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11)
괴담 호텔 탈출기 811화(810/836)
811화 – 아주 기이이인 하루 (7) Fin
— 김아리
“그 누구에게도. 하늘 아래 오직 나만 알아야 하니까.”
가인이의 설명이 끝난 후, 주변이 조용해졌다.
…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본인 연구 관련 지식은 독점하고 싶은 충동이 강했다?
그 충동 때문에 연구 관련 키워드를 얻은 사람들이 추방당하는 것 같다?
뭐야 이게?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묵성이가 입을 반쯤 벌린 채 중얼거렸다.
“뭐랄까… 야,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긴 한데, 기가 막히기도 하다.”
“그러게요.”
“그러게요는 무슨!”
“으흠, 이 정도면 네 번째 어둠의 정체와 이상 현상도 대충 밝혀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시간?”
“호텔에서 말했잖아요? 진실한 소통과 마음속의 어둠 제거가 필요하다. 소통은 했으니, 미혹을 가라앉혀야 하는 거죠.”
상현이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했다.
“그러면, 가인 군 혼자 명상이라도 할 생각입니까?”
“비슷합니다. 제 마음을 가라앉히면, 네 번째 어둠은 자연스레 해결될 것 같네요.”
“으음…”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벤트 제목부터 기이이인 하루였으니, 그거야 그럴 수 있겠군요. 그러면, 다시 105호로?”
“그게 좋을 것 같네요.”
가인이가 내린 결론.
연구 정보에 관한 독점욕이 네 번째 어둠의 원인이다.
해결을 위해선 마음속 미혹을 스스로 가라앉혀야 하며, 일정 시간의 명상이 필요하다.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내가 탁자를 치며 상황을 정리했다.
“좋아. 가인이는 혼자 명상하면서 욕심을 가라앉히든지 해. 그러면 다시 해산!”
*
다시 105호.
침대에 누운 채 시간을 보냈다.
.
..
…
뭐랄까,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봐.
생각해 보면, 모두가 저주의 방에 바로 들어가는 걸 부담스러워했잖아?
조금 더 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어쩌면, 은솔이도 비슷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주 기이이인 하루는 저주의 방에 가기 전에 조금 더 쉬고싶은 은솔이의 마음이 반영된 이벤트가 아닐까?
식사가 나오지 않는 게 아쉽긴 한데, 여기서 하루 이틀 더 굶는다고 큰일이 생기진 않을 거야.
물은 화장실에서 구할 수 있기도 하고.
그렇다면, 아까부터 내 마음을 긁는 이 미묘한 불쾌감의 원인은 뭘까?
“…”
미묘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관측소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짧지 않다.
가인이에게 온갖 이야기를 다 들었다는 뜻.
알레프에 관한 이야기가 꽤 많았지.
알레프가 품었던 기이한 생각들, 알레프가 기억하는 오래된 문명의 상.
가인이에게도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중간에 빈틈이 많긴 했지만…
가인이 본인을 제외하면,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연구 관련 이야기도 있었다.
엘레나가 가인이에게 들은 이야기?
그 정도는 100번도 넘게 들었어.
그런데.
어째서.
왜.
… 나는 추방당하지 않고, 은솔이랑 엘레나만 추방당한 거야?
“…”
나는 연구 이야기 10년 넘게 들었어도 핵심 키워드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은솔이는 3분 만에 핵심 키워드를 떠올렸다고?
은솔아, 이거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초초초 금수저, 엄마가 위대한 자니까 가능한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 김아리, 너 진정해.”
진정하고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자.
사라지기 직전, 엘레나가 보였던 태도가 어땠지?
‘참, 그랬죠. 아까부터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네요.’
‘무슨 어둠 같은 건 아니에요.’
‘신기해서 가인 씨와도 이야기하려 했는데 -’
시종일관 배시시 웃는 모습.
아무렇지 않게 까먹었다가 지적하니 다시 떠올렸던 일.
