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9)
78화 – 아리가 겪은 일(2)
“펭귄!”
피곤하다. 엄마는 아직도 끝말잇기 매너도 모르나.
시작할 때 저런 단어 쓰면 안 된다고 혼이라도 내야 할까?
…
5회차. 처음 시작할 때 떴던 무시무시한 알림들.
[대적자들이 참가자의 침입을 인지합니다.] [저주의 힘이 강해집니다.] [탈출할 수 없습니다.]그걸 봤을 때는 오랜만에 소름이 돋았다. 시작하자마자 엄마가 달려들 것에 대비해서 힘을 끌어올렸지.
… 아무 변화가 없다.
뭘까?
의미 없는 알림일 리가 없는데. ‘김상민’이 나에게 무슨 공격을 한다는 느낌도 전혀 없고, 저주의 힘도 전혀 강해지지 않았다.
내가 있는 장소가 외부 세계와 차단된 ‘호텔’이기 때문인가?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엄마는 어떻게 저주에 감염되었을까?
점점 모르겠다. 그냥 멍하니 기다리면서 주변 공간이 무너지며 해결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동료 여러분! 화이팅~!
“펭귄! 빨리 대답해!”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저녁엔 방송국에 가기로 했으니까 무시하자.
엄마가 알아서 문 부수고 들어오겠지. 방송국에서 정신 차리지 않을까.
.
.
.
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엄마는 딱히 들어오지도 않고 있고, 해결도 아직 뜨지 않았다.
이상한데? 엄마는 이렇게 인내심이 긴 사람이 아니다.
대체 뭘 꾸미고 있을지 확인이라도 할 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103호에서 나와서 복도를 쭉 걸어서 호텔 정문 쪽으로 향하고서야 엄마가 보였다.
이상하다. 이런 분위기.
엄마는 저렇게 얌전히 서서 풍경 감상이나 하는 성격이 아니다.
…
101호에 들어온 이래 품었던 의문들.
‘외부와 소통할 방법이 없는 호텔에서 엄마는 어떻게 저주에 감염됐는가?’
‘5회차가 시작되고 온갖 페널티가 시작됐는데, 왜 나는 변화가 없지?’
그리고, 저쪽에 서 있는 엄마의 기묘한 태도.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느낌과 함께 깨달음이 다가왔다.
내가 품었던 모든 의문을 한순간에 꿰뚫는 정답이 떠올랐다.
“너! 대체 누구지?”
“실망이다.”
“뭐?”
“호텔 2회차 아니신가? 이렇게 깨달음이 느릴 줄이야.”
“…”
“처음에야 저주의 매개체가 뭔지 몰랐으니 속았다 치고, 저주의 매개체가 미디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계속 속은 점은 실망스럽다. 이 호텔 어디에 외부와 통한 미디어가 있는가. 저주를 감염시킨 별도의 존재가 있음이 당연한 게 아니냐.”
“…”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그보다도 이 풍광. 신비롭구나. 심해인가? 재미난 물고기들이 여럿 보이는군.”
“진짜 모습을 드러내!”
“좋지. 그렇지 않아도 네 어미의 유아적인 자아 뒤편에서 기다리느라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대답과 동시에 – 엄마의 몸이 ‘세로로’ 쪼개졌다.
어차피 가짜 엄마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참혹한 장면을 보자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엄마의 몸을 쪼개고 나타난 건 장신의 남자였다.
40대? 50대? 비쩍 말랐고, 안경을 쓰고 있다.
아니, 이런 외형은 의미가 없겠지. 내 짐작대로면, 저 존재는 애초에 인간이 아니다.
“당신이 이 방의 ‘죄수’였군.”
“죄수? 관리국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나?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군. 이곳이 나의 감옥이긴 하지.”
“‘김상민’에게 힘을 준 게 너였나? ‘원장 선생님’?”
“불쌍한 아이였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또래들에게 가혹한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정신병까지 얻었지. 그 후에는, 도리어 그 정신병 때문에 기자의 타겟이 되어서 낙인까지 찍히고 말았다. 가엾지 않나? 세상에 당한 만큼, 한번 되갚아줄 기회는 있어야지.”
“진짜 그런 동정심을 진지하게 느끼긴 한 거야?”
