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09)
괴담 호텔 탈출기 809화(808/836)
809화 – 아주 기이이인 하루 (5)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2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이미 발생했다. 네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다소 어이없는 대답에 침묵하는 것도 잠시, 진철 형이 내 쪽을 보았다.
“후원자가 뭐라고 하냐?”
“이미 발생했다네요.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데.”
“야, 정체를 물어봤더니 이미 발생했다 하는 게 정상적인 답 맞냐?”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죠.”
“한 번 더 물어보는 건 어때?”
아리가 한숨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 의미 없어. 두 번 물어봐서 해줄 답변이면, 처음에 바로 해줬겠지.”
“어렵네.”
자연스럽게 시작된 침묵의 시간.
모두가 주변을 슬쩍 살필 뿐, 네 번째 어둠의 정체에 대해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상현 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조금 애매하긴 합니다만, 이상 현상이 하나 있긴 합니다. 그러니까 -”
형이 더 말하기 전에 내가 끊었다.
형이 말하려는 이상 현상은 승엽이에게 벌어진 괴상한 일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형, 그건 아닐 겁니다.”
“으음… 가인 군 생각은 그렇습니까?”
“순서가 이상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런저런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렇듯, 나와 상현 형이 둘만 아는 대화를 나누니 주변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우우…! 가인이랑 상현이 이상한 이야기 해. 우리 왕따시키는 거야?”
왕따라니…
미로답게 유치한 표현을 쓴다 싶었는데, 옆에서 아리가 거들었다.
“맞아 맞아. 모두를 왕따시키지 말고, 우리에게도 말해줘.”
“으음, 아리 양. 여기서 이야기하긴 어렵습니다.”
당사자 – 승엽이가 눈앞에 있으니까.
“나중에, 해결된 후에 꼭 설명해 드리지요.”
“우우…! 우우…! 상현이 너무해!”
“죄송합니다. 괜한 이야기를 꺼내서 -”
상현 형이 동료들을 진정시키는 사이, 나는 아까의 대화가 떠올랐다.
‘잘됐네요! 마침, 가인 씨 찾고 있었거든요.’
‘저도 가인 씨 찾고 있었어요. 묻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엘레나, 아까 제게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엘레나가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 그랬죠. 아까부터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네요.”
“무슨 말이었죠?”
엘레나가 배시시 웃으며 답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상황이라 미리 하는 말인데, 무슨 어둠 같은 건 아니에요.”
“그래도 말해보시죠.”
“네. 3일 전이었나? 아리, 미로랑 같이 꽤 복잡한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랑 했던 이야기?”
“응. 아리랑 했던 이야기. 그걸 은솔 언니와도 했어. 그러다가 언니가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고 했지. 신기해서 가인 씨와도 이야기하려 했는데 -”
그 순간.
— 쿠궁!
요동치는 소음과 함께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
정신을 차렸을 때, 배시시 웃으며 이야기하던 아름다운 소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난데없이 벌어진 엘레나의 갑작스러운 실종.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만큼, 모두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가, 가인앙! 이게 모야?”
“으앗! 얘들아, 지금 엘레나 사라진 거 맞지?”
“보면 몰라?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엘레나 언니는 어디로 간 거죠? 오, 오빠! 동료 위치정보 확인해서 -”
“이상한 특수문자로 나오네. 죽은 건 아니고, 호텔에서 위치를 가린 것 같아.”
주변이 혼란스러워질 무렵, 상현 형이 굳은 표정으로 일어서 화이트보드에 다가갔다.
“다들 진정합시다. 엘레나 양이 죽은 건 아니라고 하니, 찾으면 됩니다.”
곧, 형은 현재까지 밝혀진 어둠과 이상 현상 목록을 적었다.
1. 미로
어둠 : 저주의 방에 대한 거부감.
이상 현상 : 로비에 갇힘.
2. 유송이
어둠 : 험프티덤프티의 두뇌 파괴에 대한 죄책감.
이상 현상 : 험프티덤프티가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가 됨.
3. 김상현
어둠 : 한가인에 대한 불안감.
이상 현상 : 한가인이 페로의 몸에 속박됨.
4. 엘레나
어둠 : ???
이상 현상 : 엘레나의 갑작스러운 실종.
5. 이은솔
어둠 : ???
이상 현상 : 검은 비
“이 정도면 되겠지요?”
그때, 송이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선생님! 4번은 약간 애매하지 않아요?”
“음?”
“엘레나가 사라진 건 맞지만, 엘레나가 네 번째 어둠의 원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듣고 보니 그건 그렇군요. 4번의 범인 칸은 비워두겠습니다.”
4. ???
어둠 : ???
이상 현상 : 엘레나의 갑작스러운 실종
그때, 나는 한 가지 의문에 빠져있었다.
