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99)
괴담 호텔 탈출기 799화(798/836)
799화 – 마법사의 연구 (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2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지하, 호텔 바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라아아아…!
부드러운 선율이 들려온다.
안식의 피리가 은솔 누나의 마음속에 깃든 광기를 정화하기 시작한 것.
5분 정도 지났을까?
누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피리를 내려놓았다.
정신병 치료의 시작은 내가 병들었음을 인지함이며, 이를 병식(病識)이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은솔 누나의 광증은 가라앉은 듯했다.
“이래서 네가 피리를 소환하라고 했구나.”
본인이 조금 전에 정상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것.
탐욕의 손의 대가를 민간인에게 떠넘기자는 발상은 은솔 누나가 내릴만한 판단이 아니다.
“괜찮으세요?”
“지금은 괜찮아. 아까는 내가 뒤처지는 중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것 같아.”
본인이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 이해는 간다.
같은 301호 출신인 송이가 험프티덤프티를 깨웠으니까, 누나도 성과를 얻고 싶었겠지.
그동안 지켜본 바에 따르면, 은솔 누나 자체가 향상심과 경쟁심이 좀 있는 스타일이고.
하지만, 위대한 자의 파편을 소화하는 일은 마음만 앞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당시의 일, 떠오르는 것 없으세요?”
“아까 말했지만,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고만 하면 정말 모르게 됩니다. 추상적인 느낌이라도 있을 테니, 그걸 말로 표현해 보세요.”
“이야… 가인이 너, 무슨 자기개발 강사 같네.”
“저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자기개발 전문가 아닙니까? 돈 몇 푼 벌겠다고 요란법석인 사람들하고 비교가 안 되죠.”
이쪽은 목표가 무려 신이었다니까?
“풋! 말은 맞는 말이네. 으음…”
누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알듯 모를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남긴 흑석이 날 침식해 가는 과정. 마치, 마치…”
“마치?”
“… 공명?”
“공명?”
“…”
“공명이 어떻다는 건가요?”
“미안.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잖아. 표현 못 하겠어.”
나도 선문답 전문가긴 한데, 지금 은솔 누나는 한술 더 뜨는 느낌이다.
물론, 본인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선문답이긴 하지만 말이다.
조언을 쓰는 게 좋겠어.
다른 참가자 관련 질문이긴 하지만, 축복과 무관하니 기여도를 깎아 먹을 일도 없을 테니까.
「조언 : 3 -> 2」
‘깨달음이 너무 모호해서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공명이라는 단어가 왜 나온 겁니까?’
「무엇과 무엇이 공명 중인지 생각하라. 이스의 왕이 남긴 파편이 무엇과 공명하겠는가.」
조언을 확인하자 떠오른 한 가지 가설.
누나의 마음, 영혼 깊은 곳에는 301호의 죄수, 이스의 왕이 깔아둔 ‘악성 프로그램’이 있다.
악성 프로그램의 본질은 다름아닌 위대한 자의 정신체.
105호의 힘으로도 그 정신체를 삭제할 수는 없다.
흑석은 그 정신체와 공명 중인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이스의 왕이 소멸할 때 흑석을 남긴 것은 일종의 안배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깨닫자, 자연히 다음도 떠올랐다.
“가인아, 뭔가 조언해 줄 것 없어?”
“…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세상을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안한데, 무슨 소리인지 진짜 모르겠어.”
“지금 알아들으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뭐?”
“갈게요. 쉬고 계세요.”
“아니, 가인아. 설명은 하고 가야지!”
*
3층에 도착하자마자 진철 형과 아리가 보였다.
형은 족히 몇백kg은 되어 보이는 동상을 붙잡고 있었고, 아리는 옆에서 이것저것 지시 중이었다.
“왼쪽으로 30cm만 옮겨봐.”
— 드르륵!
“이 정도?”
“으음… 얼굴이 내 쪽을 향하도록 살짝 틀어볼래?”
— 끼익!
“됐냐? 이제 뭔가 느껴지고?”
“느낌이 올 듯 말 듯한데… 슬슬 피곤하네.”
“끄응! 아리야, 옮기는 건 내가 다 하는데 왜 네가 피곤하냐?”
“네 근육보다 내 머리가 더 귀하잖아.”
3층의 숨겨진 요소를 탐색 중인 모양인데, 두 사람이 예전보다 제법 친해진 티가 났다.
302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송이와 엘레나, 의사 선생님과 묵성 할아버지 그러하듯 말이다.
“오, 가인이 왔네?”
“형에게 궁금한 게 있어서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철 형이 웃었다.
“하핫! 아리도 꼬치꼬치 캐묻더니, 너도 궁금했냐?”