“물론 아니지. 그래도 재미는 있지 않았냐? 돌멩이 하나로 세상을 이토록 재밌게 만들 수 있다니! 너희 관리국은 내게 감사라도 했어야지.”
“그래서, 왜 이런 장소에 나타났지? 내 동료들이 ‘김상민’을 처단하러 갔다. 곧 해결이 뜨면서 101호의 모든 공간이 무너질 텐데. 그 전에 최후의 만찬이라도 즐기려고?”
…
‘원장’은 감회어린 표정으로 호텔 전경을 한참을 둘러보았다.
“신비하군. 이 호텔이 얼마나 신비한지 너는 이해하는가?”
“…”
“전혀 모르겠지. 강아지가 주인을 따라서 빌딩에 간다고 한들 그 빌딩이 얼마나 고도의 건축공학에 따라 건설된 산물인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마찬가지로, 너는 이 호텔이 얼마나 초월적인 위대한 작품인지 그 한 단면도 이해할 수 없다.”
“잘난 체하시려고 내 앞에 나타난 거야?”
“잘난 체가 아니지. 나는 너보다 아득히 뛰어나다. 잘난 거지.”
“…”
“정말 신비롭지 않으냐? 우리가 있는 이 삼라만상 전체가 따지고 보면 101호의 내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네가 참가하자 101호 내부에 또 하나의 호텔이 형성됐다. 호텔 내부에 또 다른 호텔이 형성된 것이지. 이 호텔 속의 호텔에서도 ‘진행’이 가능할까? 너는 ‘휴식의 방’이 아닌 다른 방을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더군. 참으로 소심한 행동이지.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마. 이 호텔 속 호텔에도 저주의 방, 관문의 방 등이 전부 형성된 상태다.”
“그건 신기하네.”
“이 엄청난 이적을 ‘그건 신기하네’ 정도로 넘기는 너의 조악한 정신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네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지식’에 빗대어 설명해주지. 블랙홀 정도는 알겠지? 태양보다 몇 배는 거대한 별이 수명을 다하면 중력붕괴로 인해 블랙홀이 형성된다.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나 강해서 빛조차도 나올 수 없지.”
“나에게 물리학 강의라도 할 셈이야?”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도 나올 수 없다는 말은, 곧 블랙홀은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장소라는 의미다. 관점에 따라서는 블랙홀 내부가 또 하나의 세계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그래서 블랙홀 안에 또 하나의 우주가 있다는 말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만상이 존재하는 이 우주 자체도 어쩌면 거대한 블랙홀 내부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지. 지금 이 호텔 속의 호텔과 유사하지 않으냐?”
“나는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모르겠어.”
“우둔한 머리로 생각해봐라. 이 호텔 속의 호텔에서 네가 ‘진행’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여기서 얻은 유산도 가지고 나갈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어차피 나 혼자서는 진행 못해.”
“너야 그렇겠지. 그렇다면, ‘내’가 진행한다면 어떨까? 내가 이 호텔을 부숴버린다면? 가둬진 존재들을 전부 해방한다면?
너희의 관점에선 이곳이 101호인가? 각 방은 결국 하나의, 너희의 표현을 빌리자면, ‘죄수’를 감금하는 장소. 다수의 죄수를 전부 억제할 수 있을까?”
!
“그런 개수작을 부리기 전에 내 동료들이 해결할걸? 너에겐 무너지는 공간 속에서 영원히 갇히는 결말만 남았다.”
“그렇게 동료를 믿고 사랑하는 성품이셨나? 내가 빌렸던 몸의 기억과는 사뭇 다르군. 나는 이 장소로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자유롭다. 심해의 바다 정도야 인간에게나 힘든 환경이지. 나는 지금이라도 네 동료가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한테 그런 허세가 통한다고 생각해? 객실 내부에서 너희 악마와도 같은 죄수들이 그토록 마음대로 날뛸 수 있다면 그 어떤 방도 결코 진행할 수 없어.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서 잘난 체 할 수 있는 것도 꽤 무리한 것 아닌가? 5회차가 되어서 제약이 풀리니까 비로소 가능한 일일 텐데?”
