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03)
괴담 호텔 탈출기 803화(802/836)
803화 – 마법사의 연구 (5)
— 미로
— 풀썩!
어딘가 멍한 기분으로 돌아와 아리 옆에 주저앉았다.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앉아 있으니, 나와 꼭 닮은 흑발 소녀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왜 그래?”
“…”
“가인이랑 노는 거 재미없었어?”
“… 미로, 아리가 너 보고 도서관에 가서 날 만나라고 했지?”
가인이의 말을 그대로 읊자, 아리가 피식 웃었다.
“가인이가 한 말이야?그러긴 했지. 가인 눈치 빠르네.”
“눈치야 원래 빨랐고~! 대화 흐름 완전 짜증 나잖아.”
“왜?”
“왜는 무슨 왜! 네가 날 무슨 인간 편지로 쓴 것 같아.”
“오해야. 연구에 너무 심취한 것 같아서 귀여운 미로를 보냈을 뿐이야.”
“…”
“네가 옆에 있어도 연구에 매진했나 보네. 독해라.”
아까부터 느꼈던 미묘한 불편함의 실체를 이제야 알 것 같아.
가인이랑 아리가 너무… 너무…
너무 다음에 어떤 표현이 적당할까?
“미로, 왜 그래?”
너무 친하다?
그렇다기엔 오히려 어색해 보일 때도 있어.
조금 전 일만 봐도 그렇지.
아리가 직접 가서 말하기는 거북하니까 날 대신 보낸 느낌이잖아?
“너랑 가인이랑…”
“응?”
어렴풋한 추측.
아리와 가인이는 서로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여러 생각을 나눈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친해지기도 했지만…
도리어 선을 긋게 된 부분도 생긴 것 같았다.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된 만큼, 합의하기 어려운 선이 있음을 이해한 것.
“많은 일이 있었네.”
이 표현이 제일 맞는 것 같아.
“가인이가 또 뭐라고 했길래 이렇게 생각이 많은 표정이야? 어울리지 않게.”
“나 바보 아니야.”
“그럼 그럼. 바보는 절대 아닌데, 경험이 아주 부족하지. 이젠 아니려나? 302호에서 3년은 깨어있었으니까.”
“… 가인이가 이상한 이야기했어.”
“뭐라고 했는데?”
“불로불사 연구 중이래.”
“그렇지.”
“그리고 음, 본인의 연구가 모든 문제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대.”
아리가 가볍게 한숨쉬며 답했다.
“예전하고 비슷하구나.”
“… 전에도 그런 이야기 했어?”
“응.”
“정확히 무슨 연구를 하는 거야? 불로불사라니…”
“나도 정확히 몰라. 어쩌면…”
“어쩌면?
“…”
“어쩌면 다음 뭐야?”
아리가 갑자기 침묵에 빠진 시점, 건너편에서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어쩌면, 가인 씨 본인도 정확히 모르는 것 아닐까?”
“엘레나, 자는 줄 알았는데… 설마 시끄러워서 깼어?”
엘레나였다.
“아니야. 나도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방금은 무슨 말이야?”
“으음, 나도 이틀 전에 가인 씨와 연구에 관한 이야기 조금 했거든.”
가인이의 연구에 관한 이야기는 엘레나도 조금 들었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
“미로가 들은 이야기랑 비슷해.”
“불로불사?”
“응. 사람은 왜 죽을까요? 육신의 죽음, 영혼의 소멸, 정말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일까요? 이런 이야기.”
“내가 들은 거랑 비슷하네.”
“다만, 뒤에 흐릿한 말이 조금 더 있었어.”
“뭔데?”
“… 오래전에 이미 어떤 결과에 도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 잊었던 것 같다.”
나와 엘레나가 들은 이야기를 합쳐보자.
가인이의 연구 주제는 불로불사, 영생불멸 이런 쪽이다.
오래전에 이미 모종의 성과를 얻었지만, 감당할 수 없어서 스스로 잊었다.
지금은 가인이 본인도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것 같다.
“뭐야? 더 모르겠는데.”
“그러게.”
