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14)
괴담 호텔 탈출기 814화(813/836)
814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3)
— 김아리
「승객 여러분, 지금부터 표 검사가 있겠습니다.」
— 덜컹! 덜컹!
“서, 선배님! 저 소리 들으셨습니까?”
— 덜컹!
“… 표 검사를 한다는데? 표 같은거 있어?”
“있을 리가요!”
애초에 이 열차에 매표소 따위가 있다는 이야기 들은 적도 없어.
당황하는 것도 잠시, 통로 문이 열렸다.
— 끼익! 쿵!
밤하늘을 닮은 검푸른 천으로 된 튜닉을 입은 남성.
외견은 50대 중반 정도, 180cm를 넘는 장신.
특별한 무기가 있어 보이진 않아.
외견만 보면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는 존재가 다가왔다.
“손님 여러분, 표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슬며시 한 걸음 물러서며 부등변다면체 소환.
여차하면 한바탕 할 각오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때,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두 분 다 품속이나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시겠습니까?”
“… 무슨 말이지?”
“표를 꺼내시라는 이야기지요.”
마치, 표가 있을 텐데 왜 꺼내지 않느냐는 말투.
이게 뭔가 싶어 고민하는 시점, 옆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진짜 있었네?”
인간 남성의 모습을 한 직원이 담담히 말했다.
“열차에 탔다면 표가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여성 손님분은?”
혹시나 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정말로 상의 주머니 속에 빳빳한 종이가 있었다.
아까 알레프와 한바탕 몸싸움까지 하면서도 이런 종이의 촉감을 느낀 적이 없는데 말이다.
“…”
“손님, 펼쳐보시지요.”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종이를 펼치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였다.
「열반 열차 승차권
출발 : 호텔 파이오니어
도착 :
승차자 : 김아리」
‘출발 : 호텔 파이오니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마치, 열차를 운영하는 존재가 ‘네가 호텔 참가자임을 알고 있다’라고 경고하는 느낌.
섬뜩함과 별개로 놀라지는 않았다.
열차에 알레프가 있음을 발견하자마자 깨달은 사실.
은하수 열차 – 아니, ‘열반 열차’는 루프를 넘나들 수 있다.
이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는 위대한 자뿐이니, 303호의 죄수는 열반 열차와 관련이 있다.
죄수는 당연히 호텔에 대해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경고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생각이 이쯤 닿았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도착지가 비어있군요. 그렇지요?”
“그렇네.”
직원은 내 출발지가 호텔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직, 도착지의 공백을 신경 쓸 뿐.
“심각한 문제입니다. 손님에게는 목적지가 있어야 하거든요.”
“…”
“목적지가 없는 손님분들은 결국, 열차를 방황하며 모든 것을 놓아버리곤 하지요.”
“모든 것을 놓아?”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
정신이 무너진 채 괴이한 소리를 지껄이는 승객들을 여럿 보았지.
직원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바로 ‘목적지가 없는 손님’이다.
“손님, 목적지를 지금 정하시겠습니까?”
혼란스럽다.
애초에 이 열차는 뭐 하는 열차야?
이럴 때 가인이의 시나리오 이해라도 있다면 –
“저기요!”
알레프가 손을 들자, 직원이 그쪽을 보았다.
“말씀하시지요.”
“음, 저도 목적지를 정해야 하나요?”
“손님은 목적지가 있으십니다. 그러니, 아무 문제 없지요. 다만…”
“다만?”
“지금은 손님의 목적지에 가기 어렵습니다.”
“… 그러면 음, 제가 출발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곳도 어렵습니다.”
“목적지도 갈 수 없고, 출발한 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니…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직원이 사죄하듯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현재, 열차의 기능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네? 벽?”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수리 중입니다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 부우우…!
무슨 증기기관차나 낼법한 경적이 들려온다.
그러자, 직원이 알레프를 무시하고 다시 내 쪽을 보았다.
