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02)
괴담 호텔 탈출기 802화(801/836)
802화 – 마법사의 연구 (4)
— 박승엽
“정말이지, 뭐 하나 편히 가는 법이 없군요.”
— 철컥!
선생님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갑자기 일대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빛이 돌아왔을 때, 선생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갑자기 무슨 상황이냐고!”
조금 전의 ‘철컥!’ 소리, 승강기가 도착하는 소리 같았어.
선생님은 승강기를 타고 지하 15층으로 가신 건가?
나만 두고 선생님 혼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명백히 사악한 의도의 개입이 느껴졌고, 후보가 될만한 존재도 하나 떠올랐다.
“데이비드…!”
데이비드 이 자식이 뭔가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할 무렵, 상황이 이상해졌음을 깨달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승강기는 이미 떠났으니, 당장 선생님을 따라갈 방법이 없는데.
— 흐으으…! 아악!
아까부터 귓가를 간질이던 비명 내지는 신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남극 기지 연구원을 위협하는 걸까?
*
공포에 떨며 바닥에 주저앉은 연구원들에게 다가갔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가, 가까이 오지 마!”
— 철컥!
연구원 몇몇이 내게 총을 겨눈 것이다.
무섭다기보다는 황당했다.
정신없이 떨리는 총구를 볼 때, 정신이 멀쩡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자. 아저씨들, 진정하시고 -”
“가까이 오지 말라고 개새끼야!”
“우, 우리가 네놈들 모, 목적을 모를 줄 알아?”
“예?”
“가만히 숙청당할 줄 알았냐?”
“애초에, 다 본부 책임 아니냐고!”
숙청?
이 사람들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지?
— 탕!
… 피했다.
“여러분, 한 번만 더 쏘면 진짜 혼납니다.”
— 탕!
“이 자식이 진짜!”
— 우당탕! 쿵!
주저 없이 연구원 서넛을 바닥에 메친 후, 총을 다시 쓸 수 없도록 총열을 구부렸다.
그리고 한 놈을 붙잡고 눈빛이 흐려질 때까지 목을 가볍게 졸랐다.
“끄으윽! 끄윽!”
이 정도면 최소한 겁은 먹었겠지 싶은 타이밍에 손에서 힘을 뺐다.
“아저씨, 대체 왜 이러는지 말이나 하시죠.”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미친놈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
“다 너희 책임이야…”
“예?”
“지원… 아무런 지원이 없었잖아… 보, 보급이 8년 넘게 끊겼는데…”
옆에 널브러진 다른 연구원들도 몽롱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했지? 어떻게 해야 했냐고!”
“본부 개새끼들! 너, 너희가 대전쟁을 막지 못한 탓이라고…”
연구원들을 기절시키고 점차 흉측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남극 기지를 걸어갔다.
“…”
처음엔 연구원들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했는데, 점차 상황이 보인다.
아까 전, 선생님과 필립 모리슨 소장이 나누었던 대화.
‘데이비드 경에게 들었는데, 본부에서 8년 가까이 보급을 보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흐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요. 보존식품만으로는 버티기 쉽지 않았으니…’
25년에 걸쳐 문명이 붕괴한 302호.
관리국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무너지긴 마찬가지였다.
어느 시점부터는 세계 각지에 흩어진 비밀 기지들을 관리할 여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곳은 극한의 땅, 남극.
농사 따위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사냥이나 낚시를 통해 식량을 구하기도 어려운 장소.
이런 장소에서 서른 명이 넘는 사람이 8년을 살아남았다.
보존식품의 도움 정도는 받았겠지만, 그것만으로 8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버텼다.
어쩌면, ‘타락’에 준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복구되며 관리국 본부와 남극 기지의 연락이 재개되었을 때, 연구원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관리국이 남극 기지 전체에 타락 판정을 내리고, 진압 부대를 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나와 상현 형이 바로 남극 기지 진압부대 역할이라고 착각한 것 같다.
10대 소년이 끼어있는 2인조가 남극 기지 연구원 전원을 학살하는 게 말이 되냐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10대 소년이 있으니까 더 공포에 질렸겠지.
날 요원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남극 기지 사람들이 대충 어떤 망상에 빠졌는지 알았다.
…
또한, 이 사람들이 반쯤 돌아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남극 기지가 타락했다고 치자.
