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70)
괴담 호텔 탈출기 770화(769/794)
770화 – 세 가지 해석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로비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저녁 회의가 끝날 무렵, 우리는 세 번째 시도 진행 방향에 관한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완성했다.
“자, 회의 내용 간단히 정리해 볼게. 모두 주목!”
화이트보드에 쓰인 3가지 항목
*
302호 해결 조건
1. 여명의 아들 강림 저지
2. 여명의 아들이 퍼트리는 뒤틀림 제거
3. 멋진 신세계 파괴 및 탈출
*
추측이니 실제 조건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론이니 큰 오차는 없을 것 같았다.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진행 틀은 간단해.”
은솔 누나의 이 말은 살짝 불길하게 들렸다.
“상현 씨는 시작 지점에서 벗어난 후, 텍사스 TT 빌딩에 있는 관리국 순수파와 접촉하면 됩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여명의 아들을 막기 위해 노력해 왔으니까요.”
상현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순수파의 중심에는 데이비드가 있습니다. 그는 한때 여명의 아들을 섬겼던 고위 요원. 즉, 죄수의 내밀한 정보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겁니다.”
관리국 순수파는 오랜 세월 여명의 아들에 맞서왔다.
게다가, 순수파의 리더로 추측 중인 데이비드는 한때 여섯 날개의 천사 후보였다.
따라서 죄수의 강림을 막고, 죄수가 세상 전체에 퍼트린 뒤틀림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론 혹은 힌트를 가지고 있으리라.
아마도 그들 스스로는 할 수 없겠지만,부족한 부분은 우리가 도와주면 된다.
“승엽이는 소연이의 비밀을 더 알아내 봐. 그 과정에서 네 소원도 자각해야겠지.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황혼의 깃털’을 확보하는 거야.”
“으음… 잘해볼게요.”
“아리와 송이의 도움을 적극 받아봐.”
“네. 근데, 둘 다 별로 도움 안 되던데…”
“야!”
승엽이의 역할은 황혼의 깃털을 확보하는 것.
깃털이 정확히 어떤 아이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여명의 아들이 많은 권능을 투사해 만들어 낸 신물인 것 같았다.
따라서 최소한 깃털이 여명의 아들 손에 넘어가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이 정도면 됐나?”
“된 것 같아요.”
뭔가, 굉장히 논리정연하고 명료한 진행 방향성이 나온 상황.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되고, 최종적으로 해결! 이라는 계획이 만들어졌다는 소리다.
그래서 모두가 잠시 조용해졌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각자 무슨 생각 중인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불길한데?
“…”
쥐 죽은 듯 조용한 다과 테이블.
진철 형이 조심스레 침묵을 깨트렸다.
“내가 소싯적에 주식을 좀 했거든.”
아리가 경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재밌네. 나도 주식 꽤 했어.”
“어흠!”
할아버지의 어딘가 불편한 듯한 헛기침과 개의치 않고 말을 잇는 진철 형.
“주식은 광기에 의해 움직인다고들 하지만, 사실 배후에 큰손이나 기관이 조종할 때가 많아.”
할아버지가 살짝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게 보통 우리야.”
“덕분에 많이 잃었습니다.”
“…”
“어쨌든, 그때마다 깨달은 게 있어. 일반인들이 다 함께 1이라고 예측하면서 희희낙락하잖아? 무조건 틀린다. 왜? 뒤에서 보던 기관 놈들이 억지로 2를 만들거든. 관리국의 음모였던 거지.”
아리가 무슨 말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난 맨날 돈 잃었는데?”
“… 요원이 주식투자로 돈을 잃어? 그게 가능하냐?”
“응.”
“답을 알고도 틀린다고?”
“난 모르는 주식만 샀어.”
“아무리 그래도 인생 경험이라는 게 있는데…”
이쯤에서 할아버지가 크게 한숨 쉬었다.
“주식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야 한다. 근데 이 인간은 비싸지면 좋다고 사고, 싸지면 화들짝 놀라서 팔거든. 비싸게 사서 싸게 파니까 돈을 잃지.”
“…”
“게다가, 얘는 원금 날려도 아무 문제 없어. 본부에 가서 ‘내 계좌 다시 채워.’ 하면 끝나거든. 이러니까 문제가 안 고쳐지더라.”
