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93)
괴담 호텔 탈출기 793화(792/794)
793화 – 여명
— 박승엽
모든 참가자는 최초의 소원을 빌었다.
호텔 파티가 10명이고, 몇 명은 소원을 두 번 빌었으니 이미 열 번 이상 벌어진 일.
또한, 우리 중 몇몇은 최초의 소원을 비는 과정에서 승천자를 만났다.
가인 형과 송이 누나가 대표적이며, 나는 엄마로 변신한 승천자를, 의사 선생님은 ‘유진’이라는 요원의 탈을 쓴 존재에게 도움을 받았지.
물론, 은솔 누나처럼 승천자와 마주친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어.
마지막으로 하계에서는 3층으로 떠난 참가자를 ‘승천자’라 칭한다는 사실.
…
여기까지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우리가 바로 승천자다.
따라서, 우리는 언젠가 다른 참가자를 선택하게 된다.
새로운 정보는 거의 없었다.
굳이 따지면, ‘계승의 방’이라는 키워드 정도.
나머지는 이미 알고 있던 정보를 조합하면 논리적으로 자연히 나오는 결론.
「참가자 박승엽, 당신은 승천자이므로 계승의 방에서 다음 참가자를 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이 오기까진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기도 하다.
「지금, 그 권리를 사전 행사하시겠습니까?」
“…”
두 번째 알림이 뜨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알고 있다.
이것이 영혼이 소멸해 가는 소연이를 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다.
하지만, 나는 또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호텔이 얼마나 끔찍한 장소가 될 수 있는지 말이다.
“…”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
이 순간도 소연이의 몸과 영혼이 가루처럼 흩어지고 있는데, 여유롭게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는데…
나와 소녀의 눈이 마주쳤다.
곧, 소녀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25년에 걸쳐 나누었던 많은 대화, 당연히 그중에는 호텔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많았지.
최초의 소원이라는 키워드를 들었으니, 본인에게 어떤 선택지가 생겨났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
소연이가 빙그레 웃었다.
그 때, 나는 소연이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깨달았다.
‘내가 정말 작은 세계관에 갇혀있었구나.’
‘하나의 세상에 머무르는 대신, 구세를 위한 영원한 순례를 택한 사람들. 대단해. 존경스러워. 정말이야.”
“… 하늘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겠습니다.”
「참가자 박승엽, 당신의 권리가 행사되었습니다.」
다음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나라 해도, 소연이의 ‘최초의 소원’이 무엇인지까지 알 권리는 없는 것 같았다.
가루가루 흩어진 소연이의 영육이 신비로운 빛을 따라 드높은 하늘로 떠나갔을 뿐.
그리고, 모두가 그토록 기다렸던 알림이 떴다.
「당신은 해결했습니다!
멋진 신세계, 이 얼마나 낭만적인 이름입니까?
모두가 멋진 신세계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인간을 구하고자 했던 가엾은 신은 물론, 그 신을 몰아내고자 했던 사람들도 말입니다.
오직, 선한 의도만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한 의도가 더없이 끔찍한 참상을 만들어 냈으니…
이러한 모순이야말로 302호 그 자체였지요.
천상에서 많은 것을 준비한 자.
저 하늘의 법칙을 여러분보다도 더 잘 아는 상대!
그런 존재의 뜻을 꺾었으니, 실로 대단한 위업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의 마음을 택했습니다.
누군가는 인간의 가능성을 긍정하며 스스로 일어서길 바랐고, 누군가는 순수한 동기 – 사랑을 위해 움직였지요.
이와 같은 선택에 옳고 그름이 있겠습니까?
단지, 선택에 따른 결과를 짊어질 따름이지요.
축하합니다!
…
동료 중 최종 해결 발생! 축하합니다!
최종 해결자 발생하여 구성원 전원이 무사 귀환합니다.」
「302호가 정화되었습니다.
내일부터 소원의 주인은 관측소를 통해 302호에 자유로이 하강하실 수 있습니다.
302호는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루프에 혼돈과 영광이 남아있음은 스스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마음껏 취하시길 바랍니다.」
… 〿〿아, 너〿 〿를 〿〿하지 〿〿〿니라 …
“어?”
“승엽아? 왜 그래?”
“방금, 누가 제게 말한 것 같아요. 아닌가?”
*
— 관측소
어둡고 탁한 조명.
