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818)
괴담 호텔 탈출기 818화(817/836)
818화 – 303호, 저주의 방 – ‘타임머신’ (7)
— 김묵성
“여기는 알파, 요원님! 안전거리 확보하시고 -”
“이미 제압했네.”
“예? 벌써 – 정말이군요. 의식을 잃은 것 같습니다.”
“가둬서 본부에 보내. 그리고…”
말끝을 흐리자 알파 팀을 지휘하던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
“추가로 알아내야 할 정보가 많은 만큼, 처분하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최대한 수호를 죽이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뜻이다.
팀장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
“내가 책임지겠네.”
팀장 선에서 막을 수 없는 사람이 수호를 처분하려고 하면, 내 이름을 대서 막겠다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 부탁하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송차량이 기절한 수호를 데리고 떠났다.
다시금 찾아온 평온.
물론, 겉으로 보기에만 평온할 뿐 내 마음속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으로 가득했다.
수호가 의식을 잃기 직전, ‘진실한 마음’이 들려준 목소리.
‘당신이 할아버지를 죽였고, 어머니를 죽였고 이제는 나까지 죽이려는 거잖아!’
이게 대관절 무슨 소리일까?
너무나 황당한 말이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얘들아, 다들 놀랐지? 나도 진짜 충격받은 상태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며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말이 안 된다. 정말로 말이 안 되는 소리야. 내가 장인과 아내를 죽일 이유가 있겠냐?”
내게 장인과 아내를 죽일 이유 따위는 단 한 개도 없다.
“게다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야. 장인어른은 아내가 고등학생 시절 이미 돌아가셨다. 그 양반이 살아있던 시절엔 나와 만난 적도 없어.”
설명하면 할수록 흥분이 서서히 가라앉음을 느낀다.
아들의 말이 이치상 불가능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내는 평온하게 침대에서 죽었다. 누구에게 살해당한 게 아니야. 조금 일찍 떠나긴 했지만, 본래도 건강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 불길한 가능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기억 자체가 왜곡되었을 가능성은?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 인간의 기억을 장난감처럼 주무르는 존재는 널리고 널렸다.
“만약 내 기억 자체에 조작이 가해졌다면… 확인해 봐야겠구나.”
*
한참 동안 내 이야기를 들은 박현민 부장의 첫 말은 간단했다.
“요원, 자네 말을 요약해 보겠네.”
“…”
“김수호의 주장에 따르면, 자네가 장인과 아내를 죽였고, 김수호 본인까지 죽이려 한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혼돈의 힘을 받아들였다. 뭐 이런 소리지?”
“그래.”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
“자네의 사별한 아내, 하수연의 사망 사유는 심장 질환 및 합병증이야. 젊은 시절부터 심장이 약했지.”
“… 그랬지.”
“이 의무기록이 조작이라는 소리인가?”
— 펄럭!
“이것들을 보게. 사망 직전의 진단서 한 장이 아니야. 하수연의 건강은 2000년대 초기부터 문제가 있었으니, 최소 15년 치 의무기록이지.”
“…”
“전부 조작이라는 소린가? 누가 조작했나? 설마 자네인가?”
“…”
“김수호의 말대로면 자네겠군. 자네가 아내를 죽였고, 15년 치 의무기록도 조작했고, 최종적으로는 본인 기억도 지운 모양이야.”
“…”
“침묵하는 자도 아니고, 단 한 명의 요원이 이 모든 기록을 조작해서 관리국을 속이는 일.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
“아까부터 말이 없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내 생각도 박현민 부장의 생각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요원인 나와 결혼했기에 각종 건강검진 기록이 전부 관리국에 남아있다.
이 모든 기록을 내가 조작했다?
도저히 말이 안 된다.
동기는 둘째치고, 과거의 내게 그 정도의 능력이 없다.
“요원, 내게 훨씬 간단한 가설이 있는데, 들어보겠나?”
“… 듣고 있다.”
“자네 아들은 미쳤네.”
“…”
“혼돈의 힘을 얻는 과정에서 자아와 기억이 뒤틀린 거야.”
“…”
“뒤틀린 정신은 온갖 망상을 창작하기 마련. 개중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었을지도.”
“나와 수호의 관계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겉으로는 그랬지만, 속을 누가 알겠나? 어쩌면, 회귀자인 자네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르지.”
이쯤에서 내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일까?
박현민 부장이 어울리지도 않는 소리를 했다.
“내 말이 좀 심했다면, 사과하겠네.”
“아니야.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야겠지.”
“요원,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
“혼돈의 힘에 휩쓸린 자가 광기에 빠지는 것, 오늘 처음 보나?”
“그럴 리가.”
“자네 아들도 똑같은 현상을 겪었을 뿐이야. 광인의 헛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라는 뜻일세.”
머리가 아팠다.
부장의 말이 대단히 일리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길이 아님’을 인지했다.
“과거의 나도 이런 식으로 생각했겠지.”
