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16)
괴담 호텔 탈출기 816화(815/836)
816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5)
— 관측소
고요하기 그지없는 테이블.
관측 중인 ‘또 다른 한가인’을 제외한 모두가 테이블에 둘러앉았지만, 섣불리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무슨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
처음으로 입을 연 사람은 은솔이었다.
“상황 좀 정리해 보자.”
화이트보드에 글자가 쓰이기 시작했다.
“아리의 출발 시점은 2003년. 내린 장소는 1976년. 할아버님 시간대는 언제지? 가인아, 혹시 봤어?”
“할아버지가 깨어나서 핸드폰 확인할 때 봤습니다. 2021년입니다.”
“2021년. 지금, 무려 세 개의 시간이 등장했네.”
“그렇네요.”
“… 그리고, 망원경은 두 시간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네.”
“그러게요.”
“가인이 대답 너무 평온한 것 아니야? 난 완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호텔에 이상하지 않은 게 있었나요?”
“그건 그렇네.”
상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까 은솔 양이 관측한 바에 따르면, 아리 양의 행동이 묵성 요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했지요?”
“응. 할아버지 쪽에서 관리국 부장실 책상 일부가 파괴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 그리고, 책상을 파괴한 사람은 과거의 아리였지.”
“… 순서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은솔 양 기준으로는, 아리 양이 책상을 파괴한 시점과 묵성 요원이 파괴된 책상을 발견한 시점이 거의 비슷할 텐데요.”
“어… 제 기준이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303호 내의 시간순으로 보면 자연스럽지 않나요? 1976년에 책상이 파괴되었다. 2021년에 파괴된 책상이 발견되었다. 이 순서일 텐데.”
“은솔 양, 이곳은 천상입니다. 지상보다 격이 훨씬 높은 영역이죠. 관측하는 우리 기준으로 보는 게 맞는 것 아닙니까?”
“예?”
은솔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설명하던 김상현 본인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타임 패러독스, 인과율의 붕괴.
이런 개념을 떠올리기 시작하자 모두가 혼란에 빠진 것.
그때, 가인은 생각했다.
상현의 깨달음 혹은 직관은 틀리지 않았다.
단지, 어설픈 깨달음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
— 탁!
가인이 탁자를 가볍게 치자 좌중의 시선이 모였다.
“상현 형의 관점이 맞습니다. 303호 내부 관점으로 보면 안 되고, 우리 쪽 관점으로 봐야 해요.”
“우리 쪽 관점?”
“우리 쪽 관점이란 곧 천상의 관점이죠. 그게 우선입니다.”
“으으… 어려운데.”
“1976년에 책상이 파괴되었고, 이후 45년간 파괴된 상태로 있다가, 2021년에 발견된 게 아닙니다.”
“그러면?”
“다시 말하지만, 우리 관점으로 보세요. 1976년 지점에 떨어진 아리가 책상 모서리를 파괴했고, 그 즉시 2021년 지점의 책상에 흔적이 생긴 겁니다.”
“… 중간의 45년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혹은, 중간의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거나.”
“무, 무슨 소리야?”
“시간 대여기를 생각해 보세요. 미로가 월요일에 누나 시간을 담았다 칩시다. 일요일에 미로가 누나를 소환했고, 죽었어요. 이렇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기죠?”
“월요일에 내가 죽었으니까, 모순을 막기 위해 현재의 나도 죽어.”
“그러면, 화요일부터 토요일 동안 누나가 한 일은요? 그것도 다 사라졌나요?”
“아니.”
“똑같습니다. 중간은 무시하고, 딱 과거와 현재의 공존 불가능한 모순만 사라집니다.”
은솔의 표정은 여전히 혼란 그 자체였다.
언뜻 생각하기에 가인의 말은 기괴함으로 가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했지만, 딱 한 명 가인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구도네요.”
송이가 테이블 밑에서 포크를 꺼낸 후, 테이블 구석의 노트 한 장을 뜯었다.
— 푹!
포크가 노트를 찔렀고, 종이 앞면에 세 개의 구멍이 생겼다.
“위에서 보면, 서로 다른 구멍이 세 개죠. 1976년, 2003년, 2021년. 하지만, 종이 밑면을 보면…”
— 펄럭!
“세 개의 구멍은 사실, 단 하나의 포크가 만들었어요. 포크를 인지할 수 없는 하계와포크를 인지할 수 있는 상계의 관점 차이.”
