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83)
괴담 호텔 탈출기 783화(782/794)
783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46)
– 김상현
소환체 가인 군과 대화하며 황혼의 깃털의 정체가 승엽 군임을 깨달은 상황.
생각이란 마치 고리처럼 이어지는 법이니, 깨달음은 다음 깨달음의 원인이 된다.
승엽 군이 깃털임을 알아차리자 자연스레 떠오른 의문.
“데이비드는 깃털의 정체를 숨기려 했습니다.”
“…”
“당시엔 관리국 특유의 정보독점 성향 정도로 여겼지만, 애초에 내 ‘최후의 섬광’의 힘을 빌려 깃털을 파괴하는 계획입니다.”
“목표의 정체를 숨긴다는 게 정상은 아니네요.”
“미국, 그리고 비행기에서 나와 데이비드는 계획을 짜며 온갖 이야기를 했죠. 그가 우리의 착각을 몰랐을 것 같습니까?”
내가 깃털의 정체를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
데이비드가 정말 몰랐을까?
한 번 의심이 시작되니 또 한 가지 정황이 연이어 생각났다.
데이비드가 여명의 아들을 배신한 이유 말이다.
“놈은 여명의 아들을 마치 달처럼 여겼습니다. 인류를 잡아먹으려 한다고 주장했지요. 당시엔 달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착각한 줄 알았지만…”
가인 군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까지 형을 속이기 위한 계략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도 전, 가인 군이 했던 이야기가 뇌리에 스쳤다.
‘여명의 아들이 숨겨둔 함정의 정체, 가능성을 좁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첫째, 소연이. 둘째, 순수파의 리더, 데이비드.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에 속임수가 있습니다.’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
이쯤에서 미로 양이 토끼 눈을 뜨며 말했다.
“그,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 어떻게 하냐구!”
예상치 못한 급박한 상황 변화.
머리를 쥐어짜며 그럴듯한 계획을 떠올리려는 시점, 갑자기 가인 군이 미소를 지었다.
“… 지금.”
“가인아?”
“지금 승엽이가 최초의 소원을 자각했어. 시나리오 이해가 갱신되며 해당 내용이 나왔네.”
“그러면 -”
“데이비드가 멋진 신세계를 중단 중이라고 했지? 곧 현실과 연결되겠네. 우리도 갑시다. 미로, 난 돌려보내.”
*
— 박승엽
운동장에 서서 각오를 다질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엑… 허억! 승엽아, 소연이는 -”
송이 누나가 뒤늦게 나타난 것이다.
누나에게 최초의 소원을 자각했다는 사실을 알렸고, 과거의 기억을 통해 알아낸 몇 가지 정보 또한 전달했다.
약 5분의 대화가 오간 후, 누나가 내게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 두 가지 방향성 중 하나를 골라야 해요.”
“두 개나 떠올렸어?”
미묘하게 기분 나쁜 누나의 말을 무시한 채 말했다.
“하나는 그냥 감인데 -”
“그게 맞겠네.”
“- 지, 진지하게 들어주세요.”
“진지하게 한 말이야.”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첫 번째 의견, 나가야 한다.
송이 누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흐음, 다른 생각은?”
“이건 논리적으로 생각해 봤는데 -”
“자, 나갈 준비 하자.”
“아, 진지하게 들어달라고 했는데!”
“진지하게 듣고 있다니까. 말해보든가.”
“기, 깃털의 행방이 302호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 같거든요?”
“내 생각도 그래.”
“깃털이 죄수 손에 들어가지 않으면 되잖아요.”
“그렇지.”
“… 제가 그냥 여기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두 번째 의견, 그냥 가만히 기다린다.
송이 누나가 즉각 고개를 저었다.
“역시, 두 번째는 들을 필요 없었네.”
“…”
“바보 아니야? 그냥 가만있으면 해결이라니. 그동안 그런 적 있었어?”
“논리적으로 -”
“그런 해로운 단어 쓰지 마.”
“…”
“네 기억 속에 답이 있잖아. 죄수 쪽에선 지금도 온갖 계략을 부려서 멋진 신세계를 무너트리려고 하고 있을 거야.”
“소연이에게 ‘나가고 싶다’라는 충동을 불어넣은 것처럼?”
“응. 그것 말고도 많을 거야.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면 승리라는 건 있을 수 없어.”
“으음…”
“가만히 기다린다? 우리가 모르는, 혹은 알면서도 놓친 변수가 터지면서 멋진 신세계가 무너지겠지. 그리고!”
“그리고?”
“밖에서 은솔 언니가 말했어. 결국은 해피엔딩을 추구해야 한다고. 해피엔딩을 위해선, 멋진 신세계는 언젠가 사라져야 한다고.”
송이 누나의 의견은 간단했다.
호텔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해결’ 같은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넋 놓고 기다리면 죄수의 계략에 당할 뿐이라는 것.
