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80)
괴담 호텔 탈출기 780화(779/794)
780화 – 최초의 소원, 박승엽 (1)
— 박승엽
넘쳐나는 정보로 가득한 영역.
내 정신은 기억의 바다를 하염없이 헤엄친다.
곧, 거대한 회의실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느낌상, 이건 내 기억이 아닌 것 같았다.
상황 이해를 돕기 위해 호텔이 추가한 ‘친절한 설명’에 가깝지 않을까?
*
“광신도들의 만행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만 32명의 숙련된 연구자가 살해당했지 뭡니까!”
“… 그동안은 그래도 의견이 다른 한 식구 대접이었는데, 이젠 완전히 적을 대하듯 하는군.”
“데이비드 경이 깃털을 탈취한 게 기점이었을 겁니다.”
점점 극단에 치닫는 구원파와 순수파의 갈등.
흑발과 백발이 뒤섞인 기이한 청년 – 데이비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그래서, 깃털을 여러분에게 바친 내 잘못이다? 도로 챙겨서 광신도들에게 가면 되나? 광신도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
“그, 그런 말은 아닙니다.”
“자, 자! 데이비드 경, 진정하시오. 아직은 위험 수위는 아닐 거요. 무엇보다, 광신도들은 깃털이 사람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으니.”
— 탁!
상석에 앉아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보고에 따르면, 깃털이 점차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데?”
데이비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제는 예전처럼 대책 없는 괴물은 아니야.”
“그렇다면, 최초의 계획을 다시 시작할 생각은?”
“최초의 계획?”
“파괴 말일세. 애초에 깃털을 보호하려고 가져온 게 아니잖나.”
잠시 조용해진 회의실.
곧, 데이비드가 침묵을 깨트렸다.
“… 조금 더 지켜보자고.”
“데이비드 경,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놈이 곧 깃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니야. 그것부터가 착각이야. 연구팀이 이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대단히 많은 희생이 있었지.”
‘놈’과 ‘깃털’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
“깃털이 하드웨어라면, 놈은 소프트웨어. 깃털이 보물이라면, 놈은 보물을 지키는 수호자. 요컨대, 보물이 사라지면 놈이 죽지만, 놈이 죽는다고 보물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 말씀은?”
“깃털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호자를 만들었다. 최초의 수호자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제법 순화한 상태.”
“으음…”
“수호자를 섣불리 파괴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상석의 노인이 한숨 쉬며 답했다.
“깃털이 새로운 수호자를 만들겠군.”
“새로운 수호자는 다시 원초의 상태로 돌아갈 거야. 숨을 쉬는 것보다 쉽게 사람을 죽이는 괴물로 돌아갈 거라고.”
“그렇다면?”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다. 이게 내 결론이오. 반대하는 사람?”
회의실의 그 누구도 반대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깃털’과 관련한 문제에서 데이비드의 의견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았다.
대신, 몇몇 사람들이 데이비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경, 듣기로는 깃털에게 ‘친구’를 만들어줬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 인간화가 진행된 시점에서 보면, 그는 또래의 소년과 크게 다르지 않아. 생각보다 외로움도 타고, 또래 친구를 바라는 성향도 있지.”
“흐음… 이해했네.”
“친구의 필요성은 알겠는데, 누굽니까? 자세한 설명이 없던데.”
“연구 팀장의 딸.”
“그, 그러면, 진짜 10대란 말입니까? 외견만 10대인 요원이 아니고?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
“토비아스, 걱정하지 마시오. 그 애는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이해고 자시고! 그냥 일반인 아닙니까?”
“그냥 일반인이 아니라, 몸이 불편한 일반인이지.”
“예?”
“살아있는 ‘불가능’의 교재라고나 할까?”
회의실 풍경이 흐릿해질 무렵,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드라는 사람, 동료들이 회의 때 여러 번 언급했었지.
의사 선생님과 함께 여명의 아들을 불러내는 마도 의식에 참여한 고대의 요원이라고 들었다.
동료들은 데이비드를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환영 속의 데이비드는…
조금 무서웠다.
그에게는 세상 그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는 자신만의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 출렁…!
다시금 환영이 오래된 기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
“으아악! 진짜 왜 물리냐고!”
“…”
— 쿵!
“바보들 아니야? 아니, 물리지만 말라고 했잖아! 그러면 내가 이겨준다고 했는데!”
— 쿵!
주먹을 두 번째 내리쳤을 때, 옆에서 한숨이 들려왔다.
“키보드 좀 그만 부숴. 어머, 또 키가 다 뽑혔네.”
“야! 지금 게임 상태를 봐.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는 -”
“키보드와 모니터를 부수면 게임이 유리해지는 거야?”
