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71)
괴담 호텔 탈출기 771화(770/794)
771화 – 재진입, 엇갈린 해석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정신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아침이었다.
즉, 몇 시간 내로 302호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호텔 특유의 냉엄한 알림창이 떴다.
「* 징계
참가자는 무리한 축복 사용으로 호텔의 자원을 낭비하였다.
이에 따라 호텔질서유지위원회는 한가인(지혜)에게 다음 한 번의 회차 동안 4단계 권능, ‘통찰’ 봉인을 명한다.」
“… 호텔질서유지위원회?”
— 끼익!
“오! 일어났구나.”
“괜찮습니까?”
“오빠, 눈은 괜찮아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동료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신호했지만, 사실 그리 편안한 상황은 아니었다.
통찰이 봉인되었기 때문이다.
“… 한 가지 슬픈 사실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음, 통찰이 봉인됐다는 거?”
“방금 봤어. 눈앞에 알림창이 뜨더라.”
거창하게 징계가 어쩌고 하더니, 통찰이 봉인되었다는 알림이 모두에게 나온 모양이다.
미로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가, 가인아!”
“응?”
갑자기 주먹 쥔 손을 내미는 미로.
“통찰이 봉인됐으면, 지금 내 손에 뭐가 있는지 안 보여?”
“…”
“모르겠어?”
“미로, 그런 건 통찰이 있어도 안보였을 거야.”
미로는 대체 통찰을 무슨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투시? 원하는 건 뭐든지 알아내는 힘?
하긴, 미로가 조금 심할 뿐 다른 동료들 역시 통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건 마찬가지지.
가볍게 고개를 저을 무렵, 뜨거운 커피를 마시던 상현 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인 군. 혹시나 해서 말인데, 어제 나와 승엽 군에게 해준 말의 의미는 기억합니까?”
내가 형과 승엽이에게 말했다고?
의아한 표정을 짓자, 승엽이가 옆에서 말했다.
“저한테는 지나간 일에 미련을 가지지 말라고 했어요.”
“뭐?”
“널 위한 이야기라고,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있다고 했죠.”
“뭔 소리야?”
“… 그 설명을 형에게 듣고 싶었는데요.”
설명은커녕,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지금 알았다.
상현 형이 가볍게 한숨쉬며 말했다.
“아까 알림을 봤을 때부터 이럴 것 같았습니다. 당시의 가인 군은 호텔이 보기엔 과한 영역까지 간 모양이니 말입니다.”
“…”
“마지막까지 신념을 지켜라.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날 실제로 이기게 할 것이다. 가인 군이 해준 말인데, 이것도 지금은 의미를 잊었겠군요.”
“그런 것 같네요.”
“조언을 써서 물을 수는 없겠습니까?”
어젯밤, 통찰을 극한까지 사용한 나는 승엽이와 상현 형으로부터 무언가를 본 모양이다.
이에 대한 기억을 호텔이 지워버린 상황이 현재.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호텔이 편집했다면, 조언을 써도 알려주지 않을 것 같네요.”
“그도 그렇군요.”
잠시 조용해진 분위기.
지금의 나는 어제저녁의 내가 무엇을 보고 두 사람에게 충고했는지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다만, 이 정도 생각은 들었다.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말아라.
널 위한 이야기이며,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있다.
승엽이는 무언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신념을 지켜라.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당신을 실제로 이기게 할 것이다.
상현 형은 신념을 뒤흔드는 상황을 겪을 것 같았다.
뭐, 이 정도는 내가 기절한 사이에 동료들도 내심 생각했겠지.
“기쁜 소식도 있네요.”
“오? 기쁜 소식?”
기대감 어린 동료들의 눈을 보며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전했다.
“통찰을 봉인 당한 건 아쉽지만, 목적 자체는 이루었습니다.”
어제저녁, 내가 통찰을 극한까지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여명의 아들이 숨겨둔 함정의 정체를 알기 위함이다.
두 번째 시도, 종말 이후 세계에서 상대한 김주호는 내게 경고했다.
상대를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우리가 얻어낸 정보 중 몇 가지는 속임수라고 말이다.
속임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무엇이 속임수인지는 알아내지 못해서 통찰을 사용해야 했다.
“정확한 하나의 답을 얻어내진 못했습니다.”
은솔 누나가 고개를 까닥이며 답했다.