“나가야 한다면, 어떻게 하죠? 학교를 부숴야 하나? 부술 방법이야 많지만 -”
그때, 누나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엔, 그거야말로 그냥 기다리면 될 것 같아.”
“네?”
“두 번째 회차 때의 일을 생각해 봐. 네가 기억을 제법 되찾으니, 가인 오빠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널 데리고 왔지.”
“그거야 시나리오 이해가 갱신됐으니까 – 설마 지금도?”
“네가 최초의 소원을 자각했으니, 그쪽에서 데리러 오겠지.”
나가는 방법은 내가 고민할 필요 없다.
애초에 미로가 멋진 신세계도, 미국도 아닌 학교 인근에서 시작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처음부터 날 내보내는 일은 다른 동료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그러니까 승엽아.”
“네?”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고민이 아니야.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이런 고민은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 거야.”
“…”
“아까 네가 해준 설명대로라면, 황혼의 깃털은 너와 연결되어 있지?”
“네.”
“밖에 나가면, 분명 굉장한 싸움이 벌어질 거야.”
내가 밖으로 나가면, 그때부터가 진짜 승부다.
여명의 아들을 섬기는 자들과의 전면전이 시작되겠지.
“그러니까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고민이 아니라 준비야.”
“…”
“깃털의 힘을 끌어내는 방법, 뭔가 느껴지는 것 없어?”
깃털의 힘을 끌어내는 방법.
정신을 집중하기 직전, 살짝 혀를 내밀며 말했다.
“근데 누나.”
“응?”
“저랑 둘이 있으니까 누나 엄청나게 똑똑해진 것 같지 않아요?”
“그야 이 멤버에선 나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
“반대인가? 모두와 함께 있을 때 멍청해지는 건가? 이야~ 그러면 가인 형이나 아리 누나는 송이 누나 엄청 멍청하다고 생각하겠네!”
“야!”
여명의 아들이 보인 대이적을 생각해 보자.
그는 일말의 과장 없이 천지창조를 다시 일으켰다.
모든 인류를 천사라는 이종족으로 변이시킨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영혼의 순환에 개입해 죽은 자가 자아를 유지한 채 환생하는 구조를 만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필멸자의 시선으로는 도무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으니, 우리는 여명의 아들과 같은 존재를 ‘위대한 자’라 부른다.
깃털이란 여명의 아들이 품은 광대 무량한 힘 일부가 깃든 조각.
진짜 위대한 자의 권능에 비하면 사막의 모래알처럼 미약한 파편이겠지만…
분명, 인간 세상에서는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기적이 담긴 신물이다.
— 지지직!
“어엇! 지, 지금! 멋진 신세계가 흔들리고 있어!”
*
멋진 신세계에서 탈출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전에는 소연이가 학교를 불태우며 멋진 신세계에 빈틈이 생기니, 여명의 아들이 강제로 개입했었지.
그 결과, 극장이 파괴되며 다른 유형의 종말이 찾아온 것이 두 번째 시도의 결말.
이번에는 달랐다.
세상 전체가 ‘지지직!’ 하는 소음과 함께 깜빡거렸고, 전원이 꺼지는 듯한 기묘한 현상과 함께 밖으로 나왔으니 말이다.
최초의 소원 당시 관리국 직원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지.
‘내부는 완공되었지만, 입구가 안정화되지 않아서 -’
뒤집으면, 완성 후엔 안정화된 입구가 생겨난다는 이야기였어.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멋진 신세계에는 나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관리국이 그 많은 사람을 집어넣으며 매번 극장의 끔찍한 관객들과 마주쳤을까?
관리국 직원들 대다수는 평범한 인간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멋진 신세계를 통제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한 루트가 따로 있다는 것.
…
바깥에서 깨어나자마자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나와 송이 누나를 데리러 온 사람들은 동료들이 아니었다.
‘동료들이 우리를 데리러 올 거야’라고 했던 누나 말은 결과적으로 틀린 셈이다.
“… 어머나.”
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표정을 굳힐만한 상황.
둘째, 이들은 비록 동료는 아니었지만, 그들 중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있었다.
흑발과 백발이 뒤섞인 기이한 외형의 남자.
대부분 상황에서 쾌활함을 잃지 않는, 언뜻 보면 유쾌하기 그지없는 청년.
데이비드가 빙그레 웃으면서 다가왔다.
“하핫, 승엽아 오랜만이지? 아, 지금은 막 깨어나서 정신없으려나?”
“…”
“옆에 예쁜 여자애는 누구야? 새로 사귄 여자친구? 하핫! 솜씨도 좋지.”
“어머, 아저씨. 그건 되게 실례네요.”
“아닌가? 하하! 둘 다 걱정할 필요 없어.”
가증스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깃털이 품은 힘.
최초의 소원이 보여준 기억에 따르면, 내 인식에 영향을 많이 받았지.
