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01)
괴담 호텔 탈출기 801화(800/836)
801화 – 마법사의 연구 (3)
— 김상현
“남극이라고?”
“그래. 남극에 연구과학기지가 하나 있지. 보통72번 기지라고 부른다.”
“이해했네.”
“전세기는 곧 준비하지. 늦어도 내일이면 충분하다.주의 사항은 서류로 정리해 줄 테니, 암기하고 태우는 게 좋을 거야.”
“그리하지.”
대화를 끝내고 나가기 직전, 데이비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참, 조니. 조심하게.”
“음?”
“… 최선을 다해 복구 중이긴 하지만, 이미 풀려난 악마들이 제법 있어.”
*
마왕을 멸할 비수가 숨겨진 장소는 놀랍게도 남극이었다.
걸어갈 만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데이비드가 최대한 빨리 전세기를 준비해 주겠다고 했으니 큰 문제는 없다.
전세기가 도착하기까지 약간의 휴식 시간.
TT 빌딩 밖으로 나와 간단히 드라이브 중인 상황.
꽤 오랫동안 말이 없던 뒷좌석의 승엽 군이 입을 열었다.
“남극이면 엄청 춥겠네요.”
“방한복도 준비해 준다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게다가, 누구 덕에 추위에는 익숙해서 말입니다.”
“으엣!”
“승엽 군을 구하기 위해 북극에서 고생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제는 또 남극이군요.”
“죄, 죄송합니다…”
“하핫! 다 지나간 일이지요.”
“방호복을 가져올 걸 그랬네요.”
“방호복? 그러고 보면, 요즘 방호복을 쓴 적이 없긴 하군요.”
“… 방호복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째, 승엽 군의 말투에 미묘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싸움이라도 할 것 같습니까?”
“…”
“남극 기지의 위치, 비밀 병기를 얻기 위한 코드. 데이비드가 전부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선생님. 전에 말했지만, 최초의 소원 관련 기억을 회복할 때, 기억 속에서 데이비드를 여러 번 봤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때 본 데이비드의 모습과 방금 본 모습이 너무 달라요.”
“흐음… 듣겠습니다.”
“제가 아는 데이비드는 음험한 계략과 권모술수로 가득한 사람이었거든요. 머릿속 시커먼 관리국 수뇌부들도 쥐락펴락하는 사람이었죠.”
“그렇습니까?”
“방금 데이비드는 무슨, 선생님의 팬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승엽 군이 아는 데이비드는 권모술수의 화신이다.
반면, 조금 전의 데이비드는 마치 내 팬처럼 행동했다는 이야기.
팬까지는 과장이겠지만, 조금 유치할 정도로 날 띄워준다는 느낌은 있었다.
만나자마자 ‘아아… 조니! 네가, 세상을 두 번이나 구해냈구나!’ 했을 때는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
“요컨대, 승엽 군은 데이비드가 조금 의심스러운 모양이군요.”
“생각해 보세요. 냉정하게 보면 -”
“정말 승엽 군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군요.”
“… 냉정하게 보면, 데이비드가 우리를 적대할 이유가 꽤 있잖아요? 관리국은 과거를 숨기고 싶어 해요.”
“그렇지요.”
7할 이상의 구성원이 여명의 아들을 숭배한 과거.
관리국에게 이는 단순히 부끄러운 일 정도가 아니다.
아스테어 등 고위층은 우리 손에 죽었지만, 그 이하 계급은 생존자가 제법 많다.
순수파는 세상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구원파 생존자 상당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말단이야 상층부에 휘둘린 면도 크고, 인력 부족이 심각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진실한 역사가 외부에 알려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
7할이 위대한 자를 섬기며 문명을 말아먹었고, 지금도 생존자 상당수가 남아있는 조직.
이런 집단이 세상을 관리하는 걸 일반인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
“우리는 관리국이 숨기고 싶어 하는 과거사의 살아있는 증인이자, 증거 그 자체죠.”
“일리 있군요.”
“게다가, 저는 여명의 아들이 이 세상에 남긴 흔적이에요.”
“맞는 말입니다. 승엽 군의 생존 자체가 깃털의 잔해 혹은 흔적이 남아있다는 뜻이니.”
“순수파가 절 어떻게 생각할까요?”
“…”
“선생님이 아까 데이비드에게 말하셨죠. 선생님을 믿는 만큼 절 믿어달라고. 살짝 감동하긴 했지만… 관리국은 반대로 생각할지도 모르죠.”
“승엽 군을 믿을 수 없으니, 승엽 군을 옆에 둔 김상현도 믿을 수 없다?”