관리국이 남극 기지를 날려버리기로 했다고 쳐.
관리국 본부에서 남극 기지에 공문까지 보냈잖아?
공문에 나랑 선생님이 언제쯤 도착한다는 일정이 상세히 적혀 있었지.
이런 바보짓을 왜 해?
또, 전투력이라고는 개뿔도 없는 연구원 몇십 명 죽이려고 요원씩이나 보낼 필요 있어?
무장한 군인 열댓 명만 비밀리에 보내면 하루에 뚝딱 끝날 일인데.
게다가, 정말 관리국이 남극 기지를 숙청하겠다고 결정했다?
우리를 죽이는 건 최악의 선택이다.
조만간 더 많은 군인이 파견될 뿐이니까.
남극 기지 연구원들 사고의 흐름에 논리가 전혀 없어.
…
무언가 알 수 없는 사악한 마력이 개입하고 있다.
생각이 이쯤 닿았을 때, 정체 모를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네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를 보아라.’
‘사랑을 위해 세상을 지옥에 빠트렸구나…’
“…”
*
— 미로
황당한 하루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터무니없다고.
하나, 내가 새로 얻은 능력의 이름이 말이 안 돼.
“그러니까 미로, 새 능력의 이름이 뭐라고?”
이미 말해줬잖아!아리는 왜 자꾸 묻는 거야?
설마 날 놀릴 생각? 참을 수 없어!
눈을 부릅뜨자 아리가 한숨 쉬었다.
“하아… 놀리는 거 아니야.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그렇지. 히키코모리라고?”
“흐읍!”
“왜 나한테 눈빛 레이저를 쏘는 거야? 이름을 내가 지은 것도 아닌데.”
“킥!”
옆에서 들려오는 송이의 웃음소리.
살짝 화가 났지만, 쟤는 내가 화낸다고 신경 쓸 성격이 아니었다.
“풉! 히키코모리 미로? 능력 정말 어울려.”
“너… 너!”
“너 뭐?”
“송이야, 그만 좀 놀려라. 미로가 방방 뜨니까 대화가 안 된다.”
“네, 할아버지.”
“어, 언제 방방 떴다는 거야!”
둘, 지금이 저녁이라는 게 말이 안 돼.
“미로, 깨어나자마자 능력을 썼다고?”
“응.”
“… 그러면, 미로 네 기준으론 지금 몇 시냐?”
“깨어나서 세수하고 20분 정도 지났는데.”
묵성의 말에 대답하자 동료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허허… 이것 참, 미로가 황당한 능력을 얻었나 본데.”
“뭔가 이상해. 나한테는 진짜 20분 지났단 말이야!”
이쯤에서 가인이가 끼어들었다.
“자, 자. 긴급 상황은 지났으니, 지하로 갑시다. 디스플레이 보이시죠?”
호텔 벽 여기저기 걸려있는 디스플레이들이 모두 같은 알림을 표시 중이었다.
진상 고객이 객실 문을 파괴했고, 수리를 위해 24시간은 상층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아니, 겨우 문짝 하나 고치는 데 24시간이나 걸린다고? 거짓말!”
“고치는 데 꼭 24시간이 필요해서라기보단, 호텔 파괴의 페널티가 저걸로 정해져 있는 거겠죠.”
“그 소리가 그 소리잖냐.”
“일단 지하로 갑시다.”
*
호텔 지하의 편의시설에 도착한 후, 동료들은 내 새로운 능력에 호기심을 보였다.
“미로코모리! 뭔가 어울리는 느낌이네. 네 후원자에게 이런 유쾌한 면이 있는 줄 몰랐 – 아얏!”
참지 못하고 송이 종아리를 걷어찼다.
은솔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지금은 쓸 수 있니?”
“아니. 지금은 스킬 아이콘이 불투명해.”
혼자 있을 때는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쓸 수 없다는 이야기.
은솔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능력 명칭부터 히키코모리니까. 미로 혼자 있을 때만 쓸 수 있겠지. 이야, 이렇게 보면 되게 직관적인 이름인데? 후원자의 네이밍 센스가 -”
“최악!”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자 은솔이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최악이라고 하자.”
이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가인 씨, 미로가 지금은 히키코모리를 사용할 수 없대요.”
“엘레나, 히키코모리의 뜻을 생각하면 당연하죠.”
