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77)
괴담 호텔 탈출기 777화(776/794)
777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43)
— 박승엽
여명의 아들과 얽힌 신물, 황혼의 깃털.
깃털의 소유자로 추정되는 의문의 소녀, 유소연.
우리는 소연이에게 깃털과 관련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
이걸 위해 소연이에게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지시했는데, 근처에 숨어있던 송이 누나가 희한한 환영 문자를 보냈다.
가까이서 보니까 이 애, 뭔가 이상한데. 왜 이걸 전에는 몰랐지?
승엽아, 소연이의 기척이 느껴지니?
“…”
소연이의 기척이 느껴지냐니?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 아니 환영 문자였다.
기척이 너무나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척이란 결국 눈에 보이냐, 귀에 들리냐의 문제 아니야?
아, 피부로 느끼는 공기 움직임 같은 것도 있긴 하겠네.
어쨌든, 기척이란 결국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면 있는 것.
새하얀 목선, 어깨 위에서 찰랑이는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
소연이의 모습은 너무 잘 보였다.
“… 뭘 그리 빤히 보는 거야?”
살짝 짜증 난 목소리도 또렷이 들렸다.
“뭐야? 왜 손가락으로 찔러?”
“만져지나 확인하려고.”
“바보야?”
“그러게.”
눌러보니 손가락이 쑥쑥 들어가기도 했다.
송이 누나가 보낸 환영 문자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점.
소연이가 뭔가 결정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 생각하다가 느낀 건데, 내가 루프 한 횟수는 진짜 엄청 많아!”
“그렇겠지.”
반포동 아이들이 멋진 신세계에 납치된 시기가 거의 10년 전이라고 한다.
소연이가 이곳에 갇혀있던 시간도 그 정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가만히 서서 생각해서는 모를 것 같아.”
“가만히 서서 생각해서는 모르겠다고? 그러면 돌아다니자는 말이지?”
“응!”
소연이가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은 우리가 최초의 소원을 자각하는 것과 비슷해.
이렇게 생각하면, 기억에 남은 중요한 장소를 돌아다니는 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 날짜가 흐르기 시작했다.
*
첫날, 소연이가 찾은 장소는 육교 위였다.
“아침마다 여기서 가만 서서 도로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어.”
“왜?”
“차들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들 되게 열심히 산다 싶었거든.”
“그럼 좋은 거 아니야?”
“… 아무 의미 없는 노력인데?”
순간, 얘가 무슨 말 하나 싶어 당황했다.
“뭐?”
“그렇잖아. 이 세상은 일주일 단위로 끊임없이 순환해. 다음 주라는 건 없다고.”
“어 -”
“회사는 왜 가? 일은 왜 해? 어차피 결과를 보기도 전에 전부 초기화되는 건데… 열심히 살아봐야 아무 의미 없는데, 다들 되게 열심히 산다 싶었지.”
“… 노력하는 과,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 -”
“진짜 그렇게 생각해?”
“…”
“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사람들이 일주일마다 세상이 초기화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지금과 같은 일상을 유지할까?
아닐 것 같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우스워 보였어. 바보 같고, 가짜 사람 같고. 나만 진짜 같고.”
“…”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
“나도 비슷하다는 걸 알았어. 아무 의미 없는 노력을 엄청 열심히 했으니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던 걸까?”
“…”
“이런 게 좀 무섭고 슬펐어.”
이런 때는 내가 말주변이 없는 게 아쉬웠다.
가인 형이라면 뭔가 멋있는 말로 얘를 위로해 줬을 것 같은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말없이 20분쯤 흘렀을 때, 소연이가 픽 웃었다.
“고마워.”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도움이 됐어?
“계속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뭔가 더 떠오르진 않네. 내일 또 해보자.”
“그, 그래. 내일 더 해보자.”
첫날은 이 정도로 끝났다.
*
“육교에선 딱히 별 성과는 없었어요. 아니, 없었어. 소연이가 루프를 반복하며 느낀 두려움이나 슬픔? 이런 이야기만 좀 들은 것 같은데.”
“그 정도면 성과 있었네.”
“어? 진짜?”
“친해졌잖아. 어차피 하루 이틀 내로 결말 봐야 하는 그런 방 아니니까, 침착하게 해.”
*
사랑과 친함은 동의어가 아니며, 나와 소연이는 전혀 친한 사이가 아니다.
송이 누나가 내게 했던 이야기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젠 슬슬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육교와 비슷한 느낌의 장소를 서너 번 더 겪은 후, 나와 소연이가 친해졌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 소연이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이 반복되고 있음을 깨달은 과거의 내가 온갖 사고를 쳤다고 한다.
