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69)
괴담 호텔 탈출기 769화(768/794)
769화 – 두 번째 탈출, 회의 (2)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스노 글로브 설원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김주호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아리를 찾은 나.
흥미롭게도, 아리 역시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한다.
“아리야. 농담은 이쯤 하고 -”
“농담이었어?”
“… 너도 나한테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리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아까 상현이가 말한 노트 말이야.”
노트.
“혹시 네가 아는 노트 아니야?”
“…”
당연히 잘 아는 노트다.
과거의 내가 썼는데, 모르면 이상하지.
정체불명의 괴물이라는 놈이 말한 ‘여러분은 굳이 내용을 볼 필요 없다’라는 말의 의미 역시 간단하다.
저자가 바로 옆에 있는데, 노트 내용을 뒤적일 필요가 있냐는 소리겠지.
“예전에, 달에서 탈출할 때였지 아마?”
“…”
“네가 바닥에 떨어진 노트 하나를 파괴했던 기억이 나.”
순식간에 뇌리를 스치는 여러 상념.
곧, 한 가지 확고한 생각이 자리 잡았다.
거짓말하진 말자.
“그 노트 맞아.”
“… 누군가의 일기라고 했지. 혹시 알레프의 일기였어?”
“일기라…그렇게 표현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
“…”
1분 정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깨트린 아리의 말은 내 예상 밖이었다.
“이 정도면 나랑 할 이야기는 끝난 것 같네.”
“…?”
“아, 상현이에게도 찾아가 봐. 김주호에 대한 기억은 걔한테도 있을 테니까.”
“안 물어봐?”
“뭘?”
“노트의 내용에 관해 물어볼 줄 알았는데.”
아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필요하면 네가 말했겠지.”
“…”
“느낌상, 302호 진행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정보 같은데. 아니야?”
“맞아.”
“풋! 그 표정 뭐야? 설마 내가 질문할까봐 덜덜 떨고 있기라도 했어?”
“…”
“잊지 마. 나는 한때나마 관리국 최상층부였다고? 나도 내가 아는 아찔하고 충격적인 정보들을 네게 전부 말하지 않았는데, 너도 비슷하겠지.”
“…”
“세상에는 굳이 알 필요 없는 비밀이라는 게 있는 법. 자, 상현이에게 가봐.”
순간, 오랜만에 일종의 감동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때로는 동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느끼곤 했던 복잡 미묘한 감정들.
거리감 혹은 외로움이라 부를만한 것.
이런 감정을 나만 느껴본 게 아니었구나.
미묘하게 기뻤다.
그래서, 살짝 장난치고 싶어졌다.
“아리야, 네 세포 하나하나가 사람이 되면 어떨 것 같아?”
“… 가인아, 자세히 설명할 생각 아니면 아예 시작하지 말아줬으면 해.”
“혼자 잘 생각해 봐. 밥 먹으면서도 생각하고 자면서도 생각하고 쉬면서도 생각 -”
“야! 한가인!”
“- 한순간도 쉬지 말고 생각하면서 답답해하면 될 것 같네.”
“진짜 왜 이러는 거냐구! 침묵하는 자보다 더 하잖아?”
“나 이제 상현 형에게 갈게.”
“… 같이 가.”
*
언젠가부터, 상현 형은 휴식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곤 했다.
도서관은 무한에 가까운 호텔 지하에서 상현 형이 처음 발견한 장소인데, 느낌상 3층이 개방되며 생겨난 것 같다.
두꺼운 책 한 권을 붙들고 있는 형을 보고 있으니 살짝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상현 형은 이번엔 또 무슨 지식을 얻는 중일까?
의사, 특수부대 군인, 파일럿, 우주비행사 – 이 정도 타이틀을 모으고도 부족한 모양이다.
“형은 참 공부를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 탁!
그제야 형이 책을 덮고 내 쪽을 보았다.
