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87)
괴담 호텔 탈출기 787화(786/794)
787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50)
— 휘이잉!
유난히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이었다.
“오늘은 좀 심한데.”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있던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통나무집 외벽 틈새를 뚫고 서늘한 냉기가 거침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난방 기구라도 틀고 싶었지만…
전기가 끊긴 지 8년, 가스와 등유를 구할 수 없게 된 지도 5년이다.
그저, 방한복을 껴입으며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후우…”
이곳은 알래스카 북부, 노스슬로프 인근의 단독주택.
노스슬로프 시내와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그래서 아직은 안전한 편이기도 했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돌아버린 생물은 바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노인은 흔들의자에 기댄 채 과거를 생각한다.
예전에는 관리국 구원파의 암살을 두려워해 순수파가 준비한 안전 가옥에만 머무르던 시기도 있었지.
그때는 옆에 동료들도 제법 많았는데…
세월이 흐르며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
인류가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비참하게 무너진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무너진 탑 중에선 ‘관리국’도 있었다.
— 팅!
종소리가 울렸다.
과거, 순수파가 노인의 집 근처에 설치해 준 72개의 함정 및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
탁자 위의 버튼만 누르면, 침입자는 시신도 남기지 못하리라.
물론, 노인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침입자가 아니라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 끼익…!
문이 열렸을 때,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왔군요.”
손님의 외형이 노인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는 시간의 파도가 손님만 피해 간 것 같았다.
문득, 오래전의 기억들이 ‘김상현’의 뇌리를 스쳤다.
***
— 박승엽 실종 후 3년 차, 대한민국
이 시기 즈음에는 모두가 ‘302호가 끝나지 않는 상황’을 이해한 상태였다.
여명의 아들이 깃털을 얻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깃털을 파괴한 것도 아니다.
302호가 3년째 진행 중인 셈이다.
위 사실은 관측소에서 상황을 이해한 가인 군이 상태창을 통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시간대여기에 남은 가인 군의 시간이 1분 미만으로 줄었다.
…
최근, 우리의 목표는 명확했다.
승엽 군을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서, 승엽 군 스스로 깃털을 파괴하게 해야 한다.
목표를 처음 정할 때만 해도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승엽 군의 위치는 가인 군의 동료 위치정보나 관측소의 망원경 등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
설령 위치를 모르더라도, 꿈의 왕국을 통해 승엽 군 바로 옆으로 순간 이동하면 그만이지.
따라서, 우리는 몇 주 내로 승엽 군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는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앞서 언급한 우리의 수단을 손쉽게 무력화하는 요소가 302호 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도 없고, 꿈의 왕국으로 접근할 수도 없는 장소, ‘멋진 신세계’ 말이다.
2년 전, 데이비드가 말했다.
‘… 아무래도, 구원파가 승엽이 녀석을 멋진 신세계에 숨긴 것 같다.’
‘멋진 신세계는 순수파의 작품 아니었나?’
‘그렇게 말하긴 애매하지. 멋진 신세계를 만들 때는 두 세력의 구분이 모호했으니, 공동의 작품에 가까워.’
‘그 말은, 구원파도 멋진 신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군.’
‘일반적인 멋진 신세계와 달라. 철저하게 승엽이 녀석을 감추기 위한 멋진 신세계다. 그걸 찾아내야 해.’
한 가지 기이한 점.
승엽 군이 정체불명의 멋진 신세계 내에 잠들어 있다 치자.
이 경우, 망원경으로도 승엽 군을 관측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멋진 신세계 자체의 위치는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위치조차 알 수 없었다.
*
언젠가부터 동료들의 변화를 느끼곤 한다.
예컨대, 나는 머리에 흰머리가 늘기 시작했다.
육체적으로 50대 초중반은 되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노화에 시달리는 묵성 요원 역시 허리와 목을 부여잡곤 했으니 말이다.
“허어… 이상하게 아침부터 허리가 아프단 말이지.”
가장 많이 변화한 사람은 송이 양이었는데, 신체 나이 기준 15세 정도로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10대 후반의 송이 양은 호텔에서 보던 모습보다도 살짝 더 성숙한 상태였다.
“할아버지도 참, 요즘 매일 아프다면서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요?”
“아니야… 요번에는 느낌이 달라. 뒤통수가 싸한 것이, 불길한 미래가 느껴진단 말이다.”
