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86)
괴담 호텔 탈출기 786화(785/794)
786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49)
— 김상현
— 철컹!
이 소리, 들어본 적 있다.
승엽 군이 깃털의 힘을 빌려 포르투나로 변신할 때, 갑옷에서 나는 소리다.
“이런!”
정신없이 숙소 밖으로 뛰어나가며 대화창부터 사용했다.
김상현 : 전원 전투태세! 집합!
미로 : 무슨 일 생겼어?
유송이 : 바보야,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이를 꽉 깨문 채 최악의 가능성을 고려했다.
여명의 아들이 승엽 군을 조종해서 모두를 죽일 가능성은 없을까?
전력을 다한 포르투나라면, 정말 쉽지 않은 상대다.
엘레나 양이 축복의 힘으로 고정한 사이, 최후의 섬광을 날려서 –
본능적으로 포르투나와 싸우게 될 경우를 대비한 공략법을 떠올리던 시점.
“아니지!”
문득, 이 같은 행위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잊지 말자.
302호의 성패는 깃털의 행방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명의 아들이 승엽 군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
쓸데없이 승엽 군을 우리와 싸움 붙일 이유가 없으며, 이는 변수를 늘리는 하책이다.
그냥 승엽 군으로부터 깃털을 회수하면 바로 승리가 아닌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극도의 허탈함을 느꼈다.
“뭐야? 무슨 일이냐?”
“선생님?”
또한, 내 지시에 따라 튀어나온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 여러분.”
“무슨 일인가요? 어? 승엽이는 어디 있지?”
“승엽 군이 납치된 것 같습니다.”
“으아악! 그, 그게 갑자기 무슨!”
“이런 개 – 뭐야 이게?”
삽시간에 경악한 표정을 짓는 동료들.
내 마음도 딱히 다르진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승리를 목전에 둔 것 같았는데, 갑자기 판이 뒤집어졌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마음을 추스르며 지시했다.
“우선 미로 양! 가인 군을 소환합시다.”
“으으… 이, 이젠 안 되는데!”
“무슨 말입니까?”
“가인이 나, 남은 시간 5분도 안 돼!”
“꿈의 왕국은 -”
“승엽이가 잠들어 있어야 쓸 수 있잖아요? 우리도, 어, 바로 잠들기는 어렵고 -”
이미 세 번째 시도가 시작한 지 며칠은 지난 상황.
따라서 시간대여기에 담긴 가인 군의 1시간은 이미 대부분 소모된 상태였다.
꿈의 왕국 역시 당장 사용하긴 무리다.
“… 잠깐만 부르고 바로 돌려보냅시다. 승엽 군 위치라도 알아내야 하니까!”
동료 위치정보 또는 승엽 군을 관측하고 있을 천상과의 상태창을 통한 정보 교환.
모두 가인 군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 철컥!
곧, 상황을 이해한 가인 군이 경고했다.
“아스테어가 승엽이를 데리고 인천 쪽으로 도주 중. 위치를 고려할 때 – 이런, 미사일인가!”
— 우르릉! 쿠궁!
“으악! 괜찮냐!”
“우, 우리 쪽으로 날아온 건 아닌데 -”
— 디이잉!
“이런, 순수파 쪽에서 싸움이 시작됐다고 -”
“병신 새끼들! 폭탄이 터지기 전에 경고해야 할 것 아니냐!”
무슨, 계획을 짜니 마니 할 겨를이 없었다.
숨 한번 고를 틈도 없이 거침없는 공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대화창으로 말해! 떠들어도 안 들리니까!”
유송이 : 미로는 뒤로! 시간대여기는 아끼는 게 맞아
김묵성 : 엘레나 중심으로 모여! 천사들이 나타날 것 같다. 정의 쓸 수 있겠냐?
엘레나 : 준비하고 있
김묵성 : 야, 야! 누구 총 한 방 맞아봐라! 정의 쓰기 쉽게!
미로 : 나 불변 있는데 맞아볼까?
유송이 : 정당방위 쓰려면 피가 팍팍 튀어야 하지 않아?
미로 : 그럼, 은솔이 몸을 던져보자.
엘레나 : 말이 너무 심해!
미로 : 어차피 반쯤 죽었잖아. 은솔이도 기뻐할 거야
김묵성 : 물어보고 하는 소리냐?
정신없이 고함치며 전투태세를 갖추는 동료들.
그 시각, 나는 실로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하늘을 보았다.
데이비드는 구원파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기까지 최소 하루 이틀은 걸릴 것 같다고 했었지.
실제로는 불과 몇 시간 만에 폭탄이 터졌고, 죄수의 권속들이 접근해 오고 있다.
데이비드가 바보 멍청이라서 틀린 걸까?
아니다.
데이비드는 적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전력과 그 전력을 투입하는데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을 합리적으로 예측했을 뿐.
지금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공격 타이밍인 것.
즉, 상대는 이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싸움을 걸어오는 게 아니다.
손해를 봐도 된다.
인적 물적 자원을 대량으로 잃어도 좋다.
위대한 자의 권속이 허무하게 죽어 나가도 상관없다.