이쯤 되자 모두의 시선이 아리에게 모여들었고, 아리는 한점 부끄러움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낙수효과야.”
“… 뭐?”
“나는 관리국의 돈을 세상에 나눠줬을 뿐이야. 요원으로서,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준 셈이지.”
이야기가 슬슬 산으로 간다 싶었을 때, 진철 형이 크게 한숨쉬며 다시 대화의 흐름을 가져왔다.
“둘 다 생각의 흐름대로 말하면서 끼어들지 좀 마십쇼. 내 말은 이거야.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단체로 1이라고 생각하면, 그 믿음은 반드시 틀리더라. 왜? 뒤에서 음모 꾸미는 놈이 2로 만들거든.”
서서히 동료들이 불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나 역시 죄수의 속임수를 조심하라는 김주호의 경고가 계속 머릿속에 울리기 시작한 참이다.
사소하지만 틀린 정보.
여명의 아들이 숨긴 함정.
결정적인 순간, 우리를 무너트릴 수 있는 착각.
대체 뭐지?
아무것도 몰라서가 아니라, 가능한 후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야.
게다가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앞서 세운 모든 계획이 흔들리고 만다.
이미 조언도 썼는데, 그리 신통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은 상태.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 통찰.”
“가인아?”
“통찰을 극한으로 활용해 볼까?”
무슨 말이냐는 듯 내 쪽을 보는 동료들.
송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극한으로 쓴다는 게 무슨 소리죠?”
“그동안 몇 번 느낀 건데, 유산의 힘으로 통찰을 강화할 수 있었어.”
“으엣? 그런 게 가능해요?”
“되더라고.”
신성한 태양을 사용하자 평소보다 더 많은 것이 보였던 기억과 화신의 서 세 번째 문장으로 영혼을 끌어들이니 영성이 아득한 영역에 닿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두 유산이 직접적으로 통찰을 강화한 건 아니다.
두 유산은 ‘한가인’이라는 존재의 격 자체를 더 높은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격이 오르면, 통찰의 영역 또한 자연스레 넓어지는 이치.
그동안은 딱히 통찰을 강화하기 위해 유산을 쓰진 않았지.
싸울 일이 있어서 유산을 전력으로 썼고, 유산을 쓰니 통찰 역시 자연스레 강해졌을 뿐.
이번에는 애초부터 통찰을 위해 유산을 써볼까?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 그렇죠. 괜찮은 생각 같아요.”
입으로는 괜찮다면서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짓는 송이.
기본적으로 동료들은 통찰을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니,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올빼미에게 조언을 구했다.
「현자의 조언 : 2 -> 1」
‘해볼 만한 시도 같습니까?’
「답을 얻기 위해서라면 위험한 선택, 성장을 위해서라면 해볼 만한 선택.」
해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
2층 설원.
다른 동료들은 모두 제법 멀어졌고, 상현 형과 승엽이만 내 앞에 모였다.
가부좌를 튼 채 지그시 눈을 감은 나.
“시작합니다.”
— 화르르!
새하얗게 타오르는 신성한 불길이 오른 편에 나타났고, 칠흑처럼 검은 책이 왼편에 나타났다.
실로 내 오른팔과 왼팔이라 할만한 두 유산이었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도구’일 뿐.
악신과 선신의 구분조차 모호한 세상, 신성과 타락의 경계 역시 무의미한 법이니…
진실로 지혜로운 자는 선악의 구별을 넘어설 수 있으리!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정신과 영혼이 점차 상계로 다가섬을 느낀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것이 보임은 자연스러운 이치.
— 스아아…!
오감을 초월한 육감 혹은 영감, 그것조차 넘어선 영역.
인간의 언어로는 도무지 정의할 수 없는 정보의 소용돌이.
쉴 새 없이 스쳐 가는 환영을 바라보며 예지와 통찰의 차이에 관해 생각했다.
동료들은 예지와 통찰을 굳이 구분하지 않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어떤 의미에서, 두 능력은 완전한 반대항과 같음을 말이다.
예지와 통찰은 운명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두 해석론에서 태어났다.
…
누군가는 우주의 운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빅뱅의 순간, 태초부터 종말까지 벌어질 모든 일이 결정되었다는 것.
