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73)
괴담 호텔 탈출기 773화(772/794)
773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39)
– 김상현
집에서 깨어난 후, 초반 진행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평범한 드라이브를 가장해 시내를 돌아다니며 동료들의 접근을 기다렸다는 뜻이다.
— 빵빵!
경적을 듣고 뒤쪽을 보니, 세 명의 동료가 탑승한 차가 보였다.
묵성 요원과 은솔 양은 물론, 엘레나까지 이미 합류해 있던 것.
김묵성 : 이쪽으로 와라
진행이 좀 다른데?
전에는 묵성 요원이 분노조절 장애를 가장해 내게 다가온 후, 갑자기 총을 뽑아 날 감시하던 직원을 처리해 정보를 뽑아냈었지.
김상현 : 근처의 직원은?
김묵성 : 아까 처리했다. 요번엔 뽑아낼 정보도 없잖냐.
“상현 씨, 여기 총 챙겨요.”
은솔 양이 건넨 종이봉투에는 총과 탄약이 가득했는데, 이걸 언제 구했나 싶었다.
“날 감시하는 직원도 처리했다면서 총까지 구할 시간이 있었습니까? 아직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된 것 같은데.”
곧, 내가 잠시 잊은 사실을 엘레나가 일깨워 주었다.
“선생님, 우리는 시작한 지 꽤 오래됐어요.”
“음?”
“전 한국에서 깨어났거든요.”
미국과 한국의 시차를 깜빡했구나.
한국의 동료들이 시작하는 시점이 나보다 훨씬 이르니 가능한 일이었다.
미리 내 쪽에 와서 새벽부터 날 깨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봐야 관리국만 자극할 뿐이지.
그래서 나와 접촉하기 전에 이런저런 일을 끝낸 모양이다.
“다들 정말 믿음직하군요. 신속하게 갑시다.”
다음 목표는 간단하다.
오스틴을 벗어나 데이비드가 있는 TT 빌딩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간단한 목표라 해서 쉬운 것은 아니었다.
15분이 채 지나기 전에 관리국이 개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엇! 또 신호에 걸렸어요. 참 운도 없게시리 -”
순수한(?) 엘레나의 착각과 즉각 꼬집는 묵성 요원.
“운은 무슨 운! 승엽이냐? 관리국이 신호 통제하는 거지. 무시하고 밟는다!”
— 부우웅!
신호고 뭐고, 모조리 무시하며 달려 나가는 차.
잠깐 사이에 도로가 혼란에 빠졌는데, 필시 우리 때문에 교통사고도 여럿 났을 것 같았다.
“…”
돌이켜보면, 이전 회차 – 두 번째 시도 때는 관리국의 개입을 신경 쓰지 않았지.
덕분에 거의 아무런 방해 없이 데이비드를 만날 수 있었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당시엔 승엽 군의 패착으로 인해 세상이 망했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의 파멸과 함께 온 세상의 악마들이 풀려났으니, 관리국은 우리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번에는 아직 세상이 망하지 않았다.
즉, 관리국은 우리를 방해할 여력이 있다.
— 끼이익!
“우왓! 씨벌, 저거 뭐야?”
“으앗! 트, 트레일러가 전방에 -”
“미친 새끼들 아니야 이거!”
안타깝게도 상대방 역시 민간인의 희생 ‘따위’를 두려워하는 집단은 아니었다.
주저 없이 트레일러 한 대를 동원해 도로를 막아버릴 줄이야!
아예 길이 물리적으로 막힌 상황.
“내려라! 일단 걸어서 돌파 -”
그때, 서늘하기 그지없는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멍청아, TT 빌딩까지 걸어가자고? 개소리하지 말고 운전이나 해. 내가 해볼 테니까.”
평소와 전혀 다른 과격한 말투.
예전이라면 몰라도, 이 정도에 새삼 당황하는 사람은 없다.
엘레나가 불길한 상상을 시전 중인 것.
“무너져라. 떨어져라. 네게 남은 운명은 끝을 모를 추락뿐이다…”
— 드드드…!
곧, 도로 전체에서 불길한 진동이 느껴진다 싶더니, 트레일러 밑에 갑작스러운 싱크홀이 발생했다.
묵성 요원의 쾌활한 웃음.
“으하핫! 길이 열렸다! 가자.”
*
막힌 길을 뚫은 후에도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 탕! 탕탕! 타다당!
사방에서 관리국 소속 군인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묵성 : 은솔아, 어디에 쏘는 거냐!
이은솔 : 앞에다 쏘면 누구는 맞겠죠
김묵성 : 개소리 말고 넌 그냥 숙여라
안타깝게도, 두 여성 동료의 사격 실력은 달리는 차에서 사람을 맞출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관리국 역시 대책없이 기관총을 갈기지는 않았다는 점 정도.
