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76)
괴담 호텔 탈출기 776화(775/794)
776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42)
— 김상현
의견을 나누기 위해 차로 돌아왔다.
은솔 양은 여전히 기절한 상태였는데, 이래서야 깨어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몸이 점차 기괴하게 변하고 있으니, 깨어나면 그것 나름대로 문제겠지만 말이지.
“상황 정리 좀 하자.”
묵성 요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럽시다. 주변에 사람은 없으니까.”
“첫째, 데이비드 그놈이 여명의 아들을 배신한 이유.”
우리가 가장 의심했던 포인트가 바로 이 부분이다.
데이비드는 정말 사악한 신앙을 버리고 인류의 편에 섰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류의 편에 선 게 맞는 것 같다.
다만, 이유가 좀 당황스러웠다.
“태초에 죽음으로 인류를 낳은 위대한 자가 있으니, 반고라 한다. 따라서, 인간은 곧 반고의 파편이다.”
“그렇지요.”
“사람의 혼을 모으면 방주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태어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애초에 쪼개지기 전에는 위대한 자였으니, 합치면 다시 위대한 자로 돌아가는 것.”
신기한 이야기였다.
“태고의 기록에서 이와 같은 신비로운 지식을 얻은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세상 어딘가엔 인류를 잡아먹고 본인이 반고가 되려는 위대한 자가 있겠구나!”
“그게 여명의 아들이다… 라는 게 데이비드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중간의 낙원은 인간을 잡아먹기 전, 색을 일치하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했지.”
“그렇지요.”
태고의 기록을 얻은 후, 데이비드는 여명의 아들을 이렇게 해석했다.
사람의 혼을 모아 반고가 되려는 자.
종교를 만든 건 그저 ‘색을 일치하는 과정’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잡아먹는 게 목적이다.
데이비드의 가설에 딱 맞는 존재가 실제로 있긴 했다.
“인간의 혼을 모아 종교, 세뇌 등으로 자아를 균질화해 색을 일치하고, 싹 흡수해서 격을 올린다. 이거 딱 달 아니냐?”
“그렇지요.”
데이비드는 여명의 아들을 달과 동일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죄수가 보인 모든 모습을 인류를 잡아먹기 위한 의태로 해석했다.
여기까지 깨달았을 때, 우리는 헛웃음 나오는 결론에 도달했다.
데이비드 이 인간, 크게 착각하고 있구나.
“그 자식,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
“전혀 다른 존재인 여명의 아들의 행동 원리를 달처럼 해석하고 있잖아? 바보인가?”
묵성 요원의 냉소적인 말에 엘레나가 조심스레 답했다.
“관리국은 오랫동안 달과 맞서왔으니까요. 그래서, 달에 대한 두려움을 여명의 아들에게 투영한 게 아닐까요?”
일리 있는 해석이다.
여기에 내 의견을 한 줄 덧붙였다.
“여명의 아들을 믿으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 불안감이 있었을 겁니다.”
“그 불안감을 태고의 기록이 쿡 찔러서 자극했고?”
“그렇지요.”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 후, 엘레나 양이 중얼거렸다.
“뭐랄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무슨 생각 말이냐?”
“데이비드가 막 거창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했으면, 오히려 의심스러웠을 것 같다.”
“…”
“그런데, 진상을 아는 우리가 보기엔 단순 착각에 불과한 우스운 소리를 하니까…”
“오히려 믿음이 간다?”
“그렇지 않아요?”
솔직히, 나도 심정적으로 엘레나 양의 말이 이해가 갔다.
묵성 요원이 가볍게 웃으며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큭!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둘째, 닻의 정체.”
여명의 아들은 가만두어도 천상에 이끌리는 존재이며, 그를 하계에 묶어두기 위해선 닻이 필요하다.
‘닻’의 정체란 무엇인가?
데이비드는 위 정보를 우리에게 숨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우리가 아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닻 말이다, 아무래도 황혼의 깃털 말하는 것 같지?”
“틀림없습니다. 데이비드가 단어만 바꿔서 말한 겁니다.”
자연스럽게 가인 군이 예전에 슬쩍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예전에 가인 군이 했던 말이 기억나는군요. 저주의 방을 하나의 시나리오 혹은 극이라고 치면, 후반부에 갑자기 단 한 번도 언급된 적 없는 무언가가 튀어나올 리 없다고 했었지요.”