그냥, 시간만 끌면 된다.
우리를 이곳에 묶어둔 사이에 아스테어가 승엽 군으로부터 깃털을 회수하면 완벽한 승리니까!
“하하…!”
승리를 목전에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단 한 순간에 날아갔구나.
이쯤에서 세 번째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음을 직감했다.
…
이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이후에 벌어질 괴이한 일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날이 밝을 무렵, 우리는 반쯤 폐허가 된 공터 여기저기 주저앉았다.
사방에 가득한 흙먼지와 시체들이 만들어 낸 참혹한 풍경.
그런데, 냄새만큼은 위화감이 상당했다.
화약과 피가 뒤섞인 악취 사이로 청량한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직 낙원이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
그러나, 낙원 수호자의 운명을 점지받은 이들은 진즉 인간이 아니었다.
“히야… 아무리 천사라지만, 어떻게 시체에서까지 이런 냄새가 나는 거냐?”
감탄 섞인 묵성 요원의 중얼거림.
그 사이, 다시 합류한 데이비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제임.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몰랐구나.”
“야, 야! 죽은 놈 시체에 대고 감성에 취할 때가 아니야! 오히려 천사 놈은 나중 가면 부활할걸?”
“…”
“우리가 망했다고 이놈아! 알고는 있는 거냐?”
“하아…”
여명의 아들을 섬기는 수호자, 강력한 대적의 시신이 앞에 있는데도 모두의 표정이 어두웠다.
되려, 죽은 천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의 뜻을 이룬다는 생각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모두가 내심 알고 있다.
승리는커녕, 패배가 목전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승엽이는 어떻게 됐나요?”
“이제는 뭐, 위치 추적도 무리지. 꿈의 왕국도 희한하게 안 통하네. 진즉 위대한 자가 홀라당 했을 거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절망 가득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데이비드.
반면, 동료들의 표정은 데이비드만큼 절망적이진 않았다.
유송이 : 으으… 어쩔 수 없네요.
김묵성 : 에잇! 뭐, 한 번 더 해야지 어쩌겠냐.
미로 : 얘들아, 은솔이 몸이 부서졌어. 괜찮겠지? 이미 시체였으니깐!
유송이 : 얘는 진짜 밖에서 언니에게 좀 맞아야겠어.
제임스의 목을 벤 당사자, 우리 중 가장 강력한 물리력의 소유자.
엘레나 양은 양손을 모은 채 지그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동료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절망할 필요 없다.
저 하늘 너머 머나먼 성천에는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 동료가 있지 않은가!
가인 군이라면, 분명 종말 이후 세계의 시련을 이겨내고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 주리라.
그러니까, 죽은 천사와 바닥에 주저앉은 데이비드, 그리고 우리까지 전원이 한 가지 명제에 동의했다는 뜻이다.
여명의 아들이 승엽 군을 회수하여 깃털을 손에 넣었으니, 판이 터졌구나.
곧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되리라.
그렇게 하루가 흘렀고.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한 달이 흘렀고, 반년이 흘렀다.
…
하늘에서 첫눈이 내리기 시작한 날,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쥔 묵성 요원이 말했다.
“얘들아.”
“…”
“뭔가… 진짜 이상한 일이 진행 중인 것 같다.”
“…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인마, 말을 이제 한 거지!”
“지, 진짜 뭔가요? 왜… 왜…”
떨리는 송이 양의 다음 말을 엘레나 양이 받았다.
다음 문장이야말로 모두가 몇 달째 생각 중인 생각 그대로였다.
“왜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하지 않는 거죠?”
나는, 그럴듯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했다.
“그걸 우리가 알아내야 할 것 같군요.”
*
— 관측소
새하얀 외벽으로 막혀있는 공간.
제법 잘생긴 흑발의 청년이 검은 콜라 캔으로 피라미드를 쌓고 있었다.
“오! 이번엔 완성이네?”
약 280개의 캔이 모여 만들어진 피라미드가 완성되는 감격의 순간.
“오오! 아리야, 이거 봐봐. 피라미드 완성됐어.”
“…”
“이야~ 매번 완성 전에 치우더니, 이번에는 – 아.”
“사라졌네.”
캔으로 만들어진 소형 건축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 짜증 나게 완성하자마자 치우네.”
“… 고마운 줄 알아. 호텔에서 관측소 청소도 안 해줬으면, 네 콜라 캔으로 이 좁은 공간이 꽉 찼을 거야.”
“그건 그렇지.”
“애초에 너, 콜라에 완전히 중독된 거 아니야? 하루에 대체 몇 캔을 먹는 거야?”
“야, 이거라도 없으면 몇 달을 지루해서 어떻게 버티냐.”
“건강도 생각해야지.”
“건강은 호텔이 챙겨줄 거야.”
“여기서 늙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
잠시 말문을 잃은 가인.
하지만, 아리는 내심 미친 듯이 콜라를 들이켜는 가인을 이해했다.
지루하긴 아리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아리도 감자칩으로 에펠탑 만들기에 푹 빠진 참이었으니, 딱히 다르지도 않았고 말이다.