“집중하느라 가인 군과 아리 양이 온 줄도 몰랐습니다.”
“무슨 책인가요?”
“새의 시각 능력과 관련한 책입니다.”
아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 새의 시각 능력?”
“아리 양, 몇몇 새는 자외선을 포함한 4색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사람이 볼 수 없는 색을 볼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론상, 인지할 수 있는 색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구별할 수 있는 색의 수도 기하급수로 증가합니다. 즉, 새들은 우리와 같은 것을 보면서도 훨씬 더 풍부한 색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이쯤에서 아리는 ‘뭔 소리야?’ 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식물 역시 이에 맞게 진화했습니다. 예컨대, 꽤 많은 꽃은 새의 눈으로 보면 마치 활주로를 연상케 하는 줄무늬가 보입니다. 꽃이 새에게 말하는 셈이죠. 여기 꿀이 있으니, 이쪽으로 오라고 말입니다.”
나 역시 살짝 당황했다.
상현 형의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 정보가 302호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형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302호하고 아무 상관 없습니다. 애초에, 호텔 도서관의 책 대부분은 지상에서도 볼 수 있는 책 같습니다.”
“그, 그렇군요.”
흔치 않게 당황하고 있으니, 형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이런 지식을 얻을 때면, 나는 책 뒤에 숨어있는 사람을 봅니다.”
“책 뒤에 숨어있는 사람?”
“새의 시각을 연구하는 동물학자 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아메리카검은방울새가 자외선 인지능력을 통해 건강한 짝과 그렇지 못한 짝을 구분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
“지금도 우리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수많은 학자가 우주에 숨겨진 비밀을 탐구하고 있을 겁니다.”
“…”
“말하자면, 이 책은 모두가 쌓아 올린 탑 일부입니다.”
“모두가 쌓아 올린 탑의 일부…”
“우리의 선조들은 어둠으로 가득한 우주의 공백을 끊임없이 밝혀왔습니다. 이 책들이야말로 그 증거죠. 도서관에 있다 보면, 나는 동족에 대한 애착을 느끼곤 합니다.”
“이해했습니다.”
“하하! 말해놓고 보니, 꽤 감상적이군요. 아무래도 인류를 치와와로 만들려는 악신을 상대 중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감동을 충전하고 싶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격을 떨어트리려는 여명의 아들.
여명의 아들에 맞서기 위해 인류의 위업을 되새기는 김상현.
이렇게 생각하니, 형의 마음가짐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무슨 일입니까?”
아리가 다가가서 김주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김주호? 아하, 묵시록의 네 기사 어쩌고 하더니, 죽음의 기수가 그 사람이었군요?”
“뭔가 기억하는 게 있으신가요?”
“으음, 아시겠지만, 호텔 프로스페리티 시절은 내게도 아주 오랜 과거입니다.”
상현 형 역시 203호에서 수백 년을 보냈음을 잊지 말자.
아리만큼은 아니겠지만, 형 역시 많은 것을 망각했으리라.
“티폰의 낫? 으음… 그게 그런 이름이었군요. 예전에도 몰랐나? 알았는데 잊은 건가?”
형은 심지어 티폰의 낫이라는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애초에 몰랐을 수도 있다.
프로스페리티 시절, 상현 형은 1층을 진행하다가 탈락했기 때문이다.
아리가 그 점을 지적했다.
“지금 생각났는데, 심해 호텔 당시 상현이 넌 1층에서 탈락했었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리 양의 영광스러운 탄생을 보지 못했지요.”
이건 형 나름의 농담이었던 것 같다.
“… 그러면 아는 게 많지 않겠네.”
슬슬 기대감이 떨어지려는 시점.
의외의 정보가 툭 튀어나왔다.
예컨대, 프로스페리티 파티가 분열되던 과정에 관한 이야기.
“유산의 이름이나 능력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1층 진행 당시엔 김주호가 유산을 얻지 못했을지도.”
