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0)
79화 – 아리가 겪은 일 (3), 파티 타임 (1)
하늘 위의 하늘, 세상 밖의 세상.
만물의 바깥에서 뻗어 나온 기둥이 호텔을 지그시 눌렀다.
그 순간에야 나는 깨달았다.
‘기둥’은 곧 ‘손가락’임을.
‘병원 원장’은 호텔 속의 호텔이 형성된 것은, 흡사 우주에서 형성된 블랙홀 내부에 또 하나의 우주가 잉태된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지.
어찌하여 알아채지 못했을까? 우주 속에 우주가 잉태될 수 있다면, 우주 밖에도 더 광대 무량한 우주가 있을 수 있음을!
단 하나의 ‘손가락’이 모든 악신을 지그시 눌렀다.
흡사 사람이 파리를 눌러 죽이듯이.
초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나는 물론이고 ‘병원 원장’조차도 넋이 나갔다.
“크하하하하하! 너냐? 네가 우리를 가뒀나? 넌 누구지? 만물의 어버이라도 되시는지? 대체 너 따위가 뭐길래 -”
– 파직!
그저 한 번의 ‘짓누름’.
자신의 힘 일부를 별 조각으로 가공해 필멸자에게 건네서 세상을 말아먹은 사악한 존재가 으스러지기까지 단 한 번의 손가락질로 충분했다.
…
내 본능이 말했다. 바로 저 존재라고. 내가 품었던 수많은 의문. 내가 갈망했던 소원들.
모든 것의 해답을 쥔 존재.
정신없이 나아갔다. 바닥이 무너지자 양손으로 무너져가는 벽을 움켜쥐었다. 벽이 무너지자 이빨로 천을 물고 매달렸다. 천이 끊어지자 피를 써서 허공에서 버텼다.
정신없이 나아가서 ‘손가락’을 향해 허공에서 무릎 꿇었다.
… 너무나 많은 질문이 동시에 떠올라서, 대체 무엇을 여쭈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제발, 제발! 대답해줘.
아무 대답이라도!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을 손 하나로 굽어살필 정도의 당신이라면 ‘무엇이든지’ 알잖아?
만물이 멈춰선 시공간 속에서 –
‘목소리’를 들었다.
‘2층에서 너의 시작을 마주하리라. 그 때가 오면, 그대 스스로 선택하라.’
나의 시작. 그건 설마….
‘ㅁㅁ의 방!’
그런데 도착해서 뭘 어쩌라고?
—삐이익!
이상한 신호음.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마치 거대한 지우개가 내 머릿속의 문장들을 지워나가는 것 같았다.
…너무 많은 걸 보았구나. 참가자에게 허락된 선을 넘었다. 나는 다섯 번째 시도에서 경험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겠구나.
의식이 흐릿해진다. 의식을 잃기 직전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기억을 지울 거라면 좀 제대로 알려주라고!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정신을 차렸다. 깨어난 걸 보니 동료들이 어떻게든 해결한 것 같다. 그건 다행이다.
… 그리고, 내가 유산을 얻지 못한 건 확실하네. 어떤 알림도 보지 못했다.
돌아서자 잠깐 사이에 꽤 그리웠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즐겁게 웃고 떠들면서 자연스럽게 누가 유산을 얻었는지도 알았다.
‘이계의 별 조각’.
유산에 대해 알고 나니까 오히려 내가 얻은 게 아니라 다행이다. 약간 신포도 같은 소리긴 한데, 어차피 내가 얻었어도 제대로 쓸 수가 없는 유산이었다. 팔찌와 달리 굉장히 페널티가 강력한 유산이었네.
처음 호텔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다가 자꾸 기이한 죽음을 반복하며 점점 쪼그라드는 게 느껴졌던 진철 형이 오래간만에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도 이제 슬슬 얻을 때 된 것 맞지?
*
모두가 105호로 돌아오자, 예전처럼 사람도 없는데 엄청난 폭죽 소리와 박수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펑! —펑!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야 야 야! 시끄럽다! 시끄러워!”
진철 형의 부끄러운 듯한 외침과 함께 알림이 떴다.
/사랑하는 고객 여러분! 축하합니다!
호텔의 임직원 일동은 고객 여러분이 두 번째 보물을 찾아내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저주의 근원! 하나씩 무너져가는 동료들! 심신이 망가지는 고통!
