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90)
괴담 호텔 탈출기 790화(789/794)
790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53)
— 박승엽
‘적절한 교육’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한숨 쉬며 말했다.
“승엽 군. 그래서, 깃털은 어떻게 됐습니까?”
302호의 해결 여부는 결국 깃털의 행방에 달려있다.
어떤 식으로든 없애면 우리의 승리고, 천사들의 손에 넘어가면 죄수의 승리인 것.
“25년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소환할 수 있겠지요?”
“… 아니요.”
“설마, 깃털 소환 방법을 아직도 알아내지 못한 겁니까?”
곧, 내 손끝에서 신비로운 빛이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내가 ‘깃털의 힘’을 사용하는데 과거보다 훨씬 익숙해졌다는 증거.
25년의 고통이 아주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다시피, 지금의 전 깃털의 힘을 다루는 데 익숙합니다. 이래도 깃털을 소환할 수는 없어요.”
25년 전, 나는 깃털을 소환하지 못했다.
당시엔 방법을 몰라서 소환하지 못한다고 착각했었지.
아니었다.
“방법을 몰라서 깃털을 소환하지 못한 게 아니었군요?”
“네.”
“하긴, 과거의 소연 양은 승엽 군과 달리 너무나 쉽게 깃털을 꺼냈지요.”
송이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소연이라고 딱히 깃털을 소환한 경험이 있을 리 없는데.”
“…”
“왜 소환하지 못하는 거야? 이유는 알아냈어?”
“정확히 말하면, 소환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소환할 수 없어요.”
“지금은? 그 말은, 나중에는 소환할 수 있다는 뜻이지?”
“네. 두 분 다 제 말을 들어주세요.”
깃털을 소환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악몽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긴 내 나름의 계획을 설명하려는 시점.
갑자기 송이 누나가 손을 까딱했고, 의사 선생님이 슬쩍 뒤로 물러섰다.
이 한 번의 동작만으로 두 사람이 얼마나 오래 조합을 맞춰 싸워왔는지 느꼈다.
곧, 빛나는 환영 문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만.
“…”
네 표정만 봐도 알겠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구나?
정말 기뻐. 진심이야.
계획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네가 25년을 그냥 후회하며 낭비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북극 기지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야.
누가 알겠니? 어딘가에 도청 장치라도 숨겨져 있을지.
나와 선생님의 준비는 여기까지야.
널 구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다음 계획은 없어.
다음 계획을 세우고 싶어도, 너처럼 죄수 혹은 깃털과 접촉할 수 없으니, 정보가 부족했거든.
또, 네가 깃털을 소환하기만 하면 해결될 줄 착각하기도 했고.
이제부터는 네 계획대로 하자.
더 이상 설명하지 마. 그냥 지시해.
“… 스크린 쪽으로 다시 갑시다.”
“좋아.”
“그럽시다. 참, 소연 양의 동상은?”
“제가 들고 갈게요. 참, 이 짐승은 대체 뭔가요?”
“…”
“자꾸 제 다리를 핥는데 -”
“승엽아, 그냥 출발하자.”
— 찰랑…!
스크린에 손을 대었을 때, 다시금 환영 문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가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충고 하나만 할게.
302호에서 장기간 고생하며 깨달았어.
아무리 위대한 자라 해도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변수’까지 고려하진 못해.
험프티덤프티가 그 증거야.
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네가 준비한 무언가가 있다면, 여명의 아들이 모르는 패여야 할 거야.
이미 드러난 패라면, 상대는 무조건 해답을 준비했을 테니까.
널 믿을게.
새삼, 의사 선생님과 송이 누나가 25년간 얼마나 혹독히 고생했는지 깨달았다.
— 찰랑…!
*
스크린 너머로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 두 동료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최소한 북극은 아니군요.”
“뭐야? 주변 풍경 살짝 익숙하지 않아요? 반쯤 폐허가 되긴 했는데 – 어? 방배중학교네?”
“맞아요.”
잠시, 두 동료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대체 무슨 수로 북극에서 방배중학교까지 한 번에 이동했냐고 묻고 싶겠지?
내가 갇혀있던 북극 기지 내부는 공간 좌표가 끊임없이 요동치는 장소였다.
분명, 축복 내지는 유산을 통한 위치 추적을 막기 위한 마법적 조치였겠지.
호텔에는 천리안이나 지혜의 동료 위치정보, 비밀의 ‘나침반’ 등 위치 추적과 관련한 능력이 제법 있고, 여명의 아들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공간 좌표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건, 관점에 따라선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여기까지 깨달았을 때, 나는 깃털의 힘으로 북극 기지에서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음을 알았다.
대답하려면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묻지 않았고 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 주변이 제법 황량하군요.”
