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98)
괴담 호텔 탈출기 798화(797/836)
798화 – 공작의 살점, 여왕의 파편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2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로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다섯 사람이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 잠든 지 약 3분만에 승엽이와 아리가 깨어났다.
후원자를 만난 참가자가 몇 분 만에 깨어나는 현상,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301호가 끝났을 때, 송이가 똑같은 현상을 겪었지.
두 사람은 축복 강화를 얻지 못한 것이다.
“가인 형 말대로 후원자가 징계받고 있었어요.”
“징계? 어떤 상태였는데.”
“컴퓨터에 갇혀서 아이콘처럼 변해있었거든요. 어쩔 수 없이 휴지통에 한 번 넣어볼까? 했죠.”
“…”
후원자가 징계받아 아이콘으로 변한 것과 후원자 아이콘을 휴지통에 넣는 것.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인과관계가 있길래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
터무니없는 소리였지만, 따지지 않는 게 좋겠지.
이외에는 302호 진행에 관한 후원자 나름의 생각 전달과 4단계 강화 맛보기였던 것 같다.
“4단계 능력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어?”
“전혀요. 그냥 별자리가 땅에 막 떨어지는 느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승엽이와 달리, 아리는 깊은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너는? 너도 뭔가 이야기는 했을 텐데.”
“… 소원에 관한 이야기였어. 잠깐 혼자 생각 좀 할게.”
혼자 생각하겠다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진 아리.
남은 여섯 사람은 어깨를 으쓱하며 서로를 마주 본 후,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휴식과 연구, 3층 탐색을 각자 알아서 시작한 것이다.
나는 뭘 해볼까?
*
2층, 설원에서 시원한 공기를 느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시각.
— 푸드득!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 어깨가 묵직해졌다.
“페로?”
— 삐익!
새하얀 털북숭이 앵무새가 제법 예쁘긴 했지만, 그걸 떠나서 의아했다.
이 녀석이 내 어깨에 올라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경험상, 페로는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나한테 오는 –
— 그르르륵!
흉측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이게 무슨 소리야?”
직후,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몇 번 맡아본 냄새다 싶어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 크라악!
시꺼먼 구체를 닮은 괴물 – 험프티덤프티가 내 쪽으로 거칠게 굴러왔다!
“… 황당하네.”
이후의 일은 간단하다.
신성한 태양이 타올랐고, 새하얀 열선이 구체를 관통했다.
험프티덤프티가 오늘 만물의 영장이 얼마나 위대한지 배운 셈이다.
여기까진 좋은데, 다음 일이 진정 황당했다.
— 삐익! 삐이익!
페로가 새하얀 깃털을 휘날리며 대자로 퍼진 험프티덤프티 주변을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
아무리 봐도 ‘승리의 포효’에 가까웠다.
“…”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앵무새가 나를 ‘살아있는 함정’으로 이용한 것이다.
…
이에 대한 송이의 반응은 간단했다.
“어제부터 페로랑 험프티덤프티가 서열 싸움 중이에요.”
“개도 아니고 뭐 하는 행동이야?”
“굴러들어 온 돌과 박힌 돌의 싸움이랄까요? 동물들의 본성 같은 거죠.”
“…”
“힘 차이는 심하지만, 지능 차이도 심해서 은근히 균형이 맞아요.”
어이가 없기도 했고, 조금 웃기기도 했다.
“참가자를 살아있는 덫으로 이용하는 호텔 산 동물과 참가자를 잡아먹으려는 괴물이라니. 충성심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네.”
“험피에게 그런 걸 기대하긴 무리에요. 그래도, 자기보다 강한 존재는 피해야 한다 정도의 판단력은 있어요.”
“그 정도 판단은 개구리도 내릴 수 있어.”
첫날, 105호에서 밥 먹을 때 상현 형이 험프티덤프티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몇 번 했었지.
“복종 훈련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 25년 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안 해본 게 있을 것 같아요?”
그건 그렇다.
“식욕이 과하게 강해요. 충분한 고기를 주지만,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죠.”
“고기에 만족 못 한다고?”
“지성체를 먹으려는 탐욕이 너무 강해요.”
“왜?”
“… 의사 선생님의 추측에 따르면, 본능적으로 지성을 발달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해요.”
“…”
“뇌와 영혼을 발달시키기 위해선, 지성체의 뇌 조각과 혼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추측이지만요.”
여기까지 듣고 결론 내렸다.
관리국처럼 생각하면, 험프티덤프티는 더 들을 것도 없이 토벌 대상이다.
대놓고 식인 괴물이며 송이에게만 복종할 뿐.
하지만, 송이는 저 괴물과 다양한 관점의 힘을 합쳐 온갖 초능력을 쓸 수 있다.
식인 괴물이지만, 대단히 유용한 괴물이기도 한 것.
여기까지 이해하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소에서 했던 생각인데, 송이 넌 이번에 강화하지 못할 줄 알았던 것 같아. 그렇지?”
“… 네.”
“어떻게 알았어?”
송이가 가볍게 한숨쉬며 답했다.
“미쳐 날뛰는 험피를 어떻게든 통제하기 위해 고생하던 어느 날의 일이죠. 18년 차였나?”
“…”
“구원파 잔당과 한 차례 붙었어요. 싸움은 이겼는데…”
“이겼는데?”
“… 제가 총에 맞고 기절한 사이, 험피가 최소 세자릿수의 인간을 잡아먹었어요.”
“…”
“잡아먹은 것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죠. 평소보다 두 배 이상 거대해진 험피의 눈에서…”
“눈에서?”
송이는 잠시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지었는데, 표정만 보아도 얼마나 끔찍한 기억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 지성이 느껴졌어요.”
