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85)
괴담 호텔 탈출기 785화(784/794)
785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48)
– 김상현
데이비드 세력과 헤어진 후, 모두 함께 모인 자리.
송이 양이 꺼림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저거 뭐죠?”
“누나, 저거라뇨. 은솔 누나잖아요.”
“아니, 가운데에 저 검은 돌 같은 거 뭐냐고.”
묵성 요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 이스의 왕이 소멸할 때 나온 검은 돌 기억하냐?”
“기억은 하는데…”
“그게 뭔가 조화를 부린 모양이야. 그래서 은솔이가 죽진 않았는데… 사실, 살아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언니 몸의 저, 절반이 이상하게 변했는데요?”
“처음엔 저 정도는 아니었어. 점점 커지네.”
“으윽…! 바, 밖에 나가면 원래대로 돌아가겠죠?”
“아마도.”
느낌상, 은솔 양에게 더 이상의 활약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밖에 나가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미로 양이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송이 너도 301호에서 뭔가 얻었잖아.”
“…”
“무슨 흉측한 살덩이였지? 어때?”
“가끔 꿈틀꿈틀하긴 하는데…”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
— 탁!
이쯤에서 잡담을 끊었다.
가인 군이나 아리 양은 없고, 은솔 양은 반쯤 죽은 상황이니 이런 역할은 내가 해야 했다.
“다들 잊지 마시길. 머지않아 여명의 아들을 섬기는 자들이 공격해 올 겁니다.”
묵성 요원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드 놈이 말했지. 자신들이 미국 본토에서 놈들을 방해하고 있었지만, 진즉 힘에 부친 상태라고. 곧 올 거다.”
“가능하면, 그전에 해결을 위한 수를 둬야 합니다.”
302호의 해결을 위한 수.
송이 양이 상황을 정리하듯 말했다.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고려하면, 깃털을 파괴하는 게 승리의 열쇠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본래는 수호자를 죽여서 깃털을 파괴할 생각이었지만.”
이 말대로면 승엽 군이 죽어야 한다는 것.
물론, 이후에 추가 정보가 나오며 작전이 조금 바뀌었지.
“승엽이가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얘가 죽으면 상황이 더 위험해져요. 깃털이 새로운 수호자랍시고 터무니없는 괴물을 다시 만들 테니까.”
그렇다면, 깃털을 어떻게 파괴해야 하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두 번째 시도 후반에 실제로 한 번 보았기 때문이다.
수호자가 직접 파괴해야 한다.
“수호자가 직접 깃털을 파괴해야 하는 것 같네요. 두 번째 시도, 일종의 대체 수호자였던 소연이가 했던 것처럼.”
모두의 시선이 승엽 군에게 쏠렸다.
그리고, 승엽 군이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 깃털을 파괴하면 제가 죽는 것 아닌가요?”
“당연히 그렇겠지?”
송이 양의 태연한 대답에 당황한 승엽 군.
“뭐가 걱정이야? 저주의 방에서 죽은 게 처음도 아니고. 어차피 호텔에서 다시 살아나겠지.”
“그런가?”
“가인 오빠가 전에 말했잖아. 천상은 하계와 완전히 독립된 장소라고. 뭐, 죽는 게 좀 아니다 싶으면 깃털을 소환해서 영혼의 함에 들어가 보는 건 어때?”
“으음… 깃털 소환이라.”
“그냥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 ‘깃털을 소환하고’가 핵심이야.”
“어, 어떻게 해야 하죠?”
“…”
“깃털을 어떻게 소환해요?”
고요한 침묵.
곧, 미로 양이 모두의 속마음을 대변했다.
“그걸 네가 우리에게 물으면 어떡해!”
“하, 하지만 모르겠는데?”
“깃털의 힘을 막 써서 변신했던 거 아니야?”
“그거랑 깃털을 밖으로 꺼내는 건 다르잖아.”
“네 전여친은 했는데.”
“나, 나는 방법 모르겠어.”
“바보야?”
승엽 군이 깃털을 파괴하면 승리하는데, 그 깃털은 승엽 군에 속해있는 상황.
본인이 깃털을 소환하는 법을 깨우쳐야 끝나는 일이겠지.
그래서 여러 사람이 승엽 군 옆에 붙어서 ‘마법적인 조언’을 건네기 시작했다.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동료들은 데이비드가 준비한 숙소 여기저기 대충 쓰러져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
이 시점,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세 번째 시도가 시작하기 전, 가인 군이 나와 승엽 군에게 전한 불길한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승엽 군에게 해준 이야기.