“학교고 뭐고, 진작 망했으니까요.”
선생님과 송이 누나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슬픈 사실.
세상은 이미 반쯤 망했다.
물론, 25년 지난 정도로 인류가 몰살당했다거나 한 건 아니겠지만…
어마어마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건 확실하다.
내가 과거에 올바른 선택을 했다면, 피할 수 있던 희생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며 표정이 어두워졌을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승엽 군.”
“…”
“혹시나 해서 말인데, 당신 실수로 세상이 망했다는 착각에 빠질 필요 없습니다.”
“…”
“애초에, 그 빌어먹을 목소리를 누가 냈습니까?”
“… 여명의 아들이죠.”
“세상을 무너트린 건 명백히 여명의 아들입니다. 당신 역시 피해자일 뿐이니, 과도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이야기.
날 위하는 선생님의 마음은 잘 느껴졌지만…
25년간, 지옥 같은 후회의 감옥에 갇힌 상태로 수없이 했던 생각이 있어.
이 모든 상황을 엎을 수 있는 역전의 길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
그렇게 믿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승엽 군.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그 말은…”
“곧, 저쪽에서 올 테니까.”
지금의 난 깃털을 소환할 수 없지.
아직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니까.
깃털을 소환했던 과거의 소연이는 충족했고, 지금의 나는 충족하지 못한 조건.
단 한 번의 각오.
…
당장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깃털을 소환할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상대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내가 북극 기지에서 탈출한 이상, 최대한 빠르게 깃털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깃털을 소환하고, 상현 형이 최후의 섬광으로 파괴하기 전에!
— 화르르…!
“불꽃, 새하얀 불꽃이 보여요!”
“아스테어가 옵니다!”
*
새하얀 불꽃을 두른 채 나타난 천사, 아스테어의 첫 말은 간단했다.
“무슨 수로 북극에서 서울까지 순간 이동했지?”
“…”
“험프티덤프티를 통한 순간이동은 한 번에 2인이 한계일 텐데.”
사실, 나는 송이 누나의 새 애완동물 이름을 지금 알았다.
저 괴물에게 순간이동 능력이 있고, 한 번에 2인을 이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당연히 지금 알았다.
서울에 온 건 저 괴물의 능력과 무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하, 북극 기지의 공간 좌표가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 내게 숨길 수 있을 줄 알았어?”
“…”
“12년도 더 전에 알아챘다. 요동치는 공간이란 곧,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다는 뜻. 이 정도는 기본 -”
그때, 아스테어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이야, 넌 공간 좌표라는 단어가 뭔지는 알면서 쓰는 거니?”
“무슨 -”
“지금 네 이론, 하나부터 끝까지 엉터리란다. 그런 원리 아니야. 하지만, 네겐 가능했겠지. 가능하다고 믿었을 테니까.”
듣지 마.
네 마음을 현혹해서 능력을 제한하려는 거야.
그, 그렇지!
천하제일 고수가 세운 이론이 틀릴 리가 없다고!
아스테어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어서 날 가리켰다.
“쓸데없는 장난은 이쯤 하자꾸나. 아버지께서 준비한 계획은 본디 이보다 길었지만… 네가 밖으로 나온 이상, 이쯤에서 끝내는 게 옳겠지.”
이윽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 쿵! 쿵! 쿵!
통제가 안 될 정도로 거세게 요동치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직감했다.
지금, 아스테어가 내게서 강제로 깃털을 뽑아내고 있다.
깃털의 수호자인 나조차도 마음대로 깃털을 소환할 수 없는데…!
이런 것도 아스테어가 여섯 날개의 천사로 각성하며 생겨난 권능일까?
그때, 옆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
이 자리의 모두 – 심지어 아스테어조차 알고 있을 문장, 최후의 섬광의 시동어.
깃털이 최후의 섬광에 직격당해도 파괴를 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스테어도 똑같이 생각했다.
깃털의 강제 소환이 중단되었고, 미친 듯이 뛰던 심장 박동이 잠잠해졌다.
물론, 최후의 섬광 역시 발사되지 않았다.
“역시, 주변 방해물부터 치워야겠군. 조니, 네 죄는 죽음으로 갚을 수 없을 거야.”
“말 한번 무섭군. 당신 신이 이번에는 지옥이라도 만들겠다고 하던가?”
“물론.”
곧,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온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불길이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기세로 타오르고 있으니!
여섯 날개의 천사 – 성화의 수호자, 아스테어가 전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화르르…!
*
고통스러운 열기를 느끼며 아스테어와 동료들의 충돌을 바라본다.
과거, 낙원 수호자들이 보였다고 하는 위용을 생각하면…
송이 누나와 상현 형이 무슨 수를 써도 여섯 날개의 천사를 당해낼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싸움 비슷한 게 진행 중이었다.
