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00)
괴담 호텔 탈출기 800화(799/836)
800화 – 마법사의 연구 (2)
— 김상현
후원자와의 대담을 끝내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호텔이었다.
간단한 세면 후 밖으로 나가니,동료들은 이미 식당에 모여있었고.
멀리서 은솔 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님은 ‘진실한 마음’이라는 능력을 얻었단 말이죠?”
“그렇긴 한데, 뭐 하는 능력인지 잘 모르겠다.”
묵성이 녀석이 새로이 얻은 힘은 ‘진실한 마음’이라는데, 아직 효과를 모르는 것 같다.
“아, 상현이 나왔다.”
“오~! 일어나셨네요. 오랜만이에요.”
“은솔 양, 딱 하루 잠든 것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송이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어머! 다들 하루 만에 선생님을 그리워했는걸요?”
웃음으로 답하고 있으니, 묵성이 녀석이 탁자를 툭 툭 치며 말했다.
“상현아, 뭐 그럴듯한 능력 얻었냐?”
“한계돌파.”
“한계돌파? 그게 뭔데?”
새로운 능력에 대해 명확히 이해한 상태는 아니다.
다만, 후원자와 나누었던 대화를 고려할 때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마, 유산 활용에 도움을 주는 능력 같다.”
한계돌파는 최후의 섬광을 위한 축복 강화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활용 가능한지는 차차 봐야겠지만 말이다.
“이야~ 부럽네. 나는 또 쓸모없는 능력을 얻은 느낌인데.”
무슨 능력인지도 모르면서 쓸모없다니?
후원자가 들으면 섭섭해할 소리다.
“병원에 몇 년이나 누워있으면서 인내심을 배우지 못한 모양이지? 기다리라고.”
“야, 야! 그놈의 병원 소리 좀 그만해라.”
가볍게 농담이 오가던 중, 음료를 마시던 가인 군이 입을 열었다.
“형, 오늘 바로 하강하실 생각인가요?”
하강,그 단어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성소에 가기 전날 밤, 가인 군에게 했던 부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 하강은 관측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었지.
“그렇습니다. 302호 상태도 한번 보고, 챙길 것도 챙겨야겠지요.”
가인 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승엽 군 쪽을 손짓했다.
“승엽이랑 이야기를 해보셔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의아함을 느끼며 승엽 군 쪽을 보니, 그는 살짝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승엽 군?”
“가인 형에게 들었는데, 선생님은 하강 후에 할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고 했어요.”
“그렇습니다.”
가인 군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내가 하강 후 할 일을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상현에게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 정도는 다들 짐작하고 있으리라.
승엽 군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저는 뭘 해야 할까요?”
“음?”
“사람을 만난다? 그러기엔 부모님이 302호에 계신 것도 아니고…”
“…”
“오히려 제 부모님은 현실에 있죠.”
생각해 보니 그렇다.
302호에 있던 승엽 군의 부모님은 애초에 실체가 모호한 존재였고, 현재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꿈으로 재현한 승엽 군의 부모님은 호텔 밖 현실에 있다.
“소연이도 없어요. 302호에 있는 사람 중 제가 알만한 사람이… 있나?”
302호의 사람 중 승엽 군과 친분이 있다고 할만한 사람.
기껏해야 데이비드 정도인데, 그가 지금 살아있는지부터 애매하다.
살아있다 한들 서로 그리워할 관계도 아닌 것 같고.
“사람보다는 보상을 목표로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 보상 말인데, 아무리 봐도 제 보상은 깃털의 힘 같거든요.”
황혼의 깃털.
302호 후반, 소연 양은 황혼의 깃털을 극한까지 사용해 증발시켰다.
그 결과 302호는 해결되었지만, 깃털이 완전히 소멸했는가는 애매한 문제다.
죽은 사람, 소멸한 영혼도 복구할 수 있는 게 호텔이다.
호텔이라면 깃털 역시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었다.
“승엽 군, 깃털 혹은 깃털의 흔적이 당신에게 남아있습니까?”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뭔가 남아있긴 한 것 같네요.”
깃털이 완전히 소멸하면, 승엽 군 역시 죽는다.
따라서 승엽 군이 살아있다는 건, 최소한 깃털의 흔적이라도 남아있다는 뜻이다.
“힘을 쓸 수는 있습니까? 302호 후반엔 제법 구체적인 현상을 일으켰던 것 같은데…”
“…”
“잘 안되나 보군요.”
이유는 짐작이 간다.