“저기, 저기쯤에서 네가 수학 선생님에게 물풍선을 던졌어.”
“야! 야! 진짜 뻥 치지 마!”
“뻥 아닌데? 네 입으로 다음 주면 까먹으니까 문제없다면서.”
“기억 못 한다고 가짜 과거 지어내지 말라고.”
“말해줘도 안 믿을 거면, 내 예전 기억을 떠올려 보라는 이야기는 왜 한 건데?”
“으윽!”
계속 여기선 물풍선을 던졌고, 저기선 의자로 애들 머리를 후려쳤고 – 아니 이건 진짜 뻥 아님?
“와! 이, 이건 진짜 거짓말이다!”
“또 안 믿네. 너는 잊어도, 나는 하나도 잊지 않았어.”
“… 소연아.”
“응?”
“혹시, ‘깃털’이나 ‘천사’ 같은 거 들어봤어?”
소연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하늘의 비둘기를 가리켰다.
“저기 깃털 있네. 천사라면… 아, 혹시 내가 천사 같다고 말하려는 거야? 너무 진부한 고백 같아.”
“으악!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둘째 날, 셋째 날이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
“기억을 떠올리긴 하는데… 의미 있는 기억인지는 모르겠어.”
“황혼의 깃털이라는 키워드는 언급해 봤어?”
“응. 해봤는데, 진짜 아예 모르는 것 같아. 각성 전에는 여명의 아들이니 뭐니 하는 건 아예 모르나 봐.”
“흐음…”
“…”
“아까 너랑 소연이 다니는 거 봤는데, 데이트가 따로 없더라.”
“훗!”
“… 그 웃음은 뭐니?”
“하하! 302호 시작 전에 아리 누나가 했던 말 생각나? 뭐? 여자친구가 있을 리 없어? 하, 누나도 참… 내가 많이 봐줬다.”
“…”
“아리누나 주제에 뭘 안다고! 하… 내가 연애라는 게 뭔지 알려줘? 사랑이란 말이야 -“
— 따악!
“으악!”
“… 302호 최고의 미스터리가 뭔지 알았어.”
“응?”
“소연이가 널 좋아한다는 사실 그 자체야.”
“…”
“보면 볼수록 말도 안 되네. 너, 최면술이라도 익힌 거 아니지?”
“그건 누나한테 있는 거죠… 송이 누나, 사랑받는 자 동료에게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 -”
— 따악!
“조용히 좀 해. 야, 어차피 데이트할 거면, 내일은 운동장에 데려가 봐.”
“운동장?”
“거기서 네가 처음으로 소연이에게 고백한 것 같던데. 아니야?”
“…”
*
다음 날 오후, 소연이를 데리고 운동장에 갔다.
운동장에 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소연이는 이미 싱글벙글이었는데, 날 놀릴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찬 것 같았다.
과연, 도착하자마자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알 수 없는 과거가 덮쳐왔다.
“여기, 여기였어. 승엽이 네가 다소곳이 몸을 웅크린 채 -”
“뻐, 뻥 치지 마! 누가 고백할 때 몸을 웅크려?”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예전의 넌 맨날 몸을 움츠리고 있었는걸. 어쨌든, 여기쯤에서 ‘소연아, 나, 나, 나, 나 -’”
“나나나만 몇 번을 하는 거야?”
“나, 나, 나랑 사, 사, 사 -”
“이번엔 사사사야?”
“사귀어 줄 수 있어? 했지. 그 순간 근처의 애들 다 웃고, 너는 얼굴 새빨개져서 덜덜 떨고 -”
… 견디기 힘들었다.
“… 그래서 시원하게 찼어?”
“응. 솔직히, 잘 알지도 못하는 애가 갑자기 고백하면 차는 게 맞잖아. 안 그래?”
“같은 학교 다니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애라니…”
“같은 반이면 모를까, 같은 학교라고 어떻게 다 알아.”
이건 또 맞는 말이긴 하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고백한 거야? 상식적으로, 좀 친해진 다음에 고백하는 게 정석 아니야?”
“…”
“어떻게 관계의 시작부터 고백할 생각을 하는거야?”
괴로웠다.
눈앞에서 소연이가 캐묻는 것도 괴로웠고, 저쪽 연단 뒤에 숨어서 엿듣고 있는 송이 누나가 보내는 메시지도 끔찍했다.
어제 누나한테 뭐라고 했니?
연애라는 게 뭔지 알려주겠다고?
이거, 아리랑 한번 진솔한 대화를 나눠봐야겠네!
“제발 그러지 마세요…”
“뭐?”
“너한테 한 말 아니야.”
“여기 나밖에 없는데?”
