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74)
괴담 호텔 탈출기 774화(773/794)
774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40)
– 김상현
어떻게든 관리국의 손에서 벗어나자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중간의 요란한 충돌 때문에 순수파 측에서 내 접근을 진즉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TT 빌딩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직원이 튀어나왔다.
“데이비드 님이 여러분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너무 순순히 안내해서 되레 불안할 정도였는데, 동료들 생각 역시 비슷했다.
엘레나 :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닐까요?
김묵성 : 글쎄다. 저놈들로선 우리를 의심할 이유가 없긴 한데…
논리적으로 묵성 요원의 견해가 옳다.
우리가 데이비드 측을 의심하는 건, 데이비드가 과거 여명의 아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여명의 아들을 섬긴 적이 없지.
섬기긴커녕, 죄수가 승리하기 직전에 모든 판을 무너트린 사람이 나다.
따라서 여명의 아들을 회의적으로 보는 순수파 측에서 날 의심할 이유가 없는 것.
곧, 기묘한 외모의 청년이 나타났다.
백발과 흑발이 섞인 괴이한 색상의 머리.
외견은 제법 잘생긴 20대 후반의 청년이나, 내면은 지극히 늙고 지친 남자.
데이비드.
“조니, 오랜만이야. 하핫! 널 다시 보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
“언제 한번은 너와 꼭 만나고 싶었지.”
“왜 찾아오지 않았나?”
내심 품었던 의문 중 하나.
순수파의 본거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왜 그동안 내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너는 모르겠지만, 그쪽과 우리 사이엔 암묵적인 선이 그어진 상태거든.”
“선?”
“전쟁이라는것도 오래 하다 보면 서로 지치기 마련이니까. 선을 넘지 않으면 모른 체 하는 그런 거지.”
여명의 아들을 숭배하는 구원파.
여명의 아들을 부정하는 순수파.
우리가 두 세력의 차이를 인지한 건 최근이긴 하지만, 그들의 충돌은 아주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래서 이런 암묵적인 룰이 생긴 것 같았다.
김묵성 : 방향성은 다르지만, 둘 다 인류를 지키는 조직이다. 그래서 도 이상의 충돌은 피하려고 한 것 같군.
김상현 : 일리 있군요.
“우리가 너와 접촉하는 게 대표적으로 선을 넘는 행위였어.”
“지금 만나고 있는데?”
“네 쪽에서 관리국을 뚫고 왔으니 우리 책임은 아니지.”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데이비드가 이전 회차에서 했던 이야기를 비슷하게 반복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기억하나? 세릴다가 자네를 속박했고, 난 자네를 제단에 패대기쳤지.”
“…”
“그때 일은 미안해. 하하! 종말 후의 사과라니, 이렇게 늦은 사과가 또 있을까?”
김묵성 : 이 녀석,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너에 대한 사과야.
김상현 : 나름대로 마음에 담아둔 모양입니다.
김묵성 : 이 태도도 계략일 수 있으니, 믿지 마라.
엘레나 : 사과 자체는 진심 같아요.
김묵성 : 진심으로 사과한 후 대가리를 터트릴 수도 있는 거지.
묵성 요원의 냉소적인 반응이 나올 무렵, 데이비드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보고받기로는 동료가 한 명 더 있다고 들었는데?”
“… 큰 부상을 입어서 차에서 쉬고 있네.”
“유감이군.”
슬슬 본론을 꺼낼 때가 된 것 같다.
“피차 바쁜 사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좋지.”
“여명의 아들을 막고자 한다. 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래, 자네라면 그럴 것 같았어.”
“관리국과 충돌하며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너희들은 오랜 기간 여명의 아들을 막으려 했다.”
“그랬지.”
“수백 년을 허투루 쓴 게 아니라면, 뭔가 알아낸 게 있겠지. 아닌가?”
회의 때마다 언급된 302호 해결의 3대 조건.
1. 여명의 아들 강림 저지
2. 여명의 아들이 퍼트리는 뒤틀림 제거
3. 멋진 신세계 파괴 및 탈출
조건이란 최종적인 목표에 가깝다.
따라서, 목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어야 한다.
순수파에게 방법론이 있을까?
“… 닻의 파괴.”
다행히도 그럴듯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닻?”
“조니, 여명의 아들은 왜 강림을 위해 마도 의식 따위의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걸까?”
“…”
“모든 위대한 자가 여명의 아들처럼 제약에 시달리진 않아. 거칠 것 없이 우주를 휘젓고 다니는 살아있는 우주적 재해 같은 놈들도 많지.”
“…”
“이유는 간단해. 여명의 아들은 본디 천상에 속한 존재였기 때문이야.”
천상.
예전이라면 이 단어를 추상적으로 이해했겠지만, 이제는 구체적인 의미를 안다.