“다만, 인간 관계적인 측면은 기억나는군요.”
“인간관계?”
“미로 양이 우리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말입니다.”
“…”
“처음엔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미로 양에게 맞서려 했지요. 당시엔 나름 정의로운 분노였다고 생각합니다.”
“… 그, 그래?”
“다만, 시간이 흐르며 서로서로 닮아갔습니다. 독선적인 면을 포함해서.”
“휴우…”
기대하지 않았던 정보는 하나 더 있었다.
“아, 김주호의 축복이 어떤 이름이었는지 기억났습니다.”
이 말에 아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형의 말에 집중했다.
“운명? 아마 그런 이름이었을 겁니다.”
축복, 운명.
이것이 김주호가 호텔로부터 얻은 힘.
“… 그게 뭐야?”
“모릅니다. 저만 모르는 게 아니라, 당시엔 김주호 본인도 축복의 능력을 이해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상현 형의 기억은 1층 시절이다.
그 시절의 김주호는 본인 축복이 무엇인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워했다고 한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만 해도 상태창의 정신 방어 기능은 1층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고, 은솔 누나는 2층에 도착하고도 한참 후에야 축복의 본격적인 힘을 개방하기 시작했으니까.
“이런 생각은 드는군요. 아리 양에겐 미안한 말입니다만…”
“…”
“미로 양이 쌓은 죄악이 그녀를 덮치는 상황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사필귀정입니다.”
상현 형과의 문답을 끝내고 1층으로 가던 중, 아리가 살짝 우울해 보이길래 달래줬다.
“마음 편히 생각해. 어차피 네 일은 아니잖아?”
“뭐?”
“큰일이 생겨도 미로 일이지, 네 일은 아니야.”
“… 너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야?”
“하핫! 때로는 고민하지 않는 게 최고의 해결책 -”
“부탁이니까, 너는 탑을 그만 무너트리기나 해.”
“…”
“아까 상현이가 감동에 취한 모습 보고 뭔가 느끼지 못했어? 위대한 선조 님께서 10층까지 쌓은 탑, 누가 박살 내지만 않았으면 지금쯤 15층은 갔을 거라고!”
“…”
“어떤 분이 한큐에 무너트린 덕에 이제 겨우 2층이네.”
“자, 자. 밥 먹으러 가자.”
*
저녁 식사 무렵, 자연스럽게 시작된 회의에서 몇 가지 의문 및 요청 사항이 튀어나왔다.
처음 입을 연 사람은 상현 형이었다.
“승엽 군 쪽에서 진행을 좀 늦춰줬으면 합니다.”
“예?”
“계획을 가다듬다가 느꼈는데, 내 시작 시점이 승엽 군보다 꽤 늦더군요. 아마 시차 때문일 겁니다.”
“그런 것 같아요.”
“요전처럼 승엽 군이 하루 만에 끝장낼 기세로 달려버리면, 저는 자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 그렇겠네요.”
“어차피 유소연 양의 비밀을 제법 알아내야 하죠? 차근차근 알아내면서 진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템포를 맞춰달라는 이야기.
다음 이야기는 승엽이 쪽에서 꺼냈다.
“그니까, 황혼의 깃털을 우리가 먼저 얻어내야 하는 거잖아요? 소연이에게서.”
“그렇겠지?”
“근데, 소연이는 각성 전엔 깃털에 대해 아예 모르는 것 같아요.”
“으음…”
“깃털 비슷한 단어를 꺼낸 적도 없는데.”
은솔 누나가 살짝 코칭했다.
“본인은 다른 이름으로 알고 있을지도 몰라.”
“다른 이름?”
“혹은, 특이한 경험 정도로 여길지도 모르지. 천천히 친해지면서 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아리랑 송이가 도와줄 테니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나도 슬쩍 운을 뗐다.