정곡을 찔렀나?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보는 남자의 태도를 보면 딱히 그런 느낌은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나와의 이런 대화 자체가 ‘재미없는’ 느낌.
“과거에 호텔에서 탈출한 건 어차피 운이 좋아서 나갔을 텐데, 그런 것 치고는 이해력이 아주 낮진 않구나. 네 말대로 나의 이런 장난질은 지금이 너희의 다섯 번째 시도라 가능한 일이긴 하지. 사실 나도 네 동료를 방해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빨리 ‘해결’해 줬으면 하고 있지. 병원도 처리해 뒀다. 간호사들이 괜히 너희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치했지. 상민이가 쓸데없는 인형들도 여럿 만들고 있길래, 하나 말고는 고장 냈다. 하나 남긴 건 너희도 이해해라. 뭔가 싸우는 느낌이라도 있어야 재밌을 것이 아니냐? 지금 네 동료 중 덩치 큰 남자가 인형하고 주먹다짐 중이니 조만간 끝날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지?
‘병원 원장’은 마치 예전의 삼키는 자처럼 자신이 우리를 돕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의문으로 가득 찬 표정이군. 너희의 그런 표정은 나를 꽤 즐겁게 만들어주지. 난 친절한 성품이니 걱정 말거라. 어차피 계획이 전부 완성됐는데 설명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너희가 방을 ‘해결’하면, 결전 장소를 시작으로 방 내부의 세계 전체가 붕괴한다. 이 ‘호텔 속의 호텔’도 붕괴한다는 이야기지.
당연히 ‘호텔 속의 호텔’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죄수들도 자연히 붕괴하겠지. 그러나, 먼저 조금은 자유로워진 내가 잠시나마 그들이 붕괴를 버틸 수 있도록 손을 쓸 생각이다. 찰나의 시간이겠지만, 나를 포함한 ‘죄수들’이 최소 두 자릿수 이상이 자유로워지는 순간! 나와 죄수들 모두가 힘을 모아도 101호가 버텨낼 수 있을까?”
이해했다.
동료들이 방을 해결하면 방 내부의 공간이 붕괴한다. 그 시점, 호텔 속의 호텔도 붕괴하는 순간을 노려서 ‘다수의’ 죄수들과 함께 101호를 무너트리겠다는 계획.
그런 식의 탈출이 가능한 일일까?
모르겠다. 내 이해를 너무나 벗어난 범주의 이야기들이라 판단할 방법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
병원 원장 한 명도 아니고, 호텔 속의 호텔에 형성됐다는 두 자릿수의 ‘죄수’들이 호텔을 벗어난다면, 지구는 대충 10분 컷 아닐까?
—쏴아아아아!
무언가 거대한 파도를 연상시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외부의 소리가 들어올 수 없는 호텔에까지 들려오는 소리.
동료들이 해결했구나.
만상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호텔 속의 호텔이 서서히 무너져간다….
그 순간만을 기다려온 병원 원장은 조용히 시선을 위로 올렸다.
원장의 몸에서 형언할 수 없는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오색? 칠색? 아니, 내가 아는 색으로는 저 빛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후광을 두른 채로 원장은 팔을 사방으로 뻗었다.
순식간에 원장의 몸에서 수십 개의 손이 솟아났다.
하나하나의 손이 호텔 내의 방을 향해 날아갔다.
–쿠궁!
호텔의 문이 녹아내렸다.
–고오오오오!
–라아아아아!
–까아아아악!
모든 방에서 거대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외침이 무너져가는 호텔 전체를 진동시키고, 세상 전체로 뻗쳐나갔다.
나는 이 모든 초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그저 넋이 나갔다.
대체 뭘 해야 하지? 내가 저자를 공격한다고 의미가 있을까?
개미가 물어뜯는다고 사람이 공사를 멈추던가? 신경이나 쓰던가?
호텔이 붕괴하고 각 방조차 붕괴하는 순간.
나는 찬란한 빛을 쏟아내는 병원 원장의 ‘손’에 붙잡힌 채로 형체를 유지 중인 수 많은 죄수를 보았다.
하나하나가 필멸자를 벌레처럼 여기는 사악한 신들.
별이 좁다 하는 악신들의 위세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드높은 천상.
머나먼 하늘의 끝에서 – ‘기둥’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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