엘레나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걸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해요. 요즘 드라마에서 그런 거 튀어나오면 욕 많이 먹을걸요? 복선이 있어야지.”
묵성 요원이 말을 이어받았다.
“닻이란 곧 황혼의 깃털이었어. 즉, 우리는 황혼의 깃털이 정확히 어떤 역할인지 알게 된 셈이다.”
“타임라인을 한번 정리해 봅시다. 내 기준 최초의 루프, 관리국은 여명의 아들을 불러내기 위한 마도 의식을 준비했습니다. 이게 플랜 A입니다.”
“실패했지. 상현이 네 녀석이 크게 활약했으니까. 새삼스럽지만, 이렇게 말하니 의사 양반은 진짜 세상을 구한 영웅이신데?”
“여기 세상 한번 안 구해본 사람 있습니까? 그게 뭐 별거라고.”
“우와… 이렇게 말하니까 우리 진짜 대단한 사람들 같아요!”
“야, 우리 진짜 대단한 거 맞아!”
“진짜요?”
“으흠! 농담 그만하고 집중합시다. 플랜 A가 실패한 후, 관리국은 플랜 B를 준비했습니다.”
구원파가 여명의 아들을 불러내기 위해 준비한 두 번째 계획.
“황혼의 깃털을 닻으로 삼아 여명의 아들을 지상에 묶는 것. 이게 바로 플랜 B 였던 겁니다.”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래서 가인 군이 황혼의 깃털을 보자마자 302호의 키 아이템이라고 느꼈네요. 역시 감도 참 좋아.”
“깃털을 우리가 얻거나 파괴하면, 여명의 아들을 다시 머나먼 영역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겁니다.”
“여명의 아들이 깃털을 얻으면, 거기서 승부가 끝나고요.”
새롭게 얻은 정보와 이미 알고 있던 정보를 조합해 여기까지 도달했다.
…
하지만, 이다음부터가 문제다.
“으흠… 여기까진 이해했는데, 데이비드 놈이 괴상한 소릴 했단 말이지.”
데이비드가 꺼낸 이상한 이야기.
“과거, 데이비드가 구원파를 배신할 때 황혼의 깃털을 훔쳐서 달아났다고 한다.”
데이비드 본인은 ‘닻’을 훔쳐냈다고 했지만, 닻이 곧 황혼의 깃털이니 같은 표현이다.
“… 그리고, 깃털을 가장 안전한 곳에 숨겼다고 했지.”
데이비드는 어디에 숨겼는지까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장소를 알고 있다.
황혼의 깃털은 멋진 신세계에 있다.
“한데, 여기까지 듣다가 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깃털을 왜 숨겼지? 파괴하지 않고?”
묵성 요원이 품은 의문.
깃털을 파괴하면 여명의 아들은 지상에 개입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순수파로선 깃털을 얻은 시점에서 파괴하면 바로 승리인 셈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데이비드의 답은 지극히 명쾌했다.
*
“이해가 안 되는데, 네 말대로면 닻이 이미 너희 손에 있다는 소리 아니냐?”
“그렇게 볼 수 있겠지.”
“왜 그걸 그냥 숨겨둬? 파괴하지 않고?”
“파괴할 수 없었으니까.”
*
“깃털을 파괴할 수 없었다…”
“이 말이 이해가 가냐?”
묵성 요원이 데이비드의 말을 해괴하게 여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2회차 후반, 천사의 힘을 자각한 소연은 깃털을 너무나 쉽게 파괴했기 때문이다.
“소연이 걔는 손가락 까딱해서 바로 파괴했잖아. 딱히 거창한 파괴 의식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
여명의 아들은 천상에서 떨어진 존재이기에 가만히 있어도 천상에 이끌린다.
따라서 죄수를 현실에 묶어두기 위한 닻이 필요하며, 이것이 바로 황혼의 깃털이다.
여명의 아들을 배신할 당시, 데이비드는 황혼의 깃털을 챙겨서 도주했다.
덕분에 순수파는 황혼의 깃털을 획득했지만, 파괴할 수 없었기에 멋진 신세계에 숨겼다고 한다.
그런데, 두 번째 시도 후반 소연은 손가락 하나 까딱해서 깃털을 없애버렸다.