아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야, 진철이 네가 한참 전에 머저리같이 고깃덩이로 변했으니까. 10년 넘게 궁금했거든. 대체 뭘 하다 꿈틀거리는 살덩이 젤리처럼 변했을까 하고.”
“꿈틀거리는 살덩이 젤리라니…”
솔직히 그렇게 보이긴 했지.
진철 형이 한숨쉬며 답했다.
“… 지고한 경지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도로 정리하지. 꿈의 힘을 빌려 한번 구현해 본 게 큰 도움이 됐다.”
지고한 경지라면, 현실에서 꿈을 사용했던 결과물을 말하는 것 같다.
“모순을 상대할 때 썼던 힘, 다시 쓸 수 있겠어요?”
“하핫, 당장 그 정도는 좀… 그 경지는 정말 평생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진철 형이 슬쩍 멀어지기 시작했다.
“자, 난 오전 내내 아리가 시키는 대로 동상을 옮기느라 고생했거든? 이제 가인이 네가 도와줘라. 난 가볼게.”
자연스레 나와 아리 둘만 남은 상황.
“… 진철이도 참, 네가 오니까 괜히 가네.”
관측소에서 오랜 시간 함께했으니, 편하고 자연스러워질 줄 알았는데…
막상 둘만 남으니 살짝 어색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다른 동료들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가?
뭐라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후원자와 어떤 이야기 했어?”
“소원에 관한 이야기.”
“구체적으로 말해봐.”
아리는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은하수를 달리는 열차 기억하지?”
“3층에 처음 도착했을 때, 네 꿈에서 봤던 혼돈 재해지.”
“난 아마도 은하수를 달리는 열차에서 최초의 소원을 빌었나 봐.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기억나지 않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
“미싱링크에 관한 이야기, 기억해?”
“관측소 침대에 있던 쪽지?”
“그게 나와 관련된 쪽지였나 봐.”
“무슨 소리야?”
“… 선각자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침묵하는 자는 무엇을 침묵하는가.”
“…”
“깨달음과 침묵의 내용은 잊히고, 선각자와 침묵하는 자라는 단어만 남았다. 이런 이야기였어.”
관리국 수뇌부의 명칭과 관련한 이야기 같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아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김아리라는 인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 나 자신을 제외하면, 아마 가인이 너일 거야.”
이 표현은 살짝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넌 알레프의 기억을 회복하며 꽤 많은 정보를 알아냈지. 우리가 모르는 정보.”
“으음… 없진 않지.”
“나에 대한 이해, 너만 아는 정보. 두 가지를 조합해 봐. 뭔가 떠오르는 것 없어?”
“…”
“통찰이랑 조언도 써봐. 나는…”
문득, 아리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 조금 무서워.”
“어떤 의미에서?”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은하수 열차와 관련된 기억을 뒤지는 것 자체가… 그 자체가 무서워.”
“…”
“구체적인 기억은 잊었지만, 당시의 감정은 어렴풋이 남은 것 같아. 나는… 무언가를 아주 무서워했던 것 같아.”
과거의 아리가 느낀 두려움이라…
본인도 원인을 모른다는 상황이니,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에 공감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무엇이 과거의 아리를 심신 양면으로 극한까지 몰아갔는지 궁금하긴 했다.
호텔에서 위대한 자를 여럿 겪은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아리는 과거에도 베테랑 요원이었으니까.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긴 어렵네.
올빼미는 내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영적인 지혜를 주었지만, 그 힘으로도 아직 들어가지 않은 방의 내용을 알아낼 수는 없으니까.
다만, 이 정도 이야기는 해줄 수 있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과거의 너와 지금의 네겐 아주 큰 차이가 있잖아.”
“후우… 물론, 경험도 쌓였고 부등변다면체도 있으니까 예전과는 다르겠지만, 상대가 아득한 존재라면 경험이든 유산이든 한계가 -”
“넌 이제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있잖아?”
아리가 살짝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내 쪽을 보았다.
“어때? 기운이 나?”
“방금은 너무 유치한 멘트였어. 설마 이게 지혜의 한계?”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은솔 누나와 송이, 상현 형과 승엽이.
자신의 방을 해결한 네 명의 동료 중 상당수가 겪었던 현상이 있다.
바로, 최초의 소원과 관련한 어렴풋한 기억과 감정이 돌아오는 것.
아리는 은하수 열차를 떠올리며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과거의 감정이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
아리의 방이 머지않았다.
어쩌면, 바로 다음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참 이상하네.”
“음? 뭐가?”
“알다시피, 비밀의 축복은 호텔의 숨겨진 요소를 찾기 위한 힘이야.”
“그렇지.”
“내게 보이는 상태창 비슷한 것 여러 번 말해줬지?”
현재, 아리의 눈에는 이런 느낌의 창이 보인다고 한다.