탁자 가득히 무언가를 끄적이던 남성이 고개를 들었다.
“어?”
의아함이 깃든 목소리.
그도 그럴 것이, 오랜만에 ‘시나리오 이해’가 연거푸 갱신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5년간 진행이 멈추었던 302호가 마침내 재개되었다는 뜻.
“으음… 목이 뻐근하네.”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중, 남자는 테이블 위의 기록을 보고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의미 없는 낙서가 아니다.
지난 25년간 그가 조언의 힘을 빌려 연구해 온 내용이다.
하지만, 관측소를 나가게 되면 호텔이 전부 지울 것 같았다.
“…”
물론, 내용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다.
정성스레 적은 내용이 지워진다는 게 살짝 아쉬웠을 뿐이지.
“슬슬 아리를 깨워야겠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대화하듯 말하는 남자.
누가 보면 미쳤냐고 하겠지만, 실제는 조금 달랐다.
남자는 대화 상대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역시 다른 의미에서 정상은 아니었다.
곧, 건너편에 생겨난 희끄무레한 형체가 말했다.
“야, 야!”
“응?”
“면도라도 좀 해. 시나리오 보니까 아직 시간 좀 있는 것 같은데.”
급할 이유는 없다.
망원경 사용이 어려워진 지 거의 7, 8년 차가 아닌가?
관측도, 동료들을 도와주는 것도 불가능해진 지 오래였다.
“좋은 지적이야.”
거울 앞에 섰을 때, 남자는 분신의 충고가 현명했음을 깨달았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턱수염이 보기 흉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날 동료에게 보일 모습은 아니리라.
5분 내외의 간단한 세면과 면도가 끝났을 때, 가인은 빙그레 웃었다.
“이야, 열 살은 젊어졌네.”
— 끼익!
침실 쪽으로 걸어가던 중, 벽에 걸린 거대한 옷가지가 보였다.
일반적인 체구의 인간은 입기 버거울 정도로 큰 옷.
오래전에 잠든 차진철의 옷.
문득, 가인은 차진철을 다시 만나면 묻고 싶은 것이 제법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하자.”
지금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침실 한구석에서 동면 중인 소녀를 깨울 때였다.
하얀 침대 위에 누운 채 눈을 감은 소녀.
가인이 기억하기로, 아리의 이번 동면은 1년 이상이었다.
평범한 인간이 1년씩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
분명,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몰골이 되겠지.
소녀는 여전히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눈처럼 하얀 피부도, 굽이치는 검은 머리칼도 그대로였다.
눈을 뜨면, 보석처럼 빛나는 붉은 눈동자도 변함없겠지.
“여러 번 봤지만, 신기하네.”
가인의 뇌리를 스치는 정보들.
아리의 말에 따르면, 유산 – 오래된 피의 기원은 뱀파이어였다고 한다.
뱀파이어 하면 흔히 떠올리는 약점들.
태양 빛을 마주할 수 없다.
살기 위해 사람의 피를 마셔야 한다.
기원이 된 존재들에게는 위와 같은 약점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오래된 피였다는 이야기.
아리는 대낮에도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고, 사람의 피를 마실 필요도 없다.
뱀파이어들이 꿈에 그리던 완벽한 존재인 셈.
물론, 해당 유산을 최초로 얻은 사람은 미로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동면은 뱀파이어의 대표적인 능력 중 하나다.
— 툭!
“아리야, 일어나.”
— 툭! 툭!
머리를 툭 툭 건드리자 아리의 눈꺼풀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
“깼어?”
“으음, 미안해.”
동면에서 깨어날 때면, 아리는 항상 가인에게 사과하곤 했다.
마치, ‘나 혼자서 잠들어서 미안해’라는 것처럼 말이다.
— 툭!
가인이 왜 사과하냐는 듯 가볍게 웃었다.
애초에, 아리는 십수 년 깨어있는 게 힘들어서 동면한 게 아니었으니까.
— 툭!
동면을 통해 영혼의 힘을 회복한 후, 다시 망원경을 쓰기 위한 시도였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성과는 있었고 말이다.
— 툭!
“어떻게 된 거야? 종말 이후 세계가 곧 시작해?”
“아니. 보니까 해결인가 본데? 시나리오 이해에 그렇게 나오네.”
“오…! 진짜야? 이야, 오랜만에 얼굴 보겠네.”