그 모든 시련을 이겨 낸 여러분은 틀림없이 우리가 기다렸던 영웅들이십니다.
이번 보물은 특별히 사용이 어려운 물건이죠. 아무리 강인한 신체를 가지신 분이라 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잠깐의 사용만으로 심신이 쇠약해지니,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연습해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여러분을 위해서, 우리 호텔이 특별한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지하의 ‘모든 시대 사파리’에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보물의 사용법을 익히기에 딱 적당한 장소랍니다. 내일부터 5일간의 휴식! 보물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오늘의 깜짝 이벤트 : 파티 타임! 이 시작됩니다.
# 파티 타임은 5일간 유지되며 그동안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호텔에는 파티타임에만 정체를 드러내는 비밀도 있다고 하는데?/
다 같이 디스플레이 앞에서 내용을 정독했다. 예전에 송이가 팔찌를 얻었을 때와 미묘하게 달라진 내용들.
일단 파티 타임이 3일에서 5일로 늘었다. 좀 더 까다로운 유산이라 연습 시간을 길게 준 건가?
페널티가 약간의 두통 정도 말고는 없던 팔찌에 비하면, 별 조각은 확실히 까다로운 면이 많아 보이긴 한다. 진철 형이 숙련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 ‘모든 시대 사파리’라는 정체불명의 장소가 언급됐다. 말하는 걸 들으면 무언가 유산의 사용법을 익히기에 적절한 장소인 모양이다.
잘 모르겠다. 나보다 잘 알만한 사람. 호텔 2회차, 아리 쪽을 바라보았다.
?
아리가 이상하다. 딱히 알림창을 보는 것도 아니고, 뭔가 자기 머리만 부여잡은 채로 주저앉아있었다.
“아리야? 너 뭐하냐?”
“…”
“‘모든 시대 사파리’ 이거 뭔지 알아?”
“…”
그쯤 되자 주변 다른 사람들도 아리 쪽으로 몰려왔다.
“아리 누나? 괜찮아요?”
그제야 아리가 일어서서 대답했다.
“기억이 없어.”
“무슨 기억이요?”
“다섯 번째 시도. 아예 101호 문이 열린 후의 기억이 전혀 없어. 그냥 문이 열림과 동시에 문밖으로 나온 느낌이야.”
은솔 누나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거 신기한데? 예전에도 비슷한 일 겪은 적 있어?”
“호텔에서는 처음이에요. 진입한 지 얼마 안 되어 죽은 일은 있지만, 이번처럼 아예 아무 기억이 없던 적은 없었는데.”
“혹시, 들어가자마자 그 엄마라는 분에게 죽은 것 아니야?”
“… 저랑 엄마 사이가 그 정도로 끔찍하진 않아요.”
더 이야기해도 뭘 알아낼 수 없는 느낌이 든다. 비슷하게 느꼈는지 누나가 대화를 끊었다.
“기억은 언젠가 떠오르면 이야기해보자. 다 같이 밥이나 먹자!”
*
언제나 맛있는 호텔 밥이지만 상당한 성과를 내서 그런지 더욱 맛있었다. 식사가 마무리될 때쯤, 언제나처럼 은솔 누나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다 같이 쉬기로 합시다. 다만, 남은 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만 정리해봅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호텔에서 직접 가라고 안내해준 ‘사파리’네. 또, 적어도 마지막 날에는 향후 계획도 짜야겠지? 102호 ‘공포의 저택’, 104호 ‘호텔고’, 107호 ‘관문의 방’ 셋 중 하나로 가야 할 테니까.”
내가 먼저 필수적인 일정을 이야기했다.
“‘파티 타임’이니까, 축복의 성소에 가는 걸 잊지 맙시다. 이번엔 꽤 많은 분이 축복을 강화할 수 있을 겁니다.”
묵성 할아버지도 이어서 대답했다.
“간만에 시간 여유가 좀 생긴 모양이니, 최소한 남자 일동은 단련의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떠냐?”