“그러면 능력 시험은 어떻게 해보죠? 미로만 혼자 두고 나머진 다른 장소로 가야 하나?”
“그랬다가 또 아침의 일이 반복되면요? 지하까지 수리하면, 우리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 그렇네요.”
“야, 야! 오늘은 이만 쉬자. 상현이 녀석이랑 승엽이 돌아올 때까진 여유가 있지 않겠냐?”
“뭐, 어제 떠났으니 그렇겠죠?”
“오늘은 이만 쉬자. 저 하얀 머리 모지리 때문에 반나절을 고생 -”
“흰 머리는 묵성이 너지. 난 은발이야!”
“백발이나 은발이나 그게 그거구만. 쓸데없이 귀만 밝은 것 같으니.”
“묵성아, 너랑 미로 머리카락 색은 많이 달라.”
“효녀 났네, 효녀 났어!”
“에헴! 할아버님 말대로 오늘은 이만 쉬죠. 해산!”
*
늦은 밤.
105호에 들어갈 수 없는 만큼, 동료들은 지하 편의시설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몇몇 사람은 슬슬 취침 준비 중인 것 같아.
나는…
“…”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105호에 들어갈 수 없어서 대충 구한 잠자리가 불편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직 잘 시간이 아니잖아.
내 기준으론 아직도 오전인걸?
슬쩍 몸을 일으키자 아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안 와?”
“응. 아리야, 나 심심해. 뭐하지?”
“… 도서관.”
“응?”
“가인이는 지금 도서관에 있을 거야. 관측소에 갇혀있을 때 여러 번 말했거든. 지하에 갈 수 있게 되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싶다고.”
“고마워!”
도서관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방금 아리의 대답은 어떤 의미에선 조금 부럽다고 말이다.
*
— 끼익!
아리 말대로 가인이는 도서관에 있었다.
제목만 봐도 머리가 아픈 온갖 책을 쌓아두고 있었는데, 대충 보니 철학 서적과 뇌과학 서적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미로, 왔구나.”
“응. 잠이 안 와서.”
“잠? 아하, 네겐 지금이 오전처럼 느껴지겠구나?”
“응.”
“찾는 책이라도 있어? 저쪽에 검색용 컴퓨터도 있더라.”
“그, 그래?”
책 보러 온 게 아닌데 책은 무슨 책?
살짝 웃으면서 가인이 건너편에 앉았다.
“뭐해?”
“연구.”
“무슨 연구?”
이쯤에서 가인이도 가볍게 웃기 시작했다.
“불로불사의 비밀 탐구?”
“에헷! 나 그거 알아. 그, 무슨 중국의 유명한 황제가 했던 거 맞지?”
“하하, 시황제가 가장 유명한 사람이긴 하지.”
“왜 갑자기 그런 연구를 하게 된 거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전신을 움찔하고 말았다.
가인이에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어떤 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 모든 문제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응?”
다음 말은 살짝, 아주 살짝 무서웠다.
“미로, 혹시 아리를 만나고 왔니?”
“으엣? 무슨 말 -”
“아리가 너보고 도서관에 가서 날 만나라고 했지?”
“으, 응.”
“그 녀석도 참, 쓸데없는 걱정이 많네.”
*
— 김상현
— 덜컹! 덜컹!
“…”
— 덜컹! 덜컹!
“허허…”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비밀 병기를 얻기 위해 남극 기지에 도착, 이후 코드를 입력해 승강기를 호출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었는데…
갑자기 경고음이 울리며 조명이 깜빡거리는가 싶더니, 정신 차려보니 나 혼자 승강기에 있었다.
“302호에서 고생은 이미 끝난 것 아니었습니까?”
누군가 보고 있다면, 답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중얼거렸다.
… 놀랍게도, 정말 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평소엔 그리도 리더, 리더 했으면서, 전부 거짓이었느냐?’
“음?”
‘네가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생각하라. 정말 그를 믿었다면, 이곳에 올 필요도 없었을 텐데?’
설마, 무슨 악마의 속삭임 같은 건가?
“가당치도 않은 헛소리를 -”
불가해한 존재의 다음 속삭임은 날 침묵하게 했다.
‘자신의 방이 다가올수록 오래된 기억과 감정이 돌아온다. 널 포함한 여러 동료가 겪었고, 계속해서 겪을 현상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너희에게만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