듣고 있던 은솔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처럼 송이가 똑똑해 보인 적은 처음이네.”
“어머, 저 원래 똑똑한데요?”
“그러게. 내가 바보인가 봐.”
“어흠! 다양한 관점을 쓸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했거든요. 다양한 관점과 험피를 이용한 순간이동의 원리가 이런 식이에요.”
“…”
“포크의 이치가 공간에 적용되었냐, 시간에 적용되었냐의 차이가 아닐까요?”
“미안. 전혀 모르겠어. 내가 바보인가 봐.”
미로가 은솔을 위로하듯 말했다.
“나도 하나도 모르겠어. 예시로 나온 시간대여기가 내 유산인데도 모르겠어. 나도 은솔이랑 비슷한가 봐.”
미로의 위로를 들은 은솔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때, 송이가 신기하다는 듯 가인을 보았다.
“저는 다양한 관점을 쓰다가 이런 음… 깨달음? 비슷한 걸 얻었거든요. 근데, 오빠는 어떻게 알아요?”
“… 일종의 감?”
“이런 게 단순한 감으로 알 수 있는 건가? 신기하네요.”
가인은 송이의 질문이 제법 예리하다고 생각했다.
송이가 질문하기 전에 자신도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송이 말마따나 단순한 감으로 깨달을 만한 이치는 아니다.
경험이 있었다.
구체적이고 명료한 경험.
알 수 없는 조화가 그 경험만 가인의 머릿속에서 도려낸 것 같았다.
“어흠! 여러분.”
상현이 헛기침하며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어려운 이야기는 이쯤 합시다. 상황을 단순하게 보면,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보이는군요.”
“심각한 문제?”
“현재, 아리 양이 일방적으로 묵성 요원 쪽의 상황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렇죠.”
“문제는,이 사실을 아리 양 본인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
“아, 알 것 같네.”
“오빠?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 화가의 관점.”
“예?”
“303호의 포크는 누가 쥐고 있는 거지?”
“오빠, 당장 알아듣기 쉽게 말하지 않으면 험피 입 속을 다시 볼 줄 알아요.”
“…”
*
— 김아리
현재, 나는 지부장 사무실 오른쪽 벽 근처의 비밀 공간에 숨어있다.
본래는 관리국 한국지부가 공격받을 시 지부장이 탈출하기 위한 비밀 통로인데, 내가 이용하는 것.
물론, 비밀 통로에 숨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대응이 아니야.
과거의 나 역시 고도의 지능과 뛰어난 수완을 겸비한 베테랑 요원이니까.
그래서 ‘존재감 없는 소녀’까지 사용 중이다.
덕분에 과거의 나는 ‘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밖에서 과거의 나와 부장의 대화가 들려왔다.
“부장, 직원들에게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
“…”
“내가 널 만나고 있다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
“SOC 보안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정체불명의 혼돈체가 요원의 신분을 위장했다? 심지어 그 상태로 관리국 지부에 잠입했다? 이건 비상사태라고.”
— 탁!
박현민 부장이 말없이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 없으니 진정하라’는 제스쳐 같지만, 직전까지 그와 대화했기에 모종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지금은 부장에게도 대단히 긴장되는 순간이겠지.
거짓말로 베테랑 요원을 속이는 일은 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1~2분 전의 대화가 떠올랐다.
*
“… 내가 실수했다고 하지. 다른 사람과 대화했는데, 실수로 자네 이름을 입력했다고 하면 -”
“과거의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신분 확인 절차가 한둘이 아닌데 통하겠냐고.”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거지?”
“…”
“베테랑 요원을 속여넘길 거짓부렁을 1분 만에 떠올릴 자신이 없군. 그대가 해야 한다.”
“…”
“내가 뭐라고 해야 과거의 자네가 속을까?”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
*
‘김아리 속이기’ 계획 1단계.
무게 잡고 가만히 쳐다보기.
“부장? 왜 그래?”
“…”
“내 말 이해 못했어? 지금 비상 상황이라니까?”
“…”
“… 혹시, 보안 사항과 관련된 일이야?”
*
“일단 무게부터 잡아. 커피 한잔하면서 지그시 바라보라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난 상상력이 꽤 풍부하거든. 태어난 장소가 장소다 보니 어쩔 수 없지. 네가 심각한 일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과거의 나는 알아서 여러 가지 상상에 빠질 거야.”
“… 다음은?”
*
계획 2단계.
뜬구름 잡는 멘트 아무렇게나 던지기.