애초에지금 상황을 과거의 승엽 군도 어렴풋이 예상했었지.
‘깃털을 파괴한다는 건, 당신과 내 역할 전부에 대한 부정이지.’
‘무서웠어. 내 의지로 깃털을 파괴하고 나면, 다시는 깃털의 힘을 쓰지 못할 것 같아서.’
승엽 군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본인에게 주어진 보상은 깃털 그 자체 같다.
2. 당장은 깃털의 힘을 쓸 수 없다. 302호 해결 과정에서 깃털의 본질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하강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하강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리군요.”
“네.”
“간단한 이야깁니다.”
“예?”
“일단 내려갑시다. 내려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어, 어…”
“어, 어 할 것 없습니다. 하강해서 보상을 얻으라는 게 호텔 방침 아닙니까? 답이 뭔지는 몰라도, 답의 위치는 알려준 셈입니다.”
“그, 그렇네요.”
이야기가 정리될 무렵,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니 가인 군이 살짝 손을 들었다.
“이상한데.”
“가인 군?”
“가인아, 왜 그래?”
“무슨 일이냐?”
대답은 아리 양이 대신 했다.
“왜 미로는 나오지 않는 거야?”
“어라? 그렇네요? 축복을 강화한 할아버님도, 의사 선생님도 나오셨는데…”
“늦잠이라도 자는 건가? 가인아, 동료 위치 정보 봐봐.”
“… 이미 105호에 있어.”
“뭐?”
“사실, 아까부터 있었어. 샤워라도 하고 나오려는 줄 알았는데, 이상할 정도로 늦네.”
점심 무렵, 승엽 군과 302호로 출발했다.
우리가 하강할 때까지도 미로 양은 105호에서 나오지 않았다.
*
— 쿵!
— 딩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302호로 하강, ‘파이오니어 빌딩’이라 적힌 회색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은솔 양과 송이 양이 밟았던 과정과 거의 같은 걸 보니, 하강 과정은 다 이런 식인 모양이다.
내심, 302호의 상태가 지나치게 끔찍할까 두려웠지.
승엽 군이야 302호 세계에 그 어떤 애정도 없어 보였지만, 내게는 고향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래서였을까?
302호의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할 무렵에는 살짝 미소가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멀쩡하네요?”
“그렇군요.”
“핸드폰으로 계속 검색 중인데… 역사 자체가 많이 바뀐 느낌?”
302호에서 벌어진 일.
세간에는 관리국이 사악한 신에 맞서 거대한 전쟁을 벌였다고 알려져 있다.
“… 사람들은 관리국이 세상을 구했다고 알고 있네요.”
“사악한 신과 수십 년에 걸쳐 끔찍한 전쟁을 벌인 후, 승리한 관리국이 세상을 복구 중이다. 이게 사람들 인식입니다.”
“소연이가 깃털의 힘으로 이렇게 만든 걸까요? 정말 대단한 활용 -”
“전부는 아닐 겁니다.”
“예?”
“저야 당시 상황을 직접 보진 않았습니다만, 깃털을 사용하던 소연 양은 급박한 상황 아니었습니까?”
“그렇죠. 실시간으로 몸이 붕괴 중이었으니까.”
“지금 상황은 사실상 대체 역사 시나리오를 하나 만들어서 전 세계에 뿌린 수준인데, 당시의 소연 양이 즉석에서 떠올리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히, 우리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줄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갑시다. 마침, 이곳은 텍사스니까요.”
텍사스의 주도, 오스틴 근교에는 순수파의 본거지인 TT 빌딩이 있다.
도착하자마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데이비드가 문자 그대로 눈물을 흘리며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아아… 조니! 네가, 세상을 두 번이나 구해냈구나!”
*
데이비드에게 들은 추가 설명은 짐작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302호 종료 후 약 2년 반이 흐른 시점.
깃털이 세상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파괴된 건물 상당수는 다시 생겨났고, 죽은 사람은 무수히 부활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모든 피해가 복구된 것은 아니었다.
깃털의 힘에도 한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대체 역사를 퍼트리는 집단은 역시나 관리국이었다.
민간인은 진상을 정확히 모르며, 관리국이 악신을 몰아내고 세상을 구했다고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벌어진 일을 그대로 알리긴 어려웠어. 그…”
가혹한 진실.
관리국 구성원의 태반이 타락했고, 위대한 자를 섬기며 인류의 미래를 바치려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 세상 사람들이 관리국 통제에 따를까?
