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10)
괴담 호텔 탈출기 810화(809/836)
810화 – 아주 기이이인 하루 (6)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32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어떻게 생각하지?”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승엽이가 당황한 듯 손을 들었다.
“어? 손에 갑자기… 노트가 원래 있었나요?”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승엽이 오른손에 나타난 제목 없는 노트 한 권.
이 정도면 상대가 대답한 것으로 쳐도 될 것 같다.
“승엽아, 노트 이쪽으로 줘.”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노트를 내미는 소년.
나 역시 방에서 챙겨온 ‘교환용 선물’을 승엽이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승엽이가 302호에서 가져온 노트를 얻기 위해서는 교환용 선물이 필요하다.
이 사실 자체는 악마쪽에서 직접 알려주었지만, 막상 선물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105호의 물건은 대부분 호텔 소유 비품이지, 내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산을 교환용으로 내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어디에나 써지는 펜’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건 너무 아까웠다.
상태창에 메모할 수 있는 유일한 필기도구가 아니던가.
게다가, 관측소와 저주의 방으로 분리된 3층에선 펜의 가치가 더욱 커졌다.
펜까지 제외하자 남은 내 소유 물건은 정말 딱 하나였다.
“인형.”
“그거야 보면 아는데… 형을 닮았네요.”
날 닮은 인형.
오래전, 한빙지옥에서 고통받던 미로를 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물건.
“자, 노트랑 교환하자.”
아까 전의 승엽이는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지.
갑자기 불려 나와 정체불명의 악마가 본인을 농락 중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신기해하는 표정이네.
돌아가는 꼴을 보니, 내가 악마 문제를 거의 해결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제 노트랑 형 인형이랑 교환하는 거죠?”
“…”
“그러면 노트에 담긴 악마가 형 쪽으로 넘어가고?”
“그래. 노트 줄래?”
“네.”
노트가 내 쪽으로 오고, 인형이 승엽이 쪽으로 넘어갔다.
“어… 끝이에요?”
“아마도.”
“그, 그러면 전 이제 뭐 해요?”
“들어가서 쉬어. 약속 시간 잊지 말고.”
“네.”
혼자 남은 복도.
겉보기에는 평범한 노트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교환이 정상적으로 성립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지.
승엽이에게 빙의한 악마가 했던 이야기 때문이다.
‘적절한 선물 하나만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유의미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유의미한 가치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의미 없는 잡동사니를 가져오면 안 되는 것 같았다.
특별한 물건을 제시해야 ‘호텔이 인정하는 참가자 간의 도구 교환’이 성립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보면, 정상적인 교환이 성립한 이유는 간단하다.
산타가 준 인형,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구나.평소에 가지고 다닐 걸 그랬나?
“인형 살짝 아까워지려고 하네…”
그 순간.
— 펄럭!
노트가 스스로 펼쳐지더니, 기이한 문구가 나타났다.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마시길.
인형이 어떤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훨씬 더 도움이 될 겁니다.
“너, 재주 한번 좋구나.”
중간중간 우여곡절은 제법 있었으나 결과를 보자.
302호 내에 갇혀있던 악마 중 하나가 호텔에 침입한 상황이잖아?
이스의 왕이 호텔에 침입했다가 소멸했던 일까지 생각하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악마의 수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악마 쪽은 ‘불령해탈’이라는 괴이한 배경 덕에 호텔 규칙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점은 고려해야겠지.
예컨대, 조금 전에 이루어진 참가자 간의 도구 교환.
호텔에 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오늘 처음 알았다.
참가자인 나도 모르는 호텔 규칙을 악마가 알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위대한 자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이번 일은 큰 도박이었습니다.
천상의 규칙에는 빈틈이 많습니다만, 이는 뚫기 쉽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호텔의 규칙에는 틈이 많다.
하지만, 그 틈을 공략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
— 끼이익!
105호의 문이 다시 열렸다.
나온 사람은 아리였다.
“아리? 무슨 일이야?”
“가인이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해? 검은 비가 지금도 내리고 있는데.”
“잠시 승엽이랑 할 일이 있었어.”
“그래? 으음…”
“왜 나온 거야?”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방금 축복이 깜빡깜빡했어.”
“뭐?”
“기억하겠지만, 내겐 호텔의 숨겨진 요소 관련 내용이 일종의 상태창처럼 보이거든.”
아리가 자주 했던 이야기.
그녀의 눈에는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창이 보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숨겨진 방
1. 천국
2. 계승의 방
# 숨겨진 NPC
1. 불령해탈
2. ???
“숨겨진 NPC 항목 1은 불령해탈인데, 그게 갑자기 확 커졌어.”
“확 커져?”
“볼드체 느낌으로 커져서 반짝반짝했지. 그동안의 경험에 따르면, 이건 우리가 숨겨진 요소를 찾았다는 표시야.”
“…”
“누군가 불령해탈하고 접촉했나 봐. 누구지? 은솔이인가?”