“목적지를 정하셨습니까?”
“…”
“정하지 못하시겠다면, 다음 역에서 내리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무조건 내려야 해?”
“그럴 리가요. 추천은 추천일 뿐, 선택은 손님 몫이지요.”
이 말을 끝으로 직원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
침묵의 시간.
부등변다면체를 소환하며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전투는 없었지만, 의문은 늘었다.
알레프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왜 선배님만 목적지가 없는 걸까요?”
“글쎄, 나는 반대로 생각 중이었는데.”
“네?”
“내가 목적지가 없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알레프는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무언가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선배님은 어디로 가기 위해 이 열차를 탄 게 아니셨죠.”
“그래. 내 목적지는 굳이 따지면 이 열차 자체야.”
“어디로 가려고 열차를 탄 게 아니라, 열차 자체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탔으니까?”
“응.”
“… 그렇게 생각하면 좀 이상하네요.”
“음?”
“그 논리대로라면, 제게도 목적지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표에 내 목적지가 공란인 이유는 열차 자체가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알레프도 표에 목적지가 없어야 한다.
그 역시 나처럼 열차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파견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표 보여줘.”
말하면서 순간 움찔했다.
내가 보여달라고 한다고 보여줄까?
알레프가 내 말을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표를 보여주지 않고 도망가면?
“네.”
“…”
청년은 해맑은 표정을 지은 채 순순히 표를 보여주었다.
마치, 내가 그를 의심하는 행위는 무의미한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열반 열차 승차권
출발 : 이상(異常) 재해 대응국
도착 : 시작의 땅
승차자 : 알레프」
이상 재해 대응국.
이게 연구소장 알레프가 일했던 유사 관리국 기관의 이름인 것 같아.
순서를 따지면 대응국이 유사 관리국인 게 아니라, 관리국이 유사 대응국이라고 해야겠지만.
출발지는 대충 알겠는데, 도착지에 적힌 단어는 의아했다.
“시작의 땅? 이게 뭐야?”
“으음, 선배님도 모르시나요?”
“…”
“처음 보는 단어거든요. 선배님은 아실 것 같아서 보여드린 건데, 아닌가 보네요.”
본인도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으니, 다시 알레프에 대한 의심이 샘솟기 시작한다.
2년 차 신입이라는 말.
조직의 명령을 받고 탑승한 말단이라 아는 게 없는 듯한 태도.
표에 적힌 도착지의 뜻 역시 모른다는 답변.
전부 거짓말 아닐까?
어쩌면, 대화보다는 심문이 필요할지도 몰라.
최면, 암시, 적절한 육체적 고통.
강제로 진실을 알아낼 수단은 널리고 널렸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과거의 내가 알레프를 심문했을 것 같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이 녀석을 의심하는 이유의 9할은 알레프라는 이름 때문이잖아?
이렇게 의심하는 행동 자체가 소위 ‘참가자 행동’이야.
“후우…”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어, 조금 무섭게 절 쳐다보셔서…”
“별일 아니야.”
“으음, 직원 녀석이 또 이상한 말을 했죠. 벽? 그게 무슨 뜻일까요?”
“글쎄, 나도 모르겠어.”
알레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부분은 이해했어.
정황상, 직원이 말하는 ‘벽’은 루프와 루프 사이의 무언가를 뜻한다.
즉, 직원은 지금 열차에 이상이 생겨서 ‘루프 이동’은 불가능하다고 답변한 것.
“…”
직원의 말대로라면, 알레프의 출발지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의 출발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래된 고대의 루프니까.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얘 지금 뭐하지?
“왜 이렇게 내 얼굴만 보고 있어?”
“하핫! 선배님의 미모가 워낙 특출나시니 그림 같은-”
“…”
“…”
“… 아, 아까부터 선배님 혼자 뭔가 열심히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요.”
알레프의 목적지 – 시작의 땅 역시 다른 루프다.
생각이 이쯤 닿았을 때.