“김주호가 해준 말입니다. ‘여명의 아들을 절대 쉽게 생각하지 마라. 너희가 알고 있는 사실, 의심하지 않는 정보 – 그중 몇 가지는 속임수다’라고 하더군요.”
꽤 심각한 이야기인 만큼 모두가 표정을 굳혔다.
“어느 정보가 속임수일까요?”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상현 형이었다.
“그놈이 인류를 사랑한다는 말 자체가 거짓입니다.”
“그건, 어…”
“나는 지금껏 놈이 보인 ‘사랑’이나 ‘자유의지의 존중’ 따위가 모두 거짓이라고 봅니다.”
여명의 아들의 모든것을 부정하는 태도.
상현 형이 누구보다도 인류를 믿고, 가장 여명의 아들을 불신한 사람임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별개로, 설득력은 다소 떨어졌다.
“형, 첫 번째 시도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
여명의 아들이 여덟 날개의 천사, 소연이의 자유의지를 빼앗았다면?
우리는 탈출도 못 하고 파멸했을 확률이 상당하다.
‘너희가 원하는 바를 하라.’
여명의 아들은 신념을 깨트리느니 패배 위험을 감수하는 길을 택했지.
신념 자체가 거짓이라면, 위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결국 상현 형이 한숨 쉬었다.
“좋습니다. 이 부분은 가인 군 말이 맞는 것 같군요. 미친 신이 나름대로 어떤 신념이 있긴 한 모양입니다.”
다음은 은솔 누나의 가설.
“내 생각인데, 깃털 같은 건 아무 의미 없는 게 아닐까?”
“…”
“뭔가 뜬금없이 나온 키 아이템이라는 느낌을 살짝 받아서…”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누나, 여명의 아들 측에서 통제할 수 있는 정보와 아닌 정보를 구분해야 할 것 같네요.”
“으엣?”
“깃털의 존재 자체는 누나가 요원을 심문해서 알아냈죠?”
“그렇지.”
“하지만, 깃털이 키 아이템이라고 판단한 건 미로가 소환한 저였습니다. 보자마자 ‘이거다!’ 했다는데, 필시 통찰의 영향이었을 겁니다.”
여명의 아들과 올빼미, 누가 위고 아래가 아니다.
한쪽에서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속일 수 없다.
통찰을 통해 얻어낸 정보는 여명의 아들이 조작할 수 없다고 본다.
“으음…”
은솔 누나가 혀를 살짝 내밀며 말했다.
“우리가 얻은 정보 일부가 거짓이라는 말은 네가 꺼냈는데, 정작 네가 다 반박하고 있네.”
그러게.
“가인아, 그냥 조언 써봐. 우리끼리 대화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살짝 애매한 타이밍이라고 느꼈다.
지금처럼 전혀 감 잡지 못한 상태에서 질문하면, 답변 역시 애매하게 나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조언 : 3 -> 2」
‘우리가 얻은 정보 중 어느 부분이 거짓입니까?’
「너무 큰 거짓말은 들키기 쉽다.」
“… 너무 큰 거짓말은 들키기 쉽다.”
침묵이 흐른 후, 아리가 재밌다는 듯 해석했다.
“이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세계관의 뼈대가 되는 핵심 정보 자체가 거짓이다? 302호에 대한 해석의 뿌리부터 틀렸다? 이런 큰 거짓말은 오히려 들키기 쉽다는 이야기야.”
여명의 아들이 인류를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가 거짓이다?
멋진 신세계와 얽힌 가장 큰 비밀인 황혼의 깃털 자체가 무의미하다?
너무 거창한 거짓말이라 되려 들키기 쉽다.
다른 정보와 쉽게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좀 사소한 정보일 것 같아.”
모두가 딱히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너무 사소해서, 지금처럼 하나하나 뜯어보는 시간에 의심의 대상으로 언급되지도 않은 것.
사소한 정보.
하지만 틀린 정보.
… 결정적인 순간, 우리를 뒤통수칠 수 있는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