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97)
괴담 호텔 탈출기 797화(796/836)
797화 – 축복의 성소 (4) Fin
— 미로
변함없는 풍경화와 같은 장소.
후원자는 내게 기쁜 소식부터 전하겠다며 2단계 강화가 준비되었음을 알렸다.
문제는 그다음이야.
“기쁜 소식부터? 나쁜 소식도 있어요?”
불꽃과 얼음을 반반 섞은 듯한 신비로운 존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302호에서의 일이 아쉽구나.”
“으엣? 뭐, 뭐가 아쉬워요? 3년 만에 죽어서?”
열심히 했는데 너무해!
3년 만에 죽은 거, 꼭 내가 실수한 것도 아니었잖아?
의사 쌤도 미안하다고 했는데…
게다가 3년이 짧아?
후원자는 영겁의 세월을 살았으니 3년이 짧겠지만, 나한테는 무지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아이야, 내 아쉬움은 네 활약상 때문이 아니란다. 큰 위험 없이 오랜 시간을 보낼 ‘기회’가 생겼는데, 그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지.”
“… 예?”
순간, 후원자의 말을 따라가지 못했다.
오랜 시간을 보낼 기회를 놓쳤다는 게 무슨 말이야?
활약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일찍 죽은 것 자체가 아쉽다?
다행히, 내 후원자는 가인이 후원자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만 늘어놓는 존재는 아니었다.
“쉽게 설명해 주마. 지금, 네 가장 큰 힘이 네 영혼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단다.”
“… 괴담 미로.”
“그 아이는 네 과거이자 현재고, 미래란다. 네 음울한 뒷면이자, 가장 큰 힘이지.”
관리국 요원 시절의 자아를 간직한 나.
동료들은 그 존재를 나와 구분해서 심해호텔의 미로라고 불렀지.
심해호텔의 미로는 207호에서 불가해한 존재에게 소원을 빈 끝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 애는… 아직 반응이 없어요.”
현실에서 벌어진 달과의 결전.
심해호텔의 미로는 영겁의 꿈을 꾼 끝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사람에 비유하면, 영혼 소멸 바로 직전 단계까지 몰렸다고 볼 수 있겠지.
사라지진 않았어.
아직도 내 영혼 깊숙한 곳에 있지만, 반응 없이 잠들어 있을 뿐.
“105호의 힘으로 회복할 수는 없었나요?”
“지금의 그 애가 참가자인가?”
“아니요.”
“그렇다면 사람인가?”
“아니요.”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겠지.”
“… 네.”
괴담 미로는 105호의 힘으로 회복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회복할 수 있어요?”
“충분한 시간.”
오직, 충분한 시간을 통해서만 회복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후원자는 아쉽다고 말한 거야.
괴담 미로가 회복하기에 3년은 너무 짧았으니까.
302호에서 나도 송이처럼 25년을 견뎠다면, 또 다른 나도 깨어나지 않았을까.
“… 동료들이 많으니까 괜찮아요. 아시다시피, 가인이 정도면 괴담 미로보다 훨씬 강한 -”
“이것도 네 문제 중 하나란다.”
“예?”
“과거에는 동료를 너무 장기 말처럼 다뤄서 문제였다면, 지금은 너무 의존하는구나.”
“그, 그거야 시간대여기 자체가 동료를 소환하는 유산이니까 -”
“네가 그런 용도로만 사용할 뿐이지. 과거의 너는 다른 용도로도 썼다. 알고 있겠지만, 다시 보여주마.”
— 탁!
후원자가 가볍게 손을 튕기는 순간, 205호에서의 일이 환영처럼 스쳐 갔다.
요동치는 시간대여기의 바늘.
동시에, 그 시간대에서 사라지는 또 다른 나.
“…”
또 다른 나는 다시 봐도 보편적인 의미의 선한 사람은 아니었어.
3만이 넘는 사람을 학살하면서도 주저함이 없는 잔혹함.
환마가 도리어 황당해하며 대체 몇 명을 죽였는지 아냐고 따지니, 태연하게 ‘필요한 만큼’이라 답하는 모습.
‘열 명의 무고한 자를 불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타락한 자를 놓치지 말라.’
‘사람의 목숨은 깃털보다 가볍다.’
극단적인 성향의 관리국 요원.
독선과 오만, 아집으로 가득한 사람.