그들이 원하는 건 날 확보하는 것이지, 날 죽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상현 : 3차선으로 이동, 속도는 80마일 정도로 조절
김묵성 : 했다
— 탕!
— 끼이이익! 쿵!
“와앗! 방금 뭐죠? 바퀴 맞춘 거?”
“시끄러워서 안 들립니다!”
“감탄이나 할 때냐! 은솔이 넌 호텔 가는 대로 사격이나 배워!”
이은솔 : 방금 진짜 액션영화인 줄! 할아버님은 저렇게 가능해요?
김묵성 : 인마, 30년만 젊었으면 하고도 남지!
엘레나 : 거짓말하지 마
김묵성 : 아직 명경지수 작동 안 했냐?
— 두두두두두!
“으악! 헬기까지 나타났어요!”
헬기는 운전만으로는 따돌릴 수 없지.
이 자리에서 바로 떨어트려야 한다.
김상현 : 유턴!
김묵성 : 뭐? 여기서?
대화창으로는 의문을 표하면서도 바로 핸들을 꺾는 묵성 요원.
그 사이, 나는 이름 모를 소총을 잡아 든 채 헬기를 겨누었다.
김묵성 : 뭐하냐? 저거 다 방탄유리라고!
“…”
아무렴 그 정도를 내가 모를까.
이래 봬도 파일럿 경력도 있고, 왕년에 우주선까지 몰아본 사람이다.
정신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한 점에 모이니, 흡사 온 세상이 느려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
군인 시절, 사격 훈련 때마다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
소총의 정확도는 민간인의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다.
전쟁 기록을 찾아보면, 무려 km 단위에서 사람 머리를 맞춘 사례도 튀어나올 정도지.
빗나가는 건 대부분 총의 문제가 아니라 조준이 부정확해서다.
그러니까, 내게 사격의 신이 내려온다면…
[‘즐기는 자’가 발동합니다.]— 탕!
— 탕!
— 탕!
세 발의 총성.
곧, 맹수처럼 추격해 오던 헬기가 비행 안정성을 잃고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묵성 : 대체 어딜 맞춘 거냐? 구동축? 스태빌라이저? 허브?
“… 갑시다.”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오늘의 위기는 아직도 끝이 아니었다.
*
— 화르르!
새하얗게 타오르는 불길이 일대를 감싼다.
첫 번째 시도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는 아스테어가 나타났음을 뜻한다!
삽시간에 동료들의 표정이 굳었다.
김묵성 : 은솔아, 피리 써라.
아스테어가 왔다면, 세릴다도 근처에 있을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을 농락하는 세릴다의 마력에는 안식의 피리가 최고의 대응인 법.
곧, 하늘에서 백발 여인이 내려왔다.
— 스아아…!
“조니, 오랜만이야.”
“…”
“아침부터 뭐 이리 바삐 움직여? 덕분에 갑자기 오느라 힘들었다고.”
“…”
“기억을 찾았구나? 조금씩 찾길 바랐는데, 한 번에 전부 찾았나 보네.”
“비켜라. 너라 해도 살아남지 못할 거다.”
“주변에 처음 보는 얼굴이 많네. 데이비드가 널 위해 보내준 거야?”
순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3초 정도 흐른 후에야 아스테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스테어는 내 동료들을 ‘순수파에서 날 데려오기 위해 보낸 초능력자’ 정도로 착각했구나!
“신경 쓸 필요 없다.”
“휴우… 조니, 넌 이번에도 바르지 않은 길을 가려 하는구나.”
“내가 할 말이군.”
“그래, 세상의 많은 문제가 그렇듯, 말로는 해결할 수 없는 모양이네.”
시퍼렇게 타오르는 아스테어의 눈동자.
새하얀 불길이 소용돌이처럼 일대를 감싼다.
성화의 수호자, 정확히는 수호자가 될 운명인 요원과의 일전이 시작하려는 순간.
— 우르릉!
천둥소리를 들었다.
한 줄기 벼락이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와 창문을 뚫고 누군가의 몸을 지져버린 것이다.
“꺄악!”
“은솔아!”
… 아찔함을 느끼며 상대의 수를 깨닫고 말았다.
한바탕 할 것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던 아스테어는 그저 시선 끌기였던 것.
관리국은 내 죽음을 바라지 않으며, 생포하길 바란다.
생포를 위한 최적의 능력은 세릴다의 정신 조종 능력.
그 세릴다를 조금 전까지 막고 있던 것은 이은솔의 안식의 피리.
배후에 숨어있던 벼락의 수호자, 브라이언이 번개를 쏘아 은솔을 저격했다!
“아스테어!”
— 으드득!
불꽃을 휘두른 여인이 가볍게 웃었다.