“… 아니.”
“그러면, 바보짓 그만해.”
이상하게도, 소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화가 가라앉았다.
“애초에, 무슨 남자애가 이렇게 게임만 해? 밖에 나가서 공도 차고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재미없던데.”
“몇 번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너도 안 하잖아.”
말하자마자 살짝 후회했다.
눈앞의 소녀는 공놀이하지 않는 쪽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대답 대신 휠체어 바퀴를 강하게 굴렸다.
— 끼이익!
“… 미안.”
“괜찮아.”
다행히, 소녀는 크게 화난 눈치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잘됐어. 키보드가 망가졌으니, 게임은 이쯤 하고 밖으로 나가자.”
“…”
“봐! 여기, 네 스케줄이 보이지? 선생님들이 세운 일과표에 따르면, 너는 하루 2시간의 외부 활동을 통해 건강을 증진하고, 3시간의 -”
“으악, 아, 알겠어! 나갈게.”
솔직히, 나는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공부를 싫어하는 건 어느 정도는 생리적인 문제라고 본다.
수백 수천 자의 문자가 빼곡히 모인 책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현기증이 왔으니 말이다.
몇 번은 내게 ‘책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들이 실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운동을 싫어하는 건 조금 다른 이유였다.
선생님들의 지시대로 운동장을 달리다 보면, 옆에서 여자애도 최선을 다해 뛰곤 했지.
문제는, 이 애는 단 5분을 두 다리로 서 있는 일도 힘들어했다는 사실.
이런 애가 억지로 뛰고 있으니, 엄청나게 힘들어 보였다.
“허억…! 허억! 후하…!”
“…”
“켈록! 흐윽! 흐으…!”
“괘, 괜찮아?”
“… 괜찮아.”
그녀를 보고 있으면, 평범하게 몸을 움직이는 일조차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님을 느끼곤 한다.
실제로 선생님도 세상 사람들의 1/3은 걷는 것조차 힘들어한다고 했으니까.
사소한 것에 감사해라.
인간은 생각보다 정말 약한 생물이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은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어째 내 몸도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 풀썩!
“으엇! 괘, 괜찮아?”
“… 괜찮아.”
“다, 다리 아파? 숨이 차?”
“…”
가끔, 소녀는 지금처럼 복잡한 눈으로 날 바라보곤 한다.
처음에는 이 애가 무슨 생각 중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원망과 미안함이 반반 뒤섞인 그런 시선.
문득, 소녀가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믿지 마.”
“응?”
“주변 사람들, 아무도 믿지 마. 전부 나쁜 사람들이야. 날 이용해서 네 날개를 꺾고 있다고.”
“뭐?”
“…아니야. 그냥 해본 소리야.”
*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 시간.
햄버거를 먹던 중, 소녀가 내게 질문했다.
“아침에 숨을 막 헐떡거렸다던데, 무슨 일 있었어?”
“아침의 일을 어떻게 아는 거야?”
“… 아이, 참. 나는 너에 대한 일은 뭐든지 안다고 했잖아. 뭐든지 알고, 뭐든지 기억해.”
이상하게도 이런 말을 들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곤 했다.
왠지 모르게 눈앞에 앉은 소녀의 새하얀 목선이 눈에 띄었고, 갈색 머리칼은 평소보다도 더 찰랑거리는 것 같았다.
“요즘은이상한 꿈을 꿔.”
“이상한 꿈?”
“잠을 자면, 나는 항상 어둠 속에 있어.”
“갑자기 어둠?”
“하늘 너머에 흐릿한 존재가 보여. 그는 새하얀 거인인데, 쇠사슬에 결박된 상태야.”
“…”
“아주… 아주 거대한 존재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냥 알 수 있어. 상상을 초월하게 거대한 존재야. 손가락 하나만 내려와도 건물보다 크지 않을까?”
“거인이 어떤 행동을 하지?”
“지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 뭔가를 찾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게 끝이야. 나는 음, 뭔가 무서워서 거인의 눈을 피해 숨곤 했어.”
“…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 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이 꿈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
갈색 머리칼의 소녀가 빙그레 웃었다.
“글쎄, 네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정도?”
“으악! 요새는 아침에만 하잖아!”
*
“보고에 따르면, 여명의 아들이 직접 깃털을 수색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관리국의 눈을 피하는 건 가능하다. 우리도 관리국이니까. 하지만… 위대한 자의 눈을 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깃털의 장소를 옮깁시다.”
“멋진 신세계 7번이 준비 완료 단계라 들었는데, 그쪽에 집어넣는 게 좋겠어.”
“7번이라면, 한국?”
“잘 됐군. 놈의 외견은 완전한 동양인이니, 자연스럽게 넣을 수 있겠어.”