“어,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내 과거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고!”
“그런가?”
“그, 그런가는 무슨 그런가야? 넌 며칠째 내 이야기만 하고 있잖아!”
“…”
“우리가 알아내려는 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소연이 네 이야기야. 네가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른지를 알아내려는 거니까.”
“나, 방금 네 말 듣고 뭔가 이상한 거 떠올랐어.”
“음? 뭐가 생각났는데?”
“… 너한테 처음 고백받았을 때 무슨 생각 했는지를 곰곰이 떠올려 봤거든.”
“그래서?”
소연이의 다음 말은 살짝 흥미로웠다.
“… 역시. 라고, 생각했어.”
“응?”
“역시라고 생각했다고. 놀라거나 당황한 게 아니라, 네가 고백할 줄 알았던 것 같아.”
두 번째, 세 번째 고백부터야 내 고백을 예측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데, 소연이의 기억에 따르면 ‘첫 고백’부터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
“그게 무슨 말이야?”
“…”
소녀는 한참 동안 알쏭달쏭한 표정만 지을 뿐, 답을 알아내지 못했다.
*
“이건 좀 재밌네. 첫 고백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본인 말로는 그렇다네요.”
“단순히 생각하면 네 행동이 뻔히 보였을지도. 남자애가 얼굴 붉힌 채 엉거주춤 다가오면 예쁜 여자애들 눈에는 딱 보여. 고백 한두 번 받아보는 거 아니니까.”
“… 그거, 누나 이야기인가요?”
“엣헴! 그런데, 이런 뻔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
“…”
“나도 그 여자애 말 듣고 있었거든?”
“그렇죠.”
“살짝 운명론적인 말투였어.”
“운명론? 가인 형이 무게 잡을 때 쓰는 말투?”
“… 그런 건 아니고.”
“으으… 뭔가 알 듯 말 듯 하네요.”
“…”
“어떻게 할까요? 아, 반말해야 한다고 했는데 계속 까먹네.”
“승엽아.”
“네?”
“너, 내일 그 여자애 집에 한번 가봐.”
“으익! 가, 갑자기요?”
“세상이 일주일 단위로 루프 한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깨달은 장소가 어딜까?”
“어…”
“집이지. 월요일 아침에 깨어나서 달력 보고 이게 뭐지? 어제는 7일이었는데, 오늘은 왜 다시 1일? 하면서 깨달았을 거야.”
“그, 그런가?”
“걔 집에 가보자. 그리고…”
“그리고?”
“이번에는 충격요법을 써야겠어.”
*
처음으로 소연이 부모님을 만나 뵈었다.
“어머나, 소연이 친구니?”
“스, 승엽이라고 합니다.”
어머, 어머를 반복하며 놀랐다는 듯 입을 가리는 넉살 좋은 중년 여인.
표정만 봐도 어떤 생각 중인지 뻔히 보였다.
‘우리 딸이 다 컸구나! 집에 남자친구를 데려오다니!’ 이런 생각 중인 게 아닐까?
“어머! 어머! 오래전부터 소연이에게 네 이야기 많이 들었단다!”
하하! 소연이 얘도 참, 부모님에게 예전부터 내 이야기를 했다고?
“엄마!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물론, 소연이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손을 저었다.
“이, 이상한 생각 하지 마세요! 그냥, 집에서 뭐 챙겨갈 게 있어서 왔다니까요?”
“알았어~ 알았어~ 믿을게.”
“하하, 당신도 참. 장난치지 말고 이리 오라고.”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쾌활한 남성의 목소리.
아마 소연이 아버님 같은데, 은근히 장난기 어린 소연이 성격이 누굴 닮았는지 알 것 같았다.
— 쾅!
방에 들어오자마자 소연이가 방문을 강하게 닫았다.
“아 진짜! 이래서 집에 누구 데려오고 싶진 않았는데!”
“…”
“너 때문이야~! 왜 갑자기 집에 오자고 한 거냐고.”
“이유는 말했잖아. 네가 -”
“처음으로 이상함을 깨달은 장소는 집일 거다?”
“응.”
“… 그래도 너까지 올 필요는 없잖아.”
“너 혼자서는 깨닫지 못했으니, 내가 도와주면 -”
“알았어, 알았어. 조용히 해.”
부끄러움과 약간의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방 내부를 여기저기 살피는 소녀.
“만지지 마!”
“나, 그냥 가만히 있는 중인데.”
“어, 어딜 보는 거야? 왜, 왜 시선이 그리로 가!”
“나 그냥 공기를 보고 있는데.”
“뻥 치지 마.”
여자애들 방이 다 그렇겠지만, 되게 화사한 분위기의 방이었다.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부모님.
