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15)
괴담 호텔 탈출기 815화(814/836)
815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4)
— 김묵성
며느리에게 걸려 온 전화 내용은 간단했다.
– 아버님, 아침부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괜찮다. 가족 사이인데, 연락하는 게 죄송할 이유야 없지. 무슨 일이냐?”
– 그러니까, 아버님께 연락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없는데 어떻게 해요? 제가, 저희가 믿을 사람은 아버님뿐인데…!
횡설수설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문장.
통화 내용만 가지고는 며느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며느리가 하려는 말을 알 것 같았다.
“세연아.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하거라. 수호가 갑자기 연락 없이 사라졌지?”
— 수, 수호 씨가… 몇 주째 넘게 연락도 안 되고,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아요.
이쯤에선 오래전의 기억이 스멀스멀 돌아왔기 때문이다.
상황은 간단하다.
아들이 한 달 가까이 실종되자 며느리는 일반인이 으레 그렇듯 경찰에 신고했다.
문제는, 갑자기 관리국에서 며느리에게 연락해 이렇게 말한 것.
— 관, 관리국에서 세 번이나 말했어요. 아버님께 연락하지 말라고… 시키는 대로 했죠. 그런데,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잘했다. 이번 일로 네가 더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 아버님, 수, 수호 씨는…
“걱정 말거라. 내가 잘 해결하마. 몸조리 잘하고 있거라.”
갑작스러운 아들의 실종과 며느리의 신고.
그리고, 관리국은 아들의 실종을 내게 숨겼다.
우선관리국으로 가자.
*
대한민국 최대 권력자가 누구일까?
멋모르는 사람들은 이름도 헷갈리는 대통령이나 매번 바뀌는 재계 서열 1위 회장을 떠올릴지 모르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 사람은 말하리라.
서울에 있는 관리국 한국지부의 총책임자, 박현민 부장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최대 권력자라고 말이다.
— 탁!
대한민국의 최대 권력자가 30장 정도의 종이 뭉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묵성 요원, 자네가 궁금해할 정보는 여기에 전부 있네.”
“다른 이야기는 없습니까?”
“다른 이야기?”
“예의상 사과라도 할 줄 알았는데.”
“사과할 이유가 있나?”
“… 아들이 실종 한 달째인데, 나는 그 사실을 오늘 알았구려. 당신이 그 정보를 내게 숨겨서 말이지.”
“묵성 요원. 나는 내게 주어진 의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네.”
“…”
“가족이 얽힌 사건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지. 자네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
“잘못이 있다면, 자네가 내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한 탓이네.”
“가끔 하는 생각인데, 당신의 화법은 참 싸가지가 없단 말이지. 가끔은 한 대 치고 싶을 때가 있어.”
“상급자 폭행은 징계 사유일세.”
“거 징계 좀 받는다고 별일 있나? 어차피 내 인생은 충분히 길어서.”
“꼭 한 대 쳐야겠다면, 복싱으로 하지.”
“…”
“복싱은 자신 있거든.”
“허!”
이쯤 되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또, 이런 위인씩이나 되니까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 한국지부장까지 올랐구나 싶기도 했고.
평범한 인간이 불멸의 삶을 살아가는 요원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물론, 각종 수명 연장 조치를 받았을 관리국 고위직을 ‘평범한 인간’이라 부르긴 어렵겠지만 말이다.
자료의 내용은 기억 그대로였다.
내 아들, 수호가 타락한 것 같다는 분석들.
그 아이가 정체불명의 마도 의식을 진행 중이며, 희생자 수는 최소 일곱이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하아… 확실한 자료겠지?”
“요원, 우리 일에 ‘확실’이라는 단어는 없네. 언제나 어둠 속에서 막연한 가능성을 찾아 헤매는 게 우리 일 아니겠나.”
“…”
“다만, 확률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그래, 김수호는 타락했을 확률이 높지.”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지부장의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요원, 생각보다 침착하군.”
