 및 탈출
“모두 명심하고, 이제 좀 쉬자. 밤에 회의 한 번 더 할 테니까, 그때까지 각자 쉬면서 고민해 봐요. 이만 해산!”
*
오후 다섯 시경.
2층 설원에 누워 하늘을 보던 중,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
— 부스럭!
바로 나타나지 않고 꼼지락거리는 움직임.
처음이라면 속수무책으로 당했겠지만, 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할 내가 아니야.
— 툭!
벼락같이 옆으로 구르니 과연, 새하얀 눈덩이가 내가 누워있던 장소로 날아왔다.
“이얍!”
다음은 부등변다면체 소환.
“야, 장난 좀 쳤다고 유산은 -”
건방진 소리는 무시하고, 주저 없이 주변 공간을 살짝 뒤틀었다.
— 풀썩!
균형을 잃고 바닥을 나뒹군 가인이가 황당하다는 듯 외쳤다.
“으엇! 이건 또 뭐야?”
“최근, 부등변다면체를 훈련하며 얻은 신기술이랄까.”
“아니, 신기술을 무슨 동료에게 쓰는 거야?”
“평소에 연습해야 실전에서도 쓸 수 있지.”
“바, 방금 내 다리 꺾일뻔했는데? 조금 늦게 반응했으면 부러졌는데?”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가벼운 장난과 농담이 오간 후, 가인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질문 하나 있어서 왔어.”
“재미있네. 나도 너한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는데.”
“나 먼저 말할게.”
“그래.”
가인이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을 꺼냈다.
“김주호라는 사람 알아?”
“…”
“죽음의 기수는?”
“묵시록의 4기사, 그 이야기는 아까 진철이에게 살짝 들었어. 종말 이후에 나타난 강력한 혼돈체고, 그들을 처치하니까 탈출이 인정되었다고.”
“죽음의 기수는 참가자였어. 그는 본인의 이름을 김주호라고 했지.”
“…”
“호텔 프로스페리티의 참가자라고 하던데.”
아는 게 있으면 말해보라는 분위기.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제와서 심해 호텔의 이야기를 딱히 숨길 생각은 없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솔직히, 꽤 많은 기억을 잊었어. 알고 있겠지만, 심해 호텔의 일은 내게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거든.”
“그렇겠네. 네게는 100년 이상 지난 일인가?”
“미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은 또렷하게 기억하는 편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좀 흐릿해. 김주호? 이젠 얼굴도 정확히 기억 안 나.”
“으음…”
가인이는 차근차근 본인이 김주호에 대해 알아낸 정보 몇 가지를 설명했다.
그는 미로와 상현이처럼 두 번의 호텔을 경험한 참가자이며, 때문에 여러가지 유산 혹은 축복을 가지고 있었단다.
“신기한 능력이 여럿이었어. 눈만 마주쳐도 사람을 죽이는 능력이 있었고, 초인적인 신체 능력과 다채로운 공격수단을 겸비했지. 스치기만 해도 끔찍한 저주가 깃드는 낫도 있었어.”
눈만 마주쳐도 사람을 죽이는 힘.
초인적인 신체 능력.
저주가 깃든 낫.
가인이의 의도가 내 기억을 자극하는 것이었다면, 성공한 것 같다.
설명을 듣다 보니 예전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주가 깃든 낫, 그건 알겠네. 아마 티폰의 낫이라는 이름이었을 거야.”
“티폰의 낫?”
“즉사 능력? 그건 모르겠어. 심해 호텔을 진행할 때는 없던 능력 같은데.”
눈만 마주쳐도 사람을 죽인다?
이 정도로 강력한 능력이면,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 해도 어렴풋한 기억은 나야 한다고 봐.
“호텔 프로스페리티를 진행할 당시엔 없던 힘이고, 다음 호텔에서 얻었나?”
“아마도.”
“좋아. 낫과 절명의 시선은 유산인 것 같네.”
“신체 능력은?”
“인간을 넘어서긴 했는데, 유산이나 축복 급은 아니었어. 순수 신체 능력은 신성한 태양이나 용기의 축복에 미치지 못했으니까.”
호텔에는 유산이나 축복에는 못 미칠지언정, 인간을 능가할 수 있게 하는 도구 혹은 능력이 널려있다.
초인적인 신체 능력의 근원은 그쪽인 것 같았다.
“놈의 가장 큰 위험성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설명하다가 갑자기 머뭇거리는 모습.
“첫째는?”
“아, 이거 설명이 어렵네. 되게 이해하기 힘든 능력이었는데.”
“대충이라도 말해봐.”
“무한 회귀?”