“몇 가지 가능성으로 좁혔다는 거야?”
“첫째, 소연이. 둘째, 순수파의 리더, 데이비드.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에 속임수가 있습니다.”
잠시나마 극한의 영역에 도달한 통찰이 알려준 정보.
유소연, 데이비드.
두 인물 중 하나 혹은 둘 모두에게 여명의 아들이 안배한 속임수가 있다.
가능성을 둘로 좁히니, 동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가인 형이 전에도 말했었죠. 소연이의 정체에는 중대한 비밀이 있다고.”
“그걸 알아내야 승엽이 네가 소원을 깨달을 수 있다고 했었지. 흐음… 가인이 말 들으니까, 뭐가 속임수인지 알 것 같네.”
긴장한 표정으로 아리를 보며 되묻는 승엽이.
“뭔데요?”
아리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랑.”
“… 예?”
“소연이라는 애, 직접 보니까 엄청 예쁘더라. 그런 애가 승엽이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말문을 잃은 채 입을 반쯤 벌린 소년.
“사랑이야말로 속임수였던 거야. 그 애는 널 사랑한 적이 없어. 모든 건 속임수였고, 죄수가 안배한 함정 -”
“누, 누나, 저한테만 너무 심하잖아요!”
“심하다니? 객관적인 분석일 뿐이야.”
“맞아 맞아! 나도 아리 의견에 완전 동의!”
옆에서 미로가 추임새까지 넣으며 승엽이를 침몰시키는 시점.
나 역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예컨대, 현실의 사람들은 소연이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
이건 어떤 의미일까?
그 사이, 상현 형 쪽도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데이비드 쪽에 속임수가 있을 수 있다… 그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군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할아버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의사 양반 생각이 뭔지 알 것 같다. 내가 말해볼까? 데이비드 그놈이 정말 여명의 아들을 배신한 것 같냐?”
데이비드는 과거, 여명의 아들을 섬기는 요원 중 하나였다.
“생각해 보면, 그놈은 갈 데까지 갔던 놈이다. 여명의 아들 강림 의식에 참여한 여섯 중 하나였다고.”
여명의 아들 강림 의식에 참여한 6인.
아스테어, 브라이언, 제임스, 세릴다, 그리고 데이빗과 김상현.
“무려 신의 봉인을 풀기 위한 의식의 구성원이다. 얼마나 고르고 골랐겠냐? 상현이야 우주선 조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추가했다지만, 나머지 다섯은 여명의 아들이 최소 수천 년에 걸쳐 엄선했을 거야.”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놈이 헤까닥 편을 바꿔 먹는다고? 갑자기 여명의 아들을 부정하는 순수파로 넘어가?”
“믿기 어려운 일이지요.”
요컨대, 데이비드가 정말 여명의 아들을 배신한 게 맞느냐는 것.
어쩌면 데이비드는 순수파에 파견된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다만, 무엇이든 지나친 확신은 경계해야 한다.
다행히 내가 말하기 전에 은솔 누나가 제지했다.
“두 사람 말 알겠어요. 나도 데이비드가 꽤 의심스럽긴 한데… 결론을 정해놓진 않도록 해요. 세상일은 모르잖아요? 게다가, 데이비드는 본인이 돌아선 이유를 우리에게 설명하려고까지 했으니까.”
“그건 그래. 두 번째 시도 말미에 상현이가 왜 돌아섰냐고 물었더니, 놈이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 보여주긴 했었지.”
“노트였죠. 기억합니다.”
노트.
아리가 슬쩍 고개를 들어서 내 쪽을 보았고,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
“…”
가볍게 스쳐 가는 시선.
아리도, 나도 노트에 관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고 싶어 하진 않았다.
그사이 대화를 이어가는 세 사람.
“다음 회차에서 데이비드를 심문해 보면 될 것 같네요.”
“우리끼리 심문한다고 진실, 거짓을 가릴 수 있겠냐?”
“마침 딱 적당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있군요. 엘레나 양.”
“제가 요번엔 들어갈까요?”
“그렇게 합시다.”
“그, 그러면 종말 이후 세계 쪽은…”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아리.
“거긴 내가 갈게. 나랑 엘레나랑 포지션을 바꾸자.”
“그래도 괜찮아?”
“내가 해결 파티에 들어간 건 승엽이를 돕기 위해서였지?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크게 도와줄 게 없었어. 게다가, 나 없어도 송이가 있으니까.”