“그래… 그렇군. 그렇게 된 건가.”
“뭐?”
“비등방성 균열의 복구는 이번에도 어려웠는가…”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것이 혼돈의 옥좌가 택한 운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저기요?”
과거의 내가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은 시점, 부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아리 요원. 새로운 임무일세.”
“가, 갑자기? 무슨 임무인데?”
— 탁!
“파일? 이게 뭔데 -”
“여기서 열지 말게.”
“…”
“바로 인천으로 이동하도록. 그때까지 파일을 개봉하면 위험하다.”
“…”
“이해했나?”
과거의 나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며 무슨 말을 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숙이고 새 임무를 받아들였다.
“이해했어.”
— 탁!
이후, 약 5분의 침묵이 흘렀다.
“… 김아리 요원은 지부 밖으로 나갔네. 이만 나오지?”
조심스레 사무실 쪽으로 나오자, 부장이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괴이한 능력이 있군. 김아리 요원을 보내고 누군가와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까진 생각했는데, 누구와 대화해야 하는지 잠시 헷갈렸다.”
존재감 없는 소녀가 부장에게도 영향을 끼쳤던 것.
“잘했어. 급한 불은 껐네.”
“하나 묻지.”
“뭔데?”
“시키는 대로 하긴 했는데, 이런 헛소리가 왜 통한 거지?”
“…”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럴듯한 단어를 지껄였을 뿐인데.”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내가 은근히 감수성이 풍부해.”
“…”
“상상력이 뛰어나다고나 할까? 그래서 무게 잡고 뜬구름 잡는 소리 하는 거에 약하더라고.”
“…”
“게다가, 너는 한국지부장이지. 일반인이 하면 무슨 미친 소리인가? 하는 것도 관리국 고위층이 하면 심오한 13가지 비밀이 숨겨진 문장인가? 생각하기 마련.”
“…”
“의문을 또 다른 의문으로 덮는 수법이야.”
“어째, 경험담 같은데. 이런 수법에 여러 번 당해 봤나?”
“글쎄…”
부장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
“10년 넘게 쓴 탁자에 나도 모르는 감시 센서가 있었다. 그런데, 너는 나도 모르는 센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
“…”
“더 많은 비밀을 알고 있음은 곧 더 높은 신분을 뜻한다. ”
“…”
“딱 하나만 입증하면, 더 이상 네게 의문을 품지 않고 협조하겠다. 미래의 너는 침묵하는 자 직책에 올랐나?”
문득,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네가 내 운전기사 역할을 해줬었지.”
“…”
“고마워. 네 덕에 ‘호주의 탑’을 차 타고 편히 갈 수 있었어.”
처음 침묵하는 자가 된 자는 호주 지하의 비밀 기지로 가게 된다.
또한, 해당 구역까지 차 타고 갈 수 있는 초자연적인 통로가 있다.
이는 관리국 각 지부의 총책임자와 침묵하는 자만 아는 특급 기밀이다.
— 드르륵!
박현민 부장이 의자에서 일어서 공손히 인사했다.
“미래의 승진, 축하드립니다.”
신분을 입증하면 의문 없이 협조하겠다는 약속은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은하수 열차로 다시 돌아가시겠다는 말입니까?”
“응.”
하지만, 약속과 별개로 불가능한 일은 있는 법.
지부장이 난색을 보이며 말했다.
“당장은 어렵습니다.”
“…”
“아시겠지만, 은하수 열차는 일정 주기마다 세계 각지의 지하철 혹은 기차를 대체하는 형태로 등장합니다. 정확히 어느 위치에 나타나는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
“그렇지.”
관리국이 은하수 열차에 직원과 요원을 투입한 방식은 간단하다.
“하지만, 대략적인 시기는 알 수 있지요. 타이밍 맞춰서 은하수 열차가 대체할 만한 각종 지하철과 기차를 운행 정지시키거나, 각종 이유를 붙여 경로를 바꿔야 합니다.”
“…”
“그렇게 경우의 수를 세자릿수 미만으로 줄인 후, 각지에 요원과 직원을 배치해서 투입합니다.”
“…”
“그 중, 우연히 맞아떨어진 사람이 열차에 들어가는 식이지요.”
“…”
“혹시, 미래에는 다른 방식이었습니까?”
“큰 차이는 없었어.”
“그렇다면, 요원님. 당장 돌려보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열차의 출현 주기도 살펴야 하고, 그 시기에 세계 각지의 열차를 통제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합니다.”