“그 소리도 한 200번 하신 것 같은데.”
“베테랑 요원의 경험을 무시할 참이냐?”
“솔직히, 이젠 할아버지가 딱히 나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실제 나이는 의사 선생님이 더 많으신 거 아닌가?”
“인마, 그래도 송이 너보단 많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동료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미로 양이었는데, 불변의 축복 때문이다.
축복의 특성을 고려하면, 3년이 아니라 30년이 흘러도 그대로일 것 같았다.
“아~ 오늘은 저기, 저 공장 박살 내면 된다면서? 왜 이렇게 기다리는 거야?”
몸이 늙지 않는다는 점은 부러웠지만, 정신연령도 크게 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를 다소 피곤하게 하곤 했다.
물론, 관점을 달리하면 그 누구보다도 정신적으로 견고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장점이 되는 순간도 있으리라.
“미로, 조금 기다려 봐라. 인천 공장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첩보가 들어오긴 했지만, 확실하지 않아. 아까부터 뒤통수가 싸하다니까.”
“아이, 참, 묵성이는 맨날 싸하대.”
종종, 나는 미로 양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불변의 축복이 있으므로 장기전에 유리하다?
축복만 고려한 단순한 판단이다.
미로 양의 성장하지 않는 미숙한 정신과 ‘시간대여기’의 문제점도 고려해야 한다.
시간대여기는 장기전에 불리한 유산이다.
가장 큰 무기인 가인 군의 시간은 이미 1분도 남지 않았고, 아리 양을 비롯한 다른 동료의 시간은 진즉 소모했음을 생각하자.
미로 양은 어쩔 수 없이 302호 내에서 몇 번 우리의 시간을 빌려서 다시 채웠지만…
이는, 언제든 사고가 터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엇!”
“엘레나?”
“지금 신호가 왔어요!”
“갑시다.”
*
안타깝게도 인천에서의 탐색은 허탕이었다.
불완전한 멋진 신세계는 찾아냈지만, 제작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내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살짝 아쉽긴 한데,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3년째 진행 중인 탐색, 이미 한두 번 실패한 게 아니니 말이다.
“여기도 아니었네요.”
“데이비드 놈이 문자를 보냈는데, 다음에는 북경 쪽을 확인하자더라.”
“중국이요? 비행기는 조금 위험한데 -”
— 끼이익!
격렬한 전투의 흔적으로 반쯤 폐허가 된 공장.
그 한편에서 회의 중인 동료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허름한 문을 열었을 때 –
“어? 선생님이 어떻게 둘 -”
“으앗! 무, 문 닫아요!”
– 나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
“…”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대혼돈 그 자체였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며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 정도로 격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으리라.
‘김상현’의 정체성이 산산이 조각나는 듯한 공포가 영혼을 집어삼켰고, 용암처럼 뜨거운 분노가 용솟음쳤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나’는 인내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는, 내가 눈 깜짝할 사이 느낀 감정을 몇 배, 몇십 배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제 죽음이요 -”
“씨발, 미로! 이 새끼 당장 돌려보 -”
“-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나’의 손가락이 나를 겨누었다.
그리고, 신성과도 같은 빛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 순간, 최후의 섬광 궤도가 뒤틀리며 ‘나는’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대신, 다른 누군가가 섬광의 뒤틀린 궤도에 신체 일부가 노출되었다는 사실.
미로 양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불변의 축복은 그녀에게 불변력이라는 일종의 방어막을 제공한다.
하지만, 최후의 섬광에는 그런 방어막 따위는 몇 겹이 있어도 종잇장처럼 꿰뚫고도 남을 위력이 있었다.
…
이 사고는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시간대여기의 부작용을 감당하지 못한 과거의 나?
미로 양이 과거의 나를 소환했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경고 없이 문을 연 현재의 나?
싸움이 끝났으면 과거의 나를 역소환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미로 양?
미로 양이 과거의 날 소환한 상태임을 대화창으로 알리지 않은 묵성 요원?
…
여러해 동안 이 시기의 일을 돌이키곤 했지.
생각건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본다.
모두가 사람이었을 뿐이다.
여러 해에 걸쳐 일을 진행하다 보면, 한 번씩 실수가 나올 수 있는 사람.
굳이 따지면, 내가 유일성을 극복한 초인이 아닌 게 문제였겠지.