‘지나간 일에 너무 미련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널 위한 이야기란다.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는 법.’
내게 해준 이야기.
‘마지막까지 신념을 지키시길.’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당신을 실제로 이기게 할 겁니다.’
둘 다 대체 무슨 소리였을까?
예언에 따르면, 나와 승엽 군 둘 모두에게 끔찍할 정도의 가시밭길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전혀 모르겠다.
고생스러운 일이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예언에 들어맞는 일은 없었다.
어느새 승엽 군이 깃털을 소환해서 파괴하기만 하면 이길 수 있는 구간까지 왔다.
정말일까?
차근차근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하나하나 음미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하지만 벌어질 수 있는 위험한 변수를 찾아내기 위해서.
“…!”
깨달음은 벼락처럼 찾아왔다.
조금 전까지 모두가 단체로 놓치고 있던 사실, 그러나 깨닫고 나면 너무나 뻔한 변수.
승엽 군에게 과거 벌어진 일.
여명의 아들이 영적인 영역에서 승엽 군을 찾아낸 후, 직접 말을 걸기까지 했다.
두 번째 시도 후반에 벌어진 일.
유소연이 대체 수호자로서의 본분을 자각하니, 여명의 아들이 그녀에게 개입해 이전 회차의 기억을 돌려주었다.
여명의 아들은 깃털 수호자의 정신에 개입할 수 있다.
순수파가 승엽 군을 멋진 신세계 내에 봉인한 이유 역시 위대한 자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
승엽 군은 수호자다.
그리고, 지금은 멋진 신세계 바깥으로 나왔다.
— 철컹!
*
— 박승엽
늦은 밤, 홀로 명상에 빠진 채 깃털을 소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였을까?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아주 드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다.
“허억…!”
순식간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끔찍할 정도의 두려움이 내 마음을 집어삼켰고, 손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뱀을 만난 개구리라도 된 것 같은 두려움.
상대와 나 사이엔 영원이라는 시간이 주어져도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이 순간, 내가 떠올린 사람은 스승님이었다.
저 하늘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아득한 존재.
그 두려움을 알면서도 주저앉긴커녕, 당당하게 검을 뽑을 수 있었던 빛나는 영혼!
이자성이 되고 싶었다.
스승님이라 해도 칼 한 자루로 위대한 자를 어찌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칼을 뽑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으로 칼을 뽑았다.
“당신은 위선자야! 거짓말쟁이라고!”
각오가 무색하게도, 상대는 딱히 날 위협하지도 않았고, 영혼을 으스러트릴 듯 압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그시 바라보며 되물었을 뿐이다.
… 왜 그리 생각하느냐?
“맨날 원하는 대로 행하라 했잖아! 지금, 지금도 세상 전체에 그 목소리를 보내고 있잖아.”
… 그렇지.
“네놈이 나한테 하려고 한 짓을 봐. 이, 이게 어딜 봐서 자유의지 존중 -”
대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 너는 너를 사람이라 여기느냐? 인간의 기원과 네 기원에 차이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래, 이 자식이 이런 대답을 할 것 같더라.
알고 있었지.
저 끔찍한 존재에게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름의 신념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명의 아들은 인간을 사랑한다.
단지, 나와 소연이는 인간으로 보지 않을 뿐!
“…”
전신이 부들부들 떨림을 느끼며 검을 움켜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미 검으로 적을 열 번은 베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위대한 자의 실체는 내 앞에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여유도 길지 않을 거야. 아직은, 아직은 내가 깃털을 소환하는 방법을 모르지만… 곧 깨달을 테니까!”
승리는 내 손에 있다.
깃털을 소환할 수만 있다면, 파괴하든지 영혼의 함에 담든지 할 수 있다면…!
저 가증스러운 신의 여유로움도 흔적 없이 사라질 거야.
“…”
잠시의 침묵.
기이하게도, 여명의 아들은 내 말에 대단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딱히 분노하는 기색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날 비웃거나 조롱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관찰하는 것 같았다.
… 한 가지는 인정해야겠구나.
“뭐?”
… 너는 정말 인간을 닮았다.
“그게 무슨 -”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나약함이다.너는 그 나약함조차 닮고 말았구나.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 찰랑!
