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17)
괴담 호텔 탈출기 817화(816/836)
817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6)
— 김묵성
이곳은 인천항.
현재, 나는 관리국 타격대 두 팀을 데리고 항구 일대의 창고를 하나하나 점거 중이다.
— 여기는 알파, 11번 창고 확인. 대상 없음.
— 여기는 델타, 요원님, 3번 창고 쪽에서 소음을 감지했습니다.
솔직히,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다.
현재 진행 중인 작전, 호텔에 오기 전에 이미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특한 힘에 홀려 광기에 휩싸인 김수호, 내 아들.
그 아이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일은 호텔에 오기 전에도 내가 마무리했지.
과거에 실패한 일도 아니고, 과거에 성공한 임무를 다시 하는 중인데 실패할 이유가 있을까?
굳이 따지면,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서 티 안 나게 늦추느라 피곤했다.
“그쪽은 속임수다. 5번 창고 낌새가 이상하니, 확인하라.”
— 5번 창고, 알겠습니다.
조금 전의 지시가 좋은 예시다.
내 명령을 철석같이 따르는 타격대 군인들에겐 미안하지만, 5번 창고 이야기는 시간을 끌기 위한 거짓이다.
— 여기는 델타, 5번 창고에서 시체 두 구 발견. 하지만, 타겟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진행하는 게 좋겠지.
“11번 창고쪽에서 흉측한 혼돈의 기운이 느껴진다. 포위해라.”
— 11번 창고, 포위 시작!
11번 창고도 거짓이다.
다만, 이번 명령은 무의미하진 않았다.
나는 아들이 숨을 수 있는 장소를 점차 좁혀가고 있으니까.
그래, 나는 아들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미 한번 잡아 봤는데,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지.
…
303호에 진입하기 전에 후원자와 했던 이야기.
아들은 관리국의 가혹한 결단에 의한 희생양인가?
아니면, 정말로 타락한 존재였는가.
전자라면 내 성급한 결단이 참혹한 비극을 낳았다는 뜻이다.
후자라면… 내가 아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끔찍했다.
너무나 끔찍해서, 결론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들과 재회하는 순간이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리 두려운 일이라 해도 끝을 봐야 할 때가 있는 법.
“… 타겟 발견. 진입하겠다.”
— 어엇! 요원님, 합류할 때까지 대기하셔야 –
— 삑! 전원이 종료되었습니다.
*
주변은 고요했다.
— 쿵!
그래서인지, 내 발소리가 제법 요란하게 느껴졌다.
뭐, 주변이 조용했어도 묵직한 소리가 났을 것 같지만 말이다.
“… 수호야. 여기 있는 거 안다.”
답변은커녕,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나와야 한다. 타격대에 잡히면, 나도 널 살릴 수 없다.”
— 바스락!
“내게 잡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어두운 그림자 너머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이 어른거린다.
위치상 아들은 내가 보이지 않겠지만, 내 눈에는 아들이 또렷이 보였다.
외견은 30대 남성.
본래는 날 닮아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지금은 뼈만 남아있다.
한 달 이상 고생하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구나.
언뜻 봐도 쇠약하기 그지없는 몸이다.
하지만, 창백한 얼굴에 깃든 눈빛만은 여전히 생생했다.
“관리국은 네가 사악한 마도 의식을 진행 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희생자 수는 최소 아홉이고.”
“…”
“잠정적인 결론이다. 확실한 건 아니야.”
안타깝게도, ‘잠정적인 결론’이라는 말은 관리국에게 큰 의미 없다.
혼돈 재해 대응에 있어서 관리국은 언제나 극단적인 스탠스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의심스럽다면, 그것만으로 죽을죄다.
“알다시피, 일반인이라면 넌 이미 죽어야 한다.”
“…”
“하지만, 요원에겐 높은 수준의 재량권이 있어. 그러므로 네게는 아직 기회가 있단다.”
“…”
“필시, 흉측한 존재가 네 몸과 마음을 뒤틀었을 게다.”
처음으로 어둠 너머에서 아들의 답변이 돌아왔다.
“아버지, 저는 멀쩡합니다.”
혼돈 재해에 휩쓸린 사람은 본인의 광증에 대한 자각이 없기 마련.
“괜찮다. 신체적인 문제라면, 오염된 부분을 뜯어내서라도 고칠 수 있어.”
“아버지…”
“정신적인 문제라면 더 쉽다. 아주 강력한 회복 수단이 있거든. 아무리 극심한 광기라 해도 치유할 수 있어.”
그때, 어둠을 등진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버지, 제 말을 들을 생각이 없으시군요.”
“몸에 문제가 생겼든, 정신에 문제가 생겼든 상관없어.”
“이미 제가 미쳤다고 생각 중이십니다. 우리는 대화 중인 게 아니군요. 독백 중입니다.”
“… 나는 널 안다. 내가 키웠는데 모를 리가 없지.”
“정말입니까?”