천상이란 곧 호텔 3층이 속한 영역을 말한다.
삼천 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의 영역이기도 하다.
“천상에서 추락할 때, 여명의 아들에게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렸네.”
부처가 여명의 아들에게 제약을 걸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여기까진 우리가 알 방법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여명의 아들은 말하자면 헬륨 풍선과 같은 상태야.”
“헬륨 풍선?”
“놀이동산의 헬륨 풍선을 생각해 보게. 가만히 두어도 계속 위로 뜨지? 줄을 꽉 잡지 않으면 하늘 너머로 사라져 버리잖나.”
“… 여명의 아들은 가만히 있어도 본질이 천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런 소리인가?”
“그거야. 그는 본디 하계에 속할 수 없는 존재라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
“닻이 있으니까. 여명의 아들을 지상에 묶어두는 닻이 만들어졌거든.”
해결로 향하는 큰 그림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도를 반대로 바꿔서 봐야 했던 것.
여명의 아들이 내려오는 걸 막아야 하는 게 아니었다.
여명의 아들은 가만두어도 마치 풍선처럼 천상에 이끌리는 존재.
그를 지상에 묶어둘 수 있는 닻을 찾아서 파괴해야 한다.
“그렇다면, 닻이 무엇인지에 대해 -”
다음 이야기가 나오려는 시점.
“잠깐.”
묵성 요원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 할 말이 있나?”
데이비드는 살짝 의외라는 표정으로 묵성을 보았는데, 나와 데이비드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을 줄 알았던 것 같다.
묵성 요원이 서늘한 눈빛을 드러내며 말했다.
“슬슬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말이지. 그 전에 정리할 문제가 있지 않겠냐?”
“정리할 문제?”
“솔직히 말하지. 우리는 데이비드 네 놈을 제법 의심 중이거든.”
김묵성 : 다음 이야기는 필시 순수파가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준비한 여명의 아들에 대한 답일 거다.
김상현 : 그렇지요.
김묵성 :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릴 거야. 머리 좋은 놈들이 수백 년 동안 만든 계획인데, 그럴듯하지 않으면 저놈들이 병신인 거지.
엘레나 : 그렇다면?
김묵성 : 일단 놈들의 계획을 듣고 나면, 우리도 설득된 채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계획을 듣기 전에 데이비드의 순수함을 확인해야 한다.
데이비드가 정말 여명의 아들로부터 돌아선 게 맞을까?
묵성 요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따지자 여태 침묵을 지키던 데이비드의 측근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 자식이 감히!”
“너!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이리 오만하지?”
“데이비드 최고의원께서 좋게 말해주니, 정말 상전이라도 된 줄 -”
그때, 데이비드가 측근들을 보며 손을 들었다.
“나가라.”
“예?”
“다 나가.”
“의, 의원님! 이놈들을 어떻게 믿고 -”
“왜 못 믿어? 인류 역사상 가장 맛깔나게 여명의 아들 뒤통수 때린 놈이 조니인데, 못 믿을 이유가 있냐?”
“…”
“마지막이다. 나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맛깔나게 여명의 아들 뒤통수 때린 사람.
다소 천박한 표현이었지만, 솔직히 마음에 들었음을 인정한다.
측근들은 불만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나갔다.
새하얀 집무실에는 우리와 데이비드만 남았다.
“…”
“…”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고요한 침묵.
정적을 깨트린 이는 데이비드였다.
“… 조니.”
“듣고 있네.”
“내가 먼저 물어도 되겠나? 왜 여명의 아들을 부정했지? 왜 그가 인류에게 주려고 한 구원을 거부했지?”
“…”
“항상 궁금했네. 이 부분만 답해주면, 나도 솔직히 답하겠네.”
내가 여명의 아들을 부정한 이유.
길고 복잡하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딱 한 문장으로 충분하니 말이다.
“스스로 쌓은 탑이 아니라면 가치가 없다.”
“…”
“위대한 자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삶이 애완동물의 삶과 뭐가 다르지?”
“너는 종교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건가? 내 말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은 신을 믿는단 말이지. 꼭 여명의 아들이 아니라도 말이야.”
“글쎄, 그렇게까지 멀리 나갈 생각은 없네.”
나는 미국인이며, 내 조국은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에 손 올리고 선서하는 나라다.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God bless America를 외치고, 1달러 주화에 In God We Trust라고 적힌 나라.
“단지, 구원이 그런 식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할 뿐.”
데이비드가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여명의 아들이 보여준 구원에 대한 비전이 옳지 않다? 그렇다면, 자네가 생각하는 올바른 구원은 무엇인가?”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구원은 뭘까?
위대한 자가 하사하듯 내리는 구원은 올바르지 않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불합리함만 제거해 주는 것이 구원인가?
아예 위대한 자의 모든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기엔, 나부터가 호텔 참가자 아니던가.
