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75)
괴담 호텔 탈출기 775화(774/794)
775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41)
– 박승엽
“하아암…!”
— 툭!
뒤에서 휴지 덩어리가 날아왔다.
“…”
— 툭! 데구르르!
무시하고 있으니, 더 큰 덩어리가 날아와서 책상 위를 굴러갔다.
“…”
— 쿵!
또 무시했더니, 이번엔 철사가 박힌 지우개가 –
“야! 이건 심하잖아!”
“박승엽! 너 수업 시간에 집중 안 하냐?”
“아니, 선생님. 그게 아니라 -”
“인마! 고려 말, 이방원이 정몽주를 만나서 회유하기 위해 지은 시조 이름 말해봐.”
아, 진짜! 이런 거 걸릴 때는 왜 맨날 국사야?
“… 첫 글자 힌트 좀요.”
“아이고 이 자식! ‘하’. 이거 듣는다고 아냐?”
“하세기?”
… 이후, 크게 혼났다.
혼나면서도 꽤 억울했는데, 선생님이 뒤에서 장난친 소연이는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나만 혼냈기 때문이다.
“하아…”
“뭘 잘했다고 한숨이야!”
“하아아아세에에에기이이이…”
“이 자식이 돌았나!”
— 휘익!
“피해?”
— 휘익!
“박승엽 네 이놈!”
어~ 던져봐!
운동 신경 둔한 국사 선생님 분필 던지기?
100만 개를 던져봐라.
천하제일 고수 그림자도 못 맞출걸?
승엽아, 제발…! 그냥 좀 한 대 맞고 끝내라고 이 멍청아!
누나, 욕은 너무 심하잖아요.
“…”
어쨌든, 오늘은 소연이가 무슨 장난을 걸어오든 무시해야 해.
여기에는 두 가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회의 때 의사 선생님이 템포를 조절해달라고 했어.
나 혼자 팍팍 진행해버리면, 시차 때문에 미국에서 늦게 시작하는 의사 선생님은 ‘이제 뭐 좀 해볼까?’ 했더니 ‘종말이요!’가 뜨는 황당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송이 누나가 소연이에게 끌려다니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아침에 누나랑 1-1로 대화했다고 삐져서 장난치는 것도 무시해야 한다.
— 툭!
“…”
*
소연이의 분이 풀린 건 수업이 끝날 때쯤이었다.
“야, 할 말 있어.”
오전 내내 휴지랑 지우개는 왜 던졌냐고 묻고 싶지만, 그걸 물어보면 또 한 시간은 이상한 짓 할 것 같으니 넘어가자.
“… 무슨 말?”
이후의 일은 이전과 비슷했다.
소연이는 이 세상이 일주일 단위로 루프하고 있고, 자신은 루프를 알아챈 유일한 사람임을 밝혔다.
또, 나는 소연이처럼 루프를 알아채진 못했지만, 행동이 매번 달라지고 있음을 알렸다.
이외에도 학교에서 벌어질 일을 분 단위로 맞춘다던가, 경비 아저씨의 순찰 경로를 보지도 않고 알아채는 재주를 보여주기도 했다.
앞서 두 번의 전개와 똑같네.
그렇다면, 다음에 벌어질 일도 똑같겠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으음, 계획이 있긴 있어.”
“말해봐.”
“나는 어, 이 세상이 일종의 꿈속 세상이라고 생각해.”
“…”
“너랑 나는 꿈에서 깨어난 거야. 나는 완전히 깼고, 너는 반쯤 깼고.”
“그래서?”
“다른 사람도 깨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이다음의 전개는 둘 중 하나야.
소연이 의견대로 가면 전처럼 학교를 불태우는 흐름이다.
내 의견대로 가면, ‘게임으로 세상을 구해봤습니다만?’ 흐름이고.
양쪽 다 해결과 거리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뿌리부터 바꿔야 해.
“아니, 소연아. 다른 사람을 깨우는 게 핵심이 아닌 것 같아.”
타인을 깨운다는 전제 자체를 바꾸자.
“뭐? 무슨… 무슨 소리야?”
“나, 네 이야기 들으면서 한 가지가 계속 궁금했거든.”
“뭐가?”