— 덜컹!
「곧 열차가 정차합니다.」
안내음과 함께 내 표가 반짝이기 시작했고, 알레프가 조심스레 말했다.
“선배님, 여기서 내리실 건가요?”
“왜?”
“직원이 내리는 걸 추천한다잖아요. 표가 반짝이는데.”
“왜 직원 말을 따라야 하지? 애초에 열차가 어떤 혼돈 재해인지도 모르고, 직원이라는 게 뭐 하는 놈인지도 모르는데.”
“그렇긴 하죠…”
“내릴 생각 없 – 어라?”
그때, 열차에서 누군가 일어서는 광경을 보았다.
“선배님?”
“…”
“왜 그러세요? 저 사람 아세요?”
“오래전에 한번 본 사람 같은데.”
“어디서 봤는데요?”
“… 결혼식?”
*
— 관측소
가인에 이어서 303호를 관측하던 은솔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이니?”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애매한 시간.
이럴 때 잠시 숨도 돌리고, 관측 내용을 노트에 적어서 다음 사람에게 알리기도 하고, 교대도 해야 한다.
“누나, 커피 한 모금 하시죠.”
“고마워.”
“교대는?
“아직 괜찮아. 1시간도 안 됐으니까.”
이번에 은솔이 택한 것은 잠깐의 휴식이었다.
아직 교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뭔가 내용은 있어요?”
가인의 질문에 은솔이 끄덕했다.
“중요한 변화가 생겼지. 아리는 모르는 것 같지만.”
아리는 모르지만, 관측소의 은솔은 알아챈 변화.
“뭔가요?”
“열차 측에서 아리에게 여기서 내리지 않겠냐고 권유했고, 실제로 열차가 잠시 멈췄어.”
“으음…”
“중요한 건, 아리 본인은 현재 열차가 멈춘 역의 의미를 모른다는 거야.”
“하하, 아직은 저도 모르겠네요.”
“더 들어봐. 조금 전부터 할아버지의 관측이 가능해졌어. 아직은 주무시고 계시지만. 어때?”
곧, 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달리는 열차가 할아버지가 존재하는 시간대에 도착했군요.”
“그거야. 역시 넌 금방이구나.”
여기까지는 은솔도 웃었다.
하지만, 가인의 설명은 끝나지 않았다.
“요컨대, 열차 직원은 아리에게 이렇게 제안했네요. 이곳이 네 동료가 있는 시간대다. 내려서 도와주는 게 어떻겠냐?”
“… 그 부분은 내가 말해주려고 했는데.”
“아리는 이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당사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제안이기도 하고.”
가인이 생각하기에, 열차 직원의 제안은 관측소의 동료들이나 이해할 수 있어 보였다.
아리에겐 김묵성의 관측이 처음엔 불가능했고, 조금 전부터 가능해졌다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또, 지금 누나 반응을 보니 한 가지가 느껴지네요.”
“…”
“열차 직원이 아리에게 뭔가를 제안했다. 표현을 보니, 열차가 딱히 아리나 알레프를 적대하진 않았군요.”
“그랬지. 아리가 열차에 맞서 싸우는 분위기는 아니야. 직원 분위기가 살짝 익숙했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호텔 직원?”
“어머, 그게 딱 맞네.”
“열차는 죄수와 연관된 존재일 텐데, 열차가 참가자를 적대하지 않는다라…”
생각에 잠긴 가인.
그때, 은솔이 살짝 질린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둘이 아주 다르구나.”
“네?”
“이쪽 가인이는 가끔 섬뜩하다 싶을 정도로 똑똑해.”
“섬뜩하다니…”
은솔은 ‘섬뜩하다.’ 정도로는 본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앞서 가인이 했던 설명들, 은솔은 직접 관측하면서도 10분 이상 생각한 후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면, 망원경 너머의 존재는 어떠한가?