무언가 알 듯 말 듯 한 느낌이 머리를 간질이던 시점, 엘레나 양이 침묵을 깨트렸다.
“태고의 기록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위대한 자의 일부였다고 하잖아요?”
“그렇지. 처음 듣는 이야기긴 하다만.”
“그러니까, 신적인 존재의 파편은 그 자체에 지성이 있다는 거죠. 인간이 바로 그 증거고.”
“그래서?”
“… 황혼의 깃털은 엄청난 신물이잖아요. 죄수의 많은 힘이 담겨있을 것 같은데.”
“그렇 – 허?”
이쯤에서 엘레나가 하려는 말을 묵성 요원이 이해했다.
“그러니까, 황혼의 깃털 자체가 지성체다?”
“정확히는, 소연이다.”
“소연이가 깃털을 얻은 게 아니라, 소연이 본인이 깃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많은 의문이 풀리지 않나요?”
“…”
과연, 이렇게 생각하니 302호의 여러 의문이 단박에 풀렸다.
종말 후, 소연이 다른 수호자를 능가하는 여덟 날개의 천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애초에 태생부터 위대한 자의 파편이니까.
소연이 멋진 신세계의 루프를 무시하고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이유?
멋진 신세계보다 격이 더 높은 존재니까.
순수파가 깃털을 손에 넣고도 파괴하지 못한 이유?
파괴하려고 하면, 여덟 날개의 천사로 각성한다고 생각해 보자.
가인 군도 한번 싸워보고 절대 못 이기겠다며 포기한 상대인데, 순수파 ‘따위’가 파괴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순수파와 달리 소연은 너무나 쉽게 깃털을 파괴할 수 있는 이유.
본인에게야 자살이니 가능한 일이다.
천천히 302호의 큰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묵성 요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 이쯤 이해하고 든 생각인데, 302호 해결법 답 나온 거 아니냐?”
“말해보시죠.”
“… 지금쯤 승엽이가 소연이 또 꼬셨겠지?”
“아마도.”
“그러면, 그 애한테 302호의 진상을 알려주면 되는 것 아니냐? 그러면 -”
엘레나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여명의 아들이 전 회차에 한 짓이 바로 이거였네요? 진상을 소연이에게 알려주기.”
“… 그렇게 하면, 그 여자애는 자살하더라.”
“소연이가 자살해도 실패했잖아요!”
“두 번째 시도 때 실패한 건 극장이 파괴됐기 때문이잖냐. 여명의 아들 추방 자체는 성공했고.”
“요번엔 극장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알려주자?”
“그거지.”
소연이 곧 깃털이라면, 소연의 자살은 곧 깃털의 파괴다.
이는 곧 여명의 아들의 패배를 말한다.
두 번째 시도 때 실제로 위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
다만, 극장이 파괴되었기에 전혀 다른 유형의 종말이 발생했을 뿐.
그러니, 이번엔 극장을 파괴하지 않고 소연의 자살을 유도하자는 계획.
“의사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말하자.
“요원님. 그러니까, 요원님 말을 요약하면 이거군요.”
“음?”
“10대 소녀의 자아를 가진 신의 파편에게 알려줘라. 네 아버지와 연인은 불구대천의 원수이니,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
“연인을 지키고 싶다면, 네가 죽어서 아버지를 천상으로 쫓아내야 한다. 그러니, 사랑을 위해 자결해라.”
“…”
“농담으로도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긴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 야, 우리가 언제는 꼭 도덕적인 결말만 냈냐?”
“적어도 목표는 해피엔딩으로 잡아야지요. 게다가, 이 세상은 저와 승엽 군이 살아온 고향인데…”
“…”
“저 하늘에 조물주가 있다면, 참혹한 비극을 적절한 결말로 준비하진 않았을 겁니다.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묵성 요원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 의사 양반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리 생각하신다면 다행 -”
“왜 나는 너처럼 생각하지 못했을까…”
“예?”
“하다 보면 일이 잘 안 풀릴 수 있겠지. 꼬이고 꼬이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최소한 목표는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향으로 짰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구나. 이래서 벌을 받았나 보다.”
“하, 할아버님?”
“하핫! 나도 참, 쓸데없는 소리가 많군. 어허! 저기 양복 입은 놈들 슬슬 보인다.”
“데이비드의 수하들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구하러 갑시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한 가지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여명의 아들이 숨겨둔 속임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