“이거야말로 요원식 사고방식 아닐까요?”
승엽 군의 생각은 간단하다.
관리국이 우리를 적대할 이유가 두 가지나 있다는 것.
첫째, 끔찍한 과거사의 증거 인멸.
둘째, 여명의 아들이 남긴 흔적인 박승엽의 존재 그 자체.
“걱정스러운 게 하나 더 있어요.”
“또 있습니까? 말해보시죠.”
“대화하는 걸 옆에서 듣다가 느꼈는데, 데이비드랑 엄청 친하신 것 같았어요.”
“그렇지요.”
데이비드와 나의 친분은 승엽 군 상상 이상으로 깊다.
아마, 호텔 파티와 가족을 제외하면 데이비드가 가장 친한 인간 순위권이겠지 .
302호에서 우리는 수십 년에 걸쳐 활동했고, 데이비드는 그런 우리를 물심양면 지원해 주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데이비드는 관리국 수장에 가깝죠. 제 말은 -”
“사적인 친분보다 공적인 판단이 우선하는 사람이라는 소리군요. 오히려, 내 쪽에서 사적인 친분 때문에 긴장이 느슨해질 수 있고.”
할 말을 끝낸 후, 승엽 군이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해석에 따라선 ‘선생님, 데이비드와의 친분 때문에 판단이 흐려진 것 아닌가요?’로 들릴 수 있는 말.
이래서 승엽 군이 사과하는 모양인데,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놀라웠다.
“아닙니다. 사실, 꽤 놀라고 있습니다.”
“네?”
“이런 말을 승엽 군이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신기하군요.”
“읏!”
“25년의 고생이 헛되진 않은 모양입니다. 다만…”
“다만?”
“때로는 불화에 대한 의심이 바로 불화의 원인이 됩니다.”
다음 날 아침, 출발 준비가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
남극.
세상에서 가장 추운 대륙.
지구의 최남단이자 최후의 미개척지.
— 휘이잉!
가혹한 환경은 곧 인구 밀도가 극도로 낮음을 뜻한다.
이는,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반인의 눈을 피해 이런저런 일을 획책하는 집단이 활용하기 좋은 땅이라는 의미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남극에 관리국의 비밀 기지가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72번 혼돈연구과학기지의 소장을 담당하는 필립 모리슨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니 김이라 합니다.”
“박승엽입니다. 안녕하세요.”
남극 기지의 소장, 필립 모리슨은 학구적인 인상의 50대 백인 남성이었다.
혼돈체와 싸우는 현장 경험보다는 연구에 충실한 사람 같았다.
“본부에서 공문 받았습니다. 불편함이 없도록 적극 협조하라고 하더군요.”
“듣던 중 기쁜 소리군요.”
“기지 메인 시스템에 안내하라고 적혀있던데, 코드는 준비하셨습니까?”
“가지고 있습니다.”
“메인 시스템 스크린에 입력하시면 될 겁니다.”
“바로 갈 수 있습니까?”
“30분 정도면 준비가 끝납니다.”
곧, 필립은 남극 기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72번 연구과학기지의 주요 테마는 바로 정신과 자아입니다. 조니 경, 인간의 두개골 속에 담긴 회백색 뇌세포 덩어리에 얼마나 심오한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
“인간의 뇌를 어설프게 흉내 낸 인공지능조차 아직 개발단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눈먼 시계공이 100만 년 전에 도달한 경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습니까? 왜 인간만 이렇게나 똑똑할까요? 향유고래의 두뇌 크기가 인간보다 6배나 크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
“어쩌면, 인간의 지능은 두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한 가지 심오한 착상을 더 한다면 -”
처음에는 이런 설명도 데이비드의 지시인가 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럴 리가 없다.
다음에는 혹시 내가 관리국에서 출세할 것 같아서 줄을 대는 건가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지하 5층의 연구 과제는 자아의 분열과 탈색입니다. 이는, 저 밤하늘의 사악한 달을 대비한 계획의 일종이며 -”
필립 모리슨 소장은 머릿속에 연구밖에 없는 사람 같았다.
“지하 12층, 본 연구기지의 최하층이지요. 그곳에는 ‘아스타샤의 거인’의 사체와 아직 살아있는 두뇌 조각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런 성향이라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소장이라는 고위직에 올랐겠지만, 나로선 제법 피곤한 일이었다.
그래서 슬쩍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대전쟁 시기는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여명의 아들을 몰아내는 25년의 과정을 세간에서 흔히 ‘대전쟁’이라고 한다.