따라서 우주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라플라스의 악마가 있다면, 그는 단 하나의 미래를 완벽하게 볼 수 있다.
호텔에 들어오기 전, 우리가 빌었던 최초의 소원.
소원이 인도한 운명에 의해 우리가 얻어낸 유산과 축복을 보라.
우리가 밟아나갈 모든 여정은 호텔에 도착한 순간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초의 삶을 시작한 순간 참가자로서의 미래가 확정되었을 수도 있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천지창조의 순간부터 안배된 운명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이치의 궁극이 예지다.
…
운명에 대한 또 다른 해석.
누군가는 확정된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존재하는 것은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무수한 가능성의 집합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 해도 단 하나의 미래를 볼 수는 없다.
애초에 단 하나의 고정된 미래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이는 과거와 현재의 정보를 모으고 해석한 끝에 발생할 수 있는 미래를 추측할 뿐.
호텔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모든 운명이 결정되었다?
김상현과 김주호만 보아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호텔은 위 두 사람을 여명의 아들에 맞설 참가자로 택했지만, 미로가 호텔의 계획을 망쳐버리지 않았는가!
이와 같은 이치의 궁극이 통찰이다.
…
아찔할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천상에서 내리치는 지식의 벼락이 내 두뇌를 녹여버릴 것만 같았다.
통찰의 출력을 높일수록, 요구하는 연산력이 끝도 없이 치솟는 감각.
아아, 인간의 두뇌로는 한계가 있구나.
극한의 통찰은 필멸자의 껍질로는 제대로 구현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야.
여명의 아들이 감춰둔 비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아는 정보 중 무엇이 속임수인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가능성을 좁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가인 군! 괜찮습니까?”
“형! 피, 피가 – 으악!”
본다.
느낀다.
인지한다.
한계를 넘어선 통찰이 두 동료를 직시하니, 슬픔과 고통을 보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 슬펐다.
숨이 막힐 듯 고통스러웠다.
두 사람의 성공을 위해선 가혹한 가시밭길이 있는 것 같았다.
아아…
“가인 군, 이, 이쯤 합시다.”
“105호로 옮겨요!”
손을 들어 승엽을 가리켰다.
“형? 괜찮 -”
“지나간 일에 너무 미련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예?”
“널 위한 이야기란다.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는 법.”
“대체 무슨 소리를 -”
다음 사람은 상현 형.
“가인 군.”
“마지막까지 신념을 지키시길.”
“…”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당신을 실제로 이기게 할 겁니다.”
“이, 일단 105호로 갑시다.”
주마등처럼 명멸하는 정신.
까마득하니 흐릿해지는 의식.
진정 찰나의 순간, 내 영성이 머나먼 천상의 끝자락을 붙들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앞의 둘을 넘어서는 이치가 있음을 알았다.
운명에 관한 세 번째 해석 말이다.
…
화가의 관점.
끝없이 드높은 천상, 현재와 과거, 미래를 구분할 수 없는 영역.
그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자가 있다.
미래는 결정되었는가?
아니면 혼란스러운 가능성의 집합일 뿐인가?
화가의 관점에선, 이 문제의 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화가가 그린 그림 내부는 결정론이고, 외부는 비결정론이다.
그러므로 예지와 통찰의 구분은 그림 속 등장인물에게나 의미 있는 것이다.
…
주마등 같은 환영 속에서 누군가를 보았다.
천상의 중심에 앉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존재를 보았다.
그는 삼천 세계의 비극에 눈물 흘리는 자였으니, 우주의 모든 어린 양을 사랑하는 미륵이었다.
허나,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그는 또한, 천지에서 가장 가혹한 이였다.
…
눈에서 피가 흐른다.
영혼 전체가 저릿했는데, 감각기관이 없는 영혼이 느끼는 통증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이카로스처럼, 내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느꼈다.
— 푸드덕!
그 순간, 나는 티끌처럼 작게 느껴지는 새를 보았다.
너무나 작아 형체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굉장히 익숙한 새.
올빼미가 화가의 어깨 위에 앉아 천천히 고개를 조아렸으니, 이는 과감한 어린 반신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요청임을 알았다.
목소리를 들었다.
살아라.
그리하여 네 죄악을 대면하라.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