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8)
77화 – 선택의 시간, 아리가 겪은 일 (1)
– 차진철
정신을 차리자, 마치 콜로세움이 연상되는 거대한 경기장 안에 진철, 엘레나, 묵성 세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선택의 시간’?
처음 듣는 단어가 나왔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다. 유산을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여럿인데, 유산은 하나이니 한 명을 고르겠다는 말.
알림 대로라면, 유산을 얻을 자격은 두 가지 조건으로 결정되는 듯하다.
1.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을 것
2. 최종 결전에 기여했을 것
첫 번째 조건으로 인해 이은솔, 박승엽, 유송이가 탈락.
두 번째 조건으로 인해 김아리가 탈락.
가인이는 왜 탈락이지?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못 버티고 죽었나?
아니면 ‘최종 결전’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병원에 있었기 때문인가?
끝나놓고 보면, 101호의 해결에 있어서 가장 큰 난관은 ‘싸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싸움’ 자체는 쉬운 편이었다고 본다.
방송국 직원들은 결국은 평범한 인간이고, 간호사들도 외형이 끔찍할 뿐 초월적인 강함을 가지지 못했다.
병실 내부에 있던 거인도 총으로 충분히 처리할만한 존재였다.
내 실수로 5회차까지 와서 시작하자마자 선공을 당한 데다가, 저주까지 강해져서 고전했을 뿐이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나와 송이 둘이서도 깰 수 있었다. 엘레나는 혼자서도 깼을 것 같다. 이것 말고도 다양한 해결법이 떠오른다.
가장 큰 난관은 ‘올바른 장소’를 찾아내는 것 그 자체였다.
가족을 넘어서 ‘방송국’을 찾아내는 것. ‘방송국’을 넘어서 ‘병원’을 찾아내는 것.
…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장소는 가인이가 다 찾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쓰러졌다고 탈락이라니.
다음 기회가 있겠지.
102호도 있고, 104호도 있고, 관문방도 있다. 아직 많이 남았으니 곧 얻겠지.
가인이 생각은 이쯤 하자. 이제부터 내가 문제다.
경기장 중앙으로 나아갔다. 다른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
무언가 – 머리를 찌르듯이 들어오는 정보의 파도.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자열이 한가득 머리에 들어왔다.
이건 ‘이계의 별 조각’에 대한 정보다.
…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경기장 중앙에 도착했다. 묵성 어르신의 손에 총이 들려있었다.
총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걸 봤는지 어르신이 피식 웃으면서 총을 허리 쪽 주머니에 넣었다.
… 내가 아직도 ‘관리국’사람들에겐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했구나.
“자~ 수고들 했다! 이제 그놈의 보상을 얻을 시간이다. 그런데, 이 개새끼가 운영 중인 게 틀림없는 호텔은 기어이 우릴 싸움 붙일 생각인 모양이구나. 야! 멧돼지 넌 어떻게 생각하냐?
“싸움이라니! 우리가 원시인입니까? 그런 식으로 유산 주인을 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너는 뭘 쫄아서 뒤로 물러서냐?”
“쫄았다니 무슨 말입니까? 참 나! 노망든 할배가 또 헛소리하네.”
“뭐, 내가 잘못 본 걸로 하자. 그건 그렇다 치고 너희들, 방금 머릿속에 들어온 내용 이해했냐?”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아마 유산의 기능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준 것 같네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엘레나도 나와 똑같이 느꼈음을 알았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가 나열된 기분입니다.”
어르신은 끄덕거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그럴 것 같았다. 너희가 멍청한 게 아니고, 일종의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정보다. 복잡하게 설명하면 한없이 복잡한 이야기지만 내가 최대한 간단히 알려주마.
‘이계의 별 조각’은 만물을 비틀어버리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난 처음에 무슨 정신을 오염시키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가 아니야.
별 조각은 ‘모든 것을’ 비튼다. 김상민 그놈의 병실이 무슨 외계행성처럼 변해있던 것도 별 조각의 힘이지.
‘모든 것’에는 당연히 사람의 정신이나 육체도 포함된다.
우리가 초기에 ‘정신이 비틀어지는 현상’ 위주로 경험한 까닭은 별 조각의 힘에 직접 노출된 게 아니라 ‘미디어’를 거쳐서 간접적으로 노출됐기 때문이다.