그때, 말없이 벽에 기대어 앉아있던 아리가 입을 열었다.
“들어봐.”
“응?”
“어제 후원자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어. 아마도 내 방과 관련한 힌트겠지.”
“아, 아리도 후원자 만났지?”
엘레나도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옆에 앉았다.
“아리, 후원자가 뭐라고 했는데?”
“… 반복되는 세상, 결정을 내린 근거는 잊히고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만 남았다. 후대는 영문도 모른 채 과거를 답습할 뿐. 선각자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침묵하는 자는 무엇을 침묵하는가.”
아리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나랑 엘레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둘이 똑같은 생각 중이었다.
“무슨 소리야?”
“아리 후원자도 꼭 아리같네. 어려운 이야기를 좋아하나 봐.”
아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미사여구 걷어내면 간단한 문장이야. A라는 정보가 있어. 세상 전체와 얽힌 아주 중요한 정보겠지.”
“A, 중요한 정보. 이해했어.”
“아주 오래전에 선각자는 A를 알았어. 그래서 그들이 선각자, 먼저 깨달은 자인 거야.”
“으응, 거기까지도 알았어.”
“이후, 침묵하는 자는 A를 숨기기로 했어. 그래서 침묵하는 자인 거야.”
A라는 아주 중요한 정보가 있다.
A를 깨달은 집단이 자신들을 선각자라 칭하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A를 숨기기로 한 집단은 자신들을 침묵하는 자라 칭하기 시작했다.
“이해했어?”
“응. 그런데, 후원자가 해준 이야기면 아리 방 이야기 아니야?”
“그렇지.”
“아리 방 이야기랑 가인이가 무슨 상관 – 아앗! 설마 둘이 같은 방이야?”
아리가 즉각 손을 저었다.
“아니야. 가인이의 방은 ‘명패 없는 방’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난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아? 올빼미가 방 내용도 알려줘?”
“직접적으로 말해주진 않았지만, 그는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기 화법을 즐기지.”
“…”
“25년간 가인이가 조언을 여러 차례 사용하며 얻은 결론이니 믿어도 좋아. 내 말은…”
아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유심히 듣고 있던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방은 아니지만, 구조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다?”
“그거야.”
“관리국은 오래전에 어떤 비밀을 알아냈고, 스스로 잊었다. 가인 씨도 비슷하네.”
대화가 끝날 무렵,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한 가지 의문. 관리국 수뇌부도 그렇고, 오래전의 알레프도 그렇고… 무엇을, 왜 잊었을까?”
*
— 김상현
폐부를 찌르는 사악한 속삭임.
‘자신의 방이 다가올수록 오래된 기억과 감정이 돌아온다. 널 포함한 여러 동료가 겪었고, 계속해서 겪을 현상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너희에게만 일어날까?’
가인 군이 알레프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교활한 목소리.
듣지 않으려고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들을 수밖에 없다면, 반박하는 것도 답일지 모른다.
“다음 방이 가인 군의 방일리 없다. 그의 방은 3층 마지막 방일 테니까.”
가인 군의 방은 3층 마지막 방이다.
이는 내 멋대로 내린 결론이 아니며, 가인 군이 후원자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알아낸 정보다.
지혜의 후원자가 확실히 말해준 건 아니지만, 합리적인 추측 정도는 할 수 있는 법이지.
아직 가인 군의 방이 나타날 때가 아니다.
따라서 가인 군이 벌써 오래된 기억을 회복할 리가 없 –
‘마지막 방? 누가 그렇게 정했지? 마지막 방이 아니야. 명패 없는 방이지.’
‘301호 다음은 302호다. 302호 다음은 303호지. 순서라는 건 숫자가 있을 때 성립한다.’
‘명패 없는 방은 순서가 없다. 따라서 그의 각성은 다른 방의 진행과 무관하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과거로 돌아갈 뿐.’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대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호텔의 시스템을 잘 알고 있을까?
302호를 지배하던 위대한 자 – 여명의 아들은 이미 사라졌다.
지상에 남은 존재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죄수에 비하면 하찮은 잡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떻게 잡귀 따위가 호텔의 이치를 꿰뚫을 수 있단 말인가?