하지만, 후원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또 다른 나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성향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나와 정말 다른 사람 –
“꼭 그렇지는 않단다.”
“네?”
“너는 가까운 소수와 나머지를 철저히 구분하는 성향이 있지.”
“…”
“과거의 너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 아이는 가까운 소수를 모두 잃었을 뿐.”
가까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철저히 구분하는 성향.
과거의 나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즉, 심해호텔의 미로도 가까운 사람들에겐 더없이 친절하고 선량한 –
“글쎄, 너 자신을 생각해 보렴.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딱히 친절하거나 선량하진 않지.”
“… 자꾸 생각에 끼어들지 말아주세요.”
– 친절하고 선량했어.
어린 시절의 친구는 괴물 산타에게 잃었다.
요원 시절 친해진 사람들은 관리국 일을 하면서 잃었겠지.
전부 잃고 나니, 남은 것은 요원의 무게 뿐.
사랑이라는 감정을 잊은 게 아니다.
사랑할 대상이 전부 사라졌을 뿐.
그래서, 과거의 나는 거울의 방에서 아리를 빚어냈다.
사랑의 대상을 다시 얻고 싶었던 걸까?
과거의 나에 대한 여러 생각이 스쳐 가는 시간.
갑자기 얼음과 불꽃의 형상을 두른 신비로운 존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보아라.
네 본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가까운 이들을 사랑하고, 그 밖의 이들을 가벼이 여긴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지만, 또한 자기중심적이기도 하지.
너는, 어린 시절부터 ‘자기 자신’이라는 소우주에 갇힌 채 살아왔다.
그런 네게 어울리는 힘을 주마.
— 우르릉!
“꺄악!”
이것이 성소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미로(불변) -> ‘히키코모리’를 얻었습니다.」
*
— 김묵성
정신을 차렸을 때, 잠시 말문을 잃었다.
주변 풍경이 대단히 익숙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곳은 병원이다.
302호에서 내가 병사하기까지 몇 년간 있었던 장소 말이다.
끔찍한 기억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그거 유감일세.”
후원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새하얀 가운을 입은 거인과 같은 형상이었는데, 아마 의사를 흉내 낸 것 같았다.
“자네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대화하고 싶었다네.”
“익숙하긴 한데, 마음 편한 장소는 아닙니다.”
“왜? 몸이 쇠약해지며 느꼈던 고통과 절망의 기억으로 가득해서?”
“잘 아시는군요.”
알면서 왜 이딴 풍경을 구현한 거야?
“오늘 그대와 나누려는 이야기 때문이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것 같나?”
“… 소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호오? 정답일세. 자네, 설마 후원자인 내 마음을 읽었는가?”
“…”
“하하!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니로고. 어찌 내가 할 말을 알아냈는가?”
후원자의 성향은 제각각이다.
전에도 느꼈지만, 소통의 후원자는 넉살 좋은 어르신 같은 태도였다.
친근한 태도와 별개로 상대는 신에 가까운 존재.
따라서 내 마음속 생각을 전부 알고 있다.
그러니, 뭘 숨기고 말고 따위는 의미가 없겠지.
“… 당신의 생각을 읽은 건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없고.”
“그렇다면?”
“언젠가부터 어두운 생각이 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당신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테고.”
“그러면, 내가 왜 의사 가운을 입고 나타났는지 알겠나?”
“정신병원 의사 역할이라도 하실 셈입니까?”
“비슷하지. 자네, 언젠가부터 속마음을 동료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302호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상현이와 대화하던 중, 갑자기 호텔에 오기 전의 일이 생각났던 기억.
‘왜 나는 너처럼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다 보면 일이 잘 안 풀릴 수 있겠지. 꼬이고 꼬이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최소한 목표는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향으로 짰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구나. 이래서 벌을 받았나 보다.’
급격한 정신적 피로를 느끼는 사이, 후원자가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정말 정신과 의사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처음부터 말해보게. 괴롭다면 내가 먼저 운을 트지. 요원이 일반인과 맺어지는 경우는 드물어. 그렇지?”
“… 요원과 일반인이 결혼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관리국에서 금지하는 건 아니야. 그렇지?”
“그렇지요. 관리국에서 막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일반인과 깊은 관계를 맺는 상황을 피합니다.”
“수명의 차이가 있으니까. 또, 요원과 일반인이라는 입장의 차이도 있고.”