‘미디어’란 기본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니까, 별 조각의 힘도 정신을 비트는 식으로 작동한 거지.”
“세상을 비트는 물건이다. 대충 어마어마한 물건이라는 건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쓰는 거죠?”
“‘어떻게’를 우리가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냥 꺼내 들기만 하면 별 조각이 쉴 새 없이 주변을 비틀 테니까. 중요한 건 ‘누가’ 써야 하는가? 이 부분이지.”
“뭐, 지금 설명하는 것 보면 답 나온 게 아닙니까. 저나 엘레나는 대체 뭐 하는 물건인지 이해부터 못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이 얻어야 할 듯한데.”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네가 ‘별 조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알겠다. 딱 말해주마. 우리 중 이 물건에 가장 적합한 건 멧돼지 네놈이다.”
“예?”
“‘별 조각’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이 물건은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해. 물건을 사용하던 ‘김상민’의 꼬라지가 기억나냐?
제일 극심한 변형에 시달리고 있었지. 비트는 힘은 마치 방사능과 같다. 사방으로 끝없이 뻗치고, 당연히 사용자가 가장 심하게 노출된다.”
“아니! 그러면 대체 어떻게 씁니까?”
“그러니까 ‘비트는 힘’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얻어야지. ‘비트는 힘’에 정신과 육체 모두가 견딜 수 있는 사람.
정신은 문제 될 것 없다. 누구라도 송이나 아리의 도움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버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육체’가 견딜 수 있는 사람. 그건 우리 중에 너뿐이다.”
거기까지 말한 다음, 어르신은 상의를 벗었다.
…
호텔에서 쌓인 끔찍한 기억들. 또 추가됐구나.
5개? 6개? 여러 개의 ‘눈알’이 어르신 상반신에 여기저기 돋아있고, 세 개 이상의 혓바닥과 다수의 이빨이 흉측하게 자라났다.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고, 엘레나는 옆에서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가인이는 못 버티고 이미 죽은 모양이고, 송이도 팔이 괴물이 됐지. 나라고 다르겠냐? 엘레나야 ‘정의’를 쓴 이후로 저주의 면역을 얻었으니 괜찮았겠지만, 넌 어떻냐?”
혹시나 해서 내 상의도 벗어봤고, 엘레나가 뒤로 돌아선 사이에 바지도 벗으면서 전신을 확인했다. 살짝 검게 물든 부위, 비늘 비슷한 게 살짝 생긴 부위가 군데군데 있었다.
명백히 변화의 정도가 훨씬 약하다.
“역시나. 아까부터 움직임을 보고 짐작했다. 변형이 심해졌다면,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그렇게까지 움직임이 자유로울 수가 없다. 너는 변형 자체가 별로 없는 느낌이었거든.
네 몸은 ‘비틀림’에 대한 저항이 강하다. 아마도 축복 때문이겠지. 정신은 저항력이 전혀 없는 게 아쉽긴 하다만, 그 점은 동료에게 도움받아서 해결할 수 있지.”
“어르신보다는 제가 얻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해했습니다만, 엘레나도 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엘레나도 축복을 쓸 때는 정신과 육체 모두 강력한 저항력이 생기는 듯하던데요?”
“‘정의’가 발동했을 때만 그렇지. 그리고 ‘정의’가 발동했다면 엘레나는 이런 시한폭탄 같은 유산이 필요 없어. 충분히 강하니까.
엘레나에게 필요한 건 ‘정의’가 발동했을 때 ‘더 강하게 해줄 힘’이 아니라, ‘정의’가 발동하지 않았을 때 ‘빈틈을 메꿔 줄 힘’이다.
물론 당사자의 의견은 물어야겠지. 엘레나 양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저, 저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진철 씨가 얻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정리되는 분위기다.
유산 ‘이계의 별 조각’의 힘은 만물을 비트는 힘.
별 조각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정신과 육체를 비틀어서 망쳐버리는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지만,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한다.
따라서 ‘비트는 힘’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특수한 경우인 엘레나를 제외하면, 정신적으로 저항할 방법은 상태창, 팔찌, 아리의 피 등이 있다. 육체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그러므로 송이나 아리의 도움을 받은 나만이 이 유산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게 어르신의 판단이었다.