* 3층의 숨겨진 방
1. 천국
2. 계승의 방
* 3층의 숨겨진 NPC
1. 不令解脫
2. ???
“숨겨진 요소 근처에 가면 미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해.”
“어떤 느낌?”
“무언가 살살 간지럽히는 느낌?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 어쨌든, 아까부터 그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
그래서 진철 형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고 있었구나.
“요 근처에서 느낌이 오거든. 근데, 주변 물건을 다 뒤집어도 반응이 없네.”
*
2층 설원에 누운 채 휴식을 취하는 시점.
시야가 어두워진다 싶더니, 사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금발의 아가씨가 다가왔다.
“뭐 하고 계세요?”
“이런저런 생각 중입니다.”
엘레나가 내 옆에 앉은 채 가볍게 웃었다.
“아까, 1층 다과 테이블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커피 마셨거든요. 가인 씨 이야기 잠깐 나왔어요.”
“무슨 이야기?”
“또 안 좋은 버릇이 도진 것 같다던데요?”
“…”
“깨달음이든 소원이든, 우리에 대한 정보를 정리 중인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네.
“여기까진 좋은데, 그다음이 은근히 짜증 난다.”
“뭐가 짜증 나는데요?”
“혼자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짓는다. 알려달라고 하면, 갑자기 희한한 소리만 늘어놓고 떠난다.”
“…”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 없을 때 은솔 누나가 내 뒷담화를 했다?”
“뒷담화는 아니죠. 제가 지금 그대로 전하고 있으니까, 앞담화.”
“누나도 너무하네. 도와주려고 한 건데.”
“도움이 안 됐다던데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내 말이 생각날 거라고 전해주세요.”
“다음 이야기도 있어요.”
“뭐죠?”
“유치한 이야기를 폼잡으면서 한다.”
“…”
“넌 이제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있으니까. 이런 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게 지혜의 한계다.”
“… 아리, 너무하네.”
“더 있어요.”
“아직도?”
“그럼요. 가인 씨가 험피를 너무 심하게 공격해서 험피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해요.”
“아니, 그 징그러운 놈에게 우울증 걸릴 지능은 있답니까.”
애초에 송이 본인이 하는 짓이 훨씬 끔찍하잖아?
“다음.”
“아니, 아직도?”
“자기 여친 아니라고 버리라는 이야기 엄청 쉽게 한다.”
“…”
“그런 사람이랑 사귀면 안 된다. 남의 여자친구 버리라는 말 쉽게 하는 거 보면, 본인 여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버릴 거다.”
“…”
“어떻게 생각하세요?”
“승엽이에게 유미는 어떻게 된 거냐고 꼭 전해주세요.”
나 없는 자리에서 다 같이 내 욕이나 하고 있었다니…
“은솔 누나, 아리, 송이에 승엽이까지 한마디씩 했네요. 진철 형은 뭐라고 안 했나요?”
“진철 씨는 그냥 웃기만 했어요.”
역시 형이야.
의리의 사나이가 뒷담화 따위를 할 리가 없지.
“어때요? 가인 씨의 행동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물론입니다.”
“어떻게?”
“당하고만 살 수는 없죠. 선문답 500번 추가로 갚아줘야지.”
“…”
“허공 응시하면서 ‘나 지금 조언 사용 중’ 티 내고,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끄덕끄덕. 다음은… 그렇지!”
“…”
“엘레나의 운명을 살펴보니, 탐욕스러운 빛이 혼돈을 집어삼키는 광경을 보았다. 오직, 순수한 인간의 마음이 중심에 설 때 승리가 찾아오리라. 이 느낌 어때요?”
“이래서 은솔 언니가 가인 씨에게 뭐라고 했구나 싶어요.”
“하핫!”
즐겁게 웃으며 엘레나에게 말했다.
“다들 저에 대해 한마디씩 한 모양인데, 엘레나는 불만 없어요?”
그러자, 엘레나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다과 테이블에서 다른 사람들 이야기 듣다가 생각했죠. 가인 씨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모으는데…”
“음?”
“가인 씨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사람은 없구나.”
“…”
“들으러 왔어요. 아리 말로는, 관측소 책상 가득히 뭔가 끄적이며 연구했다고 하던데요?”
진철 형은 살덩어리로 변하고, 아리는 주기적으로 동면에 빠졌던 시간.
언젠가부터 한 가지 기묘한 생각이 내 마음을 채웠다.
“… 사람은.”
“사람은?”
“왜 죽을까요?”
“예?”
“육신의 죽음, 영혼의 소멸. 정말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일까요?”
연구를 거듭할수록 이상할 정도의 ‘익숙함’을 느꼈다.
과거에 이미 어떤 결과에 도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을 감당하기 힘들어 스스로 잊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