인정하자.
호텔 참가자는 근본이 삼천 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의 사도에 가깝다.
죄수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내가 봐도 이렇다.
지고한 자의 사도인 내가 위대한 자의 모든 간섭을 부정함은 모순적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
이쯤 되니, 오래전 가인 군이 승천자에게 들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천국을 만드는 일은 우주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지옥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창작물은 너무 많아서 세기 힘들 정도지만, 천국을 묘사하라고 하면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이처럼, 천국이란 상상조차 어려운 것.
이러니 ‘네가 생각하는 구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내가 막힐 수밖에 없지.
그래서 솔직히 답했다.
“모르겠네. 여명의 아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궁극적인 구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모른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군.”
“…”
“단지, 그 방향성을 우리 스스로 쌓아야 한다고 생각할 뿐.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나?”
“그래, 자네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했어. 이제 내 차례인가…”
자연스럽게 시작된 데이비드의 이야기.
“솔직히 말하면, 난 자네만큼 우리 자신을 믿진 않아.”
“…”
“우리가 쌓은 탑이 아니면 무의미하다? 잘 모르겠군. 관리국은 여명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무수히 많은 혼돈체와 인연이 있어. 이 모든 게 무의미한 걸까?”
여기까진 이전에 들은 이야기다.
“하지만, 자네 역시 나처럼 여명의 아들을 부정했지. 이유를 듣고 싶다.”
“… 오래전에 태고의 기록을 얻었다.”
— 탁!
데이비드의 품속에서 한 권의 노트가 튀어나왔다.
제목이 없는 낡은 노트 말이다.
이전 회차에선 저 노트를 보자마자 황당한 괴물이 튀어나와서 모두를 죽였었지.
이번엔 아니었다.
— 펄럭!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격리구역 C-213 지하에서 태고의 연구자료를 살피며 깨달았다. 나는 벌레다. 인류는 벌레다. 한없이 미천하고 나약한 미물에 불과하다.”
듣자마자 느낀 것은 불쾌함.
대체 누가 이런 흉측한 글을 썼을까?
“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벌레로 시작한 삶, 벌레로 끝나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갑자기 무슨…”
“계속 듣게. 이 노트는 무슨 강의자료가 아니야. 읽는 사람 이해하기 쉬우라고 적힌 게 아니고, 저자가 자기 생각을 두서없이 적었어.”
“…”
“천지가 개벽할 때 가스가 모여 최초의 별이 태어났다. 이들이 수명을 마치며 블랙홀, 퀘이사, 은하로 변했으니, 죽음으로 만물을 낳았다. 이들이 바로 시체로 세상을 낳은 우주의 반고다.”
“…”
“대우주의 이치는 더 작은 곳에도 적용된다. 고래 한 마리가 죽으면, 그 시체가 드넓은 심해에 뿌려져 100만 생명의 양식이 됨을 생각하라.”
“…”
“이와 같은 섭리에서 사람만 예외일 수 없는 법.”
“…”
“모든 인간의 근원이 있었다. 한 점에 모여있던 영육을 별 전체에 흩뿌려 수십억 인류의 어버이가 된 존재가 있었다.”
김묵성 : 이런 소리는 처음 듣는다! 진짜냐?
“우리는 왜 혼돈체와 다른가? 사람은 왜 사람이고, 혼돈체는 왜 혼돈체인가? 답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애초에 시작이 달랐기 때문이다. 혼돈체와 우리를 낳은 어버이가 다르다.”
엘레나 : 데이비드는 진실이라고 믿고 있어요.
“반고가 죽으며 사람이 태어난 일. 누군가는 이를 역사의 시작이라 말하며 칭송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라 생각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뭐라는 거야?
설마 인류의 탄생이 최악의 비극이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본래 우리는 모두 신이었다. 천지 만물을 오시하는 지고한 자였는데, 벌레로 추락한 것이다. 이를 깨달았을 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또 울었다.”
이쯤에서 데이비드가 잠시 낭독을 멈췄다.
“조니, 어떻게 생각하지?”
“… 이 글을 쓴 자를 직접 보고 싶은데.”
“어려울 거야. 태고의 기록이니,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오래전에 죽었을 테니까.”
“인류의 탄생이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라니…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게 맨정신으로 가능한가?”
“보통 사람은 아니지.”
“아주… 사악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지극히 오만하고, 동족에 대한 애착은 모래알만큼도 없었을 거야. 위대한 자가 되려는 갈망은 흉측할 정도로 비대했고.”
“…”
“자, 자. 아직 내용이 한참 더 남았으니, 다들 자리에 앉으라고.”
아직, 데이비드가 여명의 아들을 배신한 이유는 나오지도 않았다.
“세상은 마치 체와 같다. 이것이 순환이 반복될수록 혼돈의 세가 굳세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