“세상 사람들이 특이한 게 아니라, 네가 특이한 것 아닐까?”
“…”
이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소녀.
“왜 너만 꿈에서 깨어난 거야? 왜 너만 특별해졌을까?”
“…”
“그 부분을 알아내야 할 것 같아. 그러면, 그 특별함을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을 테니까.”
소연이는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거린 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왜 나만 깨어났을까?”
“…”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
어…
갑자기 질문하지 말아줘.
나도 갑자기 말문이 막혔잖아.
회의하면서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전부 정하고 온 건 아니라고!
대답이 늦어지니, 소연이가 금방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러면 얘와의 관계를 내가 끌고 가기 어려울 텐데…
아오! 내가 가인 형도 아니고, 여기서 답이 어떻게 딱딱 나오냐고! 말이 됨?
속으로 짜증만 내던 시점.
흐릿한 환영이 눈앞에 나타났다.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해.
최초로 루프를 눈치챈 시기의 기억 말이야.
우리가 소원을 자각하듯이, 저 애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해야겠어.
“… 오,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 봐.”
“뭐?”
“처음으로 루프를 눈치챘을 때, 그 전후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어?”
“…”
곧, 소연이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었다.
바깥세상이 아닌, 내부의 기억 속을 탐험하기 시작한 것.
그 때, 근처에 숨어있는 송이 누나가 계속해서 환영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가까이서 보니까 이 애, 뭔가 이상한데. 왜 이걸 전에는 몰랐지?
?
승엽아, 소연이의 기척이 느껴지니?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관측소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많은 일은 경험이 쌓일수록 효율적인 방향으로 최적화되기 마련이지.
관측소 망원경 활용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모두가 자신의 한계를 몰랐다.
이 때문에 망원경을 2~3시간씩 사용하다가 격렬한 두통 및 출혈에 시달리는 사람이 자주 나왔지.
시간이 우리에게 답을 주었다.
눈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장기간 버티면, 심신이 쇠약해져서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
이렇게 한 사람이 하루 가까이 이탈하면, 남은 사람에게 더 큰 부하가 걸린다.
따라서 자주 교대하는 게 좋다.
아플 때까지 버티지 말고 생생하다 싶을 때 연이어 교체해야 후유증이 없다.
… 그런데, 지금 무리하는 사람이 나왔다.
“가인아, 아리 저거 교체할 때 된 거 아니냐?”
“이미 30분은 초과했죠.”
“왜 저러지? 시간 감각을 잃었나?”
“으음…”
“저러다 기절하면 큰일인데. 강제로 떼어내면 더 위험하려나?”
평소라면 진작 교대했을 타이밍인데, 아리가 이 악물고 망원경에서 버티고 있네.
시간 감각을 잃었다?
망원경을 처음 사용하며 실수가 잦았던 301호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야.
지금의 아리가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것 같진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진행 중인 일은 본인이 꼭 끝까지 관측하고 싶은 건가?”
진철 형의 말에 나 역시 내심 동의했다.
“안 되겠다. 아리 저러다가 피 흘리면서 기절이라도 하면, 남은 사람이 너랑 나 둘뿐이잖냐. 그러니까 -”
강제로 떼어내자는 말이 나올 무렵.
“… 그럴 필요 없어. 이제 교대하자.”
아리가 망원경에서 내려왔다.
무리한 관측 때문에 아리의 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입가에는 피까지 머금은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다음 차례인 내가 망원경으로 가려는 순간.
“순서 바꾸자.”
“…”
“진철아, 나 가인이랑 잠깐 할 이야기 있어.”
형은 잠시 궁금하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둘이 회의 잘해라.”
— 털썩!
자연스럽게 둘만 남은 테이블.
아리는 말 없이 내 쪽을 지그시 바라보았는데, 평소처럼 가볍고 장난스러운 태도가 전혀 아니었다.
결국, 내 쪽에서 침묵을 깨트렸다.
“뭘 봤길래 이래? 상현 형이 갑자기 데이비드를 죽이기라도 했어?”
“… 아니. 상현이는 데이비드를 믿기로 한 것 같아.”
“그래?”
“저쪽도 잠시 휴식 중이야. 정확히는, 각자 편 갈라서 나뉜 채 회의 중이지.”