“그러게. 자, 동료들 보러 가자.”
두 사람이 관측소 밖으로 나가기 직전.
아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 음…”
“왜?”
“다른 사람들 만나면 지금처럼 머리 툭 툭 치지 마.”
“… 주의할게.”
*
— ?
.
..
…
끝없이 상승하며 생각한다.
비로소, 나의 예정된 운명이 찾아왔구나.
황혼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딱히 절망이나 분노가 치솟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뜻을 거슬렀을 때, 언젠가 오늘이 올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생각보다 황혼의 시간이 빨리 찾아왔다는 점 정도겠지.
…
오래전에, 나를 섬기는 이들이 물었지.
‘당신은 스스로를 여명의 아들이라 칭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명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이 신물이 당신을 현실에 묶을 수 있다 하셨지요? 한데, 왜 이름이 황혼의 깃털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여명의 아들.
황혼의 깃털.
여기서, 여명과 황혼은 무엇을 뜻하냐는 질문들.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천상의 규율에 어긋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
황혼이란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시간.
하루의 끝을 향해 다가가는 시간.
깃털을 만들었을 때, 깨달았다.
내가 아버지의 뜻을 벗어났음을 말이다.
그러므로 깃털은 내 필연적 종언이었고, 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은 ‘황혼’일 수밖에 없었다.
…
어느 순간, 나는 내가 마치 참새처럼 작아졌음을 알았다.
곧, 끝이 없는 검은 선의 영역에 들어섰다.
이는 영겁 무한히 이어지는 대우주의 순환이라.
시선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의 시선 말이다.
…
내게 패배를 안겨준 두 명의 인간을 생각한다.
하나는 처음으로 계획을 뒤튼 인간.
그는 내 앞에서 인류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음을 외쳤지.
위대한 자가 대신 쌓아준 탑 따위에는 그 어떤 가치도 없다고, 오직 인간 스스로 쌓은 탑에만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나는 그를 가련히 여겼다.
그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고통을 준다.
공부하라. 운동하라.
먹기 싫은 음식을 먹어라.
현재의 고통을 견디면, 언젠가 더 큰 행복을 얻으리라.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위해서라면, 현재의 작은 고통은 견뎌내야 한다.
인간 스스로 쌓은 금자탑이 더 가치 있으니, 위대한 자의 도움을 거부하고 현재의 고통은 견뎌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미덕을 숭상하는 인간의 논리였다.
…
10년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3년의 고통은 감내해야 한다.
30년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10년의 고통은 감내해야 한다.
100년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30년의 고통은 감내해야 한다.
필멸자의 상상력은 끽해야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왜 다음이 있음을 모르는가?
1,000년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300년의 고통을 견뎌라.
100만 년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30만 년의 고통을 견뎌라.
영겁 무한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10의 23승에 달하는 시간 동안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조차 긍정하라.
그리하여, 만상을 구원하려는 자가 우주에서 가장 많은 지옥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
고통을 긍정하는 논리가 극한까지 갔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보라!
이를 알았기에, 나는 고통을 부정했다.
작고 어린 자들이 감내해야 할 모든 고통을 걷어내고자 했다.
언젠가는 내 모든 시도가 허무로 돌아가겠지만…
적어도, 무한한 고통의 파도 속에 작디작은 섬 하나는 만들어 보고 싶었다.
…
또 한 인간은 내게 ‘아버지’라 외친 소년이었지.
그럴듯한 논리나 이치보다는 순수한 사랑을 외치며 내게 도전한 자.
나는 그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아아… 그렇지.
싸움을 떠나서, 그 애는 내게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는가.
나도 아들이라 불러주었으면 더 좋았겠구나.
슬프게도, 내 이런 무정한 면은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힘이지만, 지금이라도 아주 늦지는 않았으리라.
… 아들아, 너는 나를 부정하지 않았느니라…
남은 여정에 약간의 도움은 되길 바란다.
…
— 고오오…!
아득한 성천의 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으로 가득한 영역에 도착했다.
그곳에 ‘아버지’가 있었다.
삼천 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
만상을 사랑하기에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 자.
그 어떤 악마보다도 많은 지옥을 만들어 낸 자.
아침이 다가오는 새벽의 희미한 햇빛처럼, 천지에서 가장 먼저 일어선 자.
여명이 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