“뭐?”
“수호의 말을 무시했을 거야. 광인의 헛소리로 여겼겠지…”
“요원,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
“아니, 아니야. 이해했네. 다만, 의문이 하나 있어.”
“… 뭐지?”
“아내의 의무기록은 잘 봤어. 한데, 장인어른 관련 기록은 없나?”
“하수연의 아버지는 하진성이라고 하네.”
장인어른의 이름, 하진성.
“그거야 나도 알지.”
“그는 1973년에 사망했어. 자네 아내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지.”
“그것도 알아. 내 말은, 장인어른이 어쩌다 돌아가셨냐는 말 -”
“지금 내가 이야기한 게 전부야.”
“뭐?”
“하진성과 관련한 추가적인 기록은 없다.”
“무슨 말인가? 기록이 없다니.”
박현민 부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없는 게 이상한가? 자네의 아내였던 하수연이라면 모를까, 하진성은 정말로 그냥 일반인이었는데.”
“그건…”
“설마, 관리국 데이터베이스에 역사상 모든 인간의 구체적인 사망 사유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당대의 사망 신고에는 병사라고 쓰여있었네. 심장 질환이 아닐까, 싶군.”
“수연이처럼?”
“일종의 유전적 문제일 수 있겠지.”
부장과 더 이야기해도 진전이 없을 것 같다.
“후우… 좋아. 가보지.”
사무실을 나가기 직전.
“그러고 보니…”
박현민 부장이 무언가 기억났다는 투로 말했다.
“자네 말을 듣다 보니 생각났다. 하진성의 사망 시기가 1973년이라고 했던가?”
다음 이야기는 정말로 기이했다.
“그 시기에 본부를 향한 테러가 있었지.”
“테러?”
*
— 관측소
묵성이 김수호로부터 충격적인 정보를 얻은 후, 관측소의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나온 이야기는 ‘말이 되냐?’였다.
“내용이 충격적이기는 한데, 말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차진철의 목소리에 은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님이 장인과 아내를 죽였다… 자극적이긴 한데, 생각할수록 괴상해. 애초에 본인은 왜 모르지?”
송이가 멍하니 답했다.
“으음, 기억 조작이 있었을 수 있죠.”
“할아버님은 그동안 수 없이 피리의 도움을 받으셨는데?”
“최초의 소원과 관련한 기억은 피리로도 회복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차진철이 답답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김수호의 말이 성립하려면 얼마나 많은 조작이 필요하냔 말입니다. 박현민 부장이 지금 그 소리 하는 거잖아요. 의무기록을 다 조작해야 한다고.”
이때, 이은솔은 차진철이 현실에서 요원 경험을 쌓은 게 헛수고는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송이나 자신은 ‘요원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요원 경험을 해본 차진철은 ‘요원이라 해도 관리국을 속이기는 어렵다’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
송이가 조심스레 답했다.
“관리국이 나서서 조작했다면요? 관리국이 명령해서 하수연 씨 등을 죽였고, 이후에 자료를 조작했다면…”
범인이 관리국이라면, 조작의 어려움은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
차진철이 말이 되냐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송이야, 303호 회차는 호텔 밖 현실과 아주 가까운 회차야 알지?”
“그렇죠. 바로 직전 회차 아닐까요?”
“그러면, 저 시기의 정보를 아리가 모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어머? 그렇네요?”
301호나 302호에서 벌어진 일을 아리가 모르는 건 그럴 수 있다.
301호, 302호 루프와 현실 사이에 어마어마한 시간적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303호는 현실 바로 직전으로 추정되는 루프.
이 시기의 관리국이 묵성에게 명령해서 장인과 아내를 죽이게끔 하고, 각종 의무기록 등을 조작했다?
아리가 모를 수 없다는 게 차진철의 지적이다.
“어머, 듣고 보니 오빠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수긍한 듯 물러서는 송이와 달리 은솔은 조용히 반박했다.
“진철이 말 이해했어. 박현민 부장도 너랑 똑같이 말했고. 김수호의 말은 터무니없다고 느껴지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김수호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여러 사람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토론을 끝내면 중요한 게 빠졌잖아.”
진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님, 뭐가 빠졌다는 겁니까?”
“호텔은 할아버님에게 ‘진실한 마음’이라는 능력을 왜 준 거야?”
“…”
“김수호는 미쳤다, 그 사람의 말은 다 헛소리다. 이게 진짜 정답이면, 할아버지는 김수호의 내면을 듣기 위한 능력을 왜 얻은 거야?”
— 탁!
이쯤에서 가인이 탁자를 쳤다.
“요약합시다. 첫째, 논리적으로 김수호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 둘째, 그의 주장을 말이 안 된다고 무시할 거면, 호텔이 진실한 마음이라는 능력을 줄 이유가 없다.”
엘레나가 살짝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질문했다.
“가인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음, 이 주제는 진짜 잘 모르겠는데.”