어둠 같은 건 아니라며, 여러 사람 앞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려 했던 태도.
“…”
심오한 비밀을 다루는 태도와 거리가 멀었다.
진지한 모습은 절대 아니고, 가벼운 농담을 꺼내는 분위기에 가까웠지.
엘레나의 태도가 이렇게 장난스러운 이유?
엘레나에게 키워드를 알려준 은솔이 본인도 비슷한 태도였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은솔이는 무슨 진지한 연구 끝에 키워드를 얻은 게 아니야.
본인은 대단한 깨달음이라는 자각 자체가 없고, 그냥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흐음.”
내가 지금 깨달은 내용을 가인이가 아직도 모를 리가 없지.
가인이도 알고 있다.
이은솔의 깨달음은 우연적이며, 체계화된 지식이 아니다.
본인은 단순한 장난 혹은 농담이라고 생각할 개연성이 크다.
즉, 가만두면 얼마 안 가서 망각한다.
위대한 깨달음을 어떻게 그리 쉽게 잊냐고?
은솔이에겐 한순간의 농담에 불과하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그러니까, 가인이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설득 중인 거야.
별일 아니야.
누나는 심오한 이치를 알아낸 게 아니야.
가만두면 얼마 안 가서 다 잊겠지.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자.
…
이 정도 생각하며 반나절을 보냈다.
*
1층 복도.
— 쏴아아…!
쏟아지는 검은 빗방울을 부등변다면체로 막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힘을 아끼려면 105호 내에 있어야겠지만, 계속 방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때, 멀찍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 나왔네?”
시선을 들자 분수대 근처에 서 있는 가인이가 보였다.
곧, 가인이가 훅 꺼지는가 싶더니 날개 문신을 사용해 내 옆으로 순간 이동했다.
“무슨 일이야?”
“별일 없어.”
“그러면 왜 나왔어? 아, 답답해서?”
“응. 가인아. 아직도 고민 중이야?”
“뭐… 어느 정도.”
“미혹을 가라앉히는 게 어렵나 보네.”
“하하! 사실, 이게 지금의 내 마음이라고 보기 좀 어려워서.”
“…”
“연구 지식에 대한 독점욕이라. 솔직히, 나는 이런 생각이 그리 강하진 않아.”
요컨대, 네 번째 어둠은 ‘한가인’의 미혹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애초에, 가인이는 연구 관련 이야기를 나와 엘레나 등 다른 동료들에게 이야기했으니까.
한가인의 어둠보다는 알레프의 어둠에 가깝다.
하지만, 호텔 이벤트가 알레프의 어둠에 반응했다는 게 무슨 뜻일까?
가인이의 마음속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자라나는 것 같았다.
상현이 역시 이 점을 느꼈기에 불안해했겠지.
“오래전의 기억을 뒤적이다 보니 생긴 일 같은데… 뭐, 하루 이틀 내로 해결될 거야.”
빙그레 웃는 가인이를 보고 있으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가인아.”
“응?”
“도와줄까?”
“뭐? 어떻게?”
“… 짐작하겠지만, 은솔이는 지금 거창한 깨달음을 얻은 게 아니야.”
가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깨달음 어쩌고저쩌고하면 누나 본인이 더 놀랄 것 같네. ‘내가 뭘 깨달았다고?’ 하면서.”
“최면을 쓰기에 최적의 조건이지.”
최면.
가인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쪽을 봤다.
“가벼운 최면으로 두 사람의 기억을 지워줄게.”
“…”
“오래된 피의 힘이라면 가능해. 어때?”
“… 누나라면 주기적으로 안식의 피리를 쓸 텐데.”
“물론, 안식의 피리라면 최면 따위야 쉽게 없애겠지. 하지만, 그때쯤이면 은솔이가 자연스럽게 망각할 거야.”
“…”
“어때?”
“동료 상대로 최면을 쓰는 건 좀…”
“은솔이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을 텐데? 애초에 대단한 정보를 알아냈다는 자각 자체가 없을걸?”