말이 안 된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까부터 내 마음을 흔드는 목소리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게 아님을 말이다.
“너는 내 마음의 미혹이군…”
사악한 존재 자체는 있다.
알 수 없는 마력이 남극 기지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귓가에 들려오는 속삭임의 내용은 듣는 자 스스로 떠올린 것.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부터 가인 군을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었구나.
가인 군의 방은 명패 없는 방이다.
명패가 없음은 순서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인 군은 3층 다른 방 진행과 무관하게 절대적인 시간만 흐르면 점차 태고의 기억을 되찾는다.
모두 내가 직접 했던 생각들이다.
“…”
아리 양을 비롯한 몇몇 동료는 나를 농담으로 가인 군의 충신이라고 부르지.
딱히 기분 나쁘진 않았다.
솔직히, 내가 나 자신을 봐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딱히 문제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대부분은 가인 군의 의견이 실제로 합리적이었으니까.
그래서, 많은 경우 ‘김상현’은 ‘한가인’의 의견을 따라왔다.
다른 한 편, 과거의 끔찍한 기억은 내게 속삭인다.
특출난 초인을 아무도 견제할 수 없을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질 수 있는지 생각하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해 호텔의 미로 양은 내 평생의 스승이나 다름없다.
그녀야말로 내게 인간의 바닥이 얼마나 낮을 수 있는지 친히 알려준 자가 아닌가.
…
가인 군이 알레프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애초에, 두 사람의 삶 사이에는 너무나 큰 시간적 간극이 있으니까.
직전 전생에 저지른 죄도 아니고, 100만 번의 삶 전에 저지른 죄?
이런 것까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지금처럼 가인 군이 알레프의 자아를 억누르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만약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뒤집힌다면…
“…”
그때를 위한 수를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하하! 그대, 앞면과 뒷면의 구분이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모르느냐? 아니면, 어렴풋이 알면서도 눈 감은 것이냐?’
— 띵!
— 지하 15층입니다.
“후우… 거의 다 왔군.”
승엽 군은 잘 있겠지?
남극 기지를 뒤흔드는 마력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승엽 군이 당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리라.
동료를 믿고 내가 할 일을 하면 된다.
전방에 희뿌연 조명과 검은색 가방이 보였다.
절차에 따르면, 데이비드가 준 기이한 조각을 가방 위에 올리면 된다.
그렇게 하면 가방 속에 숨겨진 ‘마왕을 멸하는 비수’가 나타나는 –
“음?”
가방 위에 이상한 노트가 있다.
“뭐지?”
이상하다.
데이비드에게 몇 시간에 걸쳐 상세한 설명을 들었지만, 저런 노트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는데…
별것도 아닌 낡은 노트 하나 때문에 전신이 굳었다.
이곳은 관리국이 가장 중히 여기는 보물 중 하나가 잠든 장소.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숨 한번 쉬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눈 딱 감고 노트를 집었다.
“…”
다행히 보안 절차 위반으로 독가스가 암실을 가득 채운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노트가 어째 익숙했다.
데이비드가 요전에 보여준 ‘태고의 기록’이 적힌 노트와 같은 디자인이다.
— 휘이잉!
그 순간,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지하 15층에서 말이다.
“헛!”
당황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잠시.
— 펄럭!
노트가 휘리릭 넘어갔다.
…
A라는 지식이 있다.
A를 알게 되면 A1이라는 대응을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그런데, 모두가 A1을 택할 때 모두가 패배한다면 어떨까?
모두의 패배를 막기 위한 길은 단 하나, 다 함께 A라는 지식을 잊어야 한다.
어떤 지식은 모르는 게 약인 법이다.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페이지가 자연스럽게 한 번 더 넘어갔다.
…
하지만, 세상에 딱 한 명이 A1이라는 최적의 전략을 취할 수 있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어선 안된다.
…
“이 무슨 황당한 -”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누구냐!”
“어떤 의미에서, 나는 당신의 동료를 존경합니다.”
이 목소리!한 번 들어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