“진철이는 3일째 방에서 안 나오네. 히키코모리도 아니고.”
“뭐, 우리도 이 좁은 곳에 반년째 갇혀있긴 하지.”
“방에서 뭐 하는 거야?”
“별 조각 수련하는 것 같던데.”
“그러다가 죽으면 어떡해? 관측소에선 치료도 해주지 않는 것 같은데…”
“… 별수 없지. 할 게 없으니까.”
할 게 없다.
할 게 없다.
할 게 없다.
최근, 아리는 지루함이 얼마나 무서운 적인지 느끼는 중이었다.
“차라리 302호에서 뭔가 끊임없이 벌어지던 때가 나았는데.”
“…”
“그랬으면, 망원경에 붙어있기라도 했지. 참, 오늘은 언제 관측했더라? 가인이 네가 아침에 30분 정도 했었지?”
“응.”
관측이 뜸해진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관측할 만한 일이 거의 벌어지지 않고 있다.
302호의 진행이 멈춘 지 몇 달이 흘렀기 때문이다.
둘째, 관측 과정에서 망원경이 가하는 압박이 심신 양면으로 문제 되기 시작했다.
“난 요새 망원경을 30분만 봐도 머리가 아파.”
“아리야, 지금은 괜찮아?”
“가만있으면 괜찮아.”
“몸보다는 정신과 영혼의 문제일 거야. 한 번이라도 105호에 들를 수 있으면 해결될 것 같은데.”
“… 의미 없는 소리네. 요새는 뭐 좋은 소식 없어?”
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송이의 살덩이가 음, 부화하기 시작했어.”
“알도 아닌데 무슨 부화?”
“생명체 비슷하게 변하고 있다는 소리야.”
“그래, 그건 기쁜 소식이네.”
“…”
“…”
다시금 지루함의 지옥이 시작되려는 시점.
아리가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죄수가 승엽이를 통제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더라? 7개월 넘었나?”
“곧 있으면 8개월.”
“나는… 여명의 아들이 승엽이 몸에서 깃털을 뽑든지 할 줄 알았어.”
“…”
“깃털을 손에 넣고, 세상을 무너트릴 줄 알았어.”
“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
“…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할 줄 알았어. 그때, 우리 진입할 준비까지 하고 있었잖아.”
모두가 아리처럼 생각했다.
“실제로는 그냥 멈춰있어. 해결도 아니고 -”
“해결이 아니지. 깃털이 딱히 파괴당한 것도 아니고, 멀쩡히 지상에 있으니까. 여명의 아들이 깃털을 손에 넣어 승리하는 시나리오는 언제든 가능해.”
“… 실패도 아니야.”
“실패도 아니지. 어쨌든, 깃털이 아직 참가자 손에 있으니까. 승엽이는 아직 살아있어.”
실제로 벌어진 일은 훨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흑발의 소녀가 중얼거렸다.
“예전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어.”
“…”
“지금은 알 것 같아. 여명의 아들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몇 달에 걸친 고통스러운 시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관측소에 갇힌 채 생각하는 것뿐.
“상황을 여명의 아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
“깃털을 얻으면 이긴다? 아니야. 크게 보면 그렇지 않아.”
깃털을 얻으면 여명의 아들이 승리한다?
아니다. 참가자의 해결을 막았을 뿐이다.
“종말 이후 세계가 있으니까.”
“그래. 종말 이후 세계가 있어. 거기서 여명의 아들은 우리와 2차전을 벌여야 해.”
“…”
“문제는, 그 2차전을 우리는 이미 한번 해봤다는 거야.”
“첫 번째 시도 때 해봤지.”
“해봤어. 그리고, 그 싸움에서 우리가 – 정확히는 네가 이겼어.”
“… 힘으로 이긴 건 아니야. 그냥 뭐, 말장난이 잘 통한 거지.”
“힘이든 계략이든 상관없어. 어차피 계략도 또 쓸 수 있으니까. 중요한 건 네가 이겼다는 거야. 이 과정에서 여명의 아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어.”
“…”
“본인이 직접 강림하지 않는 이상, 천사들만의 힘으로 널 쓰러트리는 건 쉽지 않구나.”
“…”
“종말 이후 세계에서의 승부, 곧바로 시작하면 생각보다 어렵다. 그러니까…”
“…”
“승부를 시작하기 전에 네 힘을 빼야겠다.”
“…”
“그게 지금 상황이야. 어떻게 생각해?”
가인은 새로운 콜라 캔을 따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관측소에서 ‘대단히’ 오랜 시간을 보낼 것 같다고 말이다.
또한, 한 가지가 궁금했다.
“…조언에 따르면.”
“응?”
“여명의 아들이 힘으로 승엽이 자아를 파괴했다거나 하진 않았어. 그랬다면, 그 즉시 깃털을 얻은 것과 다름없다는 판정이 떴을 테지.”
“…”
“이상한 말. 사악한 목소리. 흉측한 계략. 그런 것으로 승엽이의 마음을 꺾었어.”
“…”
“어떻게 꺾었지? 놈이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