아리가 갸웃거리는 시점, 나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 일단 들어가자. 약속 시간은 5시간은 남았으니까.”
“그래. 이따가 봐.”
— 쿵!
*
조금 전, 아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은 놀라운 사실.
“… 너, 알고 있냐?”
자연스럽게 침대 위에 나타난 노트.
노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조금 전의 깨달음을 설명했다.
“숨겨진 NPC 항목 1번, 불령해탈은 우리가 302호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공개되어 있었어.”
그러니까…
악마가 호텔에 침입하기 전.
침입은커녕 침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전.
침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긴커녕, 나와 처음으로 만나기도 전.
그 전부터 호텔은 이미 저놈을 3층의 숨겨진 NPC로 배치했다는 소리다.
“…”
호텔은 세상에서 가장 초월적인 영역이다.
한 손으로 별을 으스러트리는 위대한 자들조차 삼천 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를 신처럼 여긴다.
삼천 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와 위대한 자의 격차는, 우리와 위대한 자의 격차보다 클지도 모른다.
위와 같은 사실은 진작 알고 있다.
충분히 잘 알고 있었는데…
지금처럼, 그 초월성의 편린을 체감하는 순간에는 말문이 막히곤 한다.
— 펄럭!
노트에 깃든 악마의 생각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것 참, 부처님 손바닥 위의 원숭이 꼴이로군요.
*
동료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
5분쯤 일찍 나와 기다리니, 동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인지, 다들 아까보다 활기찬 분위기였다.
“다과 테이블로 갑시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진철 형이 입을 열었다.
“지금 꿈의 왕국 누구에게 있지?”
아리가 고개를 까딱했다.
“나.”
“아리야. 혹시나 해서 말인데, 꿈의 왕국으로 엘레나랑 은솔이에게 접근 해봤냐?”
“아까 해봤는데, 실패했어. 접촉할 수 없더라고.”
“으으… 안 될 것 같긴 했는데, 역시 안 되냐.”
“그런가 봐.”
듣고 있던 미로가 불평했다.
“동료 위치정보도 막고, 꿈의 왕국도 막고! 왜 다 막아? 호텔 왜 자꾸 심술부려?”
상현 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로 양, 이건 심술을 부린다기보다는… 출제자의 의도라는 것 아십니까?”
“출제자 의도?”
“현실에서 중학교까진 다녔다고 들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말씀하셨을 겁니다. 문제를 풀 때는 출제자의 -”
“나 수업 안 들었어.”
“…”
“몇 번 가다가 재미없어서 때려치웠어.”
시작부터 막힌 상현 형이 당황하는 사이, 아리가 한숨을 쉬며 설명을 이었다.
“미로는 사실상 공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이러니까 얘가 답이 없지.”
“아앗! 또 -”
“어쨌든, 상현이 말은 간단해. 동료 위치정보? 꿈의 왕국? 이런 식의 접근은 의미가 없어.”
“왜에?”
“출제자의 의도. 호텔의 의도를 무시한 접근법이니까.”
호텔의 의도를 무시한 접근법은 통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호텔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규칙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호텔의 의도대로 움직이면, 규칙은 관대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호텔의 의도를 거스르면, 규칙은 극도로 좁게 적용된다.
거울의 방이 좋은 예시.
소원을 빌고 싶은 참가자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하며, 이게 호텔의 의도다.
태초의 인간 등 정신 조작 수단을 통해 마음을 부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은다?
모든 조작 수단을 무시하고 저변에 깔린 ‘진실한 충동’을 읽어낸다.
이처럼, 호텔의 규칙을 우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번 문제에서 출제자의 의도는 명확해.”
상현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사실, 요번에는 호텔이 친절한 편이었다고 봅니다. 의도를 처음부터 명확히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형이 손을 뻗어 다과 테이블 근처에 걸려있는 디스플레이를 가리켰다.
“지금도 적혀 있군요. 저게 호텔의 의도입니다.”
여러분 중 다섯 사람의 마음속에 어둠이 있습니다.
그 어둠이, 호텔에 불길함을 드리우고 있군요!
모두의 미혹이 사라질 때까지 오늘 하루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서로 진실한 대화를 나눠보는 게 어떨까요?
“마음속의 어둠, 미혹을 없애라. 서로 진실한 대화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할아버지가 가볍게 탁자를 치며 입을 열었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혼란스러웠지만, 침대에 누워서 찬찬히 생각하니까 느껴지는 게 있더라. 내 생각에,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한 생각이거든.”
할아버지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가인아.”
내 이름이 나오자마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저절로 내 쪽으로 모였다.
이쯤에서 나도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째, 다들 제게 하실 말이 있군요.”
“…”
“그러잖아도 아까 상현 형, 아리 둘 다 서론이 길고 요란하다 했네요. 이야기하시죠.”