지금의 관리국은 여명의 아들과 충돌한 순수파지만, 외부인이 볼 때는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관리국이다.
“이해하네.”
데이비드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세상을 구한 공적을 자신들이 훔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 민간인들은 진상을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아. 조니, 네가 크게 활약했다는 사실 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애초에 나와 승엽 군은 일이 끝나는 대로 호텔로 돌아갈 사람이 아닌가.
“데이비드, 괜찮네. 괜찮아. 정말이야. 그러니 미안하게 생각할 것 없네.”
“자네는 정녕 명예욕도 초탈한 건가?부끄러울 뿐이야.”
전부터 느낀 건데, 이 친구는 나를 너무 추켜세우는 경향이 있다.
“최초로 마신의 계획을 깨트린 자, 조니가 다시금 악신을 추방했구나… 이는 영원토록 기억될 업적이며 -”
“아니, 면전에서 이러지 말게. 얼굴이 붉어질 것 같으니까.”
옆에 있는 승엽 군까지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 걸 보니, 대화 주제를 빨리 바꿔야겠다.
“데이비드, 용건이 있어서 왔네.”
“용건? 무엇이든 말하게. 할 수 있는 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25년 전, 자네가 내게 준 쪽지 -”
“조니, 잠깐.”
쪽지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데이비드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내 옆을 보았다.
“…”
“…”
“왜 그러세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데이비드는 승엽 군에게 쪽지 내용을 알려도 되는지 고민 중이다.
“데이비드,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내가 여명의 아들을 몰아낸 영웅이라고 말일세.”
“… 그랬지.”
“혼자 한 일이 아니야. 승엽 군이 함께했어.”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녀석은 납치당했던 것 같은데.”
“자네가 모르는 부분도 있지. 마지막 순간에 승엽 군은 돌아왔고, 얽혀있던 실타래를 풀었어. 데이비드, 믿게.”
“… 누구를 믿으라는 말이지?”
“날 믿듯이 승엽 군도 믿게.”
나와 데이비드가 대화하는 사이, 승엽 군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승엽 군을 추켜세우는 말에 살짝 감동했지만, 동시에 나와 데이비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침묵의 시간.
그 사이, 나는 데이비드가 내게 주었던 쪽지의 필사본을 승엽 군에게 전달했다.
“이건 뭔가요?”
“승엽 군, 일단 읽으십시오.”
다행히도데이비드는 날 막지 않았다.
「달을 타락시킨 자.
그는 우리처럼 세상을 관리하는 조직의 일원이었다고 한다.
대선배님이 후손에게 너무나 무거운 빚을 남기신 셈이다.
우리는 셀 수 없는 시작과 끝을 반복하며 그 빚을 갚으려 발버둥 쳤지만, 이자를 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세상을 지킬 소명을 받은 자가 마왕이 되었으니,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
멋진 신세계의 본질은 우리가 억겁에 걸쳐 봉인해 온 마귀들의 봉인 시설이다.
최근, 그곳의 악마 중 한 개체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왕이 부활했다고 한다.
천상의 조화가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허락했다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려운 이야기였지만, 또한 예상된 일이었다.
그는 언젠가 이 땅에 돌아와 모든 것을 수확하리라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
마왕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셀 수 없이 마왕의 환생체를 파괴했지만, 모든 시도를 비웃듯이 환생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영혼을 멸하는 온갖 수단조차 무용지물이었다.
분명 사람으로 태어났을 텐데, 무슨 수로 이렇게까지 달라졌을까?
그를 멸하기 위해선 아주 특별한 무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
마왕을 멸할 수 있는 비수가 있다.
나는, 그 비수를 쥘 자격이 있는 자는 세상에 너뿐이라고 믿는다.」
“다 읽었습니까?”
“… 네.”
승엽 군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알레프와 달의 왕자, 에밀리오 사이에 벌어진 태고의 일, 모두가 ‘대충은’ 알고 있다.
가인 군이 대략적인 얼개는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인 군이 말하지 않은 정보도 제법 많겠지만 말이다.
쪽지에 적힌 ‘마왕’의 정체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데이비드, 이제 준비가 됐네. 구체적인 장소와 주의 사항을 듣고 싶군.”
“좋아.”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2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상현 형과 승엽이가 302호로 떠나고, 약 8시간이 흘렀다.
점심 무렵에 떠났으니, 지금은 벌써 저녁이다.
…
미로는 아직도 105호에서 나오지 않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