이해는 했지만, 페널티가 너무 강력한 유산이 아닌가? 팔찌와는 너무 다르다.
“왜 팔찌와 달리 이 유산의 페널티는 이렇게 심한겁니까?”
“내가 이 빌어먹을 호텔의 경영자도 아닌데 알겠냐? 다만 위력이라는 면에서 팔찌보다 더 뛰어난 점이 있긴 하지. 팔찌는 정신만 통제하는데, 별조각은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망치니까 위력은 더 뛰어난 것 아니냐. 사용자까지 같이 조져서 문제지.”
“그건 너무 심한 문제잖습니까.”
“네가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 잘 써야지.”
그 정도로 대화를 끝낸 후,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물러섰다.
경기장의 중앙에 별 조각이 나타났다.
“제가 집습니다?”
“이 새끼야! 괜히 아까워지려 한다! 빨리 안 잡고 뭐 하냐.”
별 조각을 잡아들었다.
싸움 한번 하지 않고 경기장이 무너졌다.
어찌 보면 유산을 얻은 것 이상으로, 호텔에서 대놓고 내분을 유도했는데 우리끼리 대화로 해결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끝없이 내부의 싸움을 유도하는 호텔.
어쩌면 호텔이 내리는 시련 중 가장 혹독한 것은 ‘저주의 방’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신이 몸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붕 떠올랐다.
?
어딘가에서 아득한 울음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
잘못 들은 것 같다. 호텔의 문이 나타났다.
101호에서의 기나긴 고통이 끝났다.
*
# 아리가 겪은 일(1)
– 김아리
“황소!”
엄마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와 ‘천진난만’이라는 단어를 엮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흔치 않을 텐데.
여러분~! 내가 사랑하는 동료들, 어쩌면 이 호텔을 구경 중이실지 모르는 위대한 분들?
“소음.”
혹시, 절 잊으신 건 아니죠?
흑발 적안. 그야말로 게임이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신비의 미소녀! 잊으시면 안 된답니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기묘한 가족과 사투를 벌이고, 두려운 방송국을 헤쳐 나가며 병원에 숨어있는 적을 찾아 나아가는 이 시국.
“음악~!”
저는 엄마랑 행복한 끝말잇기 중이랍니다.
“악티늄.”
“…”
또 제가 이긴 것 같네요. 이걸로 5전 5승~!
“엄마가 또 졌네? 방문은 못 열어줘.”
어린아이가 저주에 걸려서 내가 있는 방에 들어오면 위험한 상황.
어린아이를 상대로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건 교육상 좋지 못해요.
“다시! 다시 해~~!”
“좋아요.”
특히 그 아이가 손짓 한번에 집을 날려버릴 만큼 강하면 더더욱 좋지 못하답니다.
사실 그건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죠.
이럴 때는 간단한 놀이가 가장 효과적이랍니다. 아이들은 이런 걸 좋아해요.
“자동차!”
“차도.”
‘엄마가 끝말잇기를 이기면 들여보내 줄게~’
“도시락!”
“낙원.”
어떤가요? 전 이걸로 무난히 버티고 있답니다.
“원숭이!”
“이리듐.”
“…”
“엄마. 또 졌네?”
“치사해! 치사해!”
6전 6승! 끝말잇기 초고수 두둥등장!
모두가 험난한 고생 중인 듯합니다.
한 명이라도 편안하게 지내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분들이 쉬지 못하는 만큼, 제가 대신 잘 쉬겠습니다.
참고로 저도 아무 생각 없는 건 아니랍니다.
만약 오늘 밤까지도 동료들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전 방송국에 엄마랑 같이 갈 생각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엄마에게 밤에 방송국에 가자고 말도 해두었죠.
엄마가 가면 방송국이든 병원이든 문제는 전혀 없죠.
방송국 직원? 병원의 괴물 간호사? 엄마가 손가락 한번 튕겨서 날려버릴 수 있을 거예요. 참 쉽죠?
“백마!”
…
‘마그네슘’ 하면 이번엔 화내겠죠? 이번엔 조금 길게 해봐야겠네요.
101호에 다시 들어온 후로, 딱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답니다.
인터넷이든 TV든 외부와 소통할 방법이 없는 호텔에서 엄마는 어떻게 저주에 감염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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