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82)
괴담 호텔 탈출기 782화(781/794)
782화 – 최초의 소원, 박승엽 (3)
– 박승엽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관찰자인지 당사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떤 때는 한 발 떨어져서 과거의 일을 관측하는 것 같았고, 또 어떤 때는 모든 일을 직접 겪는 당사자 같았으니까.
꿈과 기억, 환영이 뒤섞인 정보의 소용돌이.
다시금, 오래된 기억 속으로 잠든다.
***
.
..
…
이후의 일은 너무나 잘 아는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게임, 학교, 괴롭힘, 싸움, 혼남 – 이렇게 다섯 단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라고 본다.
다만, 가끔 멍하니 앉아있으면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아주 그리운 사람의 얼굴 말이다.
언제였을까?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토요일 저녁 쯤으로 기억한다.
엄마에게 꿈속에서 알 수 없는 여자애를 보곤 한다고 말했었지.
“어머, 우리 아들 이제 다 컸구나?”
“어, 엄마! 그런 게 아니고 -”
“그런 거 아니면 아빠에게 말해볼까?”
“으악!”
“풋!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간절히 기도해 보렴. 그래, 밤에 게임 하는 것보단 그게 낫겠네.”
그리움이 갈망을 낳고, 갈망이 기도를 낳고, 기도가 기적을 낳았다.
…
어느 날, 지루하기 그지없는 수업이 끝난 방과 후,운동장에서 소녀를 보았다.
이후의 일은 마치 운명처럼 자연스러웠다.
“소, 소연아!”
“…”
“오래전부터 어, 너, 널 좋아했어! 그, 그래서 -”
… 안타깝게도소녀에겐 그리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미안. 아직은 연애할 생각 없어. 나 말고 더 착한 애 찾아.”
“미안. 너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나 남친 있어. 너랑 만날 때마다 없는 남친이 생겨.”
“너, 진짜 또 따라오면 맞는다?”
“아~ 얘 진짜 매번 이러네. 싫어, 싫다니깐?”
정확히 42번의 도끼질 끝에 마침내 쪼개지기 시작한 나무.
“좋아.”
“뭐, 뭐라고? 좋, 좋, 좋…”
“네가 고백해 놓고 왜 그리 놀라? 좋다니까? 오늘부터 1일 차로 하자.”
이것이 기점이었다.
정확히 한 번 더 세상이 반복된 후, 소연이는 내게 멋진 신세계의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
다, 다시 봐도 거절 횟수가 너무 많잖아!
…
세상의 반복과 구성원의 지속적인 망각.
이것은 멋진 신세계 자체의 특징인 것 같다.
아리 누나의 말대로 영화가 시작과 끝을 반복하며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볼 수 있겠지.
과거의 나 역시도 멋진 신세계의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소연이는 기억을 잃지 않는 유일한 존재였다.
이유는 뭐였을까?
회의 당시, 동료들은 소연이가 멋진 신세계의 규칙을 무시할 만큼 격이 높아서라고 생각했었지.
과거의 나조차도 망각을 반복했던 걸 보면, 진실은 달랐던 것 같다.
…
실체의 유무가 핵심 아니었을까?
정체가 무엇이든, 나는 실체가 있는 존재다.
물리적인 몸이 명확히 있는 존재였기에 멋진 신세계의 구속을 벗어날 수 없었다.
반면, 소연이는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
…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오래된 기억들.
소연이가 내게 학교를 불태우자고 제안하는 광경이 보인다.
학교의 파괴란 무슨 의미인가.
회의 때 동료들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현실에서 학교를 파괴하면 멋진 신세계에 접촉할 수 있듯이, 멋진 신세계 내에서 학교를 파괴하면 현실과 연결된다?’
‘그렇죠. 일단 연결이 되면, 여명의 아들은 그때부터 영향을 끼칠 수 있고.’
환영 속의나는 소연이와 함께 학교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타오르는 학교.
망치로 창문을 깨트린 후, 테니스장으로 뛰어내리려는 나와 소연이.
여기까지는 이미 되찾은 기억이니, 이번에 호텔이 보여주려는 건 그다음이 핵심이겠지.
*
— 쨍그랑!
“깨, 깨졌다!”
“나가자!”
“으… 노, 높은데?”
“아오, 승엽이 이 바보야! 여기까지 와서 새삼 겁먹지 말라고. 뛰어!”
“이얍!”
— 쿵!
나름대로 조심해서 테니스장 근처 풀밭으로 뛰어내렸지만, 상당한 통증은 막을 수 없었다.
“으윽…!”
눈살을 찌푸리며 무릎을 만지고 있으니, 나와 달리 사뿐히 착지한 소녀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보는 나까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따뜻한 웃음.
“승엽아. 우리, 성공한 거야. 그렇지?”
“아, 아마도?”