“…”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죠.”
“위험했네.”
“위험했죠. 깨어나자마자 통제하려 했는데, 그 단계에선 내 말도 잘 안들었어요.”
친화의 힘은 무슨 강제 세뇌가 아니다.
혼돈체가 송이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정도의 힘.
지성체라면, 본능적인 호감을 억누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정말 이러다 험피에게 잡아먹히겠다 싶어서 이를 악물었을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이상한 일?”
“… 축복의 힘을 평소보다 몇 배로 강하게 썼다?”
“컴퓨터로 치면 오버클럭 같은 건가? 대가를 감수하고 일시적인 강화를 얻는 개념?”
“아마도요. 잠깐이지만 친화의 힘이 몇 배로 강해졌다고 느꼈어요. 정신 차려보니, 험피는 순한 눈빛으로 내게 안겨 왔죠.”
여기까지는 쉽게 이해했는데, 다음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 틈에 현장에서 바로 수술했죠.”
“… 수술?”
갑자기 수술이라니, 이게 무슨 –
“총으로 머리 쪽을 마구 쐈어요. 뇌 비슷한 건 일단 파괴하고 봐야 할 것 같아서.”
“총으로 쏘는 게 무슨 수술 – 그보다, 총으로 쏘는 데도 얌전히 있었어?”
“네. 다음날 되니까 다시 지금처럼 지능이 내려갔어요.”
격렬한 싸움 끝에 일시적으로 기절했던 송이.
그 사이, 인간을 무수히 잡아먹으며 영성을 발달시켰던 험프티덤프티.
위기감을 느낀 송이는 축복을 평소보다 강하게 사용해 험프티덤프티를 강제로 굴복시켰다.
그 순간, 험프티덤프티는 송이가 대놓고 머리에 총을 쏴도 반항하지 않았다고 한다.
친화의 힘이 너무 강해져서, 송이에 대한 호감이 가장 근원적인 욕구인 생존 본능보다도 강했다는 뜻.
“일이 끝났을 때… 어렴풋이 깨달았어요. 나, 기여도를 써서 축복을 일시적으로 강화했구나.”
“으음…”
“얼마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화 타이밍이 한 차례 미뤄질 것 같다.”
“이해했어.”
송이와 험프티덤프티의 관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험피에게 조금 미안하긴 해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나도 신경 쓸게.”
“오빠가? 으음, 오빠. 동물 학대는 하지 마세요. 페로가 오빠를 살아있는 덫으로 쓰는 것 보면 모르겠어요?”
“험프티덤프티가 무슨 애완동물이야? 동물 학대는 무슨. 외계생물 학대라면 또 모를까.”
“학대는 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자꾸 이상한 표현 쓰지 마. 학대는 송이 네가 하는 게 학대지.”
“으으… 부정할 수 없어서 슬퍼라.”
“학대가 아니라 건전한 목적의 연구를 해볼 생각이야. 외계생물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이해하면 -”
“장담하는데, 험프티덤프티에게 지성이 있었으면 방금 오빠 말에 제일 놀랐어요.”
기여도를 사용해 축복을 일시적으로 강하게 만드는 것.
생각해 보면, 내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참가자의 축복에 관해 질문할 경우, 기여도를 소모하는 원리.
관점을 바꿔보면, 기여도를 소모하면 평소에 할 수 없는 질문도 가능하다는 뜻이니까.
올빼미는 이런 맥락에서 기여도를 낭비하지 말라고 했던 걸까?
어쨌든, 험프티덤프티에 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
험프티덤프티의 폭력성과 이를 억누르기 위한 송이의 극단적인 대응.
이에 대한 은솔 누나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야, 송이 대단하네. 부럽기도 하고.”
“네?”
부럽다고?
“조금 음, 기괴하긴 하지만, 어쨌든 301호에서 얻어낸 걸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잖아. 그렇지?”
“그건 그렇죠. 연구가 더 필요한 것 같긴 하지만, 험프티덤프티를 복종시키는 과정 일부니까.”
“이걸 봐.”
누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품속에서 칠흑 같은 돌을 꺼냈다.
눈에서 레이저라도 쏠 것처럼 검은 돌이 뚫어져라 바라보는 누나.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 할아버님 말로는 내가 죽으니까 이 돌이 내 몸 일부를 대체했다는데.”
“대단하고 신기하네요.”
“그냥 죽음을 늦췄을 뿐인데? 결국 의식을 잃은 채 죽었잖아.”
“시행착오 과정인 거죠. 처음 써본 거니까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허무하게 끝난 겁니다.”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올바른 사용법은 뭘까?
“글쎄,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봐야 하나?”
“… 가인아, 당시의 상황이라면 몸이 가로로 잘려서 죽은 거야.”
“한 번 더?”
“하하, 가인이도 참, 농담이 너무 과하잖니!”
“…”
“…”
“…”
“농담 맞지?”
“후유증 없이 회복하는 게 쉽지 않겠네요. 105호라 해도 즉사해버리면 소용없으니까.”
“진지하게 분석하지 말아줘…”
“사파리가 있긴 한데 -“
“아니, 나는 내 몸 자를 생각 없어.”
“하하! 그렇죠. 농담이었어요.”
농담은 아니었지만, 누나의 표정을 보니 농담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탐욕의 손, 다시 쓸 수 있으시죠?”
“응.”
“그걸 써서 활용법이라도 알려달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좀 특이한 생각 하나 떠올리긴 했는데…”
특이한 생각?
“… 하강해서 써볼까?”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이스의 왕이 남긴 정체불명의 보물 – 위대한 자의 파편이 이미 누나의 정신을 흔들고 있음을!
“누나.”
“응?”
“지금 바로 피리 소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