과거의 자신과 상태창으로 소통하면서도 눈살 몇 번 찌푸리는 정도로 가능하다는 것.
몇 번을 보면서도 별생각 없었는데, 이제야 가인 군이 얼마나 사람을 넘어섰는지 깨달았다.
…
당시의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인 채 죽어가는 미로 양의 손을 붙잡았던 것 같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
“다, 당장 치료를 -”
“치료가 되는 상처야?”
당연히 아니었다.
애초에 미로 양이 의식을 유지하는 것조차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분명 불변의 힘이 어떤 조화를 부렸던 것 같다.
“… 상현아.”
“뭐, 뭐?”
“미안해. 한 번쯤은 사과하고 싶었어.”
미로 양의 입에서 ‘사과’라는 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말문을 잃은 사이, 그녀는 마지막으로 가인 군을 소환했다.
1분도 남지 않은 귀하디귀한 가인 군의 시간이었지만, 미로 양 본인에게 남은 시간보다는 길었다.
“가인아… 나, 아파. 아프고, 뜨거워…”
서서히 힘이 빠지는 흐릿한 목소리.
가인 군은 말없이 미로 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곧이야. 곧, 밖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을 수 있을 거야.”
“하겐다즈 먹고 싶어.”
“그래, 그러자.”
“… 보고 싶었어.”
***
— 박승엽 실종 후 7년 차, 멕시코
이 시기쯤에는 동료들의 신체 변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컨대, 나는 흰머리가 늘어서 주기적인 염색이 필요한 상태였다.
묵성이 녀석은 슬슬 체력 부족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의 신체 나이가 일흔이 훌쩍 넘었음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으으… 설마 오늘도 허탕인가?”
“무릎은 괜찮나?”
“아직은 괜찮은데, 30분 정도 지나면 쉬어야 할 것 같다.”
“그러지.”
반면, 신체적으로 절정에 도달한 동료도 있었다.
302호에서 만 15세 정도로 시작한 송이 양이었는데, 20대 초반의 송이 양은 정말 예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미모가 송이 양에게 모종의 자신감을 불어넣었던 걸까?
그녀는 가끔 마치 패션쇼를 하듯이 빙그르르 돌곤 했다.
“야, 야! 저거 또 뭐하냐?”
“후후…! 할아버지, 이거 아르마니 신상인데 어때요? 예쁘죠?”
“너 혼자 무슨 휴가 나왔냐?”
“어차피 오늘 탐색은 거의 끝났잖아요? 멕시코 쪽도 허탕 같은데.”
묵성이는 송이 양의 태도를 황당하게 여기는 것 같았는데, 나는 송이 양을 이해했다.
아마도 내가 묵성이 녀석보다 나이는 많아도 마음은 젊기 때문이라고 본다.
302호 세 번째 시도가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다.
사람이 7년 내내 한순간도 빠짐없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도 크리스마스에는 파티 비슷한 걸 즐기려 했던 역사 속 군인들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사람의 마음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송이 양에겐 명품을 모은다거나, 가끔 하늘을 향해 빙그르르 도는 게 스트레스 관리의 일종이겠지.
“엘레나도 해봐.”
“어? 여, 여기서?”
“생각해 봐. 우리도 피곤하지만, 관측소의 가인 오빠는 얼마나 지루할까? 하루 종일 회색 벽으로 만든 방에 갇혀있는데!”
“가, 갑자기 가인 씨 이야기는 왜 -”
“왜는 무슨 왜. 엄청나게 보고 싶어 하면서. 그리고, 은근히 신경 쓰이지 않아? 오빠랑 아리 둘이서만 천상에 있는데 -”
“두, 둘이서만 있는 거 아니잖아! 지, 진철 씨도 있어.”
“진철 오빠는 알아서 자리 피하지 않을까? 헉! 나, 방금 미로의 동생이 보인 것 같아!”
“꺄아악!”
미로 양의 동생?
동생보다는 ‘손녀’가 맞는 표현 아닐까?
어쨌든, 송이 양의 말에 엘레나 양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내 생각에는 이게 바로 송이 양의 두 번째 스트레스 해소 방법 같았다.
엘레나 양을 놀리는 것 말이다.
묵성이 녀석과 난 헛웃음을 터트리며 서로를 마주 보았는데,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다.