“아마도는 뭐야? 아마도는.”
“다음주 되어봐야 아는 거니깐.”
“아깐 되게 자신만만했으면서, 지금은 또 이러네. 자신감을 가져.”
“알았어.”
이렇게, 나와 소연이가 뭔가를 해냈다는 기쁨을 느끼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너희는 성공했단다.”
“…!”
“누구세요?”
눈처럼 하얀 백발과 혈관이 도드라질 정도로 창백한 피부를 가진 사람.
분명 아름답다고 할만한 외모였지만, 예쁘다기보다 ‘섬뜩하다’가 먼저 떠오르는 여성.
“내 이름은 아스테어라고 한단다.”
상대의 목소리는 제법 담담했지만, 입가의 미소는 숨길 수 없는 승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스테어?”
“날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하긴, 네가 우리 손에 있을 때는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었으니.”
명확히 나를 바라보는 시선.
곧, 자신을 아스테어라 칭한 여성이 소연이 쪽을 보았다.
“너도 제법 신비한 작품이로구나.”
“…”
“망가진 수호자의 욕망과 또 다른 수호자를 만들어 내려는 깃털의 의사. 그 둘이 합쳐진 결과물인가?”
“…”
“눈동자가 떨리는구나. 이제 슬슬 자기 자신의 근원을 깨닫기 시작한 모양이지?”
“당신은… 그리고 나, 나는…!”
혼란스러운 지식의 파도에 휩쓸린 소녀.
아스테어는 소녀의 변화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지금 위대한 분의 손끝이 이 자그마한 요람에 닿았구나. 너희들의 공이지. 그러니, 손길을 거부하지 말거라.”
소연이를 바라보는 아스테어의 시선은 따스했다.
반면, 나를 향한 시선은 훨씬 더 복잡했다.
숭배와 경이, 아쉬움과 씁쓸함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감정이 느껴졌다.
— 다각!
백발의 여인이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곧, 이루 말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아… 흐으…”
두려웠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는데,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공포의 대상은 백발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손가락’에 불과하며, 진짜는 그 뒤의 누군가였으니까.
백발 여인의 배후에 존재하는 거대한 의지를 느낀다.
저 하늘 위에서 지상을 굽어보는 아득한 시선을 보았다.
마침내 창백한 손이 내 목을 틀어쥐었을 때 – 나는두 가지 목소리를 들었다.
“가엾은 아이 같으니.”
… 너는 실패작이다.
“미안하구나. 우리가 데이비드의 간교함을 꿰뚫어 보았다면, 이런 비극도 없었을 텐데.”
… 조잡한 손길이 네 가능성을 망치고 말았다.
“여명의 아들께서 말씀하셨단다.”
… 허나, 큰 문제는 아니다.
“너를 음, 잠깐 재우겠다고 하셨어.”
… 다시 만들면 될 일이니.
“그때까지 저쪽의 아이가 너 대신 깃털을 지킬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백발 여인의 시선 너머에서 느껴지는 아득한 존재감이 날 벌레처럼 움츠러들게 했기 때문이다.
아스테어가 반대편 손으로 새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을 불러내는 순간까지도 넋 나간 듯 죽음을 기다렸을 뿐이다.
그랬기에, 다음 일은 이 자리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콰직!
“크읏!”
그 어떤 전조 없는 위치 변화.
보는 사람으로선 ‘순간이동’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움직임.
직후, 새하얀 손이 아스테어의 배를 뚫고 나왔다.
“이, 이게 무슨 짓이지? 대체 왜!”
이 순간, 백발 여인은 소연이의 순간이동 같은 능력보다 ‘본인을 공격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놀란 것 같았다.
“네가 무엇인지 알았을 텐데, 너는 -”
“당신이 말해주지 않아도 잘 알아.”
“뭐라고?”
대화가 오가는 순간에도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아스테어는 배가 꿰뚫린 상태로도 능히 싸울 수 있는 괴물이었고, 소연이도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연신 사용했기 때문이다.
힘과 힘의 충돌 속에서 아스테어가 소연이에게 말했다.
“얘야, 네가 항상 밖으로 나가고 싶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니?”
“…”
“멋진 신세계는 힘으로 무너트릴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계략으로는 무너트릴 수 있지. 네 마음이 정말 ‘네 마음’이었다고 생각하니?”
“…”
“너는 망가진 수호자가 빚어낸 환영에 불과하다.”
네 모든 것은 가짜라고.
심지어 멋진 신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네 욕망조차도 위대한 자의 의도에 불과하다고.
“너는 실체 없는 환영에 불과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란다. 여명의 아들께서는 무에서 유를 빚어내시는 분.”
“…”
“조악한 그림에 위대한 숨결이 불어 넣어지니, 이윽고 새로운 수호자가 완성되리라.”
위대한 자에게 복종하라.