이 상황은 조언 내용하고 안 맞는 거 아닌가?
마침,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동료가 있었다.
“야, 가인아.”
내게 조언을 쓰라고 권유한 사람, 진철 형이었다.
“네.”
“아까 네가 올빼미에게 들은 이야기랑 좀 다른데? ‘이미 발생했다’라고 대답했다며?”
“그렇죠. 저도 그 생각 중입니다.”
네 번째 이상 현상의 정체에 관한 올빼미의 답은 ‘이미 발생했다’였지.
그런데, 엘레나의 실종은 조금 전에 발생했다.
“가인이 네 후원자가 단어 선택을 실수했을 가능성은…”
“올빼미는 그럴 존재가 아닙니다.”
후원자는 단어 하나에 열 개의 뜻을 담았다면 모를까, 실수할 리가 없는 존재다.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상태창의 ‘동료 위치정보’를 확인하던 시점,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동료 위치정보(*)
6. 엘레나 : &*^%$
7. 유송이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8. 이은솔 : &*^%$
“뭔가 발견했냐?”
“실종된 엘레나의 위치는 특수문자로 이상하게 나와요. 아마 호텔에서 쉽게 찾지 못하게 뒤튼 것 같습니다.”
“음, 아까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 엘레나의 위치정보와 은솔 누나의 위치정보가 똑같네요.”
이쯤에서 아리도 내 쪽을 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엘레나와 은솔 누나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같은 장소에 있는 것 같네.”
하나의 깨달음은 자연스레 그다음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실종된 두 사람이 같은 장소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또 하나의 가설을 떠올리게 했다.
“오빠, 그 말 듣고 생각난 건데, 아까 엘레나가 뭐라고 말하다가 사라졌죠?”
‘아리랑 했던 이야기. 그걸 은솔 언니와도 했어. 그러다가 언니가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고 했지. 신기해서 가인 씨와도 이야기하려 했는데 -’
“아리, 미로랑 했던 이야기를 은솔 누나와도 했다. 그러다가 누나가 뭔가 떠올랐다고 했고, 신기해서 날 부르려고 했다.”
“은솔 언니, 엘레나. 딱 두 사람이 지금 사라졌고, 마침 똑같은 곳에 있네요.”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은솔 누나가 사라진 것 자체도 이상 현상이었군요.”
4. ???
어둠 : ???
이상 현상 : 엘레나와 ‘이은솔’의 갑작스러운 실종.
은솔 누나의 실종부터 이미 이상 현상이었구나!
이래서 올빼미가 ‘이미 발생했다’라고 한 거였어.
“사라진 두 사람, 공통점이 있어요. 그러니까…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여기에 아리가 한 단어를 덧붙였다.
“정확히는 뭔가를 ‘가인이에게’ 말하려고 했다.”
*
결국, 식사 시간이 끝날 때까지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호텔 시계가 식사 시간의 종료를 가리킬 무렵, 할아버지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하아… 이래서 이벤트 제목이 ‘아주 기이이인 하루’였구만! 금방 끝날 일이 아니었던 게야.”
“어쩔 수 없군요. 식사 시간이 아니면 모이기도 어려우니… 내일 아침에 봅시다.”
“선생님, 내일 아침이 오긴 할까요? 디스플레이를 보세요.”
여러분 중 다섯 사람의 마음속에 어둠이 있습니다.
그 어둠이, 호텔에 불길함을 드리우고 있군요!
모두의 미혹이 사라질 때까지 오늘 하루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서로 진실한 대화를 나눠보는 게 어떨까요?
“모두의 미혹이 사라질 때까지 오늘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송이 양 말이 맞습니다. 이러면, 아침은 오지 않겠군요.”
저녁 시간 종료까지 몇 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황급히 입을 열었다.
“싸우느라 지쳤을 테니, 6시간 후 밖에서 다시 모입시다. 눈 붙일 분 붙이시고 -”
— 딱, 여기까지였다.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저녁 시간이 종료된 것.
105호가 공유공간에서 각자의 공간으로 변하며 동료들이 모두 사라졌다.
6시간 후 밖에서 모이자고 전하긴 했지만, 검은 비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검은 비를 방어하려면 내가 신성한 태양의 힘을 소모하거나 아리가 부등변다면체의 힘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후우…”
가볍게 한숨 쉴 무렵.
— 툭!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가 떨어졌다.
아까 말씀드렸지요?
선물 하나만 준비해 주시죠.
30분 후에 뵙겠습니다.
이 녀석, 언제 내 주머니에 쪽지를 넣은 거야?
“…”
쪽지를 쓴 상대의 정체, 짐작은 한다.
이미 상현 형에게 언질을 받기도 했고, 애초에 상대도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놈이 어떻게 호텔에 왔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다만, 목적을 모르겠다.