“…”
“모든 경우의 수가 맞아떨어지는 일은 약 -”
“몇십 년에 한 번 오는 기회지.”
“아시는군요.”
“알지. 흐음… 어떻게 하지? 몇십 년씩 기다리는 건 무리인데.”
“우선, 은신처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한동안 숨어 지내시는 게…”
불현듯, 강렬한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이 시간대에 떨어진 게 정말 우연일까?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조화가 날 인도했다면?
그렇다면, 타겟은 하나.
“현민아, 혹시 ‘하수연’이라는 사람 찾아줄 수 있어?”
*
늦은 시각, 차가운 밤공기를 느끼며 적막한 서울 시내를 걸었다.
옆에서 함께 걷는 청년, 알레프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선배님.”
서로의 수수께끼는 묻어두자는 제안 이후, 알레프는 조금 더 솔직한 대화를 시도하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제 생각에이곳은 일종의 평행세계입니다.”
“…”
“물론, 이쪽 사람들이 보기엔 제가 평행세계 주민이겠죠.”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단 하나의 진실.
이 우주에 평행세계 따위는 없다.
시작과 끝을 무한히 반복하는 단 하나의 세계선이 있을 뿐.
2년 차 신입이라면 충분히 할 법한 착각이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너무나 다른 세상.
시간여행인가? 하기엔, 지금의 세상은 알레프가 아는 그 어떤 역사와도 다를 테니까.
시작과 끝의 무한한 반복.
영겁의 루프가 반복된 끝에 알레프가 살아온 세상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아득한 미래.
이런 생각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아.
그러니까, 여러 창작물에서 튀어나온 평행세계 같은 개념을 떠올릴 수밖에.
“뭐, 비슷해.”
다만, 나는 알레프가 정말 2년 차 신입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열차로 돌아가는 일은 어떻게 됐나요?”
“당장은 어려워. 그래서, 시간이 남는 김에 일 하나 처리하고 싶어서.”
“처리하고 싶은 일? 혹시…”
“…”
“열차에서 본 그 아가씨 일인가요? 이름이 뭐였더라? 하수연?”
이럴 때 보면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다.
지나가듯 툭 던진 ‘하수연’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걸 보면, 기억력도 좋네.
괜히 데려온 걸까?
옆에 있으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두고 가기엔 거북한 사람.
이게 지금의 알레프였다.
“관리국에서 하수연 씨의 위치를 찾았나요?”
“그래. 주소까지 알려줬어.”
그때, 알레프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호오… 이거 신기하네요.”
“뭐가?”
관리국이 민간인 주소 하나 알아내는 게 신기해?
심지어 대한민국은 주민등록제도가 철저한 나라인데.
그냥 키보드로 딸깍하면 바로 나와.
“행정 시스템에 그 아가씨가 등록되어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 무슨 말이지?”
“생각해 보세요. 열반 열차는 평행세계를 오가는 열차 같거든요?”
정확히는, 루프를 오가는 열차.
“하수연이 다른 평행세계의 주민이었다면, 행정 시스템에 하수연 씨 정보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
“즉, 하수연 씨는 본래 이 세계의 주민입니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나도 알레프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
“하수연에게 이 장소는 목적지가 아니구나.”
“네. 목적지가 아니라, 본인이 나고 자란 출발지입니다.”
“그 말은…”
“아까, 하수연 씨는 열차를 타고 여행을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미 여행을 끝냈고, 고향으로 돌아온 상태죠.”
“…”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제가 도움이 되고 있나요?”
알레프가 빙그레 웃었다.
… 지금이라도 인류를 위해 이놈을 죽여야 하는 게 아닐까?
“어어, 눈빛이 좀 무섭네요. 왜 그러십니까?”
“생각보다 똑똑해서.”
“아… 이거 곤란한데요.”
“뭐?”
“연애 경험이야 많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선 좀 그래요. 선배님의 아름다움이 대단하긴 한데 -”
“거짓말하지 마.”
“갑자기 거짓말이라니 -”
“연애 경험은 무슨 연애 경험. 고백했다가 차이기나 했겠지.”
“하핫! 서, 선배님. 뭘 모르시나 본데 제가 소싯적부터 보통 인기남이 아니었-”
“설마, 첫사랑에게 비대면 고백한 건 아니지?”
그 순간, 알레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 어, 어떻게!”
“…”
“어떻게 제가 어릴 때 메신저로 고백했다는 사실을 아시는 거죠? 이게 선배님의 신통력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