그리하면 환영에 불과한 네가 진실한 천사로 거듭나리라.
그때, 갈색 머리칼의 소녀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 순간, 나는 소연이가 느끼는 두려움을 이해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모두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계율 말이다.
소연이가 빙그레 웃으며 입으로 말했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네 편을 들어주겠다고 했지?’
— 우르릉!
천둥 벼락이 내리치며 아스테어가 튕겨나갔다.
그리고, 빈 자리에는 모든 것을 잃은 나약한 실패작만 남았다.
*
비통함을 느끼며 걷고 또 걸었다.
“흐으… 흐으윽!”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지금의 나는 제법 많은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스테어의 말대로 멋진 신세계가 흔들리며 저 바깥의 위대한 자와 내가 연결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소연이의 동귀어진으로 아스테어는 사라졌지만, 그것뿐.
멋진 신세계는 이미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바깥의 아득한 존재는 결국 날 손에 넣어 승자가 되겠지.
내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랑을 잃었고, 사랑을 그리워하며 빚어낸 꿈조차 잃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고, 이런 쓰레기 같은 마인드 때문에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다.
시시각각 무너져 가는 요람 밖에 내 적과 원수가 가득함을 알았는데, 정작 그들이 너무나 두려웠다.
저 하늘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아득한 존재.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날 ‘실패작’이라 말하는데, 그 말에 반박할 자신이 없었다.
반박은커녕, 그 시선을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멎을 것처럼 무서워서…
죽고 싶었다.
내가 너무 병신같았기 때문이다.
망가진 수호자.
피지도 못하고 썩은 씨앗.
종합하면, 위대한 자의 실패한 작품.
… 왜 나는 이런 존재인 걸까?
넋 나간 듯 정처 없이 걷던 내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하는 사람, 엄마였다.
“우리 아들, 오늘은 또 무슨 슬픈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울고 있니?”
“흐으윽… 어, 엄마…”
이상한 일이다.
하필 이 순간에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 내 앞에 나타나는 게 말이 되는 걸까?
하지만, 의문보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날 움직였다.
그래서 엄마의 품에 파고들어 아이처럼 울고 또 울었다.
“아이 참, 승엽아. 엄마가 항상 말했잖니. 밤새 게임만 하면 안 된다고 말이야.”
“엄마…”
애초에, 내 부모님은 대체 어떤 존재인 걸까?
영화 속 등장인물?
그게 아니라면…
“저,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왜 이렇게 바보 같죠? 진짜 시, 실패작인 걸까요?”
따스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곧, 부드러운 시선이 나를 주시했다.
“그건, 네게 제대로 된 부모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
“널 빚어낸 자는 널 아이라기보다는 도자기 정도로 여겼고, 여차하면 다시 만들 생각뿐이었지.”
“…”
“널 길러낸 자는 널 잘 키우기보다는 폐인으로 만들 생각뿐이었어.”
“…”
“부모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아이가 잘 크는 게 더 어렵지 않겠니?”
“당신은 누구죠?”
엄마 – 아니, 엄마의 탈을 쓴 누군가가 슬며시 웃었다.
“다행히도, 세상에서 제일 높은 옥좌에 앉은 분이 네게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하셨구나.”
“…”
“그러니 아이야, 지금 네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소원을 빌어보렴.”
누군가가 말했다.
네게 문제가 있다면,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날 창조한 자도, 날 가르친 자도 사랑이 아닌 계략으로 날 대했기 때문이라고.
“마침, 저 하늘에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구나.”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하늘을 바라보니, 과연 별똥별이 있었다.
…
내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부디, 대적의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기를.
하늘 위에서 지상을 오시하는 자들의 계산을 능히 넘어설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의 삶을 날 위해 바친 사람을 생각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소망했다.
사랑을 되찾을 수 있기를!
…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소원을 빌었다.
최초의 소원을.
*
— 파아앗!
오래된 기억의 속박에서 풀려났을 때, 나는 운동장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체감상 몇 주 혹은 몇 달 치 꿈을 꾼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몇 초 흐르지 않았겠지.
직전까지 빙그레 웃던 소연이의 환영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야.
그녀는 애초에 깃털의 힘에 내 그리움이 투영되어 태어난 신기루 같은 존재였으니까.
지금은 기억과 힘, 그리고 운명을 내게 맡긴 채 잠들었을 뿐.
“…”
곧,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었다.
‘지금은 과거의 당신이 바랐던 모습으로 성장하셨나요?’
여기에 대한 내 답변은 –
“아니 씨발, 이 기억 대체 뭐야?”
뭐야? 상현 형은 엄청 멋있고 영웅 같은 기억이었는데, 난 대체 뭐냐고!
왜 이렇게 비참한 건데?
이 순간, 나는 천하제일고수로서 하늘에 대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당장 갚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