“참, 데이비드 경. 몇 주 전에 정말 희한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희한한 보고?”
“깃털이 무슨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산다는데… 정말입니까?”
“큭!”
“경?”
“아, 그 보고는 진짜야. 정말 게임에 푹 빠져있지. 재밌어하더라고.”
“… 데이비드 경도 함께했다던데?”
“친해져서 나쁠 건 없잖아?”
“그건 또 맞는 말이군요.”
“하하! 다들 100살 정도는 어린애 취급하는 분들이시니, 게임 따위는 황당한 유행으로 여기시겠지.”
“…”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 게임이 아니었으면, 오늘도 속수무책으로 연구원이 죽고 있었을 테니까.”
“… 그렇게 대단한 게임이면, ‘변하지 않는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지.”
*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나는 옥상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소녀는 연신 하품하면서도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하아암…! 졸리지도 않아?”
“응.”
“아이참, 새벽 3시까지 별똥별 구경하자고 기다린다니… 바보 같아.”
“바보는 너야. 별똥별이 떨어지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요해? 왜?”
“선생님이 준 책에 적혀있었어.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
“… 그런 초등학생이나 믿을 유치한 – 아니, 아니야. 간절한 소원이라도 있어?”
“어…”
순간, 말문이 탁 막혔다.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소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바보 아니야?”
“…”
“그놈의 소원 빈다고 새벽까지 잠 안 자고 버텼으면서, 정작 소원은 정하지 않았다고?”
소녀의 놀리는 듯한 표정을 보니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대답은 조금은 즉흥적이었다.
“네 소원 말해봐.”
“뭐?”
“나는 소원 없으니까… 네 소원을 대신 빌어볼게. 말해봐.”
“유치한 소리 그만하고 -”
“떠, 떨어진다!”
“으엣? 지, 진짜 -”
“빨리 말해! 말하라고!”
“… 마음껏 뛸 수 있었으면 좋겠어.”
“뛸 수 있으면 돼?”
“가, 가능하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떨어지는 별의 잔해를 보며 기도했다.
내 하나뿐인 친구, 아름다운 소녀에게 건강한 다리가 돌아올 수 있기를 말이다.
의심하지 않았다.
고민하지 않았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
설마, 이게 내 최초의 소원이야?
… 아니구나. 깜짝 놀랐네.
*
다음 날 아침.
갈색 머리칼의 소녀가 언제나 그렇듯 나와의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나타났다.
“좋은 아침!”
“…”
“왜 그래?”
소녀는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었고, 표정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왜 그래?”
“… 잠깐만.”
곧, 그녀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컴퓨터를 조작한다거나, 천장에 달린 기계의 방향을 꺾는다거나, 옷장을 열어 무언가를 부러트리는 등의 행동들.
5분 정도 흘렀을까?
그녀가 다시 내 앞으로 왔다.
“… 15분 정도는 밖에서 이곳을 볼 수 없을 거야.”
“응?”
다음 일은 살짝 놀라웠다.
혹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항상 몸이 불편했던 여자애가 휠체어에서 일어난 것이다.
“오오!”
“…”
“하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바로 이루어졌구나?”
“… 어떻게.”
“응?”
“어떻게 내 몸을… 이건 혼돈체에게 당해 망가진 거야!”
“호, 혼 뭐?”
“다리뿐만이 아니라, 척추부터 시작해서 뇌까지, 하반신을 통제하는 신경계 전반이 망가진 상태였어. 회사는 자연적인 상처가 아니라 치료할 수 없다고했는데…!”
소녀의 말에는 어려운 단어가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안다.
“왜 놀라?”
“…”
“같이 소원을 빌었잖아. 그러면 이루어지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놀랄 것도 없고, 이상해할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일.
그래서, 소녀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 그런 미신을 정말 믿었구나.”
“응?”
“정말, 정말 믿었어. 믿어서… 이룬 거야.”
그리고, 소녀가 내 손을 강하게 잡았다.
“말해봐.”
“어?”
“너도 바라는 게 있겠지. 하나는 있을 거야.”
소원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며칠 전에 소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전에 네가…”
“내가?”
“내 주변 사람은 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했었어.”
“…”
“아무도 믿지 말라고, 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그, 그 말을 들으니까 좀…”
“좀?”
“무서웠어. 누군가,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바로 그 순간.
소녀가 무릎 꿇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마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맹세라도 할 것처럼.
“… 약속할게.”
“응?”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무슨 -”
“그때는 온전히 네 편을 들어줄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쪼개지더라도, 영혼이 악마에게 저당 잡히더라도… 반드시 네 편을 들어줄게. 설령, 내가 죽은 후에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