“…”
“싫은가 보네. 싫으면 말고. 나 들어갈게.”
천천히 몸을 돌려 105호의 문고리를 잡는 순간.
— 덥석!
가인이가 내 어깨를 잡았다.
“… 해줘.”
“가인아, 공손히 말해야지.”
“아리 님, 은솔 누나와 엘레나에게 최면을 걸어주세요.”
“풋!”
“재밌냐? 유치하긴!”
가볍게 웃으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려던 차.
— 철컹!
“어?”
“뭐야?”
갑자기 105호 건너편 벽에 문이 하나 생겼다.
가인이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설마…”
“이거, 아무리 봐도 은솔이랑 엘레나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문 같은데? 조언 써봐. 맞지?”
“…”
“맞지?”
“맞는 것 같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뭐야? 가인아, 동료 상대로 최면 쓰는 건 별로라며?”
“…”
“그런데 왜 내가 최면을 써주겠다고 하자마자 미혹이 풀려?”
“… 그러게.”
“그러게는 무슨 그러게! 하여튼 진짜 못됐다니까.”
본인도 이 상황이 우스웠는지, 가인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핫! 이벤트이제 끝나가나 보네. 아주 기이이인 하루라더니, 생각보다 금방이잖아? 다 합쳐도 24시간 안 될 것 같은데.”
“그러게.”
“누나랑 엘레나 데리러 가자.”
가인이가 가볍게 웃으며 문으로 움직이는 시점.
… 어떤 생각이 들었다.
“가인 넌 여기 남아.”
“음?”
“네가 접근했다가 두 사람이 다시 어딘가로 사라지면 어떡해?”
“어… 그렇진 않을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가인이와 비슷하다.
은솔이와 엘레나에게 향하는 문이 나타났다는 것.
‘최면을 걸어주겠다’라는 내 제안 덕에 네 번째 어둠이 사라졌음을 뜻한다.
어둠이 사라지며 이상 현상도 사라졌을 테니, 가인이가 간다고 두 사람이 또 사라질 일은 없겠지.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 가야 한다.
“그거야 모르는 거지. 100% 확신해?”
“100%는아니긴 하지.”
“혼자 갈게. 넌 105호로 돌아가는 게 어때?”
가인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섰다.
“좋아. 그러면, 부탁할게.”
*
— 따각!
문을 열자 제법 안락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은솔이는 투명한 잔을 쥔 채 음료를 홀짝거리고 있고, 옆에는 엘레나가 앉아 있는 모습.
내부는 검은 비가 내리긴커녕, 쾌적한 바에 가까워 보였다.
“어머! 언니, 아리 왔어요.”
“오! 아리야!”
“둘 다 잘 지내고 있었나 보네.”
“음, 아리야. 여기는 편해.”
“여기는 검은 비 같은 거 없었나 봐?”
그 말에 은솔이가 혀를 살짝 내밀었다.
“미안. 내 쪽은 아무것도 없었어. 사실, 검은 비 이야기도 엘레나가 온 후에 처음 알았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탐욕의 손의 특성상, 능력 사용자 본인에겐 리스크가 없으니까.
어쨌든, 엘레나와 이야기한 덕에 은솔이도 바깥 상황을 대충 알고 있었다.
“험프티덤프티가 폭주하고, 가인이는 페로 몸에 갇혔다고 들었어. 제일 심각한 건 검은 비였다며?”
“그랬지. 검은 비 말고는 해결했어.”
“다행이다… 으음, 다들 미안해서 어쩌지.”
“언니, 다들 별말 하지 않을 거라니까요.”
“뭐, 생각보다 재밌었어.”
“둘 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곧, 은솔이가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탐욕의 손을 쓸 때만 해도 이런 식의 이벤트가 열릴 줄은 몰랐어.”
“그러면?”
“나는 음, 그냥 몇 가지가 아쉬웠거든.”