“네가 무슨 성자 성녀까진 아니겠지만, 선량한 시민이야. 갑자기 사악한 마음으로 타인을 해칠 리가 없다. 분명, 악마적인 존재가 널 홀려서 -”
그 순간, 어둠 속의 형체가 은신처를 박차고 나왔다.
— 우당탕!
터무니없는 도약 거리와 벼락같은 움직임.
분명 빼빼 마른 몸인데, 그 속에는 거의 고릴라를 연상케 하는 괴력이 숨겨져 있다.
… 안타깝지만, 저 움직임이야말로 아들이 어딘가 뒤틀렸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
뒤늦게 날 발견한 아들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가 무슨 우주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으니, 놀랄 만하다.
나는 방호복을 입고 왔다.
— 쿵!
“크악!”
싸움은 순식간에 끝났다.
아들의 신체 능력은 제법 준수했지만, 그래 봤자였기 때문이다.
저 아이가 혼돈의 힘을 얻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한 달? 반년? 길게 잡아봐야 2~3년이겠지.
나는 최소 3번의 삶을 악마와 맞서는 데 바쳤다.
애초에, 호텔에 오기 전에도 나는 아들을 어렵잖게 제압했었지.
방호복은 쉽고 빠르게, 서로에게 큰 상처 없이 제압하기 위한 도구일 뿐.
“끄윽! 크으으…”
“가만히 있거라. 힘이 제법 세긴 하다만, 소용없다.”
“크으으… 으아아악!”
“눈빛이 점점 벌겋게 변하는구나. 흉측한 존재가 널 홀려도 단단히 홀린 모양이다.”
“흐으으…”
여기까지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였다.
다만, 다음부터는 기억이 모호했다.
결국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확실한데,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쳐 죽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녀석을 관리국에 데려갔던가?
관리국 기술력으로도 아들의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관리국 혹은 내가 아들을 처분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며 고민에 빠진 시점.
“음?”
예전에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변수 – 내 새로운 능력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진실한 마음에 귀를 기울이세요.」
*
— 김아리
요원으로서 여러 번의 삶을 지내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평범한 인간의 삶이란 덧없구나.
수명은 길어야 80~90년 내외, 그나마도 건강한 사람 기준.
회귀는커녕, 수명 한계가 다가오면 공포에 질린 채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들은 명백히 우리보다 나약한 존재였다.
단순히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가 나약할 수밖에 없는 것.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날 특별하게 만들어줘서’가 아닐까?
…
요원 상당수는 일반인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다섯 번, 여섯 번을 만나고도 이름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지.
우리의 이런 태도는 종종 오해를 낳고는 한다.
‘필멸자의 하찮은 이름 따윈 기억할 가치도 없다는 거냐?’ 따위의 반응이 가장 흔하지.
실제 심리는 무슨 선민의식이나 우월감보다는 두려움 또는 슬픔에 가깝다.
죽음을 겪기 전에는 누구도 자신이 회귀자임을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요원들 역시 첫 번째 삶만큼은 일반인의 감성으로 살았다.
이는 곧, 진심으로 사랑했던 필멸자 가족이 있었다는 뜻.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이별의 경험이 있다.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에 요원들은 자연스레 일반인을 멀리하게 된다.
민간인은 업무상 보호 대상일 뿐, 진심을 담아 대할 상대가 아니다.
…
이런 면에서 보면, 눈 앞의 여성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다.
요원의 마음을 얻은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수연이라고 합니다.”
“…”
“과, 관리국에서 오셨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하수연 양, 저는 알레프라고 합니다.”
알레프가 내 쪽을 슬쩍 보았다.
소개든 뭐든 하라는 뜻이겠지.
“나는 김아리야.”
“네, 네에…”
겁을 많이 먹었어.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네.
난데없이 관리국 요원이 집에 들이닥쳤으니,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진 않겠지.
“어흠, 수연 양. 너무 겁먹으실 필요 없습니다.”
“그, 그런가요?”
“물론이죠. 아, 저쪽 사진은 학교에서 찍은 건가요?”
“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찍은 사진이에요.”
알레프가 나름대로 분위기를 누그러트리는 사이, 주변을 살폈다.
1976년 시점의 하수연은 한국 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다.
한데, 집안에 다른 사람의 옷가지 등 흔적이 전혀 없는 게 다소 기묘했다.
여자 혼자 사는 게 뭐가 이상하냐고?
배경이 2020년대가 아니라 1970년대다.
한창 꽃다운 나이의 여대생이 홀로 이렇게 넓은 집에 사는 일은 흔치 않다.
뭐, 신변 조사는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야, 친구분들이 다들 미인이신데요?”
“어머! 알레프 씨도 -”
“하수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네, 넷!”
“은하수 열차 탔지?”
“예?”
“은하수 열차라고 하면 모르겠어? 열반 열차는 어때?”
“…”
“이름은 아무래도 좋아. 시간여행 혹은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열차 탔잖아. 맞지?”
“… 저, 저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어요.”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묵성이 옆에 있을 때도 했던 생각.