우선, 저 ‘험프티덤프티’라는 괴물이 대단히 강했다.
대천사가 뿜어내는 불꽃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이 녹아내려도 순식간에 재생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또, 송이 누나는 태우고 상현 형은 삼킨 채로 여기 나타났다, 저기 나타났다가 하는 움직임이 대단히 까다로웠다.
물론, 누나와 괴물의 능력만으로는 시간 벌이 이상의 의미는 없다.
아스테어를 위협할 수 있는 창이 없다면, 결국 일대를 가득 메운 새하얀 불꽃에 휩쓸릴 뿐.
의사 선생님이 바로 그 창 역할을 담당 중이었다.
정확히는, 언제라도 창을 쏠 것처럼 행동했다는 게 맞겠지.
“나는 이제 죽음이요 -!”
대놓고 들으라는 듯, 시동어를 외치며 손을 뻗는다.
아무리 여섯 날개의 천사라 해도 최후의 섬광을 몸으로 받아낼 수는 없으니, 아스테어는 그때마다 회피기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섬광은 날아가지 않았다.
나도 지금 깨달은 사실인데, 시동어와 섬광 발사는 반드시 연결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섬광을 쏘려면 시동어를 말해야 하는 건 맞지만, 시동어를 말했다고 섬광을 꼭 쏴야 하는 건 아니었던 것.
어찌 보면, ‘나 섬광 쏜다!’라는 협박으로 아스테어에게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강요하며 싸움을 성립시키는 전황.
새삼, 25년간 두 사람이 얼마나 천사와 많이 싸웠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저 둘의 힘만으로는 아스테어를 절대 이길 수 없어.
고작해야 몇 분 정도 시간을 끄는 게 전부겠지.
…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싸움이 시작했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르투나로 변신해서 싸움에 끼어들려 시도했지.
당연하게도 실패했다.
소연이의 영혼을 구하는 대가로 ‘한 번 더’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스테어는 내게 계약의 이행을 요구하기 위해 나타났다.
동료들을 도와 아스테어를 공격한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계약 위반이다.
위대한 자와 맺은 계약이 벗어날 수 없는 쇠사슬처럼 나를 얽매는 상황.
여기까진 예상했어.
25년 동안 생각만 했는데, 이 정도도 고려하지 않았으면 진짜 병신이지.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방배중학교 옥상이고, 저 밑에는 내가 오랜 세월 갇혀있던 멋진 신세계가 있다.
나는 밖으로 나왔지만, 멋진 신세계는 여전히 멀쩡하다.
애초에, 고작 25년 정도로 사라질 정도의 시설이 아니니까.
“하아…”
손끝에서 신비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며 변화가 시작되었다.
칠흑 같은 갑옷과 검이 내 몸을 감싼 것.
그 순간, 아스테어의 시선이 벼락같이 움직여 내 쪽을 향했다.
이는, 아스테어에게 두 동료와 싸우면서도 내 쪽을 신경 쓸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떻게 변신할 수 있냐는 의문이 섞인 시선.
지금은 가능하다.
아스테어와 싸우기 위한 변신이 아니며,계약을 어기려는 행동이 아니니까.
오히려, 계약을 ‘지키려는’ 행동에 가깝지!
그때, 아득한 시선의 무게감이 날 덮쳐왔다.
아스테어의 뒤에서 도사린 자 – 여명의 아들이 나를 바라본 것이다.
“즐거워? 승리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아?”
… 나는 네게 전부를 베풀었다.
“하! 우리가 겪은 수십 년의 고통은?”
… 약속대로 해주었을 뿐. 다음 회차로 가자는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느냐.
“그래, 그랬지. 그게 당신의 속임수였지. 다음 회차로 가자고 했지만, ‘언제’ 가자고 하진 않았잖아?’
절망과 비탄 속에서 후회하던 어느 날.
나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생각해 봐. 우리, ‘어떻게’ 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잖아?”
언제 가자는 말이 없었던 계약.
다시 생각하면, ‘어떻게’ 가자는 말도 없었던 계약.
새까맣게 타오르는 검을 들었다.
이윽고 검에 시퍼런 섬광이 깃들었으니, 위대한 자가 처음으로 의문을 표했다.
…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또한, 아스테어의 비명을 들었다.
“대체! 그, 그딴 짓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이 순간, 나는 너무나 기쁘게 말할 수 있었다.
“네 신이 반쯤 조져놓은 세상! 내가 씨발 마침표 찍겠다!”
— 우르릉!
25년간 마귀들을 봉인해 온 자그마한 지옥의 문에 균열이 발생했다.
이는, 다른 형태의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이로써, 나는 계약을 이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