순수파가 날 반쯤 폐인으로 키워내니, 깃털 역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래서 여명의 아들은 나를 ‘실패작’이자 ‘일그러진 가능성’이라고 말했던 것.
뜬금없는 기적을 이루기는 어렵다.
갑자기 지진이나 폭풍을 불러내는 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저런 일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이미 경험한 힘이라면 어떨까?
내가 과거에 도달했던 영역이라면, 가능함을 믿는 정도가 아니라 ‘아는’ 영역이라면…!
천천히 내 마음을 한 점으로 모았다.
그 어떤 장소도 아닌, 내 마음속으로 깊이 파고들기 위하여.
“승엽아, 내가 다 알려줄게. 우린 친구니까, 나만 믿으면 -”
— 철컹!
칠흑의 갑옷이 내 몸을 단단히 감싸 안았고, 새까만 검이 내 손에 들렸다.
재질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갑옷과 검.
하지만, 둘 다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과거의 나를 생각한다.
여명의 아들의 손가락만 보아도 공포에 떨었던 모습.
절망에 휩싸여 대적을 피해 도망쳤던 추하기 그지없는 기억들.
“… 데이비드.”
“이, 이게 무슨 -”
“길러준 은혜를 갚아주마.”
지금은 오직,전진만 있을 뿐!
— 콰직!
한 호흡에 십수 미터를 뛰어넘으며 생각했다.
“크으…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즉각 사격하라!”
과연, 데이비드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 행동을 보고 즉각 주변의 군인들에게 사격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보라.
감히 필멸자 주제에 위대한 자에 맞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당황해서 허둥지둥했으면 실망했겠지.
그래봤자다.
— 탕! 타당! 탕!
순식간에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총성.
그러나, 총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늘의 운명이 내 손에 있다.
총알 따위가 감히 내 몸을 스칠 수 있겠는가!
으악! 나 방금 맞을 뻔했어!
아, 뒤에 누나가 있었지?
… 알아서 살겠지. 누나를 믿자.
“타앗!”
다리에 힘을 실어 바닥을 내리찍자, 일대가 진동하며 군인들이 휘청였다.
— 쿠궁!
찰나의 빈틈을 뚫고 다시금 몸을 날렸다.
나는 불꽃 같은 분노를 담아 데이비드를 주시했고, 데이비드는 이를 꽉 깨물며 손을 휘저었다.
곧,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기이한 물리력이 내 몸을 억제했다.
아마도 이것이 데이비드 특유의 힘, 기억 속에서 브라이언을 벽에 처박은 힘이겠지.
“하!”
코웃음 치며 검을 휘둘렀다.
형체 없는 물리력을 검으로 베어낼 수 있는가?
가능하다.
이따위 고민, 하찮은 의심을 내 마음속에서 지워낼 수 있다면!
— 서걱!
나와 데이비드를 가로막는 유무형의 장벽이 모두 사라진 순간, 쾌활한 청년의 얼굴에서 여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침없이 다가가 데이비드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크으윽!”
“오랜만이야. 그렇지?”
“너…!”
“맞을 때 맞더라도 이유는 알아야겠지.”
“뭐?”
“네 죄를 알아라!”
세상에 선언하듯, 나 자신에게 다짐하듯, 데이비드의 세 가지 죄를 논했다.
“첫째, 내게 거짓 상식을 주입해 나약한 마음을 품게 한 죄!”
기억 속의 거짓 가르침을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의 1/3은 걷는 것조차 힘들다는 둥, 가만히 숨 쉴 수 있는 것조차 운이 좋은 줄 알라는 둥 하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
모두, 내 마음에 나약함을 품으려던 술책이 아닌가.
“크으…!”
“둘째, 내 하나뿐인 친구를 고통스럽게 한 죄.”
고통 속에 허덕이면서도 나와 함께 뛰어야 했던 소녀를 생각한다.
인간의 나약함, 세상의 고통을 내게 가르치기 위한 살아있는 교재와 같았던 삶을 생각하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마지막, 제일 큰 죄!”
“하… 또 있냐?”
“순수했던 나에게 이기적인 마음을 가르치다니!”
“… 뭐?”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뜨는 데이비드.
그 사악한 모습을 보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내 영혼을 불살랐다.
“팀원을 위해, 모두를 위해 즐겁게 게임을 하던 나한테 뭘 가르친 거냐!”
“???”
“너만 아니었다면… 너만 아니었다면! 내가, 씨발, 진작 마스터는 찍었다고!”
“야, 야, 앞에 둘은 몰라도 이건 진짜 억울 -”
“목숨은 살려주마.”
— 서걱!
분노의 일 검을 내리쳤다.
이는 내 과거의 청산이자 내 사랑을 위한 응징이었다.
그리고, 고통받은 수많은 선량한 게이머들을 위한 복수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