“상현아, 쟤네 장난치는 거 보다가 든 생각인데… 서로 호칭이 좀 바뀐 것 같지 않냐?”
“송이 양이 엘레나 양에게 편하게 말하는 것 말인가?”
“그렇지. 너처럼 양양 거리지 않고.”
“…”
확실히, 언젠가부터 두 사람은 나이 차이 없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신체 나이가 역전되어서 그럴지도.”
“흐음, 그러고 보니, 이젠 송이 쪽이 나이가 더 많군.”
송이 양의 몸은 평범한 인간인 만큼, 자연스레 20대 초반이 된 상태.
반면, 엘레나 양은 여전히 끽해야 1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신체적으로 평범한 인간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실에서 달과 싸우던 중, 원래 육신이 파괴당했다.
다행히 관리국 기술력으로 제작한 대체 육신을 받으며 회복했지만…
새로운 몸은 유전적으로 엘레나 양의 본래 몸과 유사하긴 했으나, 완전히 같진 않았다.
“하아…”
“엘레나? 왜 그래?”
“승엽이를 찾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
“그러게. 멕시코도 허탕이면, 다음은 또 중국인가.”
묵성의 설명에 따르면, 저 몸은 성장 속도가 다르다고 한다.
유년기 이후로는 노화 및 성장이 급격히 느려지며, 수명은 일반 인간의 2~3배는 된다고 했던가?
평소엔 별생각 없었지만,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부러웠다.
어쨌든, 나는 계속 흰머리가 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묵성.”
“음?”
“엘레나 양의 저 몸, 관리국 특제품이었지?”
“뭐, 그렇지. 순수 과학의 산물은 아니고, 혼돈의 힘이 깃든 특제야. 정말 만들기 쉽지 않은 물건이라고? 현실에선 조 단위 재산을 가진 부호들도 손에 넣을 수 없다.”
“…”
“관리국 고위층과 요원들만 얻을 수 있지. 이들도 신청하는 대로 주어지는 건 아니고, 대기 번호 뽑아야 해. 엘레나가 바로 받은 건 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 -”
“그래서 상당수 요원이 젊은 모습이었군.”
“그렇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너는 저런 몸을 신청할 기회가 없었나?”
“…”
“아리 양이야 압도적인 상위호환인 ‘오래된 피’가 있으니, 필요 없었겠지만, 너는… 저런 몸이었다면, 지금도 젊은 상태일 텐데.”
“…”
“아리 양이 침묵하는 자일 때 부탁해 보지 그랬 -”
“글쎄, 이것도 내 나름의 선호라고 해두지.”
“선호?”
“신체 일부라면 몰라도, 전부를 바꾸는 건 취향이 아니야. 무엇보다, 우리는 본래 회귀자라고? 노화를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
‘내 나름의 선호’라는 말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회귀자라 노화를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상현아, 너야말로 슬슬 노화를 방어할 수단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뭐?”
“뭐랄까, 이 나이 먹으면 어떤 감이라는 게 생기거든.”
“…”
“우리 중, 마지막까지 남는 건 너일 것 같다. 애초에 너랑 승엽이가 302호의 중심 아니냐. 마지막까지 가겠지.”
“…”
“수명을 늘릴 방법에 대해 데이비드랑 말해봐라. 분명 뭔가 있을 -”
“묵성아, 내가 진짜 7년을 참았던 말인데, 한 번만 하자.”
“뭐? 뭔 말을 7년이나 참아? 말해봐.”
“따지고 보면 내가 인생 경험, 호텔 경험 둘 다 너보다 많은 거 아닌가?”
“…”
“뭔 놈의 인생 선배 행세가 이렇게 심해? 아니, 요원 몇 년이나 했냐? 한 1,000년 했어?”
“3,000년 했다. 이놈아!”
“거짓말하지 마라. 아리 양이 너 맨날 후배 취급하던데, 보나마나 -”
이렇듯, 큰일을 끝내고 우리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점.
— 디이잉! 디이잉!
모두의 핸드폰에서 일제히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엇, 순수파에서 -”
“당장 탈출하라는데요? 아니, 차라도 보내주고 이런 소리를 해야지!”
“이거 뭐냐? 폭동? 대통령이 죽었어? 국회의사당에 폭탄이 터졌 – 뭐야?”
… 네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 …
돌이켜보면, 이때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승엽 군 실종 7년 차.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탑이 붕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