“저도 모르겠습니다.”
“예?”
“정보가 부족해서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 이게 제 판단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고?”
가인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혼란스러운 방 내용은 둘째치고, 303호도 저주의 방 아닙니까?”
“어… 그렇죠.”
“저주의 방이란 종말 직전의 방이잖아요?”
“보통 그랬죠.”
“지금 종말의 징조 같은 게 느껴지시나요? 아까부터 할아버지, 아리 쪽을 번갈아 살피면서 찾고 있거든요.”
“…”
“대체 어떤 놈이 세상을 말아먹는 걸까요?”
관측소가 조용해졌다.
*
— 김아리
‘아버님을 죽인 사람. 그 사람이 저까지 죽이려 해요.’
두려움으로 가득한 목소리.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저와 어머니는 공포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도무지 탈출구가 없었어요.”
“신고는 해봤어?”
“신고요? 당연히 해봤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아버님을 죽였고, 저까지 해치려 한다는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요.”
“으음… 그래서 탑승권을 썼구나?”
“네. 탑승권을 썼어요. 하얀 종이를 쥐고 간절히 소원을 빌었죠. 그랬더니, 모월 모시에 어디로 나오라는 문구가 떴고.”
“그리로 갔더니 열차가 나타났나 보네.”
“네.”
하수연은 자연스럽게 본인의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여행 이야기는 할 말이 별로 없어요.”
“무슨 소리야?”
“저도 제가 뭘 했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 이해한 대로 말해봐.”
“열차 직원이라는 사람이 쪽지를 줬어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적혀있는 쪽지였죠.”
“…”
“내려서 50분 정도 직진해라. 그러면 풍년 다방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다방에 가서 15분 정도 기다려라. 그러면 중절모를 쓴 남자가 들어온다.”
“…”
“중절모를 쓴 남자가 들어오면, 실수인 척하면서 커피를 엎질러라. 사과도 하고, 눈물도 흘려라. 컵을 아예 깨트리면 더 좋다. 이런 식으로 남자를 30분 이상 붙잡아라.”
“… 괴상한 지시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서리꽃 공원이라는 장소로 가라. 11시 15분쯤에 야간 순찰하는 경찰이 나올 테니, 그때는 가장 큰 느티나무 뒤에 숨어라.”
너무나 괴상하고 구체적인 지시.
“느티나무 뒤에 숨어서 기다리면 경찰이 지나간다. 또 30분 기다려라. 이러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다음은?”
“여섯 명이 모였을 때, 근처의 개울에 뛰어들어라. 어푸어푸하면서 최대한 크게 비명질러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사라지면 절반은 성공이다.”
“뭐가 절반 성공이라는 거야?”
“저도 몰라요. 그냥 쪽지에 적힌 대로 했어요.”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어서 혼란에 빠진 시점.
갑자기 알레프가 입을 열었다.
“두 분, 나비효과라는 이야기 아십니까?”
“나비효과?”
“아까, 선배님을 기다리면서 우동 한 그릇을 사 먹었죠. 꽤 맛있었어요. 사장님에게 솜씨가 좋으시다고 했더니, 이런 칭찬 덕에 장사할 맛이 난다고 하시더군요.”
“…”
“만약 제가 욕을 했다면 어떨까요? 실망한 사장님이 우동 가게를 접으셨어요. 가세가 기울었고, 어린 아들은 대학 등록금을 내지 못하게 됐죠.”
“…”
“이 일은 소년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습니다. 세상을 원망하며 자라났고, 11년 후의 어느 날 바닷가에서 기이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
“사신의 목소리를 들은 소년은 깨닫습니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구나. 위대한 움파룸파께서 계시를 내리셨으니, 나약한 세상을 한 줌 재로 불태우리라.”
“…”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우동 한 그릇 먹고 내린 평가에 세상의 운명이 달린 겁니다. 어제 제가 세상을 구했어요.”
“네가 터무니없는 자의식 과잉이라는 건 느껴지네. 그래서?”
“수연 양, 아버님이 본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셨죠?”
“네…”
“당연히 이해할 수 없죠. 위 이야기에서, 아버님의 역할은 ‘우동 한 그릇 먹고 평가하기’입니다.”
“…”
“본인은 그냥 우동 한 그릇 먹고 이렇게 엿같은 우동은 처음 본다고 욕한 게 전부거든요. 여기서부터 나비효과가 일어나서 세상이 망한다? 이걸 어떻게 압니까.”
“…”
“하수연 양이 본인이 한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도 똑같습니다. 이게 열차의 일 처리 방식 -”
이쯤에서 알레프가 말을 멈추었다.
첫째는 내 눈빛이 점차 섬뜩해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어… 선배님?”
둘째는, 그 자신도 위화감을 느끼고 있겠지.
“알레프.”
“예?”
“지금 이 정보, 대체 어떻게 알았지?”
알레프의 눈빛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