“조니, 이제 돌아가자. 저기, 세릴다가 오는 것 보이지?”
두 번째 시도에선 승엽 군 쪽에서 사고가 터졌는데, 이번엔 우리 쪽에서 터지나?
아니지, 아직 엘레나 양이 있어.
은솔 양이 죽었으니, 엘레나가 정의의 힘으로 상황을 끝낼 수 있 –
“어? 뭐, 뭐야?”
그때,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던 아스테어의 표정이 당황으로 굳었다.
“이게 무슨 -”
“어엇!”
당황한 사람은 아스테어 뿐만이 아니었다.
곧, 뒤쪽의 동료들까지 놀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
—삐이이…!
다시 피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뒤를 돌아보기가 무서웠다.
상반신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린 사람이 피리를 분다는 건 대체 무슨 상황일까?
“…”
뒤를 보았을 때, 나는 몸의 절반이 날아간 은솔 양을 보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몸을 지탱하는 꿈틀거리는 살점을 보았다.
꿈틀거리는 살점 속에서 빛나는 칠흑처럼 검은 보석을 보았다.
문득, 나는 은솔 양의 몸을 ‘재구축’한 괴이한 살덩이로부터 익숙함을 느꼈다.
이스의 대공, 그들의 흉측한 육신을 구성하던 물질 말이다.
동시에, 끔찍할 정도로 불길한 압박감을 느낀다.
너무나 사악하고, 그렇기에 지극히 위대한 존재감.
묵직한 쇠가 전신을 눌러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의 압박감이 심신을 짓누른다.
이은솔 : 이게 대체 뭐야? 뭐지?
이후,관리국이 더 이상 우리를 추격하지 않았다.
… 차가 다시 출발한 후, 꽤 오랫동안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
멀리서 TT 빌딩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일 무렵, 침묵이 깨졌다.
“결국, 관리국은 더 이상 추격하지 않는군요. 한 번 정도 더 싸울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묵성 요원이 담백하게 답했다.
“아까 은솔이 몸에서 뿜어져 나온 터무니없는 압박감 때문이지.”
“…”
“신체 재생 정도야 사실 별거 아니야. 상반신 재생하는 괴물 정도는 요원 일 하다 보면 수두룩하게 본다. 하지만, 아까 전의 그 압박감은…”
“…”
“뭐였지? 정말, 이스의 대공이 직접 나타난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
“그러니까 네 예전 동료 놈들도 꽁지 빠지게 도망간 거지. 지금 전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긴다고 판단한 거야.”
“정말 뭐였을 것 같습니까?”
“모르겠다. 대화창 보니까 은솔이도 이해를 못 한 것 같던데.”
은솔 양은 진즉 기절한 상태다.
가슴 일대가 통째로 증발한 지금의 은솔 양을 ‘살아있다’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정황상, 301호 끝나고 얻은 검은 보석이 뭔가 효능을 발휘한 모양인데…”
“왜 지금만 작동한 거냐? 내 말은, 두 번째 시도 때도 은솔이 시원하게 썰려 죽었잖아. 그때는 아무 일 없더만.”
“누가 알겠습니까. 조건이 있는 모양이죠.”
“으음…”
침묵이 흐른 후, 묵성 요원이 살짝 장난기 어린 목소리를 냈다.
“이야~ 요즘 난 불공평함을 자주 느낀단 말이지.”
“불공평함?”
“나도 신의 아들 같은 거 하고 싶다니까? 태어나고 보니 어머니가 신. 이런 경험 해보고 싶다고~!”
“하핫! 농담도 참!”
곧 TT 빌딩에 도착할 테니, 그 전에 농담으로 동료들의 긴장을 좀 풀어줄 생각인 것 같았다.
“농담으로 들리냐?”
“…”
“아오! 유산이라고 하나 있는 건 부작용이 극심해서 쓰기도 어렵잖아. 뭐 이래? 호텔이 사람 차별한다니까.”
엘레나가 피식 웃었다.
“풋! 할아버님, 언니도 본인 방 들어가기 전엔 맨날 비슷한 소리 했잖아요?”
그렇지, 은솔 양도 301호에 들어가기 전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맞습니다. 요원님도 본인 방에 들어가시면, 상상을 초월하는 보물이 있을 겁니다.”
아님말고.
“…”
묵성 요원의 반응은 내 예상과 조금 달랐다.
갑자기 장난스러운 태도가 싹 사라지고 음울한 분위기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 나는, 내가 무엇과 맞서게 될지 알 것 같다.”
“무슨 말입니까?”
대답은 아주 작았는데, 심지어 흐느끼는 것처럼 들렸다.
들으라고 한 말이라기보다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말이 슬쩍 튀어나온 느낌.
… 아들아. 널 다시 만나는 순간이 기쁘면서도 두렵구나.
“…”
10분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