“자세히 말해봐. 이런 대화 자체가 도움이 될 테니까.”
“으음, 우리 사이에 은근히 비밀이 다시 생기는 분위기였잖아?”
“…”
“뭐라고 할까? 서로 노력한 끝에 벽을 다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
“최초의 소원과 오래된 기억을 자각하고 나니, 다시 벽이 슬그머니 생긴 느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저도요.”
“딱 이런 마음으로 탐욕의 손을 썼어.”
은솔이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소원을 비는 말투를 흉내 냈다.
“드래곤님, 우리 사이에 어느샌가 소통의 단절이 생긴 것 같습니다. 또, 바로 저주의 방에 가기에는 너무 힘들어요. 소통도 할 겸, 휴식 시간을 얻을 수 있을까요?”
“… 그 소원이 아주 기이이인 하루로 연결됐다고?”
“응.”
엘레나가 은솔이를 옹호하듯 한 마디 얹었다.
“언니, 아주 틀리진 않았어요. 결과적으로 꽤 쉬었잖아요?”
나도 비슷한 말로 거들었다.
어쨌든, 쓸데없이 은솔이를 우울하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나름대로 재미있었어. 휴식도 했고, 서로 대화도 많이 했으니까. 다만…”
“다만?”
“검은 비는 뭐야?”
“…”
“다시 말하지만, 검은 비는 아직도 진행 중이야.”
“…”
“은솔이 네 마음속에 뭔가 있다는 뜻이지. 어떻게 생각해?”
은솔이가 살짝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검은 비에 관한 이야기를 엘레나에게 들었을 때, 처음엔 이해 못 했어.”
“그래?”
“내 마음속 어둠? 전혀 모르겠는데? 바깥사람들이 뭔가 착각한 거 아니야? 했지.”
“으음…”
“엘레나가 그럴 리 없다고 했어. 언니 마음속에 뭔가 있으니,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했지.”
“맞아요.”
“그래서?”
“… 한참 생각한 끝에 무언가를 느꼈어.”
다음 말은 의외였다.
“어쩌면, ‘내 어둠’이 아닐지도 모른다.”
“뭐?”
“… 내 어둠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봐도 검은 비는 ‘이은솔’의 어둠이 아니다.”
이거 어째 아까 가인이에게 들은 말과 비슷한데?
“그러면 누구의 어둠인데?”
“흑석.”
“…”
“언젠가부터 느껴져. 흑석은 어머니의 유해, 이스의 왕이 남긴 파편.”
“…”
“흑석에는 파멸 직전, 어머니가 내지른 단말마가 담겨있어.”
“…”
“그리고… 호텔에 대한 원망도 담겨있지.”
“호텔에 대한 원망이라.”
“그게 검은 비의 원인이야.”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조심스레 말했다.
“그건 어떻게 해결하지?”
“시간이 흐르면 될 것 같아.”
“시간?”
“지금은 302호에서의 일 때문에 흑석이 활성화한 상태거든. 시간이 필요해. 내일쯤이면, 흑석이 다시 비활성 상태로 돌아갈 거야.”
“이 문제도 시간인가…”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벤트 이름이 아주 기이이인 하루였나 봐.”
어쨌든, 이 정도면 탐욕의 손이 만들어 낸 기묘한 시간도 슬슬 끝나가는 느낌이다.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쯤이면 이상 현상도 전부 사라지겠지.
그러니까…
계획했던 일, 지금 해야 해.
— 찰랑!
테이블 밑에 양손을 넣었다 빼자 붉은 칵테일 두 병이 나타났다.
“어? 뭐야, 블러디 메리네?”
“둘 다 한잔하고 돌아가자.”
“으음, 좋지!”
엄지손가락에 살짝 상처를 냈다.
가벼운 최면이니, 많은 양의 피는 필요하지 않아.
몇 방울의 피가 붉은 칵테일에 섞여 들어간다.