“…”
무, 무한 회귀는 너무 강한 능력 아니야?
그딴 말도 안 되는 능력이 있는 적을 대체 어떻게 이겨?
아니지, 생각할수록 말이 안 되는데?
“말도 안 돼. 묵성이의 원 모어 찬스를 생각해 봐. 얼마나 대가가 살벌해?”
“그렇지.”
“무한 회귀? 호텔이 그런 능력을 허락할 리 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놈의 능력은 무한 회귀가 아니야.”
“…”
방금 본인 입으로 무한 회귀라 했으면서, 내가 반박하니 바로 의견을 꺾는 모습.
가인이 본인도 상대의 능력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놈을 볼 때마다 통찰이 여러 환영을 읽어냈어. 나는 그놈과 딱 한 번 싸우는 중인데, 그놈은 나와 10번, 20번 혹은 그 이상 싸우는 것 같았지.”
“…”
“실제로도, 내가 쓰려는 수법을 죄다 읽었어. 전투 경험이 많아서 읽어낸다? 그런 개념이 아니야. 아예 내 행동이 시작하기도 전에 대응하는 수준이었지.”
“예지?”
“아니, 그런 건 확실히 아니야.”
상대의 수를 읽어내고 사전에 대응하는 힘.
예지도 아니고 회귀도 아니다.
…
여기까지 들었을 때,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 방금 뭔가 떠올랐는데.”
“그래, 그걸 기다렸어. 말해봐.”
“… 네가 상대한 김주호는, 말하자면 레벨 10이야.”
“레벨 10?”
“내가 기억하는 김주호는 레벨 3 정도였겠지.”
내가 아는 김주호와 가인이가 상대한 김주호는 시간대가 전혀 다르다.
당연하게도 후자가 몇 배 몇십 배 강했을 터.
즉, ‘내가 아는 능력’과 ‘가인이가 경험한 능력’은 언뜻 보면 전혀 다르지만, 실은 같은 계통의 능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미로가 가끔 했던 이야기인데…”
“…”
“김주호는 항상 ‘있어야 할 곳에 있다’라고 했어.”
“있어야 할 곳에 있다…”
“축구로 치면, 공이 올 곳에 미리 가 있다. 총알이 날아올 장소는 미리 피해 있다.”
“…”
“이 이상은 모르겠네. 솔직히, 심해 호텔 당시엔 네 말처럼 무지막지한 괴물은 아니었거든.”
“그랬겠지. 그래서 미로가 죽일 수 있었겠지.”
“…”
“김주호의 두 번째 위험성은 미로에 대한 증오야.”
미로에 대한 증오.
“나와 대화할 땐 친절한 사람 같았는데, 미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에서 불똥이 튀었지.”
“…”
“미로에게 저주하듯 말했어. 언젠가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이쯤에서 가인이가 가볍게 한숨 쉬었다.
“하아… 미로도 참, 죄 많은 삶이네.”
“… 뭐?”
“대체 심해 호텔에서 뭔 짓을 했길래 원한이 이렇게 깊은 거야? 변수가 늘어난 느낌이라 걱정 -”
아니, 잠깐만요!
미로가 문제 많은 삶을 살았다는 건 인정할게.
솔직히 딸인 내가 봐도 심각하긴 했으니까.
근데, 이 말을 지금 누가 하는 거야?
가인이가?
“야, 미로가 아무리 죄 많은 삶을 살았어도 너랑 비교할 정도는 아니거든?”
“나?”
무슨 말이냐는 듯 양손을 좌우로 벌리는 청년.
“나? 이 대답은 뭐야?”
다음 대답은 실로 기가 막혔다.
“나는 하늘에 대고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는데?”
진짜, 이 순간은 말문이 턱 막히네.
“솔직히 나처럼 영웅이 어딨냐? 관리국이 수백 수천 번 루프를 반복해도 해결 못 한 달, 누가 처치했지? 물론 다 같이 했지만, 공이 가장 큰 사람은 -”
“… 애초에 원인 제공을 누가 했는지 생각해 봐.”
“지나간 일은 잊자.”
“그러면 미로의 잘못도 잊어야지.”
“그것도 맞는 말이네. 좋아, 이제부터 둘 다 잊기로 하자.”
인류 역사상 최악의 죄인과 정의의 후원자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참가자의 딸.
이 두 사람이 모여 과거의 일은 잊기로 했다.
피해자 없는 자리에서 가해자와 그 관련자끼리 합의한 셈이다.
호텔이었다.
“아리야. 농담은 이쯤 하고 -”
“농담이었어?”
“… 너도 나한테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직후, 한 권의 노트가 뇌리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