“우리랑 비슷하네. 그럴듯한 정보는 있었어?”
“여명의 아들을 지상에 묶어놓는 닻. 그걸 파괴하면 여명의 아들을 몰아낼 수 있다고 해. 물론, 데이비드의 주장일 뿐이지만.”
“닻? 그게 구체적으로 뭔데?”
“거기까진 데이비드 측에서 아직 공유하지 않고 있어. 극비사항이니, 마지막 순간에야 정체를 알려줄 모양이지.”
자연스럽게 오가는 302호 내부 진행에 관한 이야기.
닻에 관한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로웠지만…
나도, 아리도 알고 있는 사실.
아리는 이 말을 하려고 나와 진철 형의 순서를 바꾼 게 아니다.
“…”
“…”
계속해서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붉은 눈.
분명 아리에게 통찰과 같은 이능은 없지만, ‘경험’이 있었다.
지금의 아리는 정말 침묵하는 자 같았다.
“… 사람의 성품이란 동전의 양면과 같지.”
뜬금없이 시작된 이야기.
“누군가의 장단점은 많은 경우, 단 하나의 기질에서 발현된 것일 수 있어.”
“…”
“어릴 때부터 특출난 학업 능력을 보였고, 명문대 진학 및 졸업한 끝에 관리국에 취직한 엘리트들. 그들은 분명 우수한 인적 자원이지만, 단점도 있어. 상관의 광기 어린 미친 명령에도 의문 없이 복종하곤 하거든. 왜 이럴까?”
공부 잘해서 관리국에 취직한 엘리트들이 상관의 광기에 쉽게 휩쓸리는 이유.
앞서 언급한 아리의 ‘동전의 양면’ 비유를 떠올리니, 금방 답이 떠올랐다.
“윗사람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성향이 있어서?”
“어릴 때는 그 성향이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게 했을 거야. 윗사람 말을 충실히 따르며 훌륭한 성과를 냈지. 그러다가 관리국에 취직하니, 직장에도 윗사람이 있네? 의심 없이 따라야겠지?”
“…”
“한 사업가가 있었어. 그는 안정적인 현금 창출이나 실적 유지보다는 황당할 정도의 도전적인 사업에 관심이 많았지. 그래, 어떤 의미에선 제법 어린애 같은 사람이었어.”
“…”
“이런 성향의 사업가 대다수는 처참하게 실패할 거야. 하지만, 특출난 재능으로 성공한 단 한 명은 화성에 로켓을 쏘지.”
10대 소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도전적이고 몽상적인 기질.
이런 성향의 사업가 대다수는 실패하지만, 운명이 택한 단 한 명은 화성에 로켓을 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빛과 어둠을 가진 사람.
어쩌면, 그 양면은 단 하나의 기질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아리의 붉은 눈동자가 내 쪽으로 조금 더 다가왔다.
“… 공감 능력이 지극히 떨어지는 악몽 같은 성품. 하늘 아래 오직 내 뜻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오만한 자기 확신.”
“…”
“이런 불길한 유전인자가 인류사에 꾸준히 전해 내려온 이유는 뭘까?”
“…”
“동전의 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지. 감정과 양심에 구애받지 않는 합리성.”
“…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가장 지혜로운 사람도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것, 바로 자기 자신이야. 네가 너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길 바라. 네게 주어진 동전의 양면을 이해한다면, 최소한 후회할 일은 없을 테니까.”
“글쎄, 살면서 딱히 후회한 적은 없었는데.”
“지금까지는 그랬지. 앞으로는 모르는 거야.”
곧, 아리는 빙그레 웃었다.
입가의 미소에는 아리 특유의 장난기가 돌아와 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눈을 떼기 힘들었다.
“호텔은 내게 요람이자 고향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장소지. 하지만, 이번에는 흔치 않게도 호텔이 숨긴 비밀 하나를 깨달은 것 같아.”
“뭐?”
“호텔이 널 위해 준비한 마지막 방 말이야. 의도를 알 것 같네.”
“그게 무슨 말이지?”
아리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대화가 이 순간을 위한 빌드업이었던 것처럼.
“비밀이야! 너도 당해 봐야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