“…”
“조작된 자료라고 주장하거나, 본인이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겠다고 우길 줄 알았다.”
“…”
“자네가 이렇게 침착할 줄 알았다면,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겠군. 이 부분은 내 오판을 인정하지. 미안하네.”
뜬금없이 박 부장의 사과를 받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과거의 나는실제로 몇 시간 동안 자료를 반박하려 애썼기 때문이다.
가족 문제이니내가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리라 예측한 박 부장의 판단은 옳았다.
단지, ‘지금의 나’는 알고 있을 뿐이다.
이 자료는 모두 진실이며, 수호는 정체불명의 혼돈 재해에 얽혀있다는 사실.
일반인이라면이 단계에서 이미 유무죄를 따질 것도 없이 ‘처분 대상’이라는 사실.
과거의 나는 부장에게 뭐라고 했더라?
기억났다.
“…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내용이 무엇이냐에 달렸지.”
“내 손으로 끝을 내겠다. 어느 쪽이든.”
“대기하게. 김수호의 현 상황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라 지시할 테니.”
가볍게 한숨쉬며 밖으로 나가려는 시점.
“음? 부장. 이건…”
“요원, 할 말이 더 남았나?”
한국 지부장 사무실 내의 모든 가구 등은 최고급품이다.
품질이 떨어지거나, 손상이 있는 물건이 부장실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사무실 중앙의 고풍스러운 흑단목 책상 상태가 이상했다.
누군가 예리한 톱으로 책상 일부를 썰어낸 것 같았다.
“자네 탁자, 창가 쪽 모서리… 원래 저랬나?”
*
— 김아리
저 사람! 분명 예전에 한번 봤어.
어디서 봤더라?
아, 결혼식이었어!
“어! 선배님, 이번 역에서 내리시려고요?”
그런데, 누구 결혼식이었지? 시기는? 장소는?
이상하다. 잘 기억나지 않아.
호텔에 들어오기 전의 기억이라 그런가?
— 덜컹!
곧 열차가 정차합니다.
“괜찮으세요? 제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 – 으악! 갑자기 내리시면!”
— 끼익! 쿵!
.
..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사람이 없는 지하철역 의자에 앉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 뭐야?”
“선배님, 이제 정신이 드셨군요!”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극도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 알레프 역시 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까 정말 이상했습니다. 선배님이 갑자기 누군가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그 사람을 따라 내리셨거든요.”
“…”
“심지어, 이 역은 열차에서 추천한 하차 지점도 아니었어요. 그다음 역이었죠.”
“귀신에 홀린 기분이네. 너는? 내가 내리니까 따라 내렸어?”
“하핫! 레이디가 내리는데, 저만 남아있을 수는 없 – 농담입니다.”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자한 가지 어설픈 가설이 떠올랐다.
열차에서 본 누군가의 정체를 떠올리려고 애썼던 일.
열차는 위와 같은 내 행동을 ‘목적지 결정’이라고 판단한 걸까?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내가 의도치 않게 열차에서 내렸다는 사실 뿐.
“선배님, 열차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요원 김아리의 임무는 민간인 대량 실종을 일으키는 열차의 대응책을 알아내는 것.
그렇다면, 다시 열차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네.”
“가능한가요?”
“충분히 가능해.”
열차로 돌아가는 일은 어렵지 않아.
애초에 내가 열차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처음부터 관리국의 도움을 받고 들어왔으니, 다시 관리국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지.
다만, 이쯤에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내가 발견한 사람의 이름.
“아, 이제 기억 났네.”
“뭐가요?”
“아까 열차에서 발견한 사람 이름.”
“누구죠?”
“말해도 너는 몰라.”
“으음, 그러니까 오히려 말해주셔도 되는 것 아닐까요?”
“하수연.”
“역시 모르겠네요.”
열차에서 내가 발견한 사람은 하수연, 묵성의 아내다.
분명 그녀는 평범한 인간일 텐데.