단련의 시간?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다! 단련의 시간. 멧돼지 놈이야 힘이 장사니 저 알아서 하겠지. 요번엔 유산을 익히느라 바쁠 테고. 하지만, 가인아, 승엽아. 이 험난한 호텔을 이겨내려면 체력을 좀 더 단련해야 하지 않겠느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감사합니다. 그런데, 50일도 아니고 고작 5일인데 무슨 대단한 단련을 – ”
“고작 5일? 고오오작 5일? 이 호텔에서 5일’씩이나’ 여유로운 시간을 줄 일이 자주 생길 것 같냐? 너희는 체력이 너무 부족해.”
… 도저히 무슨 설득을 할 분위기가 아니다. 이번 ‘파티 타임’에는 어르신이 날 괴롭히실 모양이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관리국만의 어떤 비전 같은 걸 가르쳐주시지 않을까?
공포의 저택에서 할아버지가 무슨 경공술이라도 익힌 것처럼 산을 날듯이 달려가던 기억을 떠올렸다.
엘레나가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할아버님. 저도 같이 할 수 있겠지요?”
묵성 할아버지는 크게 흥이 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물론 가능하지. 송이도 같이 하자꾸나.”
우리 쪽을 쳐다보지도 않으려던 송이는 우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의 시선이 슬슬 은솔 누나 쪽으로 향하자, 누나는 재빨리 대화를 다음 화제로 넘겼다.
“좋아! 신체 단련할 사람들은 일정에 적어둘게. 또, 파티 타임이니까 탐색도 해야지. 축복의 성소 말고도 뭔가 신기한 것들이 또 있지 않겠어? 현재까지 나온 해야 할 일들은 이 정도야.
1. ‘모든 시대 사파리’에 가보기.
2. 축복의 성소에서 축복 강화하기.
3. 신체 단련.
4. 호텔 탐색.
5. 들어가야 할 방 정하기.
일단 이렇게 다섯 개 정리했어. 혹시 더 떠오르면 내일 이야기해! 오늘은 이만 쉬자.”
누나는 빠르게 대화를 마치고 일어섰다. 평소와는 다른 급박한 마무리가 느껴졌다.
… 할아버지가 누나까지 ‘신체 단련 팀’에 끼워 넣을까 봐 저렇게 서두르는 게 틀림없다.
*
– 김아리
식사도 끝나고, 각자의 공간에서 모두가 헤어진 시간. 나는 혼자 프런트 쪽에서 고민에 빠졌다.
왜 다섯 번째 시도에서 있었던 기억이 전부 날아간 거지?
진짜 모르겠다.
시작하자마자 저주에 오염되었다 해도 자아가 비틀릴 뿐,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기괴한 기억이라도 남았어야 정상인데. 그렇다고 엄마에게 무슨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나에게 암시를 썼나? 하지만, 암시로도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다. 혼자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있던 차, 멀리서 묵성이 다가왔다.
“뭘 그렇게 혼자 고민 중이냐?”
“기억을 잃은 이유가 뭘까 생각 중이야.”
“흠. 그건 신기한 일이긴 하군. 스스로 기억을 지운 건 아니겠지?”
“나도 그 생각 해봤는데, 내가 지웠을 때랑은 확실히 달라.”
“으음…. 떠오르는 게 없군.”
“뭐, 나도 이쯤 해서 포기하려고. 그나저나, 갑자기 ‘체력 단련’은 무슨 이야기야?”
“무슨 이야기냐니? 네가 얼마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체력 단련을?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체력 단련시키자는 이야기를 했다는 거야?”
“가인이 녀석이 호텔의 비정상적인 분위기에 ‘과도한 적응’을 한 게 아닌가 걱정하지 않았나? 나보고 그 녀석을 보다 ‘사람의 길’로 돌려놓으라고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체력 단련하고 대체 무슨 상관?”
“역시 너는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군. 날 때부터 초인으로 태어나서인가?”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묵성 당신 같은데.”
“건강한 몸엔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마련이지. 호텔에서의 시련은 혹독한데, 몸이 유약하니 자꾸 독한 계략을 꾸며 일을 풀어나가려 드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심성도 독해지는 거지.”
“아하! 그러니까, 몸을 열심히 단련시켜서, 모든 시련을 주먹으로 돌파할 수 있게 만들면 ‘건강한 정신’이 깃들 것이다?”
“바로 그것이네.”
“… 모르겠다. 알아서 해.”
묵성은 정말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떠나갔다. 다른 건 모르겠고, 최소한 묵성이 혹독하게 신체 단련시키는 와중에 ‘아리가 시켰다.’ 같은 소리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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