“실종된 두 사람, 은솔이와 엘레나 말이다. 정황상 같은 이상 현상에 휩쓸렸어. 연결고리가 뭘까 생각했는데, 역시 너 아니냐?”
아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 말했지? 은솔이와 엘레나의 공통점 말이야. 둘 다 네게 뭔가 말하려다 사라졌어.”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말을 얹기 시작했다.
“오빠, 제 생각도 비슷해요.”
“…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어흠, 나도 그래. 꿈의 왕국 이야기는 혹시나 해서 해본 거야.”
“나도 아리 생각이랑 같다.”
“에엣! 나는 몰랐는뎅?”
“형, 저도 몰랐어요.”
“둘 다 자랑이다. 이 페로보다 멍청한 놈들!”
“뭐라고?!”
“할아버지, 페로는 원래 똑똑해요.”
“험프티덤프티보다 멍청한 놈들!”
“이건 너무 심한 말 아닌가요?”
“아 진짜! 셋 다 조용히 해. 어쨌든, 다들 같은 결론에 도달했나 보네.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쓰자.”
4. 한가인
어둠 : ???
이상 현상 : 엘레나와 이은솔의 갑작스러운 실종.
“가인아, 한마디 더 하자면…”
아리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내 생각엔, 우리가 깨달은 걸 네가 모르진 않을 것 같아서.”
“…”
“어떻게 생각해?”
깊은 상념이 뇌리를 스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생각해 볼까?
첫째, 현실에서 관리국, 방주, 달에 얽힌 일을 해결하던 중 얻은 정보.
관리국의 알레프에 대한 평가.
*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인간을 도구처럼 여기는 사람.”
“평범한 관리국 요원이네.”
“믿음, 신뢰, 신념. 이런 단어를 우습게 보는 사람.”
“…”
“세상의 비밀을 누구보다 깊이 탐구한 사람.”
“나도 궁금한 게 많아.”
“영멸(靈滅)에 저항할 힘을 얻은 사람.”
“… 그건 좀 대단하네.”
“이것 말고도 부정적인 기록이 가득했지. 좋은 내용이 없었어.”
*
영멸(靈滅)에 저항할 힘을 얻은 사람.
처음으로 의문을 품었지만, 당시에는 달과 방주의 문제에 집중하느라 가볍게 넘겼지.
둘째, 301호에서 정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공작에게 기습당해 머리가 날아갔는데도 죽지 않았던 나.
과거에는 한 번도 벌어진 적 없는 일이다.
마치, 내 경지가 일정한 선을 넘자 잠들어 있던 오래된 힘이 깨어난 것 같았다.
셋째, 명패 없는 방의 존재 그 자체.
나와 관련한 어떤 ‘이야기’가 더 남아있다는 명확한 증거.
…
25년 동안 탐구하며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이 ‘연구’를 오래전에 이미 해봤구나.
이미 끝까지 가봤고, 성과를 얻었다.
관리국의 힘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불멸의 혼이 바로 그 증거다.
연구의 끝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결과는 얻되, 과정은 기억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과정을 잊었고, 결과만 남아 내 혼을 물들였다.
…
그리고, 여기까지의 사실을 엘레나에게 설명했다.
“여기서부턴 내 추측이야.”
“말해봐.”
“아주… 아주 오래전에, 나는 북쪽 끝까지 가서 지옥에 도착했어.”
“…”
“지옥에 도착해서 무언가를 챙겼어. 그리고, 그 방향성의 기억을 삭제했지.”
모두가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 부분의 이야기를 엘레나에게 대충 설명했는데…”
“설명했는데?”
“… 엘레나가 이 이야기를 은솔 누나에게 전달한 것 같아.”
“그래서?”
“은솔 누나가 듣다가 뭔가를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아.”
여기서 동료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거창한 의미는 아니야. 굳이 따지면, 누나가 깨달은 건 ‘방향이 북쪽인 듯?’ 정도겠지.”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누나는 나와 같은 연구를 한 적이 없으니까.
가는 길을 모르고, 그 끝에 상상도 못 할 무언가가 있음은 더더욱 모른다.
그냥, 내 이야기를 엘레나에게 전해 들으며 농담처럼 툭 던진 정도가 아닐까?
‘방향이 북쪽 같은데?’
“…그래서?”
“이게 트리거가 된 것 같네.”
아리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니. 가인아.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동시에 전혀 모르겠어.”
“말해봐.”
“그니까, 네가 뭔가를 연구하다가 약간의 아이디어를 엘레나에게 설명했고, 엘레나는 그걸 은솔이에게 전달했다는 말이지?”
“응.”
“은솔이는 그 설명을 듣고 신기한 아이디어 혹은 키워드를 깨달았고?”
“응.”
“그것과 두 사람이 실종된 게 무슨 상관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과거의 나는 연구 내용을 누구에게도 공유할 생각이 없었거든.”
“…”
“그 누구에게도. 하늘 아래 오직 나만 알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