회차가 쌓일수록 방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가는 우리들.
덕분에 파티를 어떻게 배분해야 효율적인지에 관한 판단도 점차 정교해진다.
마지막으로, 아리가 미로에게 꿈의 왕국을 건넸다.
“자, 이쯤하고 출발하자.”
출발 직전, 노트에 대한 짤막한 생각이 스쳤다.
데이비드가 정말 내가 쓴 노트 혹은 일기를 정확히 이해한 걸까?
딱히 과거의 내가 암호문으로 적은 건 아니지만, 남들 보라고 이해하기 쉽게 적은 것도 아니었어.
혹시나 하는 생각.
어쩌면, 데이비드는 내가 쓴 글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 게 아닐까?
차차 알아볼 일이다.
약 30분 후, 302호의 세 번째 시도가 시작되었다.
*
— 미로
— 툭!
“…”
— 미로!
“…”
— 찰싹!
“으엣! 누, 누구야!”
바로 싸울 준비를 맞추며 기상!
벼락같이 펀치를 날려 상대를 제압하려는 순간.
— 덥썩!
엘레나가 내 팔을 간단히 잡았다.
그녀는 창밖에서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빛을 등진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맑게 빛나는 녹색 눈동자를 가까이서 보고 있으니, 살짝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니까…
“…”
가인이를 보면서, 정확히는 가인이가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야.
가장 ‘가인이 취향’에 가까운 외모는 얘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빠진 것도 찰나, 엘레나가 내 머리를 툭 툭 쳤다.
“아직도 졸아?”
“아니, 이제 깼어.”
엘레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네. 미로, 깨어나 보니 내 시작 지점이 여기였어.”
“그, 그렇네.”
첫 회차 때부터 했던 생각.
302호에서 내게 주어진 집은 여자애 혼자 사는 집이라기엔 너무 컸어.
혼자 사는 집이 아니었던 거야.
설정상 엘레나랑 나는 무슨 관계일까?
외국인 자매? 친척?
호텔에서 대충 이런 설정을 붙였을 것 같아.
“미로, 아무래도 난 위치를 옮겨야 할 것 같아.”
“뭐?”
“아침에 했던 이야기 잊었어? 세 번째 시도에서 내 역할은 의사 선생님을 돕는 거잖니.”
“아… 기억났어.”
이번 회차에서 엘레나는 미국에 있어야 한다.
의사 쌤을 도와서 데이비드가 진짜 여명의 아들을 배신했는지 심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짓말 탐지 능력은 엘레나에게만 있으니, 다른 사람이 대신하기 어려웠다.
“꿈의 왕국, 내가 좀 쓸게.”
“으음….”
“왜 그래?”
뭔가 살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
엘레나가 꿈의 왕국을 쓰는 게 맞는 걸까?
가인이에게 물어보자.
— 철컥!
시간대여기를 쓰는 내 행동에 엘레나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레 우리 사이에 나타난 가인이.
곧, 그가 엘레나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나 시작 위치가 미로와 같았군요. 이건 상태창에 적어야겠네.”
자연스레 허공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가인이.
엘레나의 위치를 관측소에 알리려는 것 같아.
“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을 도우려면 위치를 옮겨야 할 것 같아요. 마침 미로에게 꿈의 왕국이 있으니까 -”
그 순간, 엘레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인이가 손을 들었다.
시선은 허공에 못 박혀 있었는데, 상태창에 뭔가가 나타난 것 같았다.
“가인아?”
“가인 씨?”
“…”
*
… 뭔가 이상하지 않아?
… 아리야, 무슨 말이야?
… 조금 전,미로가 소환한 네가 전했지. 엘레나가 미로와 함께 시작했다고.
…
그렇지.
…
호텔은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위치에 둘 것 같잖아? 아니야?
… 네 말은, 엘레나가 꿈의 왕국으로 미국에 가면 안 된다는 말인가?
… 맞아. 그니까 상태창에 빨리 적어! 미로가 널 소환한 상태니까.
… 적었어.
… 그래, 이러면 해결.
…
어라?
… 왜 그래?
…
저쪽에선 그냥 하던 대로 하자는데?
… 뭐? 가인이 너, 미쳤어?
…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 너 말고! 저쪽 가인!
*
“가인 씨? 상태창에 뭔가 떴나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꿈의 왕국 지금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