하수연의 외모는 서울 아가씨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그 느낌에 세련된 감각을 살짝 가미하면 된다.
제법 미인인 데다가 무척 선량해 보였다.
물론, 외모를 가지고 선악을 판단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 없지.
그 살아있는 증거와도 같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하수연 양, 긴장 푸세요. 겁박하는 게 아니라 몇 가지 물어보려고 온 겁니다.”
“…”
“열차를 어떻게 타셨습니까? 사실, 전 이 부분이 제일 궁금하거든요.”
“…”
“솔직히 말해주세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만… 무슨 말인지 아시죠?”
“…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황당하게 들려도 믿어주세요.”
“황당한 이야기? 딱 좋네요. 경청하겠습니다.”
하수연의 첫 말은 다소 기이했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먼 과거, 왕조시대 사람이었다고 해요.”
“…”
“어, 음, 입증한다거나 하는 건 불가능해요. 저도 그냥 들은 이야기라 -”
“끊지 말고 계속 설명해. 들을 테니까.”
“… 아버님이 말씀하시길, 본인은 젊은 시절에 이상한 마차를 타셨대요.”
“…”
“탈 때는 마차였는데, 들어가니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강철 상자 속에 내가 있었다. 지금이야 그게 열차였다는 걸 알지만, 당시엔 열차라는 단어도 몰랐다.”
“…”
“멍하니 돌아다니다 보니, 직원이 나타나서 말했다. 열차는 모종의 이유로 고장이 난 상태라고…”
“우리와 똑같네요?”
“예?”
“알레프, 말 끊지 마.”
“죄송합니다. 계속 설명하시죠.”
“이상한 모험을 했다. 다시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했다. 이런저런 역에 내려서 괴상한 행동을 하고, 다시 타기를 반복했다.”
“흐음…”
“그러던 중, 직원이 말했다. 덕분에 열차 수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수연의 아버지가 열차 수리에 기여했다는 소리네.
“고생하셨으니, 보답이 있어야겠지요. 원하는 역에서 내려드리겠습니다. 또, 원할 때 열차에 다시 탈 수 있는 탑승권도 드리겠습니다.”
열차 수리에 기여한 대가로 받은 두 가지 보답.
원하는 역에서 내릴 권리, 나중에 다시 열차에 탑승할 권리.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사람 인생 뭐 별거 있습니까? 예쁜 아내 만나서 한세상 잘 살다 갈 수 있으면 그걸로 됐습니다.’ 훗날, 아버지는 크게 실수했다고 하셨죠.”
“실수? 무슨 말이죠?”
“열차가 아버지를 한국전쟁 직후 시기에 내려줬거든요.”
“아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국전쟁 직후라면, 1950년대 중반 시기에 내려줬다는 거야?
그 시기에 내려주는 게 ‘보답’이라고?
알레프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전쟁 직후 시대에 내려줬다고요? 탑승권 다시 써야 했던 것 아닙니까? 더 좋은 역에 내려달라고 해야죠.”
“그게, 그렇게 되진 않았어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죠.”
“두 가지 이유?”
“첫째, 신분이 혼란스러운 시기라 아버님 같은 분도 섞이기 쉬웠다고 해요.”
“으음, 그건 일리 있군요.”
“둘째, 어머님을 만나셨거든요.”
여기까지 들으니 또 살짝 이해는 가네.
시간 여행자의 모호한 신분을 쉽게 감출 수 있는 혼란기, 여기에 운명적인 사랑이 기다리는 시대.
이 정도면 관점에 따라선 ‘보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어쨌든, 이 대화에서 두 가지 키워드를 얻었다.
1. 열반 열차는 고장 나있다. 승객의 도움을 받아 수리할 수 있다.
2. 수리에 기여할 경우, 열반 열차 측에서 보상을 준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네게 탑승권을 유산으로 남긴 거야?”
“… 탑승권은 훨씬 일찍 받았어요. 나는 한 세상 잘 살았으니, 너도 그러길 바란다. 인생이 막막하다 싶을 때 탑승권이 널 도와줄게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좋은 분이시네요.”
“네…”
“당신 아버지 사연은 대충 이해했어. 문제는 그다음이네. 하수연, 너는 왜 열차 탑승권을 사용했지?”
그 순간, 하수연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 살기 위해서.”
“뭐? 누가 널 죽이려 해?”
“…”
“침착하게 말씀하세요. 우리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아버님을 죽인 사람.”
“뭐?”
“아버님을 죽인 사람. 그 사람이 저까지 죽이려 해요.”
*
— 김묵성
.
..
…
진실한 마음에 귀를 기울이라는 알림이 나온 직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원한과 증오로 가득한 목소리 말이다.
‘거짓말하지 마…! 돌아가신 어머니께 들었어. 당신이잖아. 당신, 당신이… 할아버지를 죽였고, 어머니를 죽였고 이제는 나까지 죽이려는 거잖아… 한 번도 우릴 살려줄 생각 없었잖아!’
이상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