남편인 묵성이도 아내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았어.
대체 그녀가 왜 열반 열차에 있던 걸까?
새삼, 이 세상이 얼마나 알 수 없는 곳인지 절감했다.
둘째, 알레프.
“왜 갑자기 절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
지금쯤이면 알레프가 바보 멍청이라 해도 깨달았어야 한다.
이 세계는 알레프가 살아온 루프와 전혀 다른 영역이며, 나는 알레프의 ‘선배’가 아니라는 점 말이다.
물론,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봐.”
“지금 상황, 수수께끼로 가득합니다. 열차부터 시작해서 이 세계까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은 상황 같습니다.”
“…”
“서로에게도 수수께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저와 당신이 ‘같은 조직’ 출신이 맞는 걸까요?”
“…”
“하지만, 지금은 넘어갑시다. 저나 당신이나 목적은 똑같지 않습니까? 열차로 돌아가야죠.”
“애초에 왜 날 따라왔지? 나야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반강제로 떠밀려 나왔지만, 넌 남아있을 수 있었을 텐데.”
청년이 빙그레 웃었다.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뭐?”
“당신처럼 아름다운 분이 홀로 외딴섬에 떨어지려 하는데, 어떻게 저 혼자 떠납니까?”
“…”
침묵이 흐른 후, 나는 다음 문장을 참지 못했다.
“… 지금 이것과 카톡 고백, 우열을 가리기 어렵네.”
“네?”
“따라와. ‘관리국’으로 가자. 너는… 현지에서 뽑은 내 보조야.”
*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나는 관리국 한국지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 10분에 걸친 설명을 들은 부장은 살짝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김아리 요원, 내가 자네 설명을 요약해 보겠네.”
“해봐.”
“2003년경, ‘나’는 자네에게 명령을 내렸어. 은하수 열차가 주기적으로 민간인 대량 실종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직원을 여러 번 보냈지만, 의미 없는 희생만 반복될 뿐이다. 요원을 투입해야겠다. 요원이라면, 설령 열차에서 죽는다 해도 본인이 알아낸 정보를 다음 루프의 관리국에 전달할 테니까.”
“정확해.”
“명령을 받은 자네는 은하수 열차에 탑승했어. 그리고… 1976년인 지금 시대에 도착했지.”
“그거야.”
“… 그러니까, 자네는 미래에서 온 김아리 요원이라는 소리지?”
“맞아.”
“지금 내 기분이 어떨지 상상이 가나?”
“살다 살다 이런 황당한 소리는 처음 듣는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면서 왼손으로 탁자 하단의 세 번째 버튼을 눌렀을 거야.”
“…”
“대략 여섯 가지 수단으로 내 신분을 검증했을 거야. 들어올 때 우연인 척하면서 머리카락 하나 뽑혔는데, DNA 검사도 했을 테고.”
“…”
“모두 문제없다고 나왔지?”
“이건 뭐, 모르는 게 없군.”
“모르는 게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내 말의 증거지.”
“후우…”
긴 한숨을 내쉰 후, 박 부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아리 요원, 자네 말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하나만 묻지.”
“응.”
“자네 혹시…”
“혹시?”
“… 과거에, ‘미래에서 온 자신’과 만난 적 있나?”
“뭐? 그게 무슨 -”
— 똑!
바깥에서 노크가 들려왔다.
인터폰이 활성화되며 외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부장님, ‘김아리 요원’이 SOC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 것 같다고 합니다. 본인은 부장님께 면담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 어?
“…”
“…”
— 서걱!
“헛! 왜 갑자기 탁자를 베었지?”
“네 탁자, 창가 쪽 모서리에 CK 13번 센서가 있어. 그게 지금의 날 ‘도플갱어’라고 판단하고 보고할 것 같아서.”
“그런 게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 – 아.”
“…”
“미래의 당신은 정말로 높은 위치까지 오르셨군. 좋아, 그러면 이 상황의 해결은 당신을 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