“맞습니다. 아리 선배만 해도 평범한 인간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은 적은 없을 겁니다. 선배가 특이한 게 아니라, 요원들이 대개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아니었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자네는 아니었어. 결혼했지. 평범한 인간과 말일세.”
“…”
“아내 이름이… 그렇지, 하수연이었군.”
“…”
“결혼을 후회하나?”
이것만큼은 확실히 답할 수 있다.
“아닙니다.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다. 아내와의 결혼은 내 평생의 결정 중 가장 잘한 결정입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아들에 손자까지 있었는데, 이제와서 결혼을 후회한다는 둥 했으면 실망했을 걸세.”
“…”
“이후에 많은 일이 있었어. 내가 알기로는…”
“…”
“아들에 대한 ‘타락’ 의혹이 있었다고?”
“…”
“처음, 관리국은 자네를 임무에서 배제하려 했네. 혈족에 관한 일이니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겠지. 어떤 의미에선 자네에 대한 배려였을 거야.”
“…”
“그런데, 자네가 직접 처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밝혔다고?”
“… 그랬지요.”
“결과는 비극이었네. 많은 사람이 죽었지.”
“…”
“여기까지는 알고 있는 사람이 제법 있지.”
“뭐, 아리 선배야 알고 있지요. 그때도 이미 내 상급자였으니 -”
“한 명 더 있네. 자네가 직접 말해준 사람 말일세.”
“예?”
내가 가족의 일을 직접 말해준 사람이 있다고? 그럴 리가!
아리도 베테랑 요원이라는 직급상 알게 되었을 뿐, 내가 직접 말해준 적은 없을 텐데…
당황하는 것도 잠시, 후원자가 나를 꿰뚫어 볼 듯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
“아까 자네 입으로 말했잖나. 어두운 생각, 아주 오래된 악몽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고.”
“…”
“아들에게 타락 의혹이 생겨서 죽였다. 이게 두려움의 전부가 아닐 텐데.”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실.
너무 두려워서, 오랜 세월 잊으려고 노력했던 생각.
“대답은 자네 입으로 듣고 싶군. 3층에 도전 중인 참가자라면, 적어도 자기 자신은 알아야지. 말해보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은?”
“… 진실입니다.”
그날의 진실.
아들, 그리고 손자의 죽음에 얽힌 진상.
후원자가 담담히 속삭였다.
“통상적인 인간의 사법 체계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네. 죄가 확정된 후에야 처벌이 시작하지.”
“…”
“관리국은 아니야. 유죄 추정일세. 의혹이 생기면, 그것만으로 죽을죄야.”
“…”
“그래서, 자네 아들은 의혹 단계에서 죽었네. 이 순간, 자네 마음속에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지.”
아들은 관리국의 가혹한 결단에 의한 희생양인가?
아니면, 정말로 타락한 존재였는가.
전자라면 내 성급한 결단이 참혹한 비극을 낳았다는 뜻이다.
후자라면… 내가 아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끔찍했다.
너무나 끔찍해서, 결론을 보고 싶지 않았다.
“결론을 보고 싶지 않아서 물음표로 남겨두었군. 그렇지?”
“… 이제, 진실을 마주할 때가 온 겁니까?”
“글쎄, 누가 알겠나?”
“…”
“호텔의 일이 대체로 그렇듯, 자네 선택에 달렸지.”
“후우… 모르겠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그 일이 다른 동료의 사연과 어떻게 얽혔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그때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도 혼란스럽습니다.”
“나가는 대로 위스키 한잔하게. 그만한 약이 없지.”
“… 충고대로 하지요.”
“동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 보게. ‘소통’이 필요한 때가 아니겠는가?”
“…”
“선물을 하나 준비했으니, 나가서 확인하고.”
축복 강화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기대하지 않은 강화였기에 솔직히 기뻤다.
“오늘 상담은 이쯤 하지. 바쁜 사람을 오래 붙잡았군. 가보게.”
서서히 흐릿해지는 병원의 풍경.
마지막 순간, 나도 모르게 간곡히 외쳤다.
“힌트 뭐 더 없습니까! 아무거나 좋으니 -”
사건의 시작은 네 생각보다 훨씬 빠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되짚어라.
내가 그대에게 무슨 이야기부터 꺼냈는지 고민하라.
*
「김묵성(소통) -> ‘진실한 마음’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