왜 호텔에 왔는지, 와서 뭘 어쩔 셈인지…
그리고, 아까부터 선물은 왜 자꾸 준비하라는 것인지.
「조언 : 2 -> 1」
‘아까부터 왜 자꾸 선물을 달라는 겁니까?’
「중간 숙주에서 최종 숙주로 옮겨가기 위해서.」
“풋!”
중간 숙주, 최종 숙주라.
상대를 완전히 기생충처럼 묘사하는 올빼미의 화법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적당한 선물을 골라보자.
…
이거면 되겠지?
*
— 끼익!
105호 문 앞에서 3분 정도 기다리자, 승엽이가 나왔다.
“하아암…!”
“여기서 말하긴 그렇고, 좀 걷자.”
“네.”
직전까지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지, 졸린 기색이 역력한 승엽이.
1분 정도 걸었을까?
로비의 분수대 인근에 도착할 무렵, 승엽이가 뒤늦게 눈을 크게 떴다.
“어? 어?”
“…”
“형, 저 왜 여기 있죠? 뭐야? 왜 형이랑 걷고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
본인이 생각하기엔, 멍하니 졸다가 정신 차려보니 갑자기 위험천만한 검은 비 사이를 걷는 중이겠지.
몽유병 환자가 따로 없다.
“내 말 잘 들어.”
“예?”
“상현 형은 네가 네 번째 이상 현상이 아닌지 의심했었지.”
“예? 아까 두 사람 이야기가 그거였어요? 왜 -”
“넌 아니야. 순서가 틀렸거든. 이상 현상은 은솔 누나가 탐욕의 손을 쓴 ‘후에’ 발생해야 맞는데, 너는 누나가 탐욕의 손을 쓰기 전부터 맛이 가 있었어.”
“그, 그게 무슨 말씀이죠?”
이쯤에서 승엽이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처음 이상함을 눈치챈 건 상현 형이었어. 남극 기지 지하에서 네가 악마를 처치한 후, 무언가에 쓰인 것 같다고 했지.”
“예에엣?”
“그 후로 널 주의 깊게 보니까 이상한 노트가 네 주변에서 생겼다 사라졌다 했다더라.”
“노, 노트는 저도 한 번 봤는데 -”
“조용히 하고 들어. 승엽이 네게 하는 말 아니니까.”
“… 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찬찬히 생각해 보니 알겠더라.”
“…”
“자격 없는 자가 호텔에 침입하면, 특히 천상이라 불리는 3층에 들어오면 절대로 버틸 수 없어.”
이스의 왕, 우주를 주름잡는 위대한 자도 불과 몇 초를 버티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 이하의 존재는 말할 것도 없겠지.
“그렇다면, 너는 무슨 수로 천상의 압력을 버틸 수 있을까?”
“…”
“호텔에는 하강이라는 시스템이 있어. 3층, 천상에 있는 저주의 방을 해결하면, 참가자는 본인의 방에 다시 갈 수 있지.”
“…”
“정화된 본인의 방, 그곳에서 참가자는 원하는 물건을 챙겨올 수 있지. 이건 호텔이 정한 규칙이야.”
또렷한 눈으로 승엽이, 아니, 승엽이 주변에 숨어있는 존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승엽이가 남극 기지 지하에서 악마를 처치했을 때, 악마가 관리하던 노트가 ‘드랍’ 된거야. 직후, 노트의 소유권은 승엽이에게 넘어갔어. 이 녀석이 좋아하는 게임에 비유하면, ‘득템’이지.”
“형, 롤에는 득템이 없 -”
“승엽아, 넌 좀 조용히 하라니까.”
“… 네.”
“너는 하강 시스템을 이용해서 호텔에 들어온 거야.”
요컨대, 상대가 천상에 들어온 방식은 험프티덤프티가 3층에서 멀쩡히 있을 수 있는 이유와 똑같다.
참가자는 아니지만, ‘참가자의 소유물’ 판정이라 호텔에서 허용해 주는 것.
여기까지는 혼자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지만…
다음이 재밌는 포인트다.
“와서 대체 뭘 하려는 건가 했는데, 계속 선물을 달라고 하더라. 뭐지? 하다가 깨달았어.”
정확히는, 올빼미가 힌트를 줬다.
“승엽이는 중간 숙주였던 거야. 고래회충이 갑각류와 어류를 중간 숙주로 삼다가 최종적으로 고래에 정착하듯, 너는 승엽이를 보트 삼아 호텔에 올라왔을 뿐이야.”
슬슬 대화를 따라가기 버거운지 멍한 표정을 짓는 승엽이.
“최종 목적지는 나야. 선물을 달라는 건 교환을 위해서지. 내가 가져온 선물과 ‘노트’를 교환해서 내 쪽으로 넘어올 생각이야. 여기까지가 내 가설인데, 어떻게 생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