“대전쟁? 아하! 제가 조금 과했군요? 연구에 너무 몰입한 모양입니다.”
“하핫, 그럴 수 있지요.”
“다행히, 남극 기지는 대전쟁의 화를 피해 갔습니다. 외부 세계와 반쯤 단절된 장소다 보니, 폭도들에게 휩쓸릴 일이 없었지요.”
“위대한 자의 목소리는?”
“저를 포함한 연구원 모두 명상을 통해 이겨냈습니다. 뭐, 불운한 사상자는 있었습니다만…”
버티지 못한 연구원은 죽였고, 버틴 사람만 살아남았다는 소리다.
“데이비드 경에게 들었는데, 본부에서 8년 가까이 보급을 보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요. 보존식품만으로는 버티기 쉽지 않았으니… 아, 저쪽입니다.”
보급이 끊긴 8년간 어떻게 버텼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 전에 메인 시스템에 도착했다.
“스크린에 코드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고개를 까닥이며 물러서는 소장, 메인 시스템으로 다가가는 나와 승엽 군.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승엽 군이 한마디 했다.
“정말 말 많은 아저씨네요.”
“아직 들릴만한 거리입니다.”
“들으라고 해요. 그러면 좀 조용해질지도.”
“하하…”
승엽 군과 달리, 나는 연구소장을 다소 가엾게 여겼다.
아까 뭐라고 했었지?
‘지하 12층, 본 연구기지의 최하층이지요.’
— 타닥! 탁!
데이비드가 준 서류에 따르면, 메인 시스템에 코드를 입력하면 지하 15층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연구소장은 본인이 수십 년 동안 관리해 온 연구기지의 규모조차 정확히 모른다는 소리다.
소장쯤 되는 직책도 이 모양이니, 말단 직원들은 사실상 관리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봐야겠지.
— 타다닥!
“입력 끝났습니다.”
“기다리면 되나요?”
“곧, 기지 메인 시스템이 우리를 위한 특별 승강기를 보낼 -”
— 위이잉!
“오? 이것도 절차인가요?”
— 위이잉! 위이잉!
갑자기 사방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 선생님?”
서서히 승엽 군의 표정이 굳어갔다.
어디선가 희미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뭐 하나 편히 가는 법이 없군요.”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2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8시간째 105호에서 나오지 않는 미로.
이쯤에서 105호의 소위 ‘프라이버시’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휴식의 방은 일종의 중첩 공간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105호에서 서로를 만날 일이 없다.
아리가 105호에 들어가면 아리의 105호가 나타날 뿐, 미로가 있는 게 아니야.
따라서 식사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식사 시간이 되어야 105호의 중첩이 깨지고, 모두가 한 공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
아침 시간은 어어어? 왜 안 나와? 하다가 훅 흘려보냈다.
점심 시간에는 침실 문이 잠겨 있었다.
결국, 점심시간도 허무하게 흘려보낸 후 저녁 시간이 되었다.
— 쿵! 쿵!
“야! 문 열어라!”
“안 들리는 건가?”
정신없이 문을 두드리는 할아버지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은솔 누나.
“미로 쟤 안에서 문 잠근 거야?”
“그런 모양인데. 대체 왜 저러지? 가인아, 꿈의 왕국 써봤냐?”
황당해하는 송이와 진철 형.
“아까 시도했는데, 소용없습니다. 미로는 지금 깨어있어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문은 잠갔고, 대답은 없고, 기절하거나 잠든 상태도 아니고…”
아리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을 무렵, 나는 결정을 내렸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모여드는 시선을 느끼며 엄숙히 선언했다.
“문 부수고 들어갑시다.”
여러 번 파괴해 봐서 잘 알지.
105호의 내구성은 별것 아니야.
유산까지 필요도 없고, 진철 형이 펀치 한 방 갈기면 침실 문 따위는 바로 나무토막 행이다.
문제는…
“문 부수면 호텔에서 수리한다고 온갖 오버를 다 떨 것 같은데.”
“그렇다고 미로를 계속 방안에 둘 수는 없어.”
“… 그건 그래.”
결정을 내리자, 진철 형이 어깨를 으쓱하며 다가왔다.
“진짜 황당하네. 하여튼 미로 녀석, 가끔 희한한 사고를 친단 말이지.”
아리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미로를 옹호했다.
“새로 얻은 능력을 시험하다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고의는 아닐 거야.”
“그럼 부순다?”
“네.”
「조언 : 3 -> 2」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정확히 어떤 현상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고,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