화사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집.
그림처럼 행복한 가정.
이 정도 생각 중인 시점, 소연이는 침대 위에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 중이었다.
루프를 인지한 최초의 월요일을 떠올리려는 건가?
“뭔가 느껴져?”
“…”
“모든 게 시작된 최초의 월요일, 잠에서 깨어나 핸드폰을 켠다. 날짜를 보니 이상함을 느끼고 -”
“소설 쓰지 말고 조용히 좀 해봐. 아무 생각 안 난단 말이야.”
“아무 생각 안 난다고?”
“응. 기억나는 게 전혀 없어.”
“으음…”
“…”
“이상하네. 학교 주변을 돌아다닐 땐 이런저런 기억 많이 떠올렸잖아.”
“… 그치만,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 걸 어떡해.”
루프를 처음으로 인지한 장소는 본인 집 침대일 것이다.
송이 누나가 세운 가설인데, 나는 물론이고 소연이도 꽤 설득력 있게 여긴 것 같다.
그러니까 쪽팔림을 감수하면서까지 날 본인 방에까지 들어오게 했겠지.
기대가 크면 실망 또한 큰 법.
소연이의 표정이 어두워지니,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제저녁에 송이 누나랑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
“이번에는 충격요법을 써야겠어.”
“충격요법이라뇨?”
“소연이가 집에서도 뭔가를 떠올리지 못하면, 이렇게 이야기해 봐.”
*
“… 소연아.”
“응?”
“혹시, 이런 생각 해본 적 없어?”
“이런 생각이라니?”
천천히 시선을 움직여 소녀의 화사한 방을 살폈다.
또, 딸과 딸이 데려온 남자친구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떠올리고 있을 사람들도 생각했다.
“… 이 모든 게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응?”
“네 입으로 말했잖아? 이 세상은 한 편의 영화 같다고…”
“…”
“너와 내가 등장인물이라면,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거야.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네 부모님 역할을 배정받은 배우 -”
바로 그 순간.
소연이의 표정이 얼음처럼 굳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뭔가 깨달았어?”
“…”
대답 대신,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소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풍처럼 들끓는 감정의 흐름이 느껴졌다.
“괜찮아? 뭔가 깨달았다면 -”
“나, 나…”
“응?”
“자,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여기 있어.”
— 쿵!
갑자기 화장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띵띵띵 하는 도어벨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다.
화장실 문이 아니라, 출입문 말이다.
“어엇! 소연아!”
놀라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 활짝 열린 집 문이 보였다.
그 잠깐 사이에 소연이가 날 두고 도망간 것이다!
이게 뭐야? 대체 뭐야?
일단, 소연이를 쫓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밖으로 나섰을 때 –
— 덥석!
익숙한 손이 내 어깨를 짚었다.
송이 누나였다.
“누, 누나! 소연이가 갑자기 밖으로 -”
“조용.”
“예?”
송이 누나의 표정은 창백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여자애 부모님이랑 같이 있었지?”
“네, 네.”
“무슨 이야기 했어?”
“어, 소연이 엄마는 절 소연이 남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 잘 왔다고 환영해 주셨고 -”
“그리고?”
“오래전부터 소연이에게 제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
“말이 안 되네.”
“예?”
“일주일 단위로 리셋되는 세상인데, 오래전부터 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호텔은 적절한 위치에 해당 참가자를 배치하곤 하지… 이래서 내가 멋진 신세계에 배치된 걸까?”
“무슨 말이죠?”
“… 다양한 관점을 얻은 후, 기묘한 감각이 생겼어. 시각, 청각, 후각 – 지성체가 인지하는 감각들. 이런 것들이 내게는 마치 무형의 정보가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져.”
“예?”
“유산이 날 바꿔 가는 과정일지도. 쉽게 말하면, 가짜 감각을 무시하고 진짜 정보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그, 그리고?”
누나가 더없이 또렷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아까부터 팔찌는 내게 일관된 신호를 주고 있어.”
“… 그게 뭐죠?”
“이 집에는 지금 아무도 없어. 네가 나온 순간부터 빈집이야.”
“…”
“다시 문 열어봐.”
— 끼익!
다시금 열린 문.
집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사하게 웃으며 날 맞이하던 소연이의 어머님도, 장난치지 말라며 쾌활하게 말하던 소연이의 아버님도…
그 어떤 사람도 없었다.
“…”
아찔함을 느끼며 멈춰 섰을 때, 송이 누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부모도, 집도, 본인조차도… 한여름의 신기루 같은 여자애구나.”
“…”
“슬슬 쫓아가자. 느낌상, 곧 네 전여친의 모든 비밀이 밝혀질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