“저쪽은 아직 잘 모르겠네. 상상을 초월하게 똑똑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누나도 참, 저 녀석 말대로면 이제 2년 차 신입 아닙니까. 뭘 기대하시는 건가요?”
“고래는 태어날 때부터 3톤이래. 나는 3톤짜리 아기 가인이를 기대했어.”
“…”
“아, 커피 고마워. 다시 관측 시작할게.”
“네.”
망원경으로 돌아가기 직전, 은솔이 갑자기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거 하나 있었네.”
“예?”
“가인아, 나를 위해 살겠다. 이런 말은 10년은 봉사하고 말해야지!”
“…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
— 김묵성
.
..
…
— 삐빅! 삐빅! 탁!
요란한 알람 소리를 들으며 기상.
가볍게 씻은 후, 집 내부를 서성이며 오래전의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노력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야 호텔에 오기 전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처음으로 떠올린 단어는 불편함.
20년 이상 살아온 집에 돌아왔는데 ‘불편함’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릴 줄은 몰랐다.
바닥에 깔린 카펫의 촉감이 어색했고, 식탁은 좁아 보였고, 조명 밝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침대 매트릭스는 질이 낮아 보고, 서재를 비롯한 각종 가구의 디자인 상당수가 별로였다.
이쯤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마음이 생각하는 ‘집’은 20년 넘게 살아온 이 집이 아니라 호텔 105호가 아닐까?
다음으로 떠올린 단어는 넓음.
나이 든 남자 혼자 살기엔 과할 정도였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나는 객관적으로 부자다.
관리국 직원이나 요원들은 그 일의 중요성만큼이나 많은 연봉을 받기 때문이다.
하기야, 돈이라도 많이 받지 않으면 누가 악마와 사교 집단, 외계인의 음모를 분쇄하겠는가.
내게 이토록 넓은 집이 있는 첫째 이유가 충분한 재산이라면…
두 번째, 집을 살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 펄럭!
무릎 위에 소년을 앉힌 쾌활한 인상의 청년, 김수호.
그 옆에서 미소 짓는 무척 잘 어울리는 미모의 여성, 박세연.
청년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소년, 김민성.
그리고 그 뒤에서 멋쩍게 웃는 회백발의 노인.
아들 부부와 손자, 그리고 나다.
“애들 사진을 크게도 걸어 놨구먼.”
사진을 보니 예전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요원의 신분은 기밀이니, 이런 사진을 찍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던 기억.
아들이 황당해하며 했던 말이 귓가에 들려온다.
‘아버지, 그놈의 기밀 소리는 평생 들었습니다만, 가족사진 하나 찍는 게 관리국 기밀과 무슨 상관입니까?’
문득, 예전 생각이 나서 서랍을 열자 또 다른 사진이 보였다.
비교적 최근에 찍은 애들 사진에 비하면, 40년 넘게 흘러 조금은 빛바랜 사진.
“… 수연아.”
생전의 아내 모습이 담긴 몇 안 되는 사진이다.
요원 핑계로 사진 찍는 걸 즐기지 않았기에 남은 사진이 드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결혼식 사진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중앙에는 생전 젊은 시절의 아내와 나.
주변에는 나름대로 친분이 있는 몇몇 사람 – 헛!
사진 한구석에 시큰둥한 표정의 아리가 있었다.
“하핫!”
선배도 참, 후배 결혼식 아닙니까.
좀 활짝 웃으시지, 이런 구린 표정이라니…
게다가, 옷차림은 또 왜 이리 칙칙하고?
“…”
뭐, 아리 나름의 배려라고 본다.
아리는 누구나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볼 정도의 미인이지 않은가.
잘 차려입고 웃으면, 결혼식장에서 신부보다 빛날지 모른다고 걱정했으리라.
바로 그 순간.
— 위잉!
“음?”
내게 이날 전화가 왔던가?
호텔에서 보낸 시간이 하도 길어서 오기 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 위잉!
발신자 : 박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