직후, 호수에 돌이 떨어질 때 나는 소리와 함께 환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첫 번째 환영은 폭풍이 몰아치는 하늘이었다.
세상은 마치 붕괴 중인 건물처럼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는데, 여러 번 경험한 일이라 바로 상황을 깨달았다.
첫 번째 시도가 끝나는 순간을 담은 환영이다.
과연, 바닥에 떨어져 빙그레 웃는 가인 형을 닮은 천사가 보였다.
“당신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본인이 세운 신념과 이상, 율법을 스스로 깨트리느니, 우리와 한 판 더 놀아보기로 하셨다.”
“그게 무슨 -”
“그 선택이 그의 위대함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나 역시 기꺼이 한 판 더 놀아보겠다.”
— 찰랑!
곧이어 이어진 다음 환영에는 익숙한 두 사람이 있었다.
아리 누나가 소연이와 대화 중이었다.
“알고 있니?”
“뭘 말이야?”
“모든 천사는 종말 전에 사람이었어.”
“알고 있어.”
*
서로 다른 두 개의 환영에 담긴 정보.
여명의 아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패배 위기조차 감수하는 장면.
모든 천사는 종말 전에 사람이었다는 이야기.
위대한 자는 여덟 날개의 천사, 소연이의 자유의지를 빼앗지 않았다.
왜냐하면,소연이는 천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었으니까.
“…?”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방금 본 이미지와 그동안 모은 정보들이 충돌하는 기이한 느낌.
여명의 아들은 수호자를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소연이는 깃털이 빚어낸 수호자다.
그런데, 여명의 아들은 천사가 된 소연이를 인간처럼 대했다.
마치,천사가 되기 전에는 내가 만든 신기루였지만, 천사가 된 후에는 사람이 된 것처럼.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이 아닌 존재의 차이는 무엇인가.
철학적으로 접근하면 끝이 없는 문제지만, 여명의 아들에게는 지극히 명쾌한 문제다.
영혼의 기원이 어디에서 왔냐를 따지면 된다.
생각이 여기에 닿았을 때, 처음으로 의문을 품었다.
여명의 아들은 왜 천사가 되기 전의 소연이는 나처럼 도구로 대했으면서, 천사가 된 후의 소연이는 인간으로 대했을까?
아스테어는 말했었지.
‘너는 실체 없는 환영에 불과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란다. 여명의 아들께서는 무에서 유를 빚어내시는 분. 조악한 그림에 위대한 숨결이 불어 넣어지니, 이로써 새로운 수호자가 완성되리라’
…
위대한 숨결이란 무엇인가.
여명의 아들은 어떤 원리로 실체 없는 환영을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가.
어쩌면, 이 답은 지극히 간단했을지도 모른다.
신기루, 즉 데이터와 진짜 인간의 영혼을 합치면 된다.
유미가 바로 그와 같은 존재인데, 위대한 자라면 능히 가능한 일.
…
— 찰랑!
어두운 환영을 보았다.
내가, 소녀의 인도를 받아 멋진 신세계에 떨어지던 시기의 일.
소녀는 홀로 어두운 극장에 남았고…
악마들이 소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날 들여보낼 때까지만 해도 후회 없이 당당했던 소녀의 눈에 서서히 두려움이 깃든다.
악마에 의해 비참하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육신은 물론, 영혼조차 흔적도 없이 먹힐 것이라는 사실.
공포가 소녀의 영혼을 집어삼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나약한 법이니까.
그래서 소녀는, 마지막 순간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거부하지 못했다.
… 구원을 바라느냐?
“제, 제발 살려주세요!”
— 찰랑!
*
환영의 끝에서 나는 넋 나간 채 하늘을 보았다.
담담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네게 모든 것을 베풀었다.
네게 삶을 주었고, 네 사랑을 구원하였느니라.
하지만, 너는 은혜를 말하기보다 원한을 말하는구나.
그러나 탓하지 않겠다.
은혜를 모르는 것 역시 인간다우니 말이다.
또한, 너 스스로 인간이라 하였으니 그 말도 받아주마.
네 뜻대로 할 권리를 허락하겠다.
다만, 나 역시 천상의 이치에 통달했기에 한 가지 의문이 드는구나.
참가자가 아니니 부활 티켓을 쓸 수 없고, 영혼은 네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네 사랑을…
무슨 수로 구하겠느냐?
넋 나간 듯 하늘을 보았을 때,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었다.
‘지나간 일에 너무 미련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널 위한 이야기란다.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