은솔이와 엘레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옆에서 잡담을 나누는 상황.
슬쩍, 엘레나 옆으로 움직여서 말했다.
“참, 엘레나.”
“응?”
“아까 무슨 말 하려고 했었어? 은솔이에게 무슨 재미난 이야기 들은 것 같았는데?”
“이야기? 아, 가인 씨에게 하려고 한 말?”
“응.”
엘레나의 반응을 본 은솔이가 피식 웃었다.
“아 그거?”
“푸훗!”
“아하하! 좀 웃기긴 했지.”
우스운 농담을 대하는 듯 가벼운 분위기.
나와 가인이의 예상대로다.
은솔이 본인은 심오한 키워드를 알아냈다는 자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나도 빙그레 웃으며 질문했다.
“뭐였어?”
“흠흠! 아리 앞에서 말하긴 좀 그런데.”
“…”
“하하, 진짜 별거 아니야. 엘레나 얘가 -”
“앗! 어, 언니!”
“엘레나 얘가 은근히 너 부러워했거든.”
“…”
“엘레나, 그렇지? 맞지?”
“으윽! 부, 부러울 것까지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리만 가인이랑 오래 있었다고 부러워했잖아.”
“… 그래서?”
“엘레나 이야기 듣다 보니까 되게 웃기더라고. 가인이도 참, 너무 죄 많은 사람 같아. 대체 몇 명을 꼬신 거야?”
“…”
“엘레나는 확정, 미로는 말할 것도 없고.”
“…”
“넌 어때? 너도 아무 생각 없진 않은 것 같은데.”
“…”
“아하하! 뭐, 이런 이야기였어.”
… 이게 다라고?
“이럴 리가 없는데.”
“뭐?”
“아니, 아니야.”
진짜 이런 장난스러운 연애 이야기가 전부였어?
그럴 리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지금 내용에 무슨 심오한 키워드가 있어 보이진 않아.
“이게 전부였어?”
“응? 맞아. 이런 이야기였는데.”
그때, 엘레나가 살짝 끼어들었다.
“아, 언니가 조금 웃기는 이야기 한번 했어.”
웃기는 이야기.
“뭔데?”
그제야 은솔이가 기억났다는 듯,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인이가 하나로는 부족하겠네!”
“…”
“미로에게도 하나, 엘레나에게도 하나. 벌써 둘은 필요하잖아?”
“…”
“아리도 필요해? 그러면 아리도 하나. 이야~ 가인이가 한 100명으로 쪼개져야겠다아아…”
“…”
“으음, 이상하게 졸리네. 아리야, 나 조금만 잘게.”
“나도.”
— 툭! 툭!
두 사람이 최면에 빠져 잠들었다.
홀로 테이블에 앉아 비어있는 잔을 만지작거렸다.
“…”
연구 주제의 본질은 불멸, 영멸에 저항할 수 있다.
아무리 영혼을 파괴해도 다음 루프가 되면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나타났다는 기록들.
북쪽 끝에 도달한 후, 가는 길에 관한 기억은 스스로 잊었다는 이야기.
이것들과 방금 은솔이의 이야기를 엮으니…
무시무시한 가설이 떠오르고 말았다.
“…”
관측소에서 함께한 25년의 기억.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내 마음 한구석이 그에게 끌리고 있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마음을 부정하기엔 함께한 시간이 너무 길었으니까.
하나, 긍정적인 사실.
그는 정말로 뛰어난 인간이다.
선악에 구애받지 않는 합리적인 판단력.
필요할 때는 더없이 과감하면서도 동료에 대한 정이 있는 모습.
이성이 필요한 때와 감성이 필요한 때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사람.
이런 면들이 좋았다.
둘, 부정적인 사실.
가혹한 세상에서 천재성과 광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러므로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은 곧, 누구보다 미친 사람이었다.
*
「오늘의 특별 이벤트 : 아주 기이이